재단 포커스
정몽준 이사장 전북대에서 특강 | 등록일: 2011.05.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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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 이사장 전북대에서 특강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는 기적을 만들었고, 이제는 여기 모인 청년들이 미래를 만들어가야 할 차례입니다.” 정몽준 이사장은 5월 12일 오후 3시 전북대학교를 찾아 학생들을 대상으로 ‘우리의 꿈, 그리고 희망’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펼쳐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정 이사장은 이날 특강에서 학생들이 젊음의 가능성을 믿고 취업보다 창업, 특히 농업 분야에 도전할 것을 권했습니다. 농업이야 말로 모든 산업을 어우르는 6차 산업이라며 신재생에너지의 생산기지로 미래를 여는 열쇠가 될 것이라 전망했습니다. 또한 자신의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며 학생들의 창업과정에서 동업자로 조력할 것을 약속하기도 해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정 이사장은 일촌광음불가경(一寸光陰不可輕: 짧은 시간이라도 가볍게 여기지 말라)을 칠판에 적은 후 선친인 정주영 재단 설립자의 여러 일화도 소개하면서 “일제강점기에 초등교육밖에 마치지 못한 아버지는 막노동에서 시작해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을 일궈냈다”며 학생들이 보다 나은 환경에서 공부하는 만큼 시간을 낭비하지 말기를 당부했습니다. 특강 전문을 소개합니다.
우리의 꿈, 그리고 희망 여러분 반갑습니다. 정몽준입니다. 잘 보셨습니까? 저는 오늘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려고 여기에 왔습니다. 만약 우리 아버님이 살아계셔서 이 자리에 계신다면, 아버님께서 가장 부러워하실 분들은 여기 계신 대학생 여러분들입니다. 아까 아버님 말씀 적어놓은 것 보셨죠? 아버님은 초등학교밖에 졸업을 못하셨기에 대학 공사장에서 돌을 나르며 바라본 대학생들을 가장 부러워하셨습니다. 전북에 오게 되면 제가 들르게 되는 곳이 두 군데 있습니다. 하나는 새만금이고, 또 하나는 군산조선소입니다. 전북하면 많은 사람들이 새만금을 생각하는데, 새만금사업은 지금 잘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한나라당 대표로 있을 때, 대통령께 새만금에서 대구, 포항으로 연결되는 동서고속도로 건설을 건의했는데, 우선 새만금에서 전주까지의 구간은 내년에 기본 설계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해서 저도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새만금에서는 지난달에 축제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새만금 사업이 앞으로 잘 되면 전북지역 뿐 아니고 대한민국 경제에 큰 도움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도 관심 가지고 새만금 발전에 기여하겠습니다. 새만금 옆에 있는 조선소가 바로 군산조선소입니다. 이제 공장 준공한지 2년밖에 안 되었지만 벌써 일자리를 6천개 만들었습니다. 군산조선소가 생긴 이후에 군산시의 인구가 늘었고, 조선소 옆에 있는 인근 식당들은 아주 잘 되고 있다고 합니다. 주변에 땅값도 많이 올랐다고 합니다. 군산조선소가 이렇게 짧은 시간 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전북도민들이 많이 도와주신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군산조선소는 앞으로 풍력산업같은 신성장 산업에 많이 투자해서 울산의 현대중공업처럼 이 지역에 큰 도움을 주는 그러한 회사로 발전시켜 나갈 것입니다. 오늘은 저와 여러분들과의 첫 번째 만남입니다. 초면이고 나이는 40년 가까이 차이가 납니다. 여러분들은 나를 보면 아저씨나 아버지라고 생각을 할 것이고, 축구, 2002년 월드컵을 생각하실 것입니다. 저는 지난 1월 도지사님으로부터 전라북도 명예도민증을 받았습니다. 전라북도 도민 여러분들의 포용력을 보여준 것으로 일만 잘하면 당을 구분하지 않고 도와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호남에서 별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는 한나라당의 국회의원인 제가 전라북도 명예도민이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럼 저는 여러분들을 어떻게 보느냐. 여러분들 개개인은 잘 모르지만, 여러분들을 통해 젊음과 가능성을 봅니다. 아버님이 이 자리에 계셨다면 가장 부러워할 사람들이 대학생들입니다.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교를 졸업한 지 40년이 됐지만 내가 ‘지금 대학생이라면 뭘 할까’라고 항상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없지만 여러분에게 있는 것은 젊음과 시간, 그리고 가능성입니다. 서양 격언에는 ‘Too much youth is wasted on the young’, 동양에는 ‘일촌광음불가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시간을 아낄 줄 알아야 합니다. 제가 오늘 강연을 준비하면서 사실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들이 취업보다는 창업을 하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창업을 권유하는 것은 단순히 여러분들이 창업을 통해 돈을 많이 벌라는 뜻은 아닙니다. 제가 강조하는 창업이란 반드시 회사를 만드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물건, 생각들에 새로움을 불어넣는 일들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낡고 정체되어 있는 것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 창업입니다. 끊임없이 새로워지고 새로운 것들이 탄생하는 역동성이 미래를 여는 힘입니다. 이것이 곧 창업입니다. 여러분들 중에 혹시 대학을 졸업한 후에 농업에 종사하겠다는 분이 계십니까? 계시다면 손들어 보세요. 전통적으로 농업을 중시하던 우리나라였지만, 지금 국내총생산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겨우 2%이며, 농업 인구도 6.4%에 불과합니다. 한 해 농산물 무역적자는 200억 달러에 달하고 있습니다. 농업은 할아버지 세대의 산업으로 치부되며, 잊혀져 가고 있는 사양산업입니다. 그런데 세계 어디서나 농업이 이렇게 사양산업 대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해입니다. 선진국일수록 농업이 새롭게 주목받으면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농업은 도전을 겪고 있는 동시에 막대한 경제적 기회 앞에 서 있다”며, 농업과 농촌을 신재생에너지의 생산기지로 만드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은 “농업은 항공우주산업이나 나노테크놀로지 분야와 맞먹는 하이테크 산업으로 미래를 여는 열쇠”라고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선진국들이 1차 산업에 머물러 있던 농업에 최첨단 기술을 가미하는 치열한 경쟁에 나선 결과 이제 농업은 1,2,3차 산업이 모두 결합된 6차 산업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곡물 메이저인 ‘카길’의 한 해 매출액은 약 120조원, 순이익은 3조원으로 우리나라 삼성전자와 맞먹을 정도입니다. 이 ‘카길’은 종자기업인 ‘몬산토’, 식품유통업체인 ‘크로거’와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종자부터 식탁’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지난 1987년부터 수퍼종자 개발을 위한 우주농업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무중력상태에서는 돌연변이 확률이 높아진다는데 착안한 연구로 2006년에는 ‘스젠8호’라는 종자변이 실험만을 위한 과학위성을 발사하기도 했습니다. 이 위성에는 벼와 보리, 밀, 옥수수 등 종자 2,000여 개가 실렸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보다 영토가 작은 유럽의 네덜란드는 농업인구가 전체 인구 중 2.6%에 불과하지만 국내총생산의 10%를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 해 농산물 수출액은 800억 달러에 달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농업이 발전할 여지가 많이 있습니다. 자본과 기술, 그리고 중국이라는 시장까지 갖추고 있는 우리 농업의 상황은 유리한 여건이라고 합니다. 현대중공업이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서 여의도의 약 70배 규모인 2만 핵타르가 넘는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것도 농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중국에 유기농 농장을 운영하는 것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결국 필요한 것은 기존 사물을 새롭게 보는 능력, 도전정신이고, 창업정신입니다. 농업을 새롭게 창업하는 경쟁은 이제 시작인데, 이 분야에서 우리는 또 다른 기적을 이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창업을 권하면 여러분들은 대체 어떻게 창업하란 것인지 의문을 가질 텐데, 제 아버님의 얘기를 잠시 말씀 드리겠습니다. 아버님은 강원도 산골마을 이북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받으신 정규교육이라고는 옛날식 서당에서 논어, 맹자, 대학, 중용 등 한문 교육 3년, 그리고 일제가 세운 초등학교에서 3년, 이렇게 6년이 전부입니다. 어렸을 적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농사일을 했지만 항상 배가 고팠고 평생을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열 여섯 살 쯤 되었을 때 할아버지가 장롱 깊이 넣어두신 소 판 돈을 슬쩍 해서 서울에 오셨습니다. 서울에 오셔서 막노동을 하며 인천 부두 노동도 하셨고 고려대 공사장에서 등짐으로 돌을 나르기도 하셨습니다. 그 때 대학교 건축 현장서 본 학생들의 모습이 아까 여러분들을 부러워하실 것이라고 했던 그 말씀입니다. 막노동으로 전전하시다가 처음 취직한 곳이 쌀집의 배달원 자리였습니다. 앞의 사진에서 보신, 쌀집 주인 할머니를 처음 만났을 때 할머니는 아버지에게 자전거를 탈 줄 아느냐고 물어봤다고 합니다. 사실은 그때까지 자전거를 타 본 적이 없었지만 탈 줄 안다고 하여 취직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며칠 후 자전거 배달에 나섰다가 진창길에 나동그라져서 엉망진창이 됐다고 합니다. 선친은 그 다음에 자전거로 쌀 배달하는 요령을 밤새워가며 배워서 나중에는 자전거에 쌀 두 가마를 한꺼번에 실어 배달할 수 있는 실력까지 갖췄다고 합니다. 요즘 말로 하면 배달의 달인이 된 것입니다. 그런 노력을 인정받아 2년 후에는 주인으로부터 가게를 물려받으셨습니다. 쌀가게 다음으로 창업하신 것이 ‘아도서비스’라는 자동차 수리공장입니다. 사채를 얻어서 수리공장을 열었는데 불과 20여 일만에 큰 불이 나서 공장이 잿더미 되었다고 합니다. 공장뿐만이 아니라 손님들이 맡긴 고급 자동차와 트럭까지 불타버려 순식간에 빚더미에 올라서게 되었다 합니다. 그래서 사채업자를 다시 찾아가서 돈을 더 빌려달라고 사정했다 합니다. 그 당시 사채업자는 “내가 여태까지 사람을 잘못 본 적이 없고, 그래서 돈을 빌려주고 떼여본 적이 없다. 내가 처음에 당신한테 돈을 빌려줄 때도 당신이 성공할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빌려준 것이다. 이제 내가 당신한테 다시 돈을 빌려주지 않아서 당신이 이대로 망해버리면 내가 빌려 준 돈을 떼이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이 남게 된다. 그래서 내가 다시 돈을 빌려줄테니 반드시 성공해서 갚으라”고 말하면서 선뜻 다시 돈을 꿔줬다고 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사채업자는 담보 없이 신용대출을 해준 것이고, 요즘 은행보다 나은 듯합니다. 당시 그 사채업자가 없었으면 지금의 현대자동차는 없었을 것입니다. 창업에는 역시 아이디어가 중요합니다. 아버지께서 현대중공업을 시작했을 때의 얘기를 하겠습니다. 아버님께서 큰 배를 만드는 조선업을 하고자 할 때, 아버님에게는 돈도 기술도 없었고 배를 짓는 조선소도 없었습니다. 있는 것은 그저 맨주먹과 아이디어, 의욕뿐이었습니다. 아버님은 처음에는 일본 사람에게 가서 ‘당신들이 돈과 기술을 주면 내가 조선소를 해 보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일본사람들은 '3만 톤짜리 배를 지으면 돈과 기술을 주겠다'고 대답했다 합니다. 그러나 아버님은 30만 톤짜리 배를 짓고 싶어서 거절하셨고, 다시 영국의 버클레이즈 은행에 가셨습니다. 버클레이즈 은행은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후원 은행입니다. 버클리 은행의 총재를 만나서 돈을 빌려달라고 하니, 은행의 총재가 하는 말이 “정주영 회장, 당신의 사업계획서는 봤는데 대학 다닐 때 전공이 경영학이었나요, 공학이었나요?”하고 물었다 합니다. 아버지는 대학을 안 나오셨기에 순간적으로 식은땀이 났지만 “총재님, 저의 사업계획서를 보았습니까? 어제 그 사업계획서를 들고 옥스포드대학에 갔더니 그 자리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 주겠다'고 말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버클레이즈 은행 총재가 껄껄 웃으며 “옥스포드 대학 사람들도 그런 사업계획서는 못 만들 것이다. 당신의 사업계획서가 더 낫다. 당신의 전공은 유머다. 내 당신의 사업계획서를 수출보증국으로 보내겠다. 행운을 빈다, Good Luck”이라고 말했다 합니다. 짧은 만남이지만 초면에 영국 버클레이즈 은행 총재와 우리 아버님이 서로 상대편의 능력을 인정하는 만남이 있었기에 오늘의 현대중공업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서로의 능력을 알아보고 인정하는 만남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오늘의 우리나라를 보면 취업도 쉽지 않고 창업은 더욱 어렵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창업이야말로 여러분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100% 실현하는 길입니다. 창업에 필요한 요소로서 자본, 경험, 아이디어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창업에 대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꿈과 열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여러분들은 가장 중요한 자산을 갖고 있습니다. 바로 젊음과 가능성입니다. 저희 아버지는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했고 그 당시의 사회여건도 지금보다 결코 낫지 않았습니다. 가능성만 따지면 여러분들의 가능성이 훨씬 낫다고 보여집니다. 여러분들의 꿈과 열정으로 가능성을 키워나가시길 바랍니다. 오늘 제 이야기를 듣고 창업을 결심하는 학생이 한 명이라도 생긴다면, 오늘 제 강연에 보람이 있을 것입니다. 좋은 아이디어와 계획을 갖고 계신 분들을 위하여 제 이메일 주소를 알려드리겠습니다. mjchung@assembly.go.kr 아이디어, 계획, 꿈과 열정을 갖고 계신 분들과는 동업도 할 수 있으니 연락해 주시길 바랍니다. 돈은 제가 댈테니 여러분은 아이디어와 열정을 제공하시면 됩니다. 혹시라도 돈을 벌면 제가 가져갈까봐 염려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미국을 다녀왔습니다. 미국 의원들과 회의를 하기 전에 샌프란시스코에 들러서 요즘 잘 나가는 IT 기업 몇 군데를 돌아보았습니다. Twitter, Facebook, Google, Apple, 여러분, 다 아시는 기업들이죠? Facebook에 갔더니 창업자인 주커버그가 별도의 사무실 없이 직원들과 같은 책상에 앉아서 일을 보고 있는 게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기업들은 Apple을 빼고는 모두 5년에서 10년 정도 밖에 안 된 회사들입니다. 직원들의 평균연령도 30세~35세라고 합니다. 젊은이들이 아이디어와 열정 하나로 단기간에 이런 세계적인 기업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지금 보고 계신 사진은 얼마 전에 주커버그가 700만 불을 주고 구입했다는 집 사진입니다. 여러분들도 이런 집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실 것입니다. 저는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 모두가 주커버그에 못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세대보다 훨씬 더 창의적이고 열정적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곧 이런 세계적인 IT 기업들이 나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오늘 제가 이 자리에서 서니, 저도 여러분과 같이 학생이라는 기분입니다. 여러분들이 내게 궁금하신 것이 무엇인지 짐작이 갑니다. 제가 왜 정치하는지 궁금하시죠? 저는 정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대한민국의 새로운 정치라는 창업을 한다는 기분으로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저는 꿈과 도전, 창업에 대해 얘기를 했는데, 저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정치라는 창업을 꿈꾸는 사람입니다. 저는 많은 난관에 부딪치고 있지만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길이 저의 심장을 뛰게 하는 일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간단히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저는 6선 국회의원이고 한나라당의 대표를 지냈습니다. 2002년에는 월드컵이 끝나고 대통령 후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대통령 후보가 될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저는 스포츠와 정치는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2002년에 월드컵이 끝나고 추석도 지나고 9월말쯤에 한 방송사에서 여론조사를 했는데, 제가 대통령 후보 중에 1등으로 나온 것을 보고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당시 4선 의원이었는데 국민들께서 이렇게 기대하고 있는데도 준비가 안 되었다는 이유로 못하겠다고 하는 것이 정치인의 도리인가 하는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후보가 되었지만 준비 없이 하다 보니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높은 여론지지에 떠밀려서 후보가 됐지만 제 마음의 준비가 부족했던 탓에 결과적으론 큰 어려움을 겪게 된 것입니다. 2002년 대통령 선거의 경험을 하며 저는 제 자신이 정치적 낭만주의에 빠져있었던, 바람이 많이 들어간 정치인이었던 것을 반성했습니다. 그런 반성에 따라 더 이상 정치적 이상주의자로서 헛수고는 그만하기로 하고, 지난 2007년 정당이라는 현실에 몸을 담았습니다. 호랑이 굴인 정당에 들어가야 정치개혁이란 호랑이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마무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가 경제발전이고, 두 번째는 민주화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88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을 유치해 성공적으로 치러낸 것입니다. 88올림픽은 6.25전쟁과 가난의 이미지로만 기억되던 우리나라를 전 세계인들이 새롭게 볼 수 있도록 만든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나간 얘기지만 88올림픽을 생각해보는 건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저희 아버님이 88올림픽 유치위원장으로 활동하시던 때의 에피소드 한 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IOC 총회가 열리는 독일의 휴양도시인 바덴바덴에 갔더니 우리나라의 IOC위원인 분이 저희보다 일주일이나 늦게 왔습니다. 그 당시 아침마다 회의를 했는데 그분 말씀이 투표하면 한국 지지표가 2표는 나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 위원이 찍은 1표에, 미친 놈이 찍은 1표, 합해서 2표라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올림픽을 유치한 것은 대단한 일이고, 전세계 많은 나라에 정치적 변화의 물결을 만든 것이기에, 우리 국민 모두가 자부심을 가질만한 일입니다. 이렇게 불가능하다고 했던 산업화, 민주화, 그리고 올림픽과 월드컵을 개최했는데, 그 다음 목표는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성취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지금 우리에게 또 다른 불가능해 보이는 숙제들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나라 정치입니다. 많은 분들은 우리 정치가 변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치가 항상 그렇지 뭐가 달라지겠냐’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정치는 변화의 싹을 보이고 있습니다. 상향식 공천제도가 논의되고 있고 경상도니, 전라도니 하는 지역감정을 극복하기 위한 석패율 제도의 도입도 논의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남북통일이 불가능하다고 많은 분들이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북한이 핵으로 무장한 상황에서 중국이 북한의 후견인을 맡고 있기 때문에 통일이 더욱 어렵게 보이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 최근 문제가 하나 더 생겼습니다. 통일이 되면 살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며 통일을 차라리 안 하는 것이 더 좋겠다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통일이 되면 북한에 쌀을 비롯해 여러 가지 지원을 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시지만, 우리가 북한에 줄 수 있는 것은 쌀보다 자유입니다. 강인하고 유능한 북한 주민들은 빠른 시일 내에 자립할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습니다. 통일이 되면 나라의 위상도 전세계 5위권까지 솟아오를 것이고, 우리 전주와 전라북도도 많이 좋아질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기적은 없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것입니다. 저는 지난 몇 십 년간 우리나라에 일어난 일이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선배들의 일을 이어서 ‘미래’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정치는 미래를 만드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서 정치를 선택했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가 ‘기적’을 만들었고, 여러분은 이제 ‘미래’를 만들어가야 하는 차례입니다. 우리가 힘을 합쳐서 미래를 만들어갔으면 합니다. 정치개혁에 대한 우리의 꿈은 여러분과 함께 하는 꿈입니다. 정치를 바꾸는 힘의 원천은 이명박 대통령이나 저 같은 국회의원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여러분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께서 정치에 관심을 기울여 주셔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 새로운 정치라는 창업의 동업자가 되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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