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상
- 시상명 : 아산상
- 년도 : 2013
- 부문 : 효행가족상
- 소속(직위) : 제주
- 수상자(단체) : 임순덕
제주 효부의 아쉬운 마음
반평생을 104세 어머니와 함께한 임순덕 씨(오른쪽)
40대 초반, 한창 일을 해야 하는 나이지만 남편과 사별한 뒤로 시어머니를 모시며 6남매를 키우기에만도 힘이 부친다, 나이 칠십이 되도록 해녀일과 농사일, 자식으로, 부모로, 잠시도 쉴 틈이 없이 살아온 임순덕(70) 씨.
1971년 22세 나이에 이발사인 남편과 결혼해 슬하에 6남매를 두었지만, 남편이 37세에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에는 임순덕 씨가 가정을 책임져야 했다. 남편은 5년 투병 후 먼저 세상을 떠났다. 남편을 잃은 슬픔을 이겨내기도 전에 자식 3명을 사고로 먼저 떠나보내야만 했다.
“그때에는 내가 무슨 정신으로 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죽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남은 자식들과 시어머니 생각에 그러지도 못했고….”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인지 잠시 눈시울을 붉혔다.
남은 3명의 자식들을 대학까지 졸업시키고 결혼시키면서 홀로 시어머니를 모셨지만, 4년 전 치매가 발병한 시어머니는 올해 초부터는 거동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대소변도 가리지 못할 뿐 아니라 음식을 드시는 것조차 어려웠다. 시어머니를 요양원으로 보내라는 주위의 권유에도 자식으로서 부모 봉양은 당연한 것이라며 직접 모셨다.
효부 밑에 효자, 그 자식에 그 부모랬다. 제주시내에서 직장을 다니던 장남도 어머니 혼자 고생하시는 것을 보고는 가까이로 이사 왔다. 임순덕 씨가 잠깐 볼일을 보거나 밭에 갈 때에는 며느리가 시할머니의 수발을 직접 들지만 싫은 내색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임순덕 씨가 정성으로 모셨던 시어머니는 지난 가을, 추석을 며칠 앞두고 10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주위 사람들은 그동안 고생했다며 위로했지만, 임순덕 씨는 “제가 시집올 때 얼마나 가난했던지, 시어머니는 거적 하나만 입고 계셨어요. 그 모습 생각날 때마다 잘해 드려야지…, 잘해 드려야지…, 그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라며 더 잘해 드리지 못한 것 같아 죄송스런 마음뿐이라며 눈물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