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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상

  • 시상명 : 아산상
  • 년도 : 2012
  • 부문 : 의료봉사상
  • 소속(직위) : 의사
  • 수상자(단체) : 강원희


30년 동안 아시아, 아프리카서 펼친 의료봉사


  강원희(78) 씨가 네팔의 관광도시 포카라에서 의료봉사를 하던 1985년, 병원 응급실에 60대 할아버지가 황급히 찾아왔다. 허름한 차림의 할아버지를 검사∙진찰한 결과 전복막염(全腹膜炎)이었다. 배 전체에 염증이 퍼진 상태여서 급히 수술을 결정하고 동행한 두 아들에게 헌혈을 요청했더니 망설이다가 수락했다.

  수술하고 봉합을 마쳤는데 할아버지가 쇼크에 빠져 긴급수혈이 필요한 상황이 됐다. 그러나 아들들은 무섭다며 헌혈을 거부했다. 기가 막힌 상황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자신과 환자의 혈액형이 같은 것을 확인한 강원희 씨는 자신의 피를 정상 채혈량보다 많이 뽑아 수혈했고, 환자는 목숨을 건졌다.

  자신의 피를 수혈해 중환자를 살려내고, 간호사 출신인 부인(최화순∙76)을 오토바이에 태워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찾아 이동진료를 하며, 환자가 퇴원하면 식료품을 사들고 환자의 집을 찾는 그를 네팔 사람들은 서슴없이‘히말라야의 슈바이처’라고 부르고 있다.

  그는 또한 네팔의 거지와 행려자들로부터‘다주’로 불린다. 네팔어‘다주’는‘형님’을 뜻하는데, 단순한 형이 아니라 아주 존경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계급사회인 네팔에서 짐승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사회적 약자들을 직접 치료하고, 무료로 약을 주다보니 그들에게‘다주’로 불리며 추앙받는 것이다.

  1934년 황해도 성진에서 태어나 참혹한 전쟁과 가난을 겪은 그는 연세대 의대에 다닐 때부터 대학연합 의료봉사 동아리활동(생명경외클럽, Veneratio Vitae Club)과 선교사 고허번(Herbert A. Codington) 박사의 이동진료를 따라다니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수련의이던 그는 1962년 연세대 간호학과를 마치고 간호사로 일하던 부인과 결혼식을올렸고,‘ 무의촌진료’를 약속한 혼인서약대로 군의관으로 군복무를 마친 1970년 무의촌이나 다름없던 강원도 간성에서 개업했다. 속초로 장소를 옮겨 10여 년간 대동의원을 운영할 때도 무의탁 노인과 빈민들을 무료로 진료해 주었다.

  유능한 외과의사로 살던 그는 간신히 목숨을 건진 교통사고 등 어려운 일들을 체험한 뒤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49세 되던 1982년, 네팔로 떠나면서 의료봉사의 첫발을 내디뎠다. 빈부귀천에 상관하지 않고 환자들을 섬기는 의료 봉사활동의 시작이었다.

  네팔에서는 힘든 병원 근무를 하면서도 한두 달에 한 번은 장거리 이동진료를 다녀왔다. 하루에 갈 수 있는 곳이라면 환자들도 비교적 쉽게 병원을 찾아올 수 있으므로 적어도 하룻밤을 자면서 가거나, 아니면 15시간가량 걸어서 도착하는 오지를 찾아갔다. 보통 간호사 2명과 동네사람포함해 5~6명이 한 진료팀이 되는데, 1~2일 동안 200명 이상을 진료한다.
  그도 사람인지라 이런 곳을 다녀오면 너무 힘이 들어서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생각이 달라진다.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오지 사람들 가운데에는 초기에 치료받았으면 건강을 회복했을 환자가 많았다. 진료 시기를 놓쳐서 목숨까지 잃는 일을 떠올리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또 다시 험한 길에 오르고 만다.

  네팔에서 4년, 방글라데시에서 4년, 스리랑카에서 4년, 그리고 다시 네팔에서 4년, 주변의 요청으로 3년 동안의 경북 안동성소병원 원장을 마치자마자 다시 에티오피아로 떠나 7년 동안 의료 봉사활동을 펼친 그는 78세인 지금도 3차 네팔 의료봉사를 하고 있다.
  30년 동안 의약품과 의료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오지에서 환자들을 치료한 그의 헌신적인 삶은 2011년‘소명 3-히말라야의 슈바이처’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우리 사회는 보령의료봉사상과 연세의학대상, MBC 사회봉사 대상 등을 수여함으로써 그의 노고를 위로했다.
  “제가 안식월을 가질 때마다 들르는 포항 선린병원에는‘We care, God heals!’라는 글이 적혀있습니다.‘ 의사는돌볼뿐이고, 치료는하나님이하신다’는말이죠. 목숨이다하는 날까지 저는 오지에서 아픈 이들을 돌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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