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상
- 시상명 : 아산상
- 년도 : 2012
- 부문 : 사회봉사상
- 소속(직위) : (사)피난처
- 수상자(단체) : 이호택ㆍ조명숙 부부
“난민들에게 집은 희망입니다”
“난민이 뭐예요? 한국에도 난민이 있어요? 그 사람들은 왜 한국에 오는 거예요?”
난민에게 임시 숙소를 제공하고, 법률 지원활동을 펼치는 이호택(52)ㆍ조명숙(42) 부부를 만나면 사람들이 빼놓지 않고 하는 질문이다.
생소한 단어이지만, 우리나라에도 난민이 많이 들어와 있다. 그 숫자도 적지 않아 2012년 8월 현재 전 세계 60여 개국에서 4,700여 명의 난민들이 자유와 보호를 얻기 위해 우리나라에 난민신청을 한 상태이다.
난민들은 미얀마와 나이지리아, 콩고,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코트디부아르, 에티오피아 그리고 이란 등 세계 각국의 독재ㆍ분쟁 국가에서 박해와 억압을 피해 우리나라에 왔다. 독재국가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고문당하거나, 종교와 신념을 지키다가 박해를 받아 가족과 집을 잃은 사람들, 또는 소수민족이라는 이유로 강제노역에 시달리다가 난민이 된 사람들…. 우리가 당연히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유와 평화가 너무나 절실해 그들은 고국을 등지고 국제난민협약국인 우리나라를 찾은 것이다.
우리나라에 온 난민 신청자들은 당국으로부터 난민 인정을 받기까지 정식 취업을 할 수 없다. 소득이 없는 난민들에게는 당연히 집도 없다. 이호택ㆍ조명숙 부부는 1993년부터 그런 난민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면서 지원 활동을 펼쳐왔다.
전주고와 서울대 법대 그리고 같은 대학원 법학과를 졸업한 남편 이호택 씨는 전공인 노동법을 살려 시민종합법률상담소에서 일하다가 1994년 외국인노동자 지원단체에서 간사로 활동하면서 난민들과 인연을 맺었다. 외국인 노동자 중에는 난민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내 조명숙 씨는 단국대 한문교육과에 다니던 1993년부터 파키스탄 등에서 온 노동자들을 돕는 활동을 하다가 이듬해 외국인노동자 지원단체에서 일하면서 남편을 만났다. 10년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1997년 결혼한 부부는 신혼여행간 중국에서 아마도 지구상에서 가장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는 또 다른 난민인 탈북자 문제에 눈을 뜨고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1999년 외국인 난민과 북한 난민을 보호하기 위해‘사단법인 피난처’를 설립한 부부는 남편이 대표를 맡아 지금에 이르고 있고, 아내는 2003년 탈북청소년을 위한 야간학교인‘자유터학교’를 피난처 안에 만들어 2010년까지 교장으로 활동했다. 2004년에는 탈북청소년 대안학교인‘여명학교’설립에 관여한 아내는 지금까지 교감으로 근무하고 있다.
피난처는 외국인 난민들이 법무부로부터 난민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소송 지원 등 법률상담을 해주고, 임시 공동숙소를 제공하는 한편 생필품과 병원치료 등을 지원한다. 또한 아프리카의 가나 난민캠프 등 해외 난민촌 방문 조사와 지원 활동도 펼치고 있다.
북한 난민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자유터학교와 탈북 2세 아동들을 위한 공동숙소 등을 운영하고 있다. 난민을 위한 피난처 활동을 인정받아 부부는 서울지방변호사회 시민인권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부부는 지금 서울 일원동의 15평 연립주택에서 시어머니(임종님ㆍ76)와 각각 초등학교 6학년과 4학년인 아들(시헌), 딸(가연)과 함께 산다. 사회적으로 조명을 받지 못해도 누군가는 꼭 해야할 일을 해왔지만 피난처 대표인 남편과 여명학교 교감인 아내의 월급으로는 다섯 식구가 살기에도 항상 부족함을 느낀다. 가족의 편안함, 자녀의 여유로움도 생각되지만 부부는 아산상 상금을 난민들을 위한 숙소를 얻는 데 쓰겠다고 말한다.
안식을 찾아 우리나라로 피신한 난민들에게 집은 곧 사랑이고, 희망인 까닭이다.
20년 동안 난민 지원이라는 한길을 걸어온 자신들의 활동은 이번에 수상한 영예로운 아산상으로 충분히 보상받고도 남았다는 것이 부부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