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상
- 시상명 : 아산상
- 년도 : 2025
- 부문 : 사회봉사상
- 소속(직위) : 바하밥집 대표/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장
- 수상자(단체) : 김현일·김옥란 부부
노숙인과 고립·은둔 청년들의 가족이 되어주다
김현일(59), 김옥란(53) 부부는 젊은 시절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김현일 씨는 젊은 시절의 방황으로 음지에서 조직생활을 하며 삶의 밑바닥을 경험하다가 김옥란 씨를 만났다. 김옥란 씨 역시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일찍부터 일을 시작해 신문 보급소 경리로 일했다. 결혼 후에도 IMF 외환위기로 헤어져 살아야 했다. 그러다 1998년 인천 부평에서 신문보급소를 운영할 때 한 아이를 만났다.
“주방에서 소리가 나길래 가보니 한 8살쯤으로 보이는 아이가 있었어요. 먹을 것을 훔치러 들어온 거 같아서 ‘라면 끓여줄테니 먹고 가라’고 했더니 그 자리에서 5개를 먹더라고요. 밥 먹으면서 물어보니 나이가 14살이래요.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으로 보살핌을 받지 못해서 제대로 자라지 못했던 거예요. 아이는 신문 배달을 하며 같이 살기 시작했는데 이후 갈 곳 없는 아이들이 하나 둘 모였지요.”
상처가 많은 청소년들과 함께 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김현일 씨는 ‘내가 아이들을 돌본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우리를 돌본 것’이라고 말한다. 청소년들은 김옥란 씨가 둘째를 낳을 때도 병원에 함께 있었 고, 두 딸의 생일에는 꼭 선물을 챙겼다. 딸들도 오빠, 삼촌이라고 부르며 잘 따랐다. “저도 힘들었던 시기에 딸을 생각하며 힘을 냈던 게 생각났어요. ‘자기가 돌볼 사람이 있으면 살아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사람과의 관계가 회복에 꼭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지요.”
2003년 부부는 인근에 월세방을 얻어 청년그룹홈 ‘바나바하우스’를 열고 의지할 곳 없는 청소년들이 함께 생활하도록 했다. 청소년들은 새벽에는 신문배달, 낮과 밤에는 배달일을 하며 자립 기반을 만들었다. 바나바 하우스는 2024년에 종료됐지만, 이곳을 거쳐 간 약 60여 명의 청소년들은 자립에 성공해 어엿한 사회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노숙인, 독거노인 등에게 도시락을 전달하는 김현일 씨(왼쪽)>
노숙인의 ‘형님, 동생’이 되다
2009년 설날, 김현일 씨는 서울 성북구 성북천 다리 밑으로 내려갔다. 손에는 따뜻한 물과 컵라면 다섯 개, 빵과 우유를 챙겨 들었다. 그 역시 IMF 외환위기 시절 가족과 떨어져 7개월의 노숙 생활을 했기에 평소 성북천 인근의 노숙인들이 눈에 밟히던 터였다. 다리 밑에는 서너 명이 이불을 둘러쓰고 추위를 견디고 있었다. 김현일 씨는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 그중 한 노숙인에게 건넸다. 그런데 그 노숙인은 힐끔 쳐다보더니 컵라면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깜짝 놀란 김현일 씨는 가지고 간 음식만 두고 왔다.
“날씨가 추워서 선뜻 받으실 거라 생각했는데 정말 당황했죠. 그날 노숙인들이 모이는 다른 곳도 갔는데 거기서도 마찬가지였어요. 처음에 갔던 다리 밑으로 다시 가봤더니 컵라면을 다시 주워서 고스란히 담아 놓으셨더라고요. 그때 제가 무례하게 그분들의 영역을 침범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저 배고픔만 채워주려 했던 거죠.”
노숙인은 누군가에게 이용당해 상처 입은 경험이 많고, 그들에게 다가가는 사람들이 아주 적어 우선 경계한 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됐다. 신뢰를 쌓기 위해 김현일 씨는 ‘형님’이라고 말하며 넉살 좋게 말을 걸면서 손을 잡고 어깨를 안아드렸다. 처음에는 움찔하며 피하던 노숙인들은 김현일 씨가 계속 다가가자 천천히 마음을 열었다. 김현일 씨는 매주 사비를 털어 음식을 나누었고, 그의 활동을 알게 된 이웃들이 하나하나 힘을 보탰다. 그렇게 시작한 나눔은 매주 700여 명의 노숙인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노숙인 무료급식소 ‘바하밥집’으로 커졌다.
이해와 존중으로 시작한 노숙인 무료급식소 ‘바하밥집’
바하밥집에서는 ‘밥, 자활, 공동체’를 중요한 가치로 삼는다. 음식을 나누면서 노숙인들과 ‘형님, 동생’으로 인간적인 관계를 맺고 존중을 나누는 것을 최우선으로 한다. 또 ‘식량은 공공재’라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고 500여 명의 후원자와 100여 명의 봉사자들의 도움으로 운영하고 있다.
현재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저녁에는 80~150명의 노숙인과 쪽방촌 주민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월요일과 수요일에는 서울역 다시서기센터를 통해 노숙인들에게 도시락을 전달한다. 또한 비정기적으로 토요일 밤에는 용산 텐트촌 등을 찾아가 200여 명에게 야간 배식을 진행하고 있다.
김현일 씨는 바하밥집 노숙인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말소된 주민등록 재등록과 기초생활수급비 신청도 돕고 있다. 특히 자활 의지가 있는 노숙인들에게는 고시원 방을 마련해주고, 바하밥집에서 함께 활동하며 규칙적인 생활 습관과 정서적 안정 등 사회로 돌아갈 수 있는 힘을 키워주고 있다.

<바하밥집에서 배식할 음식을 준비하는 김현일·김옥란 부부>
고립 청년들의 손을 잡아주는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
김옥란 씨는 무역회사를 다니며 바하밥집을 운영하는 남편을 지원했다. “어느 순간부터 바하밥집 손님이 100명, 200명이 넘어가고 김치도 몇 천 포기씩 담글 정도로 바빠졌어요.”
김옥란 씨는 평소 바하밥집에 찾아오는 청년들의 우울, 대인기피 등 깊은 상처를 마주하며 고립 청년들에게 자꾸 마음이 갔다. 김현일 씨 역시 고립된 청년들이 나중에 노숙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청년들의 회복을 지원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김현일 씨가 공황장애와 과로로 쓰러졌고, 이를 계기로 김옥란 씨는 청년들을 돕는 일에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12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어요. 퇴직금으로 남편, 스태프와 함께 미국 시애틀의 고립·은둔 회복 기관들을 탐방했지요. 문화적인 차이는 있었지만 노숙인이 되는 것을 예방하고 사회로 복귀시킬 수 있는 골든타임이 20, 30대 청년 시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2019년 김옥란 씨는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를 시작했다. 숨을 쉬기 위해 수면 위로 올라와야 하는 고래처럼, 청년들이 고립에서 벗어나 건강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신체·정서·관계·지적 영역의 회복을 도왔다. 센터에서는 리커버리 야구단, 미술 치료, 쿠킹 런치, 글쓰기 등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연간 110~120명의 자립준비청년과 50~80명의 고립·은둔 청년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 청년들과 함께한 김현일, 김옥란 부부 (왼쪽 첫 번째, 두 번째)>
고립에서 자립으로, 자립에서 공생으로
김현일·김옥란 부부를 통해 많은 청년, 노숙자들이 사회로 복귀했다. 바나바하우스에서 함께 생활하던 청소년은 직장을 다니며 결혼도 했고, 바하밥집에 자주 오던 노숙인은 이제는 봉사자로 바하밥집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다. 청년회복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바나바하우스의 청년들로부터 피드백을 받기도 했다.
부부는 ‘회복을 경험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돕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기 오는 봉사자들은 고립을 경험해 봤거나 심지어 노숙을 해본 사람도 있어요. 모두 당사자들이기 때문에 진정성 있게 참여하죠. 프로그램 횟수나 참여 인원 등 실적을 중요시하는 외부 지원사업을 저희가 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철학이나 진정성을 지키기 위해서예요. 재정적 어려움을 감수하더라도 활동의 본질과 순수성을 지키려고 해요.”
오늘도 부부는 의지할 곳 없는 이들이 함께 먹고 일하며 아이를 키우는 ‘마을 공동체’를 꿈꾸며 힘차게 나아가고 있다.

<무료급식소 바하밥집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한
김현일, 김옥란 부부(오른쪽 두 번째, 세 번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