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상
- 시상명 : 아산상
- 년도 : 2025
- 부문 : 의료봉사상
- 소속(직위) : 서울대 의대 교수
- 수상자(단체) : 김웅한
의료취약국가에서 실천한 사랑의 인술
김웅한(62) 서울대 의대 교수의 연구실에는 크고 작은 박스들이 가득하다. 대부분 쓰고 남은 의료기기나 수술용 소모품 같은 물품들이다. 국내에서도 첫손 꼽히는 소아흉부외과 의사가 이런 물품을 모으는 이유가 궁금하다.
“개발도상국에는 간단한 수술만 하면 살 수 있는 환자들이 의료기기나 물품이 부족해서 치료를 못 받거든요. 특히 심장병이라고 밝혀지면 그 환자는 아예 치료를 안 합니다. 어차피 고칠 수 없으니까 치료도 하지 않는 게 그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거죠. 그래서 우리 수술팀은 현지에 가면 당장 생명이 위험한 아이들을 먼저 수술합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전 세계에서 우리 팀만 그렇게 하고 있더군요.”
사실 그의 선택은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 익숙한 환경이 아니라 완전히 낯선 수술실에서 인력과 장비가 부족한 채로 하는 수술이니 더 위험할 수밖에 없다. 잘못하면 현지인들의 비난을 받으며 다른 수술도 못 하게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심장병 아이들이 치료받고 살아날 수 있는 길은 영영 막히게 된다.
하지만 김웅한 교수는 열악한 의료 환경에서 묵묵히 수술을 성공시켰다. 1999년부터 중국, 몽골, 우즈베키스탄, 에티오피아 등 의료환경이 열악한 17개국을 방문해 711명의 심장병 수술을 실시했다. 명절 연휴와 공휴일, 개인 휴가 등 시간이 날 때마다 자신의 의술이 필요한 곳으로 주저 없이 향했다. 또 현지에서 치료가 어려운 133명의 환아는 한국으로 초청해 건강을 되찾도록 도왔다. 전기가 끊어져 깜깜한 수술실에서 고군분투 하고, 냉각 패드가 없어 급하게 얼음과 찬물로 대신하는 등 위험한 순간도 많았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도 오로지 ‘살린다’는 원칙만 우선시했다. 그렇게 26년간 17개국 844명의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에게 새 생명을 전했다.
<해외 심장병 환아를 수술 중인 김웅한 교수(가운데)>
수술로 생명을, 교육으로 희망을 심다
김 교수의 해외 의료봉사에는 확고한 원칙이 있다. 바로 ‘현지 수술’과 ‘교육’이다. 이는 동일 비용으로 더 많은 아이를 살리고, 현지 의료진에게 의술을 직접 전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몽골, 네팔 등에서 심장수술과 현지 의료진 교육을 계속한 김 교수는 에티오피아를 처음 방문하며 더욱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의과대학병원에 유럽 NGO가 지어준 최신 심장센터가 있습니다. 시설이잘 되어 있어서 가서 수술만 하면 되는데 현지인이 사용할 수 없게 문이 잠겨 있어요. 유럽 의사들이 올 때만 쓰고, 현지 의사들은 수술도 참여할 수가 없대요. 현지 교수가 ‘에티오피아는 지원은 많이 받지만 교육을 해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하더라고요.”
김 교수는 심장 수술에 필요한 물품 전체를 가져와서 에티오피아에서 심장 수술을 시작했다. 수술을 할 때마다 현지 의사가 참여하도록 하며 의술을 전수했다.
“사실 ‘이게 될까’하는 생각이 더 컸지만 꾸준히 교육을 했어요. 그렇게 5년간 교육을 진행했는데 어느 날 현지 의사들이 심장 수술 사진을 보내줬습니다. 우리의 도움 없이 자체적으로 수술에 성공했다는데 깜짝 놀랐죠. 그때 교육의 위대함을 느꼈어요.”
김 교수는 ‘가르치고 기다려준다’는 생각 아래 3천 명이 넘는 현지 의료진을 교육했다. 그 노력의 결실로 우즈베키스탄에는 연간 1천 건의 수술이 가능한 중앙아시아 최고 수준의 심장센터가 건립됐다. 이곳에서 교육 받은 현지 의사는 이제 자국에서 수백 명의 생명을 살리는 핵심 인력으로 성장했다.
<김웅한 교수가 수술에 앞서 에티오피아 의료진과 논의하고 있다.(왼쪽 세 번째)>
의료인의 사회공헌을 생각하다
김웅한 교수는 1950년대 미국 미네소타대학이 한국 의사들을 교육해 한국 의료 발전의 기틀을 마련해주었 듯이 이제는 우리가 그 빚을 갚아야 한다고 믿는다.
“힘들다, 그만하자 생각할 때마다 또 다른 계기가 생기더군요. 에티오피아에서 자체적으로 심장수술에 성공한 소식을 들었을 때처럼 말이죠. 저는 봉사는 은퇴 후에 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현직에 있을 때, 자기 전문 분야를 활용해서 해야죠. 자기 직업에서 봉사를 하는 의미를 찾아야 지속가능한 봉사가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의사는 어떤 직업보다 봉사하기 좋은 직업입니다.”
김 교수는 봉사정신을 함양한 후학 양성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왔다. 국내 40개 의대 중 단 3곳에서만 운영되는 해외 봉사활동 등 국제보건(글로벌의학) 교육프로그램을 서울대 의대 정규 교과과정에 편입시켜 의대생들이 사회적 책무에 대해 공부하도록 했다.
의료봉사의 학술적·교육적 확립에 기여하다
“대학병원은 공공의료에 기여해야 할 의무가 있고, 이를 학술적으로 정립하고 확장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의료봉사가 막연히 개인의 선의에 의지하는 데에서 벗어나 제도권 의대 교육 시스템에 들어오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의과대학 대학원의 휴먼시스템의학과 설립에 참여했죠.”
휴먼시스템의학과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소속이 지만 간호학, 공학, 보건학 등 전공에 상관없이 국제보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다. 복잡한 국제보건 문제를 해결하려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융합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의학자로서 그동안의 활동을 학술적으로 정립하기 위해 힘썼다. 때마침 세계적인 전문 학회에서도 국제보건분야 논문을 채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었다. 김 교수는 세계적으로도 소수인 국제보건 외과수술분야 연구와 국제보건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이를 미국 국제보건대학협회 학술학회에서 발표했다.
<의과대학 학생을 대상으로 국제보건 수업을 진행 중인 김웅한 교수>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하다
김 교수는 ‘심장병 수술을 받은 아이는 약하다’는 사회적 편견에 맞서며 2016년부터 환아들과 꾸준히 산에 올랐다. 그리고 그 도전은 2024년 1월 선천성 심장병을 이겨낸 청소년들과 함께 해발 4,130m의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등정에 성공하며 정점을 찍었다. 또 운동을 통한 심장수술 환자의 체력증진에 대한 연구에 힘쓰는 등 선천성 심장병 환아와 가족들에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하고 사회적 편견을 개선하는 데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김 교수는 “한 명의 의사가 자신의 전문성으로 어디까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지, 그 최상의 사례를 보이는 것이 남은 꿈”이라며 오늘도 생명을 살리고, 희망을 심고, 미래를 바꾸기 위해 묵묵히 걷고 있다.
<선천성 심장병 수술을 받은 몽골 어린이와 함께한 김웅한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