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상
- 시상명 : 아산상
- 년도 : 2025
- 부문 : 복지실천상
- 소속(직위) : 평화사회복지관 부장
- 수상자(단체) : 한지원
이웃의 위기상황을 먼저 발견하고 달려간다
한지원(47) 씨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달려가 일상생활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동안 그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이주여성, 위기청소년, 고립가구, 정신질환자 등 어려운 상황의 사람들이 겹쳐 보인다.
결혼이주여성을 ‘교육 대상’에서 ‘지역사회의 강사’로
“나 혼자만 잘 살아선 안 된다”는 어머니의 가르침은 한지원 씨 인생의 좌표가 되었다.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지역 복지관에 입사한 후 20년 넘게 현장을 지키며, 다문화가정, 위기청소년, 고립가구 등을 먼저 찾아가 사회와의 연결고리를 만들었다.
한지원 씨는 먼저 결혼이주여성에 주목했다. 과거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사회적 지원은 주로 한국어 및 한국문화 교육에 머물렀다. 교육만으로 다문화가정 내 문제가 쉽게 줄지 않자, 한지원 씨는 관점을 바꿔 그들을 자국의 언어와 문화를 가르치는 강사로 변화시키기로 했다.
한지원 씨는 직접 유치원과 학교를 찾아 결혼이주여성의 강의를 제안하고, 수업에 쓸 워크북도 제작했다. 처음엔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절하던 학교도 한지원 씨의 거듭된 설득과 시연에 결국 문을 열었다. 그 과정에서 결혼이주 여성을 향한 시선도 달라졌다.
“그때 함께했던 결혼이주여성들이 지금은 인기 강사이자 사랑받는 며느리가 됐어요. 복지관에 일손이 부족 하다고 하면 휴가를 내서 달려올 정도로 열혈 봉사자고요.”

<해외봉사활동에 참여한 한지원 씨(가운데)>
위기청소년과 고립가구를 찾아가다
한지원 씨는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위기청소년의 삶을 바꾸기 위한 자립역량강화 사업을 추진하며 취업에 장애가 되는 문신 제거 지원도 병행했다. 2020년에는 중장년 고독사 문제가 커지자 생계와 의료 위기 등의 중장년을 찾아가서 상담하고 병원치료와 기초생활수급 연계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모텔에서 생활하던 한 청년도 7개월의 설득 끝에 그곳을 벗어나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했다.
한지원 씨가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찾기 위해 새벽에는 인력사무소, 낮에는 학교와 마을, 밤에는 오래된 모텔 등을 방문한 것은 사회복지사로서의 사명감 때문이었다. “제가 이 지역의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는 한, 적어도 복지 관련 사건이 발생하지 않게 하자는 생각이었어요. 그 생각 덕분에 두렵지도 않았던 것 같아요.”
‘전주함께라면’에서 시작된 사랑방 지기의 꿈
또한 이웃과 복지관의 접점을 만드는 일에도 도전했다. 대표적 사례가 누구든 부담 없이 찾아올 수 있는 무인 라면가게다.
“우리 복지관에 ‘평화함께라면’이라는 무인 라면가게를 열었어요. 1인 가구, 취약계층이 부담 없이 찾아올 수 있게 한 거죠. 처음부터 ‘무슨 고민이 있으세요?’라고 묻지 않아요. 두세 번 발길이 이어지면 ‘안녕하세요, 어디 사세요?’같은 안부로 거리를 좁히고, 이후 복지관 프로그램을 안내하며 관계를 쌓습니다. 마치 마을 사랑방처럼요.”
전북 전주시는 이 모델을 2024년 6월 ‘전주함께라면’으로 확대해 시내 6개 종합사회복지관이 연합 운영하 도록 했다.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고립세대 62가구를 발굴해 생계·의료·재난비 등 긴급 지원을 연결했다. 시민과 단체의 자발적인 후원도 이어졌고, 타 지자체에서도 벤치마킹했다.
이 밖에도 한지원 씨는 코로나19 시기 직접 트럭을 몰아 이웃에게 도시락과 생필품을 전달하고, 주민 방역 봉사단을 꾸려 어르신에게 사회참여의 기회를 열어주었다. 그의 발길이 닿는 자리에서 이주여성은 지역 강사가 되고, 청소년은 건강한 사회인으로 자라며, 고립가구는 더 이상 외롭지 않은 이웃이 된다.
“훗날 퇴직 후에도 마을의 사랑방 지기이자 봉사자로 살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한지원 씨에게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따뜻함이 흐른다.

<고립 중장년 모임활동을 진행하고 있는 한지원 씨(왼쪽 첫 번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