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상
- 시상명 : 아산상
- 년도 : 2025
- 부문 : 효행ㆍ가족상
- 소속(직위) : 광주
- 수상자(단체) : 신은희
한결같은 마음으로 살아온 47년
신은희(66) 씨는 광주광역시 중심가에 있는 대인시장 상인으로 47년간 시어머니와 대가족을 돌보며 헌신적인 삶을 살아왔다. 묵묵히 도리를 다하는 모습을 오랜 기간 지켜본 주변 상인들은 그를 향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대대로 이어진 효심
전남 함평에서 나고 자란 신은희 씨는 2남 3녀 중 장남인 남편을 만나 결혼해 광주로 왔다. 시부모와 시누이 3명, 시동생 1명까지 8명이 한집에 살면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종갓집 장손이었던 친정집이 늘 가족과 손님으로 북적였기에 신은희 씨에게는 시댁 환경이 낯설지 않았다.
“어릴 적 할아버지 모시옷을 정성껏 풀 먹이고 다듬이질하셨던 어머니 모습이 생각나요. 저 멀리서 새하얀 모시옷을 입고 할아버지가 걸어오실 때면 부모님이 뛰어나가 극진히 모셨죠.”
신은희 씨의 증조부는 독립운동가였고, 할아버지는 마을 향교에서 유학을 가르쳤다. 어린 시절부터 유교적 가르침을 자연스럽게 익혔고, 함평에서 효자 효부상을 받은 부모님을 통해 어른을 공경하는 모습을 배웠 다. 효를 중시해 온 집안 분위기와 가족 내력이 밑바탕이 되어 47년 동안 한결같이 시어머니를 봉양해 올 수 있었다.
“결혼 초부터 시아버지가 폐암을 앓으셔서 2년 동안 간병을 해야 했어요. 시아버지 성격이 워낙 강하셔서 시어머니도 고생이 많으셨죠.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는 장사 일도 무척 바빠지면서 장사하랴 살림하랴 시동생과 아이들 돌보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이 흘렀습니다.”
건강했던 시어머니가 2000년도부터 치매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신은희 씨는 서둘러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 하고 시어머니 돌봄에 진심을 다했다. 장사를 하다가도 점심이 되면 집에 달려가 어머니 식사를 챙겼고, 치매 증상이 점점 나빠지는 과정에서도 목욕과 산책 등 일상 전반에 걸쳐 시어머니를 정성껏 돌보았다.

<요양원에서 96세를 맞은 시어머니(가운데)와 신은희 씨(왼쪽)>
사랑과 성실함으로 대가족을 품다
결혼할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던 시동생과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막내 시누이에게 신은희 씨는 때론 엄마 같고 때론 누이와 언니 같은 존재였다.
신은희 씨 역시 누구보다 살뜰하게 이들을 챙겼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된 막내 시누이는 집안의 큰 자랑이 되었다.
“학교에서 학부모 행사가 있으면 시어머니 대신 제가 나가곤 했어요. 시동생 시누이 옷도 거의 제가 챙겼는데, 옷 입은 걸 보고 집이 양장점 하느냐는 이야기를 들었대요. 어린 막내 시누이랑 시장에 가면 사람들이 친자매인 줄 알아요. 함께 살다 보니 얼굴도 닮았나 봅니다.”
그사이 신은희 씨 부부에게도 네 명의 자녀가 태어났다. 장사와 살림을 병행하며 고된 시간을 보냈지만, 자녀들은 성실한 부모의 모습을 보며 씩씩하게 자라났다. 신은희 씨 부부는 자녀 모두를 대학에 진학시켰고, 외국 유학까지 아낌없이 지원했다.
이기기보다 지는 삶이 행복의 비결
신은희 씨의 남편은 봉사단에 소속되어 10년 넘게 보육원과 경로당 봉사를 이어오고 있다. 대인시장 상인회와 연계해 주말마다 어르신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활동에도 참여한다. 또한 상인회 고문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침체된 전통시장 활성화에 기여했다. 그 곁에는 묵묵하게 남편을 지원하는 아내가 있다.
올해 96세가 된 시어머니는 최근 치매 증상이 악화되어 더 이상 집에서 돌보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시어머니의 안전을 위해 집 근처 요양원에 모시고 일주일에 한 번 이상 꼭 찾아가 함께 식사하며 시간을 보낸다. 신은희 씨는 47년간 대가족의 삶을 이끌어 온 비결을 ‘지는 삶’에 있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져야 모두가 잘 지낼 수 있더라고요. 저는 가족들을 위해 져 주고, 남편은 저를 위해 져 준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여행 중인 신은희 씨(왼쪽 첫 번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