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상
- 시상명 : 아산상
- 년도 : 2025
- 부문 : 효행ㆍ가족상
- 소속(직위) : 경북 상주
- 수상자(단체) : 이수재
따뜻한 국 한 그릇에 담긴 사랑
이수재(68) 씨는 10년 전, 치매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어머니를 모시고자 고향인 경북 상주로 내려왔다. 산책을 좋아하는 어머니를 위해 집 마당에 황톳길을 직접 만들고, 매일 아침 어머니가 식사하기 편하도록 국을 끓여낸다. 따뜻한 국 한 그릇에는 어머니를 향한 정성과 사랑이 담겨 있다.
어머니의 예쁜 치매
이수재 씨가 고향에 내려올 당시는 평생 몸담아왔던 교도소 교정직 공무원 은퇴를 1년 6개월 남긴 시점이었다. 형제들과 교대로 어머니를 모시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장남인 그가 명예퇴직을 결정하고, 아내와 가족에게도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홀로 귀향했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해 잔병치레가 많았습니다. 어머니가 저 때문에 걱정 하고 애먹으셨다고 해요. 아픈 아이가 있으면 한 번이라도 더 보듬게 되잖아요. 그래서 지금 제가 어머니를 모시게 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평생 밭에 나가 일했던 어머니는 치매 이후 가끔 피지 않은 꽃봉오리나 익지 않은 열매를 따와 방에 말려두거나 쌓아둘 때가 있다. 이웃집에 피해를 준 경우에는 이수재 씨가 직접 나서 보상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아들 눈에 어머니는 ‘예쁜 치매’다.
“과격함이 없으시고 거동이나 식사를 잘하셔서 말 그대로 예쁜 치매이지요. 제 복입니다. 어머니는 평생 말이 없는 분이셨어요. 남이 어려운 일을 겪으면 먼저 도와주는 착한 분이셨고요.”
이수재 씨는 어머니를 더 잘 모시고 싶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치매전문교육도 이수했다. 일주일에 한 번 어머니 목욕도 직접 담당하고 있다.
“저는 평소에 어머니를 ‘남무임 여사님’이라고 부르거든요. 우리 남무임 여사님 더 나빠지지 않고 저와 오래 함께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사람 일이 마음처럼 되진 않겠지만요.”

<어머니와 함께한 이수재 씨>
지역사회의 든든한 버팀목
이수재 씨가 고향에 돌아온 것은 마을 이웃들에게도 기쁜 일이었다. 마을에서 비교적 젊은 편에 속하는 그는 현재 이장으로 일하며 이웃 노인들을 세심하게 챙기고 있다. 힘도 좋고 성격도 좋은 그를 모두가 반긴다.
“여기서 태어났고 자라왔기에 제게는 다 어머니 같고 아버지 같은 분들입니다. 매일 오전에 마을회관에 나가 안부를 묻고 민원이 생기면 뭐든 해결해 드리려고 노력합니다.”
예술에도 조예가 깊은 이수재 씨는 지역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알리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교정직 공무원 재직 시절 틈틈이 서예와 서각을 익혀온 그는 한국미술협회 초대작가로 활동할 만큼 수준급 실력을 지녔다. 고향에 돌아온 후로 함창향교 장의와 전통문화교육원 원장, 서각 강사로 활동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함창향교 전통문화교육원에서는 서예, 서각, 사군자, 우리 옷 등 요일별로 9개 강좌가 열립니다. 농촌이라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 예술 활동을 하는 분들이 많아요. 상주와 주변 지역에서 150여 명의 수강생이 교육원을 찾습니다. 매년 연말에는 전시회도 열어요.”
조금 손해 본다는 마음으로
어머니를 모시느라 가족과 떨어져 생활하고 있는 이수재 씨는 아내와 자녀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 하지만 가족은 그를 이해하고 응원해 주는 소중한 존재다. 이수재 씨의 아내는 남편의 시골집 살림과 어머니 돌봄을 돕기 위해 주 1회 정도 상주를 방문하고 있다.
“아내한테는 참 고맙지요. 아내가 제 자리까지 메워주고 있으니까요.”
이수재 씨가 자녀인 3남매에게 종종 전하는 이야기가 있다.
“아이들한테 ‘상대보다 네가 조금만 손해 봐라, 그래도 괜찮다’고 이야기해 줍니다.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보니 상대방보다 조금만 손해 본다는 마음으로 살면 모든 것이 어려움 없이 풀리더라고요.”
각박해지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이수재 씨가 전하는 ‘조금 손해 보는 삶’은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수재 씨가 직접 만든 황톳길을 어머니와 함께 걷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