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상
- 시상명 : 아산상
- 년도 : 2021
- 부문 : 자원봉사상
- 소속(직위) : 강서구종합사회복지관 자원봉사자
- 수상자(단체) : 박정순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한결같은 삶
1980년, 박정순(79) 씨가 처음 봉사를 시작한 것은 자녀들의 안전한 등하교를 위해 교통지도를 하면서부터였다. 당시 집 앞에는 횡단보도나 신호등이 없는 왕복 4차선 도로가 인접해 있었는데 아이들끼리 건너기에는 상당히 위험했다. 연년생 아들 셋을 둔 엄마 입장에서는 발 벗고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세 아이가 초등학교를 모두 졸업할 때까지 녹색어머니회에서의 봉사는 10년 넘게 계속되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교통지도에 참여했던 박정순 씨의 성실함은 금세 소문이 나서 의용소방대원 활동으로 이어졌다.
마을에 화재가 났을 때 소방관들을 도와 긴 소방호스를 들어주는 것부터 밤낮없이 일하는 소방관들을 위해 간식과 끼니를 챙기는 것까지 물심양면으로 함께했다. 내 아이들을 챙기려던 마음이 어느새 우리 동네 아이들, 우리 마을 이웃들을 살피는 것으로 점점 커져 갔다.
재난재해와 함께 한 세월
1992년 대한적십자사 봉사회 지부가 자치구에서 동별로 확대 편성될 무렵, 박정순 씨가 살고 있던 부산 강서구 강동동에도 적십자 봉사회가 설립되었다. 사실 그때는 적십자가 어떤 일을 하는 기관인지도 모르고 주변 사람들의 도와달라는 말에 선뜻 허락했다. 그러다가 강동동 적십자 봉사회 회장으로까지 추대되었다.
회장이라는 엄중한 직책을 맡았으니 기존에 하던 대로만 할 수는 없었다. 강동동에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없는지 살뜰히 살폈고 부산 강서구 최초로 김장 봉사를 제안했다. 배추와 양념 등 재료 준비부터 각 가정의 배달까지 4일 넘게 진행되는 김장 봉사는 1993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강동동 적십자 봉사회의 중요한 연례행사 중 하나다.
강동동 적십자 봉사회 회장으로 4년, 강서구 적십자 봉사회 회장으로 4년을 비롯해 임원과 명예회원까지 박정순 씨는 30년 동안 부산 적십자사의 핵심 일꾼으로 일해오고 있다.
그 세월 동안 크고 작은 재난재해도 많았다. 2000년 태풍 사오마이, 2002년 김해 민항기 추락사고, 2003년 태풍 매미 등 숨 돌릴 만하면 어려운 시련이 찾아왔다. 태풍 매미 때는 며칠 동안 물에 잠긴 마을이 있을 정도로 피해가 컸다. 매일 새벽 현장에 나가 밤늦도록 이재민들을 챙기는 날들이 계속 됐다.
“우리 집도 전기가 끊기고 유리창은 죄다 깨지고 난리였지요. 그렇지만 우리 가족은 잠도 편히 자고 밥도 해먹을 수 있으니, 잠 못 자고 밥 못 먹는 사람들을 도와야지요. 그 광경을 보면 누구라도 그랬을 겁니다.”
<복지관 조리봉사 중에>
이웃을 위한 일이 곧 나를 위한 일
박정순 씨의 일과는 매일 변함이 없다. 새벽 5시에 일어나 7시가 되면 강서구종합사회복지관에 도착한다. 그리고 오후 2~3시까지 급식 봉사를 담당한다. 취약계층을 위한 밑반찬과 도시락을 만들고 경로식당, 직원식당의 음식 조리를 돕는다. 2001년부터 반복되어 온 하루 일과다. 고령의 나이로 힘들 법도 하건만 박정순 씨는 손사래를 친다.
“이 나이인 나를 불러주니 안 고맙습니까. 이제는 안 불러주면 돕지도 못합니다. 그런데 불러주니 매일 감사히 옵니다. 남을 돕는 게 아니라 이웃들이 나를 돕는 거지요.”
봉사활동이 일상이자 삶인 박정순 씨는 이렇게 살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남편의 덕분이라고 공을 돌린다. 박정순 씨의 남편도 지역 내 봉사단체에서 꾸준히 활동해왔을 뿐만 아니라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대학 등록금을 지원하는 일도 부부가 오랜 기간 함께해 왔다.
<김장 봉사에 참여하고 있는 박정순 씨(왼쪽)>
사실 박정순 씨 가족의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남편은 1997년 사고로 고관절이 결핵균에 감염되어 다리를 쓰지 못하고 18년여 동안 휠체어 생활을 했다. 2014년 하늘나라로 먼저 떠났는데 자신의 몸이 불편함에도 언제나 아내의 봉사활동을 응원했다.
“아픈 나를 쳐다보고만 있으면 당신이 병납니다. 나가서 당신 일을 하세요. 나보다 당신 손이 더 많이 필요한 데가 있지 않습니까. 나는 괜찮습니다.”
남편이 남긴 응원을 기억하며 박정순 씨는 오늘도 자신의 손을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 힘차게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