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상
- 시상명 : 아산상
- 년도 : 2021
- 부문 : 효행ㆍ가족상
- 소속(직위) : 강원 원주
- 수상자(단체) : 황일용
효(孝)를 전하는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
한국전쟁에서 아버지를 여읜 대가족의 장손과 결혼해 시할머니와 시어머니를 정성껏 모신 강원도 원주의 황일용(70) 씨. 올해 자신도 칠순이 되었지만, 매일 아침과 저녁 94세 시어머니를 위해 따뜻한 밥을 차린다.
결혼 후 44년 동안 시할머니와 시어머니에게 안방을 내드리고 아직 한 번도 안방을 써보지 못했다며 웃음 짓는 그에게서 어른을 향한 깊은 공경심과 애정이 묻어났다.
남동생만 네 명, 집안의 가장이 되다
강원도 횡성에서 4남 1녀 중 첫째로 태어난 황일용 씨는 어릴 적부터 동네에서 똑똑하고 공부 잘하기로 소문난 딸이었다. 고등학교에서도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며 대학 진학을 꿈꿨다.
하지만 운수 사업을 하던 아버지가 연이은 교통사고로 부도를 맞게 되면서 집안 사정은 급격히 어려워졌다. 고향 땅과 집은 물론, 숟가락과 이불만 남기고 집안의 모든 물건이 압류에 들어갔다. 단칸방에 할아버지와 부모, 남동생 4명과 함께 총 여덟 식구가 몸을 포개 잠을 자야만 했던 시절이었다. 눈물을 머금고 대학 진학을 포기한 황일용 씨는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 위해 1973년 우체국 공무원 시험에 응시해 합격했다.
집안의 실질적인 가장이 된 황일용 씨는 당시 1만 2천 원 정도의 공무원 월급과 상여금을 알뜰히 모아 식구들을부양했다. 고생 끝에 산언저리에 있는 방 두 칸짜리 집을 마련하고 이사하던 날, 온 가족이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황일용 씨는 행복했던 그날의 장면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마을 우체국에서 전화 교환 업무를 하던 황일용 씨는 야무진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시내에 있는 원주 우체국으로 자리를 옮겼다. 출납과 채권 업무를 담당하며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칠순잔치에서 가족들과 함께(왼쪽 네 번째)>
홀로된 시할머니와 시어머니를 보듬으며 살아온 나날
결혼 전, 남편은 황일용 씨에게 집안 사정을정직하게 말하고 자신과 결혼해 줄 수 있는지 물었다. 본인은 한국전쟁에 참전해 돌아오지 못한 아버지를 대신하는 대가족의 종손이며, 할머니를 모시는 홀어머니와 고등학교에 진학한 사촌 동생까지 한 집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웬만한 여성이라면 손사래를 칠 만도 하지만 황일용 씨는 밝은 미소로 결혼을 승낙 했다.
“저도 할아버지, 할머니 아래에서 자라서 괜찮다고 자신있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막상 시집와 보니 정말 힘들긴 하더라고요. 시할머니와 시어머니를 모시며 남편 사촌 동생의 도시락까지 싸야 했으니까요. 그래도 진실하고 성실한 남편 덕분에 지금까지 잘 지내왔어요.”
황일용 씨는 결혼 후 10년 뒤 시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극진하게 봉양했다. 돌아가시기 전 누워계신 2년 동안은 대소변까지 받아냈다. 맏며느리로서 명절 제사를 포함해 1년에 7번의 대가족 제사를 손수 차리고, 경로당 회장인 시어머니를 도와 오랜 기간 총무 역할을 맡으며 이웃 어른들의 식사와 건강까지 살뜰하게 살폈다.
황일용 씨는 지난 18년 동안 마을의 반장과 통장을 도맡아 지역 사회에 봉사하는 일에도 앞장서 왔다. 그는 홀로사는 이웃 어른과 도움이 필요한 장애인, 동네의 사정을 꼼꼼히 살피고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언제나 적극적으로 나선다.
연로한 시어머니를 봉양하며 마을의 대소사를 챙기는 황일용 씨의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지자체와 정부 표창도 받았다.
이야기 할머니로 아이들 앞에 서다
<이야기할머니 활동 중인 황일용 씨>
황일용 씨 부부는 슬하의 두 아들도 바르게 키워냈다. 우체국 공무원으로 성실한 삶을 이끌어 온 부모를 본받아 두 아들도 우체국 산하 공기업의 직원이 됐다.
황일용 씨는 현재 주 3회 마을 인근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방문하여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로 활동하고 있다. A4용지 3장 분량을 통째로 외워 구연해야 하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해맑게 자라나는 아이들을 만나며 큰 보람을 느낀다.
“아이들이 제 이야기가 정말 재미있다며 자기 집에 놀러 와 들려달라고 조르기도 해요.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과 이웃을 사랑하는 실천을 어린 아이들에게 두루 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