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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상

  • 시상명 : 아산상
  • 년도 : 2020
  • 부문 : 의료봉사상
  • 소속(직위) :
  • 수상자(단체) : 민형래

의료혜택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따뜻한 마음

 

사방을 둘러봐도 인적은 드물고 서걱거리는 모래바람만 불어오는 외딴 지역, 사람들의 발길이 유독 끊이질 않는 곳이 있다. 현지인들에게 ‘코리아병원’으로 불리는 곳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차를 타고 두어 시간 걸려 오는 건 기본이고, 벼르고 별러 단체 진료를 받으러 오는 경우가 줄을 잇는다. 이들에게 이곳은 오랫동안 견뎌온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자 기쁨이다.

 

더 크게, 더 오래 쓰임 받기 위해

 

민형래 원장(54)과 이곳의 인연은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신대병원 일반외과 전공의 수련을 마칠 즈음이었다. 의국 선배가 있는 네팔 탄센병원에서 2개월간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고, 귀국길에 한국의 한 비영리단체에서 인근 국가에 세운 병원을 가볼 계획이었다.

 

당시만 해도 잠깐 머물 작정이었고, 그 곳에서 19년을 살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병원에 도착해 안부를 나누던 그는 원장이 임기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가면 후임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고민하며 지체할 시간 없이 당장 한국에 돌아와 짐을 꾸렸고 아내와 9살, 5살 된 두 딸을 데리고 현지로 향했다.

 

“저를 꼭 필요로 하는 곳, 쓰임이 많은 곳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죠. 다행히 가족들은 제 뜻을 잘 이해하고 말없이 따라줬어요. 부산 영도 밖으로 나가서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아내가 저를 만나 여기까지 왔으니, 다 아내의 공입니다.”

 

해당 국가의 의료 환경은 매우 열악하고, 국립병원에 간다고 한들 기다리다 끝나거나 문을 열지 않아 돌아오기 일쑤였다. 더구나 사립병원은 너무 비싸서 가난한 사람들은 아파도 치료 한 번 받지 못하고 민간요법에 의지하다 병이 악화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민형래 원장이 봉사하던 병원은 빈민층 밀집 지역에 위치해 있어 도움의 손길이 무척이나 절실했다. 여기에 내과, 외과, 산부인과를 갖춘 의료기관이 들어서자 많은 이들이 환영했다. 저렴하면서도 의료 수준이 높았기 때문이다.

 

민형래 원장은 24시간 수술, 입원, 응급환자를 위한 병원으로 체계를 갖추어 나갔다.

 

현지에 틔운 작은 씨앗 하나

 

2003년 민형래 원장은 우연한 계기로 병원에서 차로 10시간쯤 떨어진 사막지역에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몸이 아파도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목격하고 이동 진료를 시작했다. 의료진들과 함께 마을을 찾아다니며 환자들을 돌봤고, 수술이 필요하면 병원으로 데려와 무료로 치료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그는 주민들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함을 절감하게 되었다.

 

이곳 사람들은 농사를 지어도 강우량이 적어 3년에 한 번 정도 수확을 하고, 그 외 시기에는 대부분 타지로 일을 찾아 떠난다. 그러다 보니 마을엔 노약자와 아이들만 남아 있곤 했다. 그는 미래의 희망인 아이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고 싶었다. 그해 12월, 민형래 원장은 학교가 없어 배움의 기회가 허락되지 않은 아이들을 위해 기숙학교인 호스텔을 설립했다. 간호사로 일하던 아내도 두 팔을 걷어붙이고, 아이들을 가르치며 부족한 일손을 도왔다.

 

30명으로 시작된 호스텔은 현재 130여 명의 아이들이 생활하며 공부하는 공간으로 발전했다. 이곳 졸업생들은 호스텔의 교사로, 민형래 원장이 운영하는 병원의 간호사로 성장했으며 자신의 마을로 돌아가 작은 학교를 운영하기도 한다. 민형래 원장이 틔운 교육의 씨앗은 현지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소중한 결실을 맺고 있다.

 

한마음 한뜻으로 세운 희망의 병원

 

 

민형래 원장은 2004년과 2005년 안식년을 맞아 귀국해 현지 주민들을 위해 다음 할 일을 본격적으로 준비해 나갔다. 사막 한가운데 환자들을 제대로 치료할 수 있는 종합병원을 설립하고자 마음을 굳힌 것이다.

 

2013년 7월, 7년 간의 노력 끝에 신생아실과 수술실, 검사실은 물론 50여 개의 병상을 갖춘 병원이 문을 열었다.

 

병원은 설립 초기부터 아이들의 생명을 구하는 것을 목표로, 10세 미만 아이들은 무료로 치료해주는 방침을 정했다. 아이들은 입원비, 수술비, 검사비, 약값까지 모두 무료이고 성인에게도 최소한의 비용만 받고 있다.

 

가난과 질병, 차별과 소외에서 벗어나기 위해

 

민형래 원장이 운영하는 병원은 외과, 소아과, 산부인과, 안과를 갖추고 있으며 개원 이후 지금까지 10만 명이 넘는 환자를 치료했다. 3,500여 명의 신생아가 태어났고 1,000여 건의 백내장 수술과 3,000여 건의 다양한 수술이 이뤄졌다. 지금도 매일 100명, 월평균 2,500명이 찾고 있다. 민형래 원장 역시 일주일에 5일, 하루 평균 50명의 환자를 진료한다.

 

통상적으로 일반 외상 환자와 풍토병 환자가 많지만 민형래 원장이 특히 관심을 기울이는 건 임산부와 영유아다.

 

이곳에 사는 이들은 씨족 공동체를 유지하면서 15세 전후로 출산을 시작해 5~10명 정도의 자녀를 낳고 있다. 출산율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조산하거나 영양실조로 사망한다. 그러다 보니 민형래 원장은 임산부와 영유아환자에 보다 큰 관심을 기울인다. 이들이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다.

 

사실 현지에서 병원을 운영한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더 열악하고 힘든 일이다. 하루에도 수차례 전기가 끊기고, 기온이 섭씨 50도까지 오르기도 한다. 물은 귀하디 귀하다. 그럼에도 민형래 원장은 매번 놀라운 기적을 만나곤 한다. 죽음의 문턱을 오가던 환자가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할 때, 휠체어를 타고 온 아이가 온전히 일어설 때 그는 세상 그 어떤 기쁨과도 비교할 수 없는 환희를 만끽한다.

 

호스텔과 병원의 자립을 위한 발걸음

 

 

민형래 원장의 요즘 고민은 호스텔과 병원의 지속가능한 발전이다. 외부의 도움 없이 자체적으로 운영이 가능한 방법과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현재 호스텔과 병원은 설립 당시와 비교하면 놀라운 발전을 이루었다. 황량한 지역 위에 학교와 병원이 세워질 것이라고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을 터다.

 

앞으로도 더 많은 아이들과 환자들이 가난과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는 어쩌면 지금보다 더 많은 ‘민형래 원장’이 필요할지 모른다.

 

“저는 여전히 평범하고 부족하기만 합니다. 장기려 박사님의 말씀처럼 저에게 아직 건강과 젊음, 그리고 어떤 특권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봉사의 기회로 쓰여야 하고 그런다 한들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당연하게 여겨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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