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상
- 시상명 : 아산상
- 년도 : 2020
- 부문 : 사회봉사상
- 소속(직위) : 곽지숙 마리인덕 수녀
- 수상자(단체) : 성모자애원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과의 아름답고 따뜻한 동행
예수성심시녀회. 대구 남구에 위치한 성모자애원의 대표 곽지숙 수녀(56)가 몸담고 있는 곳이다. 보통 수녀회라 불리는 데 반해 시녀회라 명한 이유가 있다.
“시녀로서 나를 낮춰 섬기고 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가족정신을 실천하라’는 것이 남대영 신부님의 정신이었습니다.”
프랑스 출신인 남대영 신부(본명 루이 델랑드, 1895~1972)는 1923년 한국에 파견된 후 1936년 성모자애원을 설립해 전쟁고아와 빈민, 한센인, 장애인 등 소외된 이웃들에게 사랑과 나눔을 실천한 분이다. 남 신부와 당시 활동을 함께했던 수녀 6명이 ‘삼덕당’ 공동체를 만들고 눈길 위에 쓰러진 할머니 한 명과 고아 2명을 데려와 보살피기 시작한 것이 성모자애원의 시작이다. 설립자 남 신부의 빈민구호 활동을 시작으로,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 등 혼란기 속에서 소외계층의 안식처가 되어온 지 올해로 84년째다.
1960년대 동양 최대의 사회복지 공동체 형성
성모자애원의 성장과 변천은 우리나라 사회복지의 역사이기도 하다.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빈민구호 활동을 시작했고 전쟁 이후에는 빈민과 고아, 버려진 노인들을 돌보는 데 힘을 쏟았다. 이때 자리를 잡았던 곳이 지금의 포항제철이 있는 경북 포항의 송정리다. 영아원, 보육원, 양로원, 무료진료소 등 35채의 건물을 짓고 살았다.
정부의 농지개혁으로 처음 자리를 잡았던 경북 영천에서 이곳 송정리로 옮겨올 당시 110명이었던 인원은 1960년대에 800여 명으로 늘어났다. 당시로는 국내뿐만 아니라 동양 최대 규모의 사회복지 공동체였다.
작가 안병호 씨는 당시 초등학교에 함께 재학 중이던 성모자애원 출신 친구들이 전쟁고아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깔끔한 옷차림과 밝은 표정을 보여준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것이 계기가 돼 남 신부에 대한 일대기를 다룬 ‘아름다운 사람 루이 델랑드’를 펴냈다. 가족보다 더 가족 같아 보였던 모습이 작가의 호기심을 발동케 한 것이다.
남 신부 뒤에서 수녀들은 '행동대원'으로 일했다. 미군부대 세탁 일을 맡아 생활비를 마련했고 묵주, 납작인형 등을 만들어 외국에 팔기도 했다. 지금도 역사관에는 그때 만들었던 묵주와 납작인형들이 남아있다.
1977년 이후 다양한 복지 서비스에 주력
1977년 성모자애원은 법인의 성격을 재단법인에서 사회복지법인으로 변경하고, 복지 서비스의 질과 전문성을 높여 나갔다. 기존의 전쟁고아들이 성인이 돼 사회에 진출하게 되면서 보육시설은 문을 닫았다. 대신 여성지체장애인시설 및 중증 발달장애 청소년들을 위한 시설을 설립해 장애인 복지지원 영역을 확장했다.
1988년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거리에서 내몰린 노숙인들이 늘어나자 이들을 위한 노숙인복지시설을 설립했고, 하루 한 끼의 식사 해결조차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무료급식소를 마련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고령화로 인한 노인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자 노인들을 위한 복지사업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성모자애원에서는 무료급식소 ‘대구요셉의 집’ , 노숙인 요양시설 ‘나자렛집’ , 청소년 중증 장애인시설 ‘루도비꼬집’ , 여성 중증장애인시설 ‘마리아의 집’ , 노인복지시설 ‘햇빛마을’ 과 ‘용평마을’ 등 6곳의 복지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설립자의 가족정신 실천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바로 우리 가족이다’라는 남 신부의 정신은 성모자애원 산하 시설 여러 곳에서 빛나고 있다. 노인전문요양시설 및 주간보호센터를 운영하는 ‘햇빛마을’은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지금도 천 기저귀를 사용하고 있다. 깨죽, 전복죽 등 주방의 음식 정성까지 소문이 나서 정원이 90명인 이곳의 대기인원만 200명이 넘는다. 기존에 생활하고 있는 분이 돌아가시기 전에는 자리가 나지 않을 정도다.
지난 3월, 코로나19가 대구를 휩쓸었을 때도 성모자애원의 가족정신은 어김없이 발휘됐다. 대부분의 무료급식소가 문을 닫은 상황에서, 성모자애원에서 운영하는 무료급식소 ‘대구요셉의 집’은 하루 한 끼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노숙인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수녀님과 직원, 봉사자들 모두 코로나19가 두렵지 않은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노숙인들은 단순한 이용인이 아니라 우리 가족입니다. 가족들이 먹을 것이 없어 굶는 것을 어떻게 지켜만 보겠어요.”
대구요셉의 집은 무료 급식을 중단하는 대신, 대안책으로 도시락을 준비했다. 아침마다 든든한 도시락과 함께 마스크를 챙겨 노숙인들에게 나눠 주었다. 무료급식이 아니면 하루 종일 굶어야 하는 사정을 알기에, 급식소가 쉬는 수요일과 일요일에는 컵라면, 바나나 등의 부식을 준비해 노숙인들이 사는 곳을 직접 찾아가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더 어려운 이들을 돕기 위한 노력
최근 복지영역에서 정부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법인을 이끌어 가는 곽 대표 수녀의 고민도 깊다. 국가에서 일부지원하는 기존 거주시설을 정리하고, 가난한 사람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을 찾아 나서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을 10여 년 전부터 해온 것이다.
그래서 서울에 ‘리틀요셉집’을 열어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을 위한 방과 후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고, 부산에서는 가난한 노인들을 찾아 말벗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앞으로도 성모자애원은 더 어려운 곳에 있는 이들을 돕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기울일 예정이다.
11월 17일은 1972년 선종 후 포항에 묻힌 남대영 신부의 기일이다. 성모자애원 보육원 출신들로 구성된 ‘마루회’ 회원들은 매년 기일에 함께 모여 남 신부를 추모한다. 마루회는 여아 보육원 ‘마리아의 집’과 남아 보육원인 ‘루수집’의 첫 자를 따서 지은 것이다.
“마루회 회원뿐만 아니라 남 신부님과 함께 해오셨던 연로하신 수녀님들이 중심이 돼서 기일을 기념했습니다. 아산재단에서 큰 상을 받아 올해 기일은 더욱 특별하게 기억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