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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 이사장 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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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 이사장 '나의 도전 나의 열정' 자서전 출간 등록일 : 2011.09.05

 

정몽준 이사장 '나의 도전 나의 열정' 자서전 출간


"초심으로 돌아간 정몽준 이사장의 삶과 정치에 대한 담담한 고백"

 

 

이 책은 어느덧 이순의 나이에 대한 접어들어 머리가 희끗해진 정몽준 이사장의 지나간 삶과 정치 인생을 되돌아보며 써내려간 반성의 고백록입니다. 정 이사장은 서문에서 미국 상원의 짐 웹(James Henry Webb Jr.) 동아태소위원장으로부터 들은 인상 깊은 이야기를 인용합니다. 통나무가 강물에 떠내려가는데 그 위에 개미 2만 마리가 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개미들은 각자 “내가 이 통나무를 조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정 이사장은 자신 역시 지나친 열정으로 이 세상을 홀로 움직이려 했던 일은 없었는지 되돌아봅니다. 정 이사장이 생각하는 열정은 타인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타오르면서 자신을 밀고 가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든 담담하게 보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열정입니다. 하기에 정 이사장은 책의 후반부에서 한국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나름대로 의견을 표한 것에 대해서조차 의욕만 앞섰던 것은 아닌지 우려를 표합니다. 그리고 내면 깊은 곳에 있는 기쁨과 슬픔, 성공과 좌절에 대한 성찰들을 처음으로 꺼내놓습니다.

1장에서는 생애의 자전적 이야기를 소설적인 분위기로 풀어냅니다. 심장 수술을 받은 이후 지나온 과거와는 다르게 삶을 바라보게 된 정몽준 이사장은, 이제는 자신이 가진 것들을 어떻게 다른 사람과 나눌 것인지 고민합니다. 최근에 ‘아산나눔재단’ 을 설립한 일도 이러한 고민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지나간 시대가 가난으로 인해 고통받던 때였다면 지금은 양극화 현상 때문에 사회가 분열되고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아산나눔재단을 통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녀 주디를 돕는 ‘키다리 아저씨’가 되고 싶다는 것입니다.

현대 직원들을 자식처럼 여겨 직접 밥을 해 먹이시던 어머니, 생모를 둘러싼 루머의 진실, 저자를 겨냥한 근거 없는 유언비어에 대한 해명 등이 담겨 있는 1장에서는, 집 안에서 뛰어놀다가 아궁이에 빠져 화상을 입고 약 대신 잉크를 발랐던 어린 시절의 일화, 권투를 배우고 학교 유도부 주장과 결투를 벌였던 학창시절의 에피소드, 지금의 아내를 만나 연애했던 아름다운 시절 등 소소한 추억들도 만날 수 있습니다.

2장에서는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기업인으로서의 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 이사장은 경륜도 능력도 부족한 만 서른 살의 나이에 3만 명 종업원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현대중공업 사장 자리를 맡았습니다. 조선업계의 불황 속에서 선박 수주를 따내기 위해 벌였던 치열하게 정보전을 벌여야 했고, 128일 장기 파업이라는 벽에 부딪히면서 현대중공업을 이끌어가야 했습니다. 선박 수주를 위해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군사독재 정치 체제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 정 이사장은 선거만 생각하는 정치꾼이 아니라 국민에 봉사하는 공직자로서 국회의원 출마를 결심하고 스스로를 ‘ 정치 노무자’ 라고 지칭합니다. 단지 경제적인 어려움에서 벗어나 잘살게 된 대한민국과 진정 자랑스러운 조국 사이에 있는 엄청난 거리의 메우기 위해 선택한 길이었습니다.

아버지 정주영 회장과의 일화도 등장하는데, 정권의 외압으로 인해 명예회장직에서 물러나게 되었을 때 “이화여대에서 받은 명예박사학위는 반납하지 않아도 되겠느냐”며 농담을 던지던 아버지의 유머, 낙관과 나눔의 인생철학 그리고 근검절약 습관을 물려받은 성격, 부자가 함께 서울 올림픽 유치라는 불가능에 도전해 성공했던 경험 등 다채로운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3장에서는 축구인 정몽준에 대한 이야기가 큰 줄기를 이룹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FIFA를 파행적으로 운영했던 아벨란제 회장과 블래터 회장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어 이목을 집중시킵니다. FIFA와 마스터 카드사 간의 소송 사건 당시 뉴욕법원은 “페어플레이를 슬로건으로 하는 FIFA는 더 이상 페어플레이를 말할 자격이 없다”고 경멸을 표했습니다. 정 이사장은 "FIFA가 ‘큰 재정적 손실을 입은 것도 문제이지만 그보다는 도덕성과 명성에 큰 상처를 입은 것이 더 큰 문제’라며 ‘신뢰 회복을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정 이사장은 FIFA의 부회장으로서 투명하고 공정한 운영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못한 데 대한 깊은 반성을 표합니다.

바로 곁에서 지켜본 히딩크 마법의 비밀, 평발을 극복한 박지성 선수와의 특별한 인연, 한국 축구의 대들보로서 어려운 순간을 잘 참아준 홍명보 감독의 비화, 미래의 대한축구협회장 감으로 꼽는 김주성 국제부장에 대한 이야기들은 흥미롭게 읽힙니다.

4장과 5장에서는 정치인으로서의 생각을 펼쳐놓습니다. 무소속과 정치 개혁 사이의 건널 수 없는 강 때문에 당에 입당한 정 이사장은 계파 정치에 강한 회의감을 표하며 친이니 친박이니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어서 미래 한국 정치에 대한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는데, 쇠고기 수입 개방 문제에서부터 통일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대해 나름의 의견을 표합니다. 민감한 이슈인 독도 문제에 대해 20해리 직선기선 변경을 제안하고, 사회복지 문제에 대해서는 사다리(학습 복지), 일자리(근로 복지), 울타리(돌봄 복지)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면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근거지를 마
련하자고 제안합니다.

이건희 회장, 정몽구 회장 등 기업인 조기 사면에 대한 신중론은 특히나 눈여겨볼 만한 대목입니다. 정 이사장은 공동체가 혼란스러우면 돈의 가치도 덩달아 추락한다며, 돈이 많은 사람은 자신이 소속된 공동체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 같은 소신 때문에 한나라당 대표 시절 홀로 기업인 조기 사면 신중론을 폈다는 것입니다. 노무현 후보 지지 철회의 이유,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와 안상수 원내대표에 대한 이야기, 쇠고기 수입 개방 문제에 침묵했던 이명박 정부 관료들에 대한 비판 등도 눈길을 끕니다.

흔히 사람들은 정몽준 이사장을 정주영 현대 회장의 아들로만 기억합니다. 그러나 정 이사장은 아버지의 인생이 아닌 자신의 인생을 자유의지로 살아온 사람입니다.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모든 것을 다 갖춘 듯 보이는 이미지 뒤에 가려져 있는, 불완전하고 평범한 한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 심호흡하고 초인종을 눌렀다. 누군가 나와서 문을 열어주었다. 내 어머니라고 주장하시는 분은 평범한 중년 여성이었다. 서로 바라보기만 했을 뿐 거의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그렇게 말없이 앉았다가 차만 한 잔 마시고 나왔다. 집에 돌아와서도 마음이 복잡했다. 그분을 찾아간 것을 아버지께 말씀드려야 할지 고민이 됐다. 그날 아침도 아버지는 일찍 일어나 조간신문을 들고 마당에 나와 계셨다.
“아버지,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아버지는 의아한 표정으로 내 기색을 살피셨다.
“사실은 엊그제 어떤 여자 분을 만났어요.”
편지를 받고 아파트에 찾아간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이야기를 다 들으시더니 단호하게 “그건 다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에요. 전에도 비슷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누가 무슨 말을 해도 그건 진실이 아니다. 그 문제는 내가 제일 잘 알지 않겠니? 내 말이 맞다.”
그러고는 아버지는 애정과 걱정이 담긴 눈길로 나를 바라보셨다.

                                                                                   ---- <그리운 어머니> 중에서

○ 대학에 들어가서도 나는 여전히 치기어린 청춘이었다. 1학년 2학기 기말고사를 볼 때였다. 나는 교양과목인 문화사 시험에서 친구들과 짜고 커닝을 하기로 했다. 꼭 시험을 잘 보겠다고 한 짓은 아니었다. 거칠게 보이는 게 멋있어 보이는 치기였다고나 할까, 아무튼 대수롭잖게 커닝을 했다. 그런데 감독 선생님한테 딱 걸려버렸다.
순간 눈앞이 아찔했다. 잘못했으니 용서해달라고 빌어야 하는데 그것조차 하지 못했다. 선생님은 한마디 말도 없이 용서조차 구하지 않는 내 태도에 더욱 화가 나셨다. 결국 감독 선생님은 학과에 보고를 했고, 나는 학기말 시험 전체를 취소당했다. 유급이었다. 후에 아버지께 혼난 것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 <거울 속에 비친 내 못생긴 얼굴> 중에서

○ 옆에 앉은 허태열 최고위원이 “이번에 자살한 여배우 J씨와 많이 놀았다면서요” 하고 묻더니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순간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때는 장소가 장소인지라 그냥 넘어갔다.
며칠 뒤 오찬장에서 허 최고위원을 다시 만났다. 누가 그러더냐고 물었더니 K의원한테 들었다기에 “욕을 하려면 당신 입으로 하지 왜 남의 이름을 들먹이느냐”고 쓴소리를 해줬다.
그런데 얼마 뒤엔 유명 가수 C씨가 내 아이를 임신했다는 소문이 돈다는 말을 들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했지만, 이미 소문이 좍 돌아 인터넷상에서 내 이름을 검색하면 그 가수의 이름이 함께 나올 정도라고 했다. 마침 그 가수가 열애 중이던 다른 연예인과 갑작스럽게 결별한 일이 있는데, 그 일을 연관 지어서 누군가 그럴싸하게 소문을 낸 것이다.
이 황당한 소문은 그 가수가 아이를 출산하러 외국에 나갔다고까지 확대되었지만, 나중에 국내에서 멀쩡하게 활동 중인 것이 밝혀져 결국 사그라졌다.
이렇게 나와 관련된 이상한 유언비어들은 하나둘이 아니었다. 2002년에는 유명 탤런트 S씨와 스캔들이 있다는 소문도 났다. 그 탤런트가 2001년 12월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월드컵 본선 조 추첨에 나와서 그런 모양이었다. 내가 S씨에게 푹 빠져서 타워팰리스에 집을 사주었고, 현대중공업 주식을 상장할 때 정보도 알려주어서 돈을 벌게 해주었다는 것인데, 이른바 ‘ 정보지’ 등을 통해 널리 퍼졌다고 한다…
2002년 대선을 앞둔 시기였다. 처가 식구들과 밥을 먹는데 내가 아내를 허리띠로 때린다는 소문이 돈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선거 때는 다 그런 것이라고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다음에 만나자 아직도 그런 소문이 돈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나도 화가 나서, 누구한테 그런 말을 들었느냐고 캐물었다. 뜻밖에도 온누리교회의 부목사란 이야기가 나왔다. 교회의 부목사라면 목회자요 성직자인데, 그런 사람이 왜 그런 얼토당토않은 말을 옮기고 다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영향력을 갖고 있는 대형 교회의 부목사라는 사람이 제정신으로 그런 말을 떠들고 다닐 리야 없지 않겠는가. 누군가 시키는 사람이 있고, 목적이 있을 터였다.

                                                     ---- <True or Not 코너를 만들어야 할까> 중에서

○ 5공 시절인 1985년, 12대 총선을 앞두고 울산에서 무소속 출마를 준비했다. 어느 날 현홍주 안기부 차장이 만나자는 연락을 해왔다. 서울시청 앞 플라자 호텔의 한 객실에서 현 차장을 만났다. 현 차장은 나에게 “내가 오랫동안 정치의 바깥에서 정치를 봐서 아는데, 정치에 발을 들여놓고 나중에 제대로 되는 사람 못 봤습니다”라며 출마 포기를 종용했다. 나는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은 그렇지만, 앞으로는 바뀔 것입니다”라고 내 생각을 설명했다. 방 안에 있던 국산 위스키 한 병을 함께 마시고 나왔다. 헤어지기 전에 현 차장은 “앞으로 잘되시길 바랍니다” 하고 인사를 했다. 나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얼마 뒤 청와대에서 전두환 대통령이 나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연락이 왔다. 직설적인 화법을 쓰는 전두환 대통령은 대뜸 “젊은 사람이 큰 회사 사장 해먹고 있으면 좋을 텐데 왜 정치를 하려고 하느냐”면서 출마 포기를 종용했다.

                                                         ---- <정치 노무자가 되기로 결심하다> 중에서

○ 회사 운영을 놓고 몽구 형과 몽헌 형이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두 형님들 주변에는 좋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다. 아버지의 신임을 얻기 위해서 그랬는지 두 형들은 대북 사업에서도 지나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하루는 임동원 국정원장이 내게 전화를 걸어 몽구 형이 북한에서 자동차사업을 하려고 하는데 말려달라고 부탁했다. 몽헌 형은 건강이 좋지 않은 아버지를 모시고 너무 무리하게 북한의 여러 곳을 다녔다. 아버지는 실향민이었다. 실향민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북녘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있었고, 북한이 발전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어 하셨다…
월드컵과 관련된 일로 외국 출장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축구와 관계된 일로는 회사 사람들이 공항에 마중 나오는 일이 없는데, 그날은 현대중공업의 재정을 담당하는 임원이 공항에 나와 있었다. 얼굴 표정이 꽤나 심각했다. 그 임원은, 몽헌 형이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 김윤규 현대건설 사장 등 대북 사업 관련 인사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자신을 불러서는 ‘현대중공업에서 몇억 달러를 내놓으라’ 고 했다고, 어쩌면 좋을지 물었다. 나는 무엇에 쓴다고 하더냐고 되물었다.
임원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현대건설 해외 현장에서 쓸 돈이라고 하셨습니다.”
순간 나는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북한에 보낼 돈이란 생각이 들었다.
“회사 돈을 아무런 근거 없이 보내면 큰일 나지 않겠습니까?”
이틀 후 청와대 비서실의 고위 인사를 청와대 인근 커피숍에서 만났다. 나는 답답해서 그에게 말했다.
“이런 일을 하면 안 됩니다. 회사 돈을 보내면 비밀이 지켜지겠습니까? 김대중 대통령을 이렇게 모시면 안 됩니다.”
그러자 그 고위 인사는 얼굴이 시커멓게 변해서 아무런 대답도 못 하고 바닥만 내려다보았다.

                                      ---- <북녘을 향한 아버지의 그리움과 비극의 전조> 중에서

○ 명동 입구에 조금 늦게 도착한 노 후보가 공동 유세 단상에 올라가 연설하면서 모든 것이 뒤집어졌다. 노 후보 자신은 물론 노 후보 진영의 말과 행동이 하루 전과 판이하게 달라졌다. 단상에서 연설하고 있는 노 후보가 내가 알던 노 후보인가 의아할 정도였다. 그야말로 표변(豹變)이었다. ……
노 후보와 내가 국정 동반자가 되기 위해서는 둘 사이에 바위처럼 굳건한 신뢰가 있어야 했다. 그리고 정책 협상과 공동 유세 과정을 통해 어느 정도 신뢰가 쌓였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이날 유세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제일 중요한 외교 안보 정책에 대한 공감대와 이를 실천하는 데 필요한 상호간의 신뢰, 이 두 가지가 모두 무너졌다. 한미 동맹을 부정하는 발언이 나왔고, 신뢰를 배반하는 행동이 이어졌다. ‘ 아, 위험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이미 ‘ 국정 동반자’ 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많은 유권자들은 노 후보의 불안한 안보관에도 불구하고 나를 보고 노 후보를 지지할 것이다. 노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외교 안보에 있어서만큼은 ‘ 국정 동반자’ 로서의 취지를 살려갈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선거를 몇 시간 앞두고 나온 노 후보의 발언과 행동은 그동안의 제스처가 거짓이었다는 것을 공표한 선언이었다. 그렇다면 노 후보에 대한 나의 지지는 수많은 유권자들을 속이는 행위가 아닌가. 국민을 속일 것인가, 눈 딱 감고 하루만 버텨서 개인적인 무사안일을 택할 것인가.

                                                 ---- <노무현 후보지지 철회의 고독했던 밤> 중에서

○ 유럽으로 출장 가는 길에 비행기 안에서 이 대통령의 위성 전화를 받았다. 서울 출마 얘기가 오고 갔다. 당에서는 서울 서남부에서, 야당 바람을 차단하면서 한나라당 바람을 불러일으키겠다는 계획이었다. 내가 권유받은 지역구는 동작 ‘ 을’ , 상대는 정동영 후보였다.
후원회장인 이홍구 전 총리에게 자문을 구했다. 이 전 총리는 정동영 후보의 대항마로 나가는 것은 좋지 않다면서 반대했다. 다른 지인들도 서울 동작 을은 전통적으로 한나라당에게 어려운 지역인데 왜 모험을 하느냐며 만류했다.
하지만 어차피 정치를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입당한 터였다. 당이 필요해서 부르는데 피한다면 앞으로 한나라당에서 할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2002년 후보 단일화의 기억에도 불구하고 나를 따뜻하게 받아준 한나라당 당원들에 대한 마음의 빚을 조금이라도 갚고, 내 나름대로 당에 기여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서울 출마를 결심했다.

                                                           ---- <친이도 친박도 되고 싶지 않다> 중에서

○ 그해 5월 북한을 방문한 박 전 대표는, 북한 축구팀의 남한 방문을 제안해서 김정일 위원장으로부터 축구팀을 보내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이어 축구협회에 연락해 북한 축구팀이 오게 되어 있으니 대표팀과 경기를 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협회로서는 골치 아픈 요청을 받은 셈이었다. 국가대표급 프로축구선수들의 수억대 연봉은 축구협회가 주는 게 아니라 프로구단에서 주는 것이다. 게다가 프로축구 경기 일정도 빡빡하기 때문에 협회가 마음대로 선수들을 불러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국가대표팀 경기를 위해 선수를 소집하려 해도 1년 전부터 프로축구 구단 측과 일정을 협의해야 한다. 북한 축구팀과의 경기는 FIFA가 정한 국가 대항전(A-match) 날짜와도 맞춰야 했다.
조중연 당시 축구협회 전무가 박 전 대표를 찾아가 이렇게 복잡한 사정을 설명했는데도 박 전 대표는 화를 펄펄 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조 전무로부터 전해 듣고, 박 전 대표와 점심식사를 하면서 내가 직접 설명을 했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마찬가지 반응을 보였다. 할 수 없이 각 프로구단에 통사정해서 간신히 대표팀을 소집했다.
남북한 축구 경기가 열리던 2002년 9월초, 상암 경기장에 도착하니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태극기를 든 사람들과 한반도기를 든 사람들이 서로 실랑이를 벌이는 중이었다. 박 전 대표는 먼저 경기장에 와 있었다. 나를 보더니 화난 얼굴로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했다. 무슨 소린가 했더니 관중들이 한반도기를 들기로 했는데 왜 태극기를 들었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관중들이 축구협회 직원들도 아니고, 자기 돈 내고 들어온 사람들한테 태극기를 들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답했다.
문제는 또 생겼다. 축구 경기 시작 전에 ‘ 붉은 악마’ 가 ‘ 대한민국’ 을 외쳤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는 다시 내게 항의했다. 구호로 ‘ 통일조국’ 을 외치기로 했는데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붉은 악마는 축구협회 직원들이 아니라 오히려 상전이다. 중요한 경기에서 패배하면 감독을 교체하라고 축구협회를 야단치는 형편인데, 협회에서 ‘대한민국’ 을 외치지 말란다고 그렇게 되는 게 아니다. ‘ 통일조국’ 을 구호로 해달라고 했다면, 협회에서 붉은 악마 쪽에 전달했을 테니 조금만 기다려보자”고 설명했다. 경기가 진행되면서 붉은악마는 ‘ 대한민국’ 과 ‘ 통일조국’ 을 번갈아가며 외쳤다.
훗날 박 전 대표는 김정일 위원장에 대해 “약속을 잘 지키려고 노력했다”고 후한 평가를 내렸다. 반면에 나는 약속을 잘 안 지키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 <박근혜 전 대표와 얼굴을 붉힌 이유> 중에서

○ 그런데 오전의 음성 최고위원회의에는 참석하지 않았던 안상수 원내대표가 이야기를 하자면서 원탁의 가운데를 차지하고는, 한국노총이 제안한 5자회담에 정부의 노동부가 참여하는 것과 관련해 내게 도발적인 발언을 했다. “대표라는 사람이 선거에서 한두 석 더 얻기 위해 정부의 장기적인 정책을 흔들면 안 된다”는 얘기였다. 안 원내대표가 어딘가에서 전해 듣고 나를 망신 주기로 작정한 듯했다. 오전에 같은 의견을 표시했던 김성조 의장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화가 났지만 참았다.
도당위원장실 위층 강당에서 공약발표회가 끝난 뒤 내가 다시 회의를 소집했다. 안상수 원내대표 등 참석자들은 웬일인가 하는 눈치였다. 내가 단호하게 한마디 했다.
“당대표인 제가 선거에서 한두 석 더 얻는 데 급급하다고 안상수 원내대표가 말했는데 사실 맞는 말입니다. 저는 지금 급급합니다. 대표가 선거에 급급한 것이 뭐가 잘못입니까? 선거는 금년 한 번이 아니고 매년 치르는 것입니다. 선거 때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화가 많이 난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 <안상수 원내대표와의 갈등… > 중에서

○ 이건희 삼성 회장의 사면 문제가 언론으로부터 슬금슬금 새어나왔다. 그러더니 체육 단체와 경제 단체들이 이 회장 사면에 앞장을 섰다. 형이 확정된 지 4개월 만에 사면을 한다는 건, 내가 볼 때 너무 빨랐다. 일반인들에게는 엄격한 법준수를 요구하는 정부가 대기업 총수에게는 전혀 다른 잣대를 적용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 내에서도 이건희 회장의 사면에 장단을 맞추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최고위원회의가 열린 날, 회의 직전 참석자들의 생각을 넌지시 물었다. 내가 먼저, 사면은 시기상조가 아니냐고 운을 뗐다. 회의에서 누군가가 문제 제기를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 당과 무슨 상관이냐”는 반응도 있었고, “지역구에 삼성 공장이 있어서 어렵다”고 털어놓는 사람도 있었다. 하는 수 없이 회의에서 내가 직접 “이건희 회장 사면은 아직 이른 감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집권 여당의 대표가 상당히 민감한 사안에 대해 언급했는데도 다음 날 신문에는 거의 실리지 않았다. 얼마 후 어느 언론사의 간부와 이 일에 대해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이 간부는 “대한민국에 언론 자유를 누리는 사람은 정 대표밖에 없다”고 했다. 언론도 이건희 회장 문제에서만큼은 자유롭지 못하다는 얘기였다.

                                                             ---- <이건희 회장, 정몽구 회장… > 중에서

○ 2010년 10월에 러시아 푸틴 총리의 초청으로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2018년 월드컵 유치를 신청한 러시아로서는 22명의 FIFA 집행위원의 한 표 한 표가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나의 한 표도 중요하다고 판단했을 법했다.
푸틴 총리는 관계 장관이 배석한 가운데 “러시아는 대서양 국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태평양 국가다”라고 강조하면서 동북아시아 정세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푸틴 총리는 동북아시아 전체가 안정되어야 번영할 수 있다고 말했고, 한반도의 통일이 동북아시아의 안정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며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상당히 고맙고 인상적이었다.
푸틴 총리는 또 러시아와 한국의 경제 협력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한국으로 천연가스를 수출해서 한·러 관계가 증진되기를 희망한다”며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천연가스를 액화시켜 선박으로 운송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나는 갖고 다니던 2022년 월드컵 유치위원회 홍보 책자에 있는 유라시아 대륙 지도를 펼쳐 보이면서 “선박으로 운송하게 되면 천연가스를 액화했다가 다시 기화하는 등 비용이 두 배 이상 들어간다, 그보다는 북한을 경유하는 파이프라인을 건설해서 수송하는 방안이 더 좋겠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푸틴 총리는 “북한은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경유지인데, 문제를 일으키면 어떻게 하냐”며 주저하는 모습이었다. 내가 다시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북한이 문제를 일으키면 러시아가 가스관을 잠그면 되지 않나. 북한에 주는 통과료도 가스로 주면 상관없을 것이다”라고 설명하자, 푸틴 총리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최근에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으로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건설 문제가 화제가 되고 있는데, 당시 푸틴과의 만남에서 나눈 대화의 내용이 이제 현실화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반가웠다.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건설 문제는 선친 때부터 계속된 문제인데, 앞으로 좋은 결실을 맺는다면 보람이 있겠다.
푸틴 총리와의 면담으로 나는 한국과 북한, 러시아의 관계를 새삼 짚어보게 되었다. 푸틴 총리의 좋은 구상들이 실현될 수 있도록 우리도 우리 몫을 잘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북한에서 찍어온 머릿속의 사진> 중에서

○ 그러나 나는 OECD 가입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OECD에 들어가려면 자본시장을 완전 개방해야 하는데, 그때 우리는 그러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무리하게 OECD 가입을 추진하게 되면 국내 자본시장이 불안정해져서 큰 경제위기가 닥쳐올 우려가 있었다. 특히 외환 위기가 발생할 것이 불 보듯 명확해 보였다. 실제로 OECD에 가입한 후, 우후죽순으로 난립한 종합 금융사들이 마구잡이로 달러를 차입했던 것, 특히 단기 자금을 무리하게 차입한 것은 외환 위기를 촉발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나는 이러한 생각을 신문 칼럼 등을 통해 여러 차례 밝혔다. 처음으로 기고한 언론은 <동아일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OECD 가입 문제가 사회적인 논쟁거리로 부각되지 않은 시기였다. <동아일보>에 원고를 들고 가자, 당시 편집국장이 “김영삼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인데 반대하다가 찍힐 수 있다”면서 애써 나를 만류했다. 나는 웃으면서 대했다.
“이미 찍혔으니 괜찮습니다.”

                               ---- <이탈리아 피아트 경영진과의 만남에서 얻은 교훈> 중에서

○ 한 달쯤 지나서 대통령의 측근에게 “당신들 책임이 크다. 미국 가는 비행기 안에서라도 최소한 캠프 데이비드에서는 쇠고기 수입 개방을 발표해선 안 된다고 건의한 참모가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 아니냐”고 질타했다. 이 측근은 “사실 찬반이 갈라졌는데 유명환 외교부 장관, 김중수 경제수석은 찬성했다”고 전했다. 기가 막힌 일이었다. 외교와 경제 참모들의 정치 감각이 이 정도밖에 안 되었던 것이다. 국내 정치와 담쌓고 지내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부의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은 정치 참모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자신들의 의사 결정이 국내 정치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여러 요소를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 <수입 개방에 침묵했던 데이비드 캠프행 비행기 안> 중에서

○ 어느 날 밤에 정운찬 총리가 전화를 걸어왔다. 정 총리는 “서울 강남구에는 기존 구청장을 그대로 공천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했다. 나는 “총리가 관여하시지 않는 게 좋겠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그만큼 여성 공천은 힘든 일이었다. 심지어 6· 3 지방선거 후, 강남이 지역구인 이종구 의원은 연찬회에서 공개적으로 “대표라는 사람이 세상물정도 모르고 여성 공천을 한다고 소란을 떨었다”고 나를 비난했다. 같은 자리에서 그는 대통령에 대해서도 시중에 떠도는 말이라며, “이명박× × , 웃기는 × × ”라고 발언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강남에 공천한 여성 후보는 당선되어 잘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현재 열심히 일하고 있다.

                                     ---- <여성의 세기(世紀)는 헌법으로도 막을 수 없다> 중에서

 

[기자간담회 인사말 전문]

반갑습니다. 바쁘신데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이때까지 책을 몇권 냈지만 이번에 많은 노력을 해서 책 출간하게 되어 정말 기쁘게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저에 대해서 여러가지 관점에서 말씀들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기업인, 체육인, 정치인, 이에 더해 돈이 많은 사람, 고생을 모르는 사람, 하는 식으로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저도 제가 내가 누구인지 생각을 해봅니다.

이 책은 여기에 대한 대답을 하기 위해 지은 책입니다. 인간 정몽준이 과연 누구인가에 대해 써보려 했습니다. 이 책이 저를 이해하시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그간 여러 분야에서 많은 목표를 향해 도전하면서 살았습니다. 이제 이 열정을 우리나라 정치발전위해 바치려고 합니다. 최근 들어 국내외적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전세계적인 경제위기 우리나라에도 큰 영향 미치고 있고 이 경제위기는 자유민주주의체제, 시장경제의 위기라고 보여지며 이것이 우리나라에는 심각한 외교안보상 위기가 될 수 있다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역사 돌아보면 우리 국민들은 많은 기적 만들어내셨고 이런 기적의 역사는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오늘의 이 책이 우리나라 기적의 역사 만들어나가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바쁘신데 참석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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