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포커스
| 아산재단, 498명에게 장학금 39억 4천만원 전달 | 등록일: 2026.02.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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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재단, 498명에게 장학금 39억 4천만원 전달
아산사회복지재단(이사장 정몽준)은 2월 25일(수)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아산생명과학연구원 강당에서 2026년 장학증서 수여식을 개최했습니다.
재단은 이날 대학원생 88명, 대학생 410명 등 총 498명에게 장학금 39억 4천만원을 전달했습니다.
의생명과학분야 대학원 장학생 78명(국내 47명, 해외 31명)은 각각 매년 2,000만 원과 4,000만 원을, 보건의료정책분야 대학원 장학생 10명은 매년 1,000만 원을 지원받게 됩니다.
대학교 장학생으로는 의생명과학자를 꿈꾸는 대학생들을 지원하는 ‘의생명과학분야 대학교 장학생’ 35명, ‘북한이탈청소년 장학생’ 45명, 군인·경찰·소방·해양경찰 등 국가의 안전을 위해 헌신하는 대원들을 격려하기 위해 제정된 ‘MIU(Men In Uniform) 자녀 장학생’ 230명, 산업체 현장실습 등에 참여하는 ‘지역산학협력 장학생’ 100명이 선발됐습니다.
재단은 의생명과학분야 대학교 장학생과 북한이탈청소년 장학생에게 연 600만 원, MIU 자녀 장학생과 지역산학협력 장학생에게는 연 400만 원의 학업보조비를 지원하여 보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아산사회복지재단은 1977년 재단 설립시부터 지속적으로 장학사업을 펼쳐왔으며 지금까지 3만 7천여 명의 장학생들을 지원했습니다.
□ 인사말
<정몽준 이사장>
건강하신 모습들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아산장학생으로 선발되신 여러분들, 축하합니다.
오늘 장학생들을 격려하기 위해 참석해주신 재단 이사님을 비롯한 여러 분들, 그리고 장학생들을 선발하느라 애써주신 장학자문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좋은 계절에 장학생 여러분을 만나게 되니 저도 젊어지는 기분입니다. 여러분도 새 학기를 맞아서 희망차게 출발하시기 바랍니다.
저희 선친께서는 49년 전에, 우리나라에서 복지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하던 1977년에 아산사회복지재단을 설립하셨습니다. 아버님은 재단의 첫 번째 사업으로 장학사업을 시작하시며 청년들이 어려운 형편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뜻을 펼칠 수 있도록 도우셨습니다.
아버님은 일제강점기에 지금은 북한 땅인 강원도 통천에서 가난한 농부의 장남으로 태어나서 어릴 때부터 농사일을 하셨습니다.
아버님은 저희 증조할아버지께서 훈장으로 계시던 서당을 3년 다니시며 ‘논어’, ‘맹자’, ‘소학’, ‘대학’같은 책들을 읽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일제 시대 초등학교를 3년간 다니신 것이 공식 학력의 전부입니다.
하지만 ‘나의 첫째 스승이 부모님이었다면 둘째 스승은 책이었다’고 하실 만큼 배움에 대한 갈망은 대단히 높으셨습니다.
아버님은 일제시대 어렸을 적에, 걸어서 한 시간 거리에 있던 이장댁에 가서 어른들이 보고 남은 신문을 읽곤 하셨는데, 당시 동아일보에 연재되던 이광수 선생의 ‘흙’이라는 소설을 실제 일어난 일로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그 소설에 감명을 받아서 주인공처럼 변호사가 되기 위해 사법고시에 두 번이나 도전했지만 독학으로 공부하다 보니 합격은 못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배움에 대한 갈구가 있었기 때문에 어려운 학생들을 도와야겠다고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아버님은 아무리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고민하시다가 네 번이나 가출을 하셨고, 서울에 와서는 막노동과 쌀가게 점원 일을 하셨습니다.
1933년에는 서울 안암동의 고려대학교 신축공사장에서 등짐으로 돌과 나무를 나르는 일을 하셨는데 당시 같은 또래의 대학생들을 보면서 부러움을 많이 느끼셨다고 합니다.
훗날 사업에 성공하신 뒤 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설립하셨는데 창학 기념비에 이렇게 적으셨습니다.
“젊은 시절 어느 학교 공사장에서 돌을 지고 나르면서 바라본 대학생들은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나에게는 한없는 부러움과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때 이루지 못했던 배움에 대한 갈망이 여기에 배움의 주춧돌을 놓게 하였으니 젊은이들이여 이 배움의 터전에서 열심히 학문을 익혀 드높은 이상으로 꾸준히 정진하기 바랍니다.”
아버님은 자동차 수리점을 시작으로 건설업, 조선업, 자동차 제조업 등에 도전하며 많은 어려움을 겪으셨지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화재로 공장을 잃기도 하고, 6.25 전쟁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피난을 가기도 했지만 피난지에서 다시 재기의 기회를 만드셨습니다.
아버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기회를 놓치는 것보다는 실패해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고 하시며 한평생 당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하셨고, 어떤 상황에서 무슨 일을 하시건 전심전력을 다하셨습니다.‘더 하려야 더 할 게 없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다하는 최선’이 아버님의 평소 생각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수 십 년 동안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빠르게 발전해왔습니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요즈음은 수많은 세계 사람들이 K 컬쳐에 열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경제는 저성장에 들어섰고 청년들은 취업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천연자원이 없는 우리나라가 이만큼 발전한 것은 인재를 잘 길러냈기 때문입니다. 저희 아버님처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전심전력을 다하는 젊은이들이 있는 한 우리나라의 미래는 밝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월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세계 최대 전자·IT 산업 전시회인 ‘CES 2026’이 개최되었습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단순히 소프트웨어에 머무는 AI가 아니라 실제 산업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작동하는 AI’, 즉, ‘피지컬 AI(Physical AI)’기술들이 주목을 받았는데 이것은 제조업에 강점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가 앞서갈 수 있는 분야입니다. 특히 이번 전시회에서는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활약으로 전체 혁신상 수상기업 284개 중 절반 이상인 168개를 한국 기업이 차지했습니다.
AI를 중심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소식들입니다.
이렇게 우리에게는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헤쳐나갈 수 있는 DNA가 심어져 있습니다. 그 DNA가 잘 발현되도록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 기성세대의 역할이고 저희 재단이 가려는 방향입니다.
저희 재단의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 중에는 아산장학생 동문회장을 지내신 정영환 고려대 명예교수님과 같이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또 이제 막 학업을 끝내고 후학을 가르치기 시작한 분들도 있습니다.
2017년에 1기 의생명 대학원 장학생으로 선발된 윤호종 박사는 지난해 세계적 암 치료기관인 미국 엠디 앤더슨(MD Anderson) 암센터의 조교수로 임용되었고, 2기 장학생 출신인 김원진 교수는 고려대 약대에 임용됐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발명가 토마스 에디슨이 남긴 명언 중에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Genius is 1% inspiration and 99% perspiration. 어떤 사람들은 노력은 당연한 것이고 1%의 영감이 중요하다는 뜻이라고 얘기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의미로 인용됩니다. 실제 인생에서는 천재성보다는 끈질긴 노력이 중요합니다. 저희 아버님이 평생 실천하신 ‘전심전력’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장학생 여러분이 어떠한 어려움에도 포기하지 않고 전심전력을 다하며 도전을 이어나가 혁신을 이끄는 인재로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사회에서 받은 혜택을 후배들에게 다시 베풀게 되면 좋겠습니다.
저희 아산재단은 우리 청년들이 희망을 갖고 도전하면서 꿈을 키우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장학생 여러분,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축사
<전순옥 아산사회복지재단 명예자문위원>
장학생 여러분, 뜻깊은 자리를 마련해 주신 정몽준 이사장님, 아산사회복지재단 관계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 이곳에는 아산 정주영 회장님이 품으셨던 ‘사람을 키우는 마음’이 가득 차 있음을 느낍니다. 한 사람의 가능성을 믿고, 그 꿈에 날개를 달아주는 ‘믿음의 연대’가 펼쳐지는 이 귀한 자리에 함께 할 수 있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먼저 이 재단을 설립하신 아산 정주영 회장님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싶습니다. 회장님께서는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라는 불굴의 의지로 이 나라의 기틀을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 성공의 결실을 사회의 소외된 곳과 배움이 필요한 인재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셨습니다.
아산재단이 수십 년간 이어온 장학 사업은 꿈을 향해 도전하는 청년들의 든든한 ‘사다리’였고, 어려움 속에서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디딤돌’이었습니다. 오늘 아산의 장학생이 된 여러분은 바로 그 위대한 나눔의 정신을 이어받는 주인공들입니다.
여러분에게 가슴 깊이 간직해온 저의 오빠, 전태일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당시 오빠는 그 누구보다 공부를 하고 싶어 했습니다. 고된 노동 속에서도 헌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배움에 대한 갈증으로 밤을 지새우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 오빠의 주변에는 그 절박한 손을 잡아줄 사람도, 배움의 길을 열어줄 장학금도 없었습니다. 오빠가 느꼈을 그 깊은 고립감과 배움에 대한 목마름은 지금도 저의 가슴에 아린 통증으로 남아 있습니다.
장학금이 일궈낸 기적 같은 이야기도 있습니다. 오빠와 달리, 저는 과분한 축복을 받았습니다. 독일의 미제리오(MISEREOR) 천주교 재단이라는 따뜻한 손길을 만나 영국에서 석박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들은 저의 배경이 아니라 저의 가능성을 믿어주었습니다.
그분들이 보내준 장학금은 단순히 학비가 아니었습니다.
“공부하고 싶어도 길이 없었던 네 오빠의 꿈을 대신 이어가라”는 격려이자, “세상은 여전히 살만하며 너를 돕는 이들이 곁에 있다”라는 연대의 메시지였습니다. 그 따뜻한 응원 덕분에 저는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만약 그때 장학금이 없었다면, 오늘 여러분 앞에 서 있는 전순옥이라는 사람은 결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영국에서 공부할 때 품었던 그 고마움을 잊지 않기 위해, 현재 제 수입의 일부를 꾸준히 ‘전태일 장학재단’에 나누고 있습니다. 오빠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던 그 따뜻한 기회를, 이제는 제가 오빠의 이름으로 후배들의 꿈을 위해 되돌려주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나눌 때의 기쁨은 받을 때의 기쁨보다 수만 배는 더 크다는 점입니다. 나눔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사랑으로 돌아와 제 삶을 풍요롭게 만듭니다.
부디 오늘의 이 벅찬 감동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훗날 여러분이 각자의 분야에서 당당하게 뿌리를 내렸을 때, 주변을 살피는 따뜻한 시선 또한 잊지 않는 어른이 되어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받은 사랑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해질 때, 우리 사회는 비로소 정주영 회장님이 꿈꾸셨던, 그리고 제 오빠 전태일이 그토록 바랐던 ‘함께 사는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입니다.
다시 한번 아산의 자랑스런 장학생이 되심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여러분의 앞날에 도전과 성취, 그리고 나눔의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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