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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상

  • 시상명 : 아산상
  • 년도 : 2021
  • 부문 : 사회봉사상
  • 소속(직위) : 영양과 교육 인터내셔널 대표
  • 수상자(단체) : 권순영

콩으로 심은 희망, 아프가니스탄에서 싹트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본부를 둔 비영리단체 ‘영양과 교육 인터내셔널(NEI, Nutrition & Education International)’ 권순영(74) 대표는 전쟁과 굶주림으로 고통 받는 아프가니스탄 현지 주민들을 위해 18년간 콩 재배법을 전수하며 그들 의 영양 개선과 자립에 기여해왔다.

 

충남 천안에서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권순영 대표는 가까운 미래에 세계적으로 식량 부족 문제가 대두될 테니 관련 공부를 해볼 것을 권유한 아버지의 뜻에 공감해 고려대 농예화학과에 진학한 후 식품영양 분야의 전문가로 경력을 쌓았다.

 

50대에 접어들 무렵, 한창 성공 가도를 달리던 권순영 대표를 뒤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생겼다. 가난과 굶주림으로 고통 받는 아프가니스탄 주민들의 모습이었다.

 

어린 시절 6·25 전쟁을 겪으며 나중에 성인이 되면 어려운 이들을 돕겠다던 오래된 다짐이 떠올랐다. 식품영양학자로서의 책임감도 있었다. 그렇게 아프가니스탄 주민들을 향한 발걸음이 시작되었다.

 

어려운 사람들을 향한 따뜻한 마음

 

아프가니스탄 주민들에게 ‘콩 박사’로 불리는 권순영 대표는 대학 재학 중 베트남 전쟁 파병을 자원하면서 삶의 첫 번째 전환점을 맞았다. 파병 한국군에서 운영하는 대민 지원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참여조건인 베트남어 통역병이 되기 위해 사이공의 군사학교에 입학했고, 졸업 후 현지인들을 돕는 일을 해나갔다. 당시 권순영 대표에게 누군가를 돕는 일은 인종과 국가를 넘어 당연히 해야 할 사명처럼 여겨졌다.

 

1972년 매일유업에 입사한 후 뉴질랜드 정부초청 연수생 선발 등을 통해 우유가공 전문 지식을 축적한 권순영 대표는 부족한 공부를 더 하고 싶어 1976년 정부에서 지원하는 해외유학의 기회를 잡았다.

 

낯선 땅 미국에서 부인과 함께 생활비를 벌어가며 학업을 이어간 권순영 대표는 1982년 오하이오주립대학에서 식품생화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낙농식품연구소 시험생산실 책임자를 거쳐 1986년 다국적 식품회사 네슬레로 자리를 옮겼다.

 

콩을 원료로 한 영아용 대체 분유 등을 개발하는 연구원으로 일했던 권순영 대표는 2000년 초 임원으로 승진하며 능력을 인정받았고, 의료·영양·식품 부문에서 특허권 13개를 보유할 정도로 실력 있는 전문가로 자리매김했다.

 

고민보다는 행동으로

 

권순영 대표가 아프가니스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01년 9 · 11테러 발생 직후였다. 9·11테러 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지상군을 투입하는 등 일련의 사건들이 일어나면서 관련 보도들이 연일 쏟아졌다.

 

“뉴스를 통해 현지 주민들이 극심한 굶주림에 고통 받고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아이들 4명 중 1명이 다섯 살이 되기 전 사망하고, 가난한 지역에서는 6명 중 1명이 출산 중 사망한다는 보도를 접하곤 마음이 아팠어요. 아프가니스탄 영유아 사망률 1위의 원인이 영양실조라는 사실에 식품영양학자로서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도 가만히 있어야 하는가, 가만히 있지 않는다면 혼자서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그는 고민할 시간에 직접 아프가니스탄에 가보자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2003년 5월, 자비를 들여 3번 경유하는 비행기를 타고 36시간이나 걸려 아프가니스탄에 도착했지만 현지 상황은 무장단체들 간 총격전이 벌어질 정도로 위험했다. 지인과 현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아동 사망률이 높은 마을을 방문한 권순영 대표는 눈앞에 펼쳐진 참상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영양실조로부터 이들을 구할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앞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단백질이 풍부한 콩, 영양 개선의 해법이 되다

 

권순영 대표는 현지 의과대학의 요청으로 ‘건강과 영양’을 주제로 워크숍을 개최하면서 샘플로 가져간 유제품과 콩제품을 선보였다. 시음한 현지 전문가들의 반응도 괜찮았다. 영양학적으로 단백질이 풍부한 ‘콩’이 해법이 될 수 있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아프가니스탄은 80%가 산악지형이지만 광활한 영토를 가지고 있고, 국민의 90%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기후조건도 한국과 비슷했다.

 

“가능성만 가지고는 일을 추진할 수 없었다”는 권순영 대표는 미국으로 돌아와 NEI를 설립했다. 혼자의 힘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아프가니스탄 방문 때는 권순영 대표의 뜻에 동참하겠다는 미국의 콩 관련 전문가들이 너도 나도 힘을 보탰다.

 

미국에서 가져간 6종의 콩 종자는 아프가니스탄 12개 지역에서 시험 재배에 들어갔다. 그 중 2종이 2005년 시험 재배에 성공하면서 콩 재배 가능성이 검증되었고 밀농사를 주로 짓던 농민들을 설득할 수 있었다.

 

아프가니스탄 농축산부의 지원도 본격적인 콩 재배를 가능하게 했고, 한국 정부도 다양한 콩 종자를 지원해주었다. 2011년부터는 종자를 수입하지 않아도 현지 수급이 가능할 정도로 콩 재배 산업이 자리를 잡았다.

 

<두유공장 가동을 앞두고 점검 중인 권순영 대표(왼쪽 두 번째)>

 

식량 지원을 넘어 지속 가능한 자립의 토대를 만들다

 

콩 시험재배에 성공하고 16년이 지난 후, 아프가니스탄 전체 34개 주 중 31개 주에서 12만 5천여 명의 농민들이 NEI의 교육을 받고 콩 재배에 참여하게 되었다. 초기 40톤에 불과했던 콩 생산량도 6천 톤으로 증가했다.

 

“NEI에는 철학이 있습니다. 어려운 사람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진정으로 남을 돕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자존감이 높아지고, 삶의 의지도 강해지니까요. 다른 하나는 모든 사람은 동등하다는 것입니다.”

 

<콩 농장에서 현지 농부들과 함께 한 권순영 대표(오른쪽 세 번째)>

 

이런 철학 위에 ‘지속가능한 콩 가치사슬 개발’을 사업 운영의 기본 방침으로 세운 NEI는 생산, 소비, 판매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2008년부터 농민들의 소득창출을 위해 콩 가공산업에 필요한 공장을 꾸준히 설립했고, 2016년에는 실온에서 10개월가량 보관이 가능한 멸균두유 생산 공장을 완공함으로써 더욱 많은 현지인들에게 단백질을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

 

콩 식문화 조성과 확산에도 뛰어들었다. 현지인들의 주식인 밀가루 빵 ‘난’을 반죽할 때 콩가루를 10% 첨가하는 새로운 레시피를 개발 · 보급함으로써, 촉촉하고 단백질이 풍부한 ‘소이(Soy, 콩) 난’ 식문화를 전국적으로 확산시켰다.

 

콩 재배, 가공, 식문화 확산과 함께 사회공헌 사업도 전개한 권순영 대표는 2015~2018년 ‘희망의 콩 청소년 클럽’을 운영하면서 소외지역 청소년들에게 농업, 지역사회 봉사, 스포츠 활동의 기회를 제공했다.

 

여성들에게는 콩과 콩가루 판매 기회를 지원하고, 콩 종자 지원과 재배법 전수 등을 통해 15개 지역 여성 농민 1천여 명의 콩 재배를 도왔다. 더 나아가 콩 재배 과정에서 나온 부속물을 양계 사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양계 사업을 지원하는 등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자립에 힘을 보탰다.

 

권순영 대표는 콩 산업 구조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다고 판단해 NEI가 주도해오던 사업 권한을 2019년부터 현지인들에게 순차적으로 이양하고 있다.

 

“NEI는 2030년까지 콩 산업 개발을 통해 아프가니스탄의 영양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이 콩을 통해 영양결핍을 해결한 국가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어요.”

 

최근 아프가니스탄 내 정세가 불안한 상황이지만, 권순영 대표와 NEI의 활동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난민촌 무료 급식 등을 통해 어려운 현지 주민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이어가는 중이다.

 

작은 ‘콩’을 매개로 아프가니스탄을 일흔 번 넘게 오가며 단순한 식량 지원을 넘어 현지 영양 개선의 기반을 조성한 권순영 NEI 대표. 그와 뜻을 같이 하는 봉사자들이 꿈꾸는 목표는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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