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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상

  • 시상명 : 아산상
  • 년도 : 2021
  • 부문 : 아산상
  • 소속(직위) : 헤브론의료원 의료원장
  • 수상자(단체) : 김우정

캄보디아에서 펼친 사랑의 인술

 

 

선하고 맑은 아이들의 눈동자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이 말밖에는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었다. 김우정(68) 의료원장이 캄보디아로 향한 것은 오랜 계획이라기보다는 일순간의 강렬한 끌림이었다.

 

2004년 설 연휴 때 지인의 추천으로 캄보디아에 단기 의료봉사를 가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직항 비행기가 없어서 여러 번 경유한데다가 비포장도로를 몇 시간 달려 도착한 외딴 마을은 예상보다 더 열악했다.

 

진료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여건이 될까 한숨이 절로 나오는데, 구정물에서 신나게 뛰어놀던 아이들이 하나둘 모여드는 게 아닌가. 먼 나라에서 온 이방인들을 바라보는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이 너무나 순수했다.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 한 명이 다가왔다. 허벅지에 주먹만 한 종기가 나서 나뭇잎으로 꽁꽁 싸매고 있었다. 꽤 오랫동안 고생을 했던지 아이의 얼굴은 고열과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간단한 처치만으로도 충분히 치료가 가능한 수준이었지만 의사는 고사하고 변변한 의약품도 없으니 병을 키워온 것이다.

 

김우정 의료원장은 약만 가지고 간 터라 손을 쓸 수가 없어 가까운 병원이 있는지 의료봉사단을 안내하던 선교사에게 물었다. 3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병원이 하나 있는데 치료를 받으려면 100달러 정도 필요하다는 답을 들었다. 그리고 그 돈을 마련할 여력이 없어 방치할 수밖에 없는 이 곳 사람들의 안타까운 현실을 목격했다.

 

김우정 의료원장은 선교사에게 자신이 가진 돈을 건네며 꼭 치료를 해달라고 부탁했고 나중에 소식을 들으니 아이는 다행히 건강을 회복했다고 했다.

 

‘혼자’가 아닌 ‘같이’의 힘

 

이제 더 이상 가난과 질병으로 아이들이 죽음에 이르는 일은 없게 해야 하지 않을까. 2004년 캄보디아 의료봉사를 마치고 돌아온 김우정 의료원장은 절박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고 당장 떠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한참을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 조심스럽게 아내에게 그동안 꿈꾸던 봉사의 삶을 캄보디아에서 시작해 보면 어떠냐고 제안했다.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보다는 남의 의견을 먼저 듣는 김우정 의료원장은 아내의 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첫 방문 후 6개월이 지나 아내와 캄보디아를 다시 찾았고, 아내도 그가 왜 이곳에 그토록 마음을 빼앗겼는지 충분히 짐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서서히 두 사람은 캄보디아에서의 새로운 삶을 준비했다.

 

2006년 1월, 그동안 운영하던 소아과 의원을 정리하고 소량의 약품과 청진기만 들고 캄보디아로 떠났다. 처음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현지 클리닉에서 봉직 의사로 일했다. 전력이 부족해 하루에 네 시간가량 정전이 되는 와중에도 힘든 줄 모르고 환자를 진료했다. 현지 의사도 같이 근무했는데 현장 경험이 부족했다. 현지 의사를 가르치면 환자를 치료할 수 없고, 혼자 환자 치료를 다 감당할 수 없으니 현지 의사를 가르쳐야 하는 진퇴양난이었다.

 

더구나 이곳에 오는 환자들 대부분은 성인이나 노인이었다. 왜 그런지 이유를 알고 보니 경로사상이 강한 나라이기 때문에 가족 전부가 아파도 병원에 가는 우선권은 연장자들에게 주어진다는 것이었다.

 

김우정 의료원장은 지속 가능한 의료봉사를 고심했고 뜻을 같이 하는 한국인 의사들과 함께 현지에 병원을 설립하기로 결심했다.

 

<헤브론병원 직원들과 함께 한 김우정 의료원장>

 

누구나 언제라도, 친구들의 마을로 오세요

 

2007년 9월 소아과 2명, 마취과 1명, 치과 1명으로 구성된 한국 의료진 4명과 캄보디아 직원 5명이 의기투합하여 프놈펜 외곽 지역에 작은 가정집을 리모델링해 ‘헤브론병원’의 문을 열었다.

 

‘헤브론(Hebron)’은 히브리어로 ‘친구들의 마을(Village of Friends)’이라는 뜻으로 캄보디아인들과 친구가 되고자 하는 진심 어린 마음을 담았다.

 

처음에는 환자를 진료하는데 집중해 변변한 시설조차 준비하지 못했다. 우기 때 병원 절반이 물에 잠겼어도 환자들을 돌봤을 정도였다. 환자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제대로 된 의료기관의 모습을 갖출 필요성이 커졌고, 2010년에 접어들어 40개 병상과 3개 수술실이 마련된 새 병원을 완공했다.

 

현재 헤브론병원은 의사 28명, 간호사 35명, 임상병리사 5명 등을 포함해 10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또한 내과, 일반외과, 정형외과 등 11개의 진료과와 심장센터, 안과센터 등 특화된 전문센터를 통해 연간 6만여 명의 환자를 진료하고, 1천여 건의 수술을 시행하는 의료기관으로 성장했다.

 

<소아환자와 인사하는 김우정 의료원장>

 

헤브론병원에 대한 믿음

 

헤브론병원은 설립 초기에는 가난한 환자를 위해 무료로 병원을 운영했다. 그러다가 병원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더 많은 환자들에게 최상의 진료를 제공하기 위해 2017년 12월부터 환자의 형편에 따라 일부 유료화를 시도했다.

 

그럼에도 가난한 환자들에게는 여전히 문턱이 낮다. 최소 비용만 받는데 일반 병원의 삼분의 일 수준이다. 예를들어 CT 검사의 경우, 일반 병원은 100달러이나 헤브론병원은 30달러 수준이다.

 

어려운 환자들에 대한 무료 진료도 병행하고 있다. 무료 진료 환자는 전날 병원에 도착해서 대기실에서 잠을 청하고 다음날 진료를 받기도 한다.

 

“다른 병원에서 아이 심장에 문제가 있다고 했는데 헤브론병원에 가면 정확한 병명과 치료방법에 대해 자세히알려준다고 해서 왔어요.”

 

캄보디아 사람들이 먼 거리를 한 걸음에 달려오는 이유는 치료비뿐만 아니라 헤브론병원 의료진들의 환자에 대한 마음 때문이다. 김우정 의료원장은 가난한 환자들이 마지막으로 찾는 병원이 바로 이곳이고, 여기서 치료받지 못하면 집으로 돌아가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최선을 다한다.

 

“김우정 의료원장님은 항상 아픈 사람을 먼저 생각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머리보다 마음으로 환자를 대하라고 강조하시죠.”

 

헤브론병원의 한국인 의료진은 병원에서 급여를 받지 않는다. 설립 초기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지켜오는 원칙이다. 의료봉사의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기 때문에 그 뜻을 올곧게 지켜가는 것이다.

 

실력 있는 병원, 따뜻한 병원

 

헤브론병원은 수준 높은 의료 혜택을 제공하는 곳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캄보디아는 신생아 1천 명 중에서 8~12명이 선천성 심장 질환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이곳 심장센터에서 지금까지 4백여 명의 심장병 환자가 새 생명을 얻었다.

 

안과 질환에 있어서도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다. 캄보디아는 비타민A 결핍과 비위생적인 식수, 강한 자외선으로 인해 많은 환자가 실명으로 고통받고 있다. 이곳 안과센터에서는 매년 3천7백 여 명의 환자를 치료하는 한편 어린이 눈 건강 교육도 진행하면서 시각장애와 실명을 예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캄보디아의 암 환자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에 2020년에는 유방암, 갑상선암, 대장암을 포함해 87건의 암 수술을 시행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심장 수술을 받은 어린이들을 위한 사후관리 프로그램(CAP, Care After Program)을 운영해 영양관리비, 치료지원비, 학용품지원비 등을 지급하는가 하면 두 달에 한 번씩 대형 버스로 시골마을 환자들을 직접 찾아다니는 이동진료 봉사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헤브론병원 직원들과 함께 한 김우정 의료원장(두 번째 줄 가운데)>

 

의료 인재 양성으로 캄보디아의 미래를 밝히다

 

캄보디아는 킬링필드를 겪으면서 의료 인프라가 파괴되어 의료진과 의료기관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따라서 임상교육과 실습을 받을 수 있는 기회도 제한적이다.

 

김우정 의료원장은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만큼 우수한 의료 인재 양성도 중요함을 깨닫고 2014년부터 3년제 전공의 수련 프로그램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현재 16명의 전공의가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후 국립병원, 사립병원, 개인의원 등에서 근무하고 있다. 또한 2014년에는 간호대학을 설립하고 캄보디아 왕립대학과 연계해 정규 4년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김우정 의료원장은 헤브론병원이 궁극적으로 캄보디아 사람들의 힘으로 자립하길 소망한다. 현지 의료진에게 헤브론병원을 이양하는 것이 그의 최종 목표다. 2020년 간호 과장과 행정 부장을 현지인에게 맡기는 것부터 차근히 한 단계씩 진행하고 있다.

 

“김우정 의료원장님은 무척 조용하고 신중하세요. 앞에서 나를 따르라 하는 게 아니라 묵묵하게 자기 일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같이 일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리더십을 가지고 계십니다.”

 

헤브론병원의 구성원들은 한국인이든 현지인이든 김우정 의료원장을 믿고 따른다.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환자를 위하는 마음 하나로 오늘의 성과를 일구었기에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김우정 의료원장은 오늘도 헤브론병원의 내일을 계획하고 있다. 캄보디아의 경제 발전과 더불어 소득 수준이 높아진 만큼 양적, 질적으로 전문화된 의료기관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방안을 고심하는 것이다. 캄보디아를 향한 그의 마음은 시간이 갈수록 더 깊고 넓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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