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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상

  • 시상명 : 아산상
  • 년도 : 2021
  • 부문 : 의료봉사상
  • 소속(직위) : 서울특별시립 서북병원 내과 전문의
  • 수상자(단체) : 최영아

소외된 노숙인을 위한 사랑의 봉사

 

 

아픈 사람 곁에 있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담담하게 말하는 이가 있다. 그는 아픈 사람 중에서도 사회적으로 관심이 적은 노숙인들의 곁에 섰다. 가족을 잃고 삶이 망가져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 그들의 질병과 고통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싶어서였다.

 

지난 20여 년간 노숙인 진료에 몸담으며 노숙인 지원과 자립에 앞장선 최영아(51) 의사다.

 

노숙인을 향한 단순한 진심

 

1989년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한 최영아 의사는 예과 2학년 때 동아리 선배들을 따라 무료급식소에서 봉사를 하면서 노숙인들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되었다.

 

거리를 떠돌며 제대로 먹고, 자고, 쉬지 못하는 노숙인들은 한눈에도 병이 많을 것 같았다. 당시는 노숙인을 위한 병원이 없고, 노숙인에 관한 어떠한 자료도 없을 때였다. 의사로서 이들의 병명이 무엇인지, 그 원인은 무엇인지, 도대체 어떤 병이길래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토록 망가뜨릴 수 있는지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겨울 지하철 출구 옆에 이불을 덮고 누워있는 노숙인이 있었다. “저렇게 있다가는 얼어 죽을 텐데 왜 계속 누워만 있지?” 의사소통조차 되지 않는 그 사람을 데려와 씻기고 검사했다. 척추 디스크로 인해 허리 아래로 마비가 온 환자였다.

 

눈앞에서 피를 토하는 환자여도 노숙인이 제대로 된 병원에 가려면 경찰과 119 대원을 동반해야만 하는 시절이었다. 병원에 가면 살릴 수 있는 데도 여기서 죽겠다는 노숙인 환자를 보며 최영아 의사의 안타까움은 커져만 갔다.

 

2001년 내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후, 최영아 의사는 노숙인을 포함해 의료보험이 없는 취약계층을 무료 진료하는 민간 자선병원에서 일해 왔다. 다일천사병원, 요셉의원, 다시서기의원, 도티기념병원이다.

 

다일천사병원 시절에는 병원 옆 사택에서 생활하며 낮에는 100여 명의 환자를 진료하고, 밤에는 당직 근무를 하며 밤낮없이 환자를 돌봤다. 정해진 주거지 없이 잦은 입 · 퇴원을 반복하는 데다 의료진의 지시도 제대로 따르지 않고, 때로는 위협적인 모습으로 돌변하는 노숙인 환자를 대하면서도 그는 모든 환자를 차별 없이 치료하며 의료 봉사에 매진했다.

 

2017년 도티기념병원이 폐원한 이후에도 자신이 돌본 환자들을 계속 진료하기 위해 인근 공공의료기관인 서울특별시립 서북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삶이 바뀌어야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

 

최영아 의사가 20여 년간 노숙인을 진료하며 노숙인 질병에 관해 깨달은 결론은 ‘함께 하는 가족과 머무를 집이 없어서 생긴 병’이라는 것이다.

 

“노숙인 대부분이 당뇨나 고혈압, 간경화와 같은 만성 내과질환을 앓습니다. 치료하기 어려운 난치병이나 희귀병에 걸려 죽음에 이르는 것이 아니에요. 한두 가지 약과 제대로 된 생활 관리만 하면 충분히 조절할 수 있는 질환인데도 기본적인 위생과 영양 상태를 유지하지 못해 각종 합병증에 시달리다 죽음을 맞이하게 돼요. 아무리 젊고 건강한 사람도 노숙을 하게 되면 5년 이내에 신체의 모든 장기가 빠르게 망가져 버린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최영아 의사가 2009년 이후 노숙인의 주거 문제 해결과 자립을 지원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서울역 근처에 노숙인 지원 사업을 하는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내에 ‘다시서기의원’을 설립하고, 노숙인 진료와 자립 지원 활동을 병행해 왔다.

 

2011년 ‘노숙인복지법’이 제정되기까지 의료인으로 국회의 입법 활동을 돕고, 2015년에는 노숙인을 진료하며 연구한 기록을 모아 「질병과 가난한 삶」이라는 책도 펴냈다. 우리 사회 노숙인의 주요 질병을 분석해 노숙인의 진료와 재활, 사회 복귀를 위한 정책과 사회적 해결 방안을 제시한 책이었다.

 

<환자를 진료 중인 최영아 의사>

 

‘마더하우스’와 ‘회복나눔 네트워크’ 설립

 

최영아 의사는 여성 노숙인을 위한 쉼터인 ‘마더하우스’도 설립했다.

 

“남성 위주의 노숙인 사회에서 거리에 무방비로 노출된 여성 노숙인의 현실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2009년 서울역 인근 주택의 2층에서 방 6개로 시작한 마더하우스는 2012년 서울시 비영리민간단체로 등록되기까지 긴급 보호가 필요한 여성 노숙인 70여 명의 거처가 됐다. 이곳에서 최영아 의사의 도움을 받아 간호조무사 자격을 취득하고 새 삶을 살게 된 여성들도 생겨났다.

 

2016년에는 마더하우스의 안정적인 운영과 해외 취약계층 여성 · 아동 교육 사업을 위해 외교부 산하 사단법인 ‘회복나눔 네트워크’를 설립했다. 회복나눔 네트워크는 의료와 주거 지원, 일자리 창출, 생활 지원, 교육 및 인식개선 사업 등의 활동을 펼치며 노숙인과 소외계층이 사회 구성원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있다.

 

<취약계층의 재활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운영하는 식당 앞에서(오른쪽 첫 번째)>

 

 

사람 냄새나는 진짜 의사

 

“최영아 선생님이 다시서기의원에 근무할 때, 노숙인을 만나면 내일 병원에 꼭 오라고 이야기하셨어요. 노숙인들이 남의 말을 잘 안 듣는데, 최 선생님이 얼마나 말씀을 잘하시는지 다음날 정말로 병원에 와요. 저도 병원에서 선생님을 만났는데 ‘이분은 진짜 의사구나!’라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스무 살에 가출해서 10년 정도 노숙 생활을 했어요. 한겨울 동사 직전에 발견돼 마더하우스에서 최영아 선생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선생님 도움으로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도티기념병원에서 3년간 함께 근무했죠. 그 후에도 마더하우스에 살면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고 경영학을 전공해 현재는 회복나눔 네트워크 간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노숙인, 가난한 사람을 따지지 않고 환자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돌보는 진정한 의사입니다.”

 

<노숙인을 치료하며 연구한 내용을 기록한 「질병과 가난한 삶」 북 콘서트에서>

 

최영아 의사를 만난 이들은 입을 모아 그가 ‘사람 냄새나는 진짜 의사’라고 전한다. 그래서 최영아 의사 주변에는 환자와 의사에서 동료이자 친구로 오랜 인연을 이어가는 이들이 많다.

 

노숙인에 이어 최영아 의사가 주목하는 이들은 해외 난민과 북한이탈주민이다. 우리나라에 살지만 몸과 마음을 둘 곳 없는 이들의 모습은 노숙인과 많이 닮아있다.

 

“취약한 계층일수록 병명이 많고, 병원을 자주 내원해야 합니다. 아픈 사람 곁에 있는 것이 의사의 몫이니, 의사가 된 이상 제가 서야 할 자리는 분명합니다.”

 

최영아 의사는 오늘도 홀로된 이들과 아픔을 나누며 그들 곁을 든든히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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