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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상

  • 시상명 : 아산상
  • 년도 : 2018
  • 부문 : 아산상
  • 소속(직위) : 이사장 마이클 리어던 조셉 신부
  • 수상자(단체) : 이시돌농촌산업개발협회

‘푸른 눈의 돼지 신부’가 이룬 제주도의 꿈

 


아일랜드 성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속의 맥그린치(1928~2018) 신부는 1954년 스물여섯의 나이에 제주도 한림본당에 부임했다. 1948년 4.3사건과 한국 전쟁을 거치고 난 직후의 제주는 너무 가난했고 또 가혹했다. 지구 반대편에서 온 이십대 중반의 신부는 성경 대신 삽을 들었다. 그리고 매일 기도했다. 이 사람들을 잘 살게 해달라고. 


맥그린치 신부는 어느 날 육지에 볼 일이 있어서 나갔다가 새끼를 밴 요크셔 암퇘지를 한 마리 사서 끌고 왔다. 그 암퇘지가 낳은 새끼 열 마리로 가축은행을 만들어 저소득층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사료 공급을 위해 배합사료 공장을 만들어 직접 사료를 생산했다. 사람들은 그를 돼지 신부라고 불렀다.


하지만 빚에 시달리던 농민들은 돼지가 자라기를 기다릴 수 없었다. 몇 푼의 돈을 위해 헐값에 돼지와 사료를 모두 팔아버리곤 했다. 결국 나누어 주었던 돼지를다시 거둬들여 직접 양돈업을 시작한 것이 성이시돌목장이 만들어진 계기가 됐다.


성 이시돌(St.Isidore)은 12세기 스페인 농부로 평생 땅을 사랑하며 가난한 이들을 위해 나눔을 실천해 오늘날 농부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 받는 인물이다. 이후면양, 젖소, 말 등을 사육하게 되면서 제주도 근대 목축업의 기반을 마련하는 계기가 됐다.


제주 여성 일자리 창출 일등공신이었던 ‘한림수직’


제대로 된 금융기관이 없다보니 주민들은 높은 이자를 내는 사채에 허덕이고 있었다. 곗돈을 떼여 자살하는 주민의 모습을 보고 1962년 신용협동조합을 만들고 제주 여성들을 위한 일자리를 고민하다 방직공장을 설립했다. 아일랜드의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1~2달러씩 후원을 받아 면양 35마리를 구입하고 한림수직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방직기술을 가진 아일랜드 수녀 2명을 초대해 기술을 가르쳤고 신부들은 양털을 뽑았다. 주민들의 노력과 맥그린치 신부의 경영 능력이 결합돼 한림수직은 빠르게 성장했다.


직장에 나와서 근무하는 직원이 100여 명에 달했고 집에서 일감을 받아서 일하는 여성만도 1,500명에 육박했다. 중국의 값싼 양모 제품이 들어오면서 2004년 공장 문을 닫게 되기 전까지 40여 년 동안 제주 여성들을 위한 소중한 일자리를 창출해왔다. 


번호표 받고 여인숙 잡아 치료 받아


맥그린치 신부는 주사나 약이 없어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거나 불구의 몸이 되는 주민들을 보면서도 안타까워했다. 목포에서 성골롬반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아일랜드계 골롬반수녀회의 도움으로 1970년 4월 제주시 한림읍에 성이시돌의원을 개원할 수 있었다. 개원과 동시에 제주도 전역에서 환자들이 밀려왔다. 멀리서 진료를 받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은 병원 주변 여인숙에 숙소를 잡고 접수 순번을 받고 며칠씩 기다려서 진료를 받을 정도였다.


의료보험과 의약분업이 시행되면서 병원 경영은 힘들어졌지만 제주도민들을 위해서는 잘된 일이었다. 우리 사회에 복지가 뿌리를 내리면서 사회복지 안전망이 어느 정도 구축됐고 다양한 의료시설들이 들어서면서 의료에 대한 갈증도 일정 부분 해소됐기 때문이다. 성이시돌의원은 30여 년 간 주어진 의무를 충실히 다하고 2002년 호스피스병원인 성이시돌복지의원으로 간판을 바꿔달았다.


사료공장과 목장, 이시돌 수익의 ‘쌍두마차’


이시돌농촌산업개발협회는 크게 영리사업부와 사회복지사업 두 개로 나뉘어져 있다. 영리사업부를 통해서 돈을 벌어 사회복지 사업에 돈을 쓰는 구조다. 현재 재단에서 돈을 벌어주는 사업은 사료공장과 목장 두 가지다.


사료공장은 재단의 사업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공장 노후화로 점점 매출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


2003년에는 150만 평 규모의 경주마 목장을 만들어 말 육성 사업을 새롭게 시작했다. 성이시돌목장은 제주뿐만 아니라 국내 최고의 말 생산자 중 하나로 망아지를 생산해서 판매하고 훈련까지 맡고 있다.
성이시돌목장에서 유기농으로 생산되는 우유의 양은 단일 목장 중 최대 규모이며 품질과 가격도 최고 수준으로 우유에 대한 자부심이 높다. 앞으로는 소규모 유가공 설비를 갖추고 자체적으로 원유를 가공해서 치즈나 요거트를 직접 생산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자연과 생태 향한 변화의 발걸음


과거에는 국가가 하지 못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사회복지 분야의 일을 했던 것이고 지금은 복지에 대한 수요가 어느 정도 충족되었기 때문에 이 시대 상황에 기여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찾고 있다. 청소년들을 위한 ‘숨비소리’를 시작한 것도 그런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청소년보호시설인 ‘숨비소리’는 이 시대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정말 필요한 일을 찾아보자고 해서 시작한 일이다. 소년범이 판결을 받으면 소년원에 보내거나 보호관찰을 받는데 본래 있던 곳과 만나던 친구들에게 돌아가면 거의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그런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살았던 환경을 다른 환경으로 바꾸어 주기 위한 시도다.


또 난개발로부터 제주도를 보호하고 후세에 물려줘야 하는 것, 그리고 생태를 보호한다는 원칙 안에서 젊은이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일이라면 좋을 것이다.


제주 도민들을 위해 한 평생을 살았던 맥그린치 신부는 2018년 4월, 향년 91세로 선종했다. 1973년 제주도 명예도민증을 받으며 ‘임피제’라는 한국 이름을 얻었고 선종 후에는 명예 대한민국 국민이 됐다. 아일랜드에서 태어났지만 아일랜드에서보다 훨씬 더 긴 세월을 한국에서 살았고, 제주 땅에 묻혔다. 명예한국인 임피제 신부는 이시돌목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작은 언덕에 평화롭게 잠들었다. 제주도민을 잘 살게 해달라고 했던 그의 작은 기도가 이룬 기적을 흐뭇한 모습으로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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