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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상

  • 시상명 : 아산상
  • 년도 : 2018
  • 부문 : 의료봉사상
  • 소속(직위) :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의료봉사
  • 수상자(단체) : 이재훈

마다가스카르의 숨은 오지 사람들을 치료하다

 


어린 시절부터 이재훈(51) 씨의 꿈은 의료선교사였다. 그는 1986년 고려대 의과대학에 입학해 아프리카 의료봉사에 가장 도움이 될 것 같은 외과를 선택해 2000년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전임의 과정을 밟기 전 국제 NGO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 선배의 소개로 르완다에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외과, 산부인과, 정형외과 등 온갖 종류의 환자들이 병이나 상처를 오랜 시간 묵혀서 죽기 직전에 찾아오는 것을 보고 외과만으로는 아프리카 의료봉사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절감했다.

 

이 씨는 한국으로 돌아와 당시 모든 파트의 수술을 1,000회 이상 집도한 연세대 의대 이경식 교수를 찾아갔고, 그의 소개로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분당차병원 등에서 위장, 간, 대장항문, 유방갑상선, 소아외과 등의 외과 세부과목과 산부인과 등 다양한 임상과에서 약 2년간 수련을 받는다. 모든 것은 ‘아프리카가 필요로 하는 의사’가 되기 위한 과정이었다.


2005년 이재훈 씨는 평생에 걸쳐 봉사할 땅을 찾았다. 인도양의 섬나라 마다가스카르였다. 마다가스카르에서의 첫해엔 현지인들과의 소통을 위해 현지어인 말라가시어를 배우고, 현지 의사면허를 취득하고, 국제 NGO단체 및 선교사들과 교류하면서 마다가스카르 오지 의료봉사의 밑그림을 그리는 시간을 가졌다.

 

이듬해부터는 수도 안타나나리보 근처의 ‘이토시 병원’에서 외과의사로 근무하면서 한달에 일주일은 근교 무의촌으로 무료 이동진료를 나갔다. 현장에서 목격한 마다가스카르의 의료현실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제왕절개를 해야 하는데 거즈가 두 장밖에 없는 거예요. 수건을 잘라 소독을 하고 짜서 그걸로 수술을 했어요. 상처를 봉합할 실이 없어서 재봉틀에 사용하는 실크 실을 잘라서 사용해야했어요. 수술재료나 기구, 약품이 너무 부족한 상황이었어요.”


2007년 이후 여러 국제 NGO에서 약품과 수술도구, 환자 모니터링 장비, 항공이동 등을 지원해주면서 이동 진료는 탄력을 받는다. 먼 오지까지의 이동진료가 가능해지고 현지에서의 수술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이재훈 씨의 이동진료팀이 찾아가는 오지마을은 정부기관의 협조를 받아 의료 접근성이 낮고 긴급진료 수요가 많은 곳을 택한다. 수도인 안타나나리보에서 가깝게는 300㎞ 멀게는 2,000㎞ 이상 떨어져있어, 평균적으로 약 2~3일 정도 비포장도로를 열심히 달려야 닿을 수 있는 곳들이다. 멀고 험한 길을 달려가 만난 오지의 말라가시인들은 이런 사람들이었다.


“의사를 처음 보는, 의사라는 단어가 무얼 의미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들에게 있어 병을 치료하는 사람은 의사가 아닌 무당이었어요. 어떤 사람이 병에 걸리면 그는 조상이 만든 금기를 어겨서 저주에 걸린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무당을 통해 용서를 구하는 방식으로 병을 치료하는 거지요.”


어느 날 얼굴이 무척 창백한 여자가 찾아왔다. 뱃속에서 아기만 빠져나가고 태반은 몸속에 남은채로 썩어 4개월 동안 피를 흘린 여자였다. 멀리서 피를 구해와 수혈하고 수술을 진행했는데 이번엔 복수가 차올랐다. 단백질 제재의 수액을 놓자 안정을 찾았지만, 오지 이동진료를 가면 이처럼 놀랍고 아찔한 일들이 하루에도 몇 차례 일어나곤 했다.


이재훈 씨는 2006년부터 약 13년간 마다가스카르의 숨은 오지로 105회의 이동진료를 나가면서, 말라가시인 약 5만 명을 진료하고, 2천5백 명을 수술했다. 지금까지 그가 이동한 거리는 약 16만km로 이는 지구 네 바퀴에 해당한다.


2012년 이재훈 씨는 현지인들의 도움으로 비영리 의료봉사단체인 ‘피아이나나베대베(Fiainana Be Dia Be, 현지어로 ‘풍성한 삶’을 의미)’를 설립했다. 피아이나나 베대베가 설립된 뒤 이동진료는 좀 더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게 된다. 현지의료진을 고용할 수 있게 되어 일반의사 2명, 간호사 6명, 마취과 간호사 1명, 운전기사 2명 등을 고용해 약 20명 정도가 팀을 이뤄 함께 움직이게 되었고, 그로써 이동진료 준비과정이 훨씬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2008년부터는 현지 의학 및 의료진의 역량강화를 위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국내 의료진이 보낸 4천권의 의학 서적이 안타나나리보 국립의과대학과 마장가 국립의과대학에 기증됐고, 대한세포병리학회 소속 교수들은 2016년부터 매년 1회 마다가스카르를 단기 방문해 현지 의료진을 위한 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한편 이재훈 씨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세브란스 병원에 마다가스카르 현지 의료인의 연수를 연계해 현재까지 총 6명이 한국으로 3개월씩 단기연수를 다녀갔다.


자신들이 언젠가는 마다가스카르를 떠날 날이 올 텐데, 그 전에 말라가시 의료인들이 스스로의 힘을 키울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재훈 씨는 현재 현지 의료인을 훈련할 수 있는 센터 건립을 준비하고 있다. 그 준비단계로 우선 13년간의 오지 이동진료 차트 2만5천여 건을 분석해 말라가시인들의 다빈도 질환을 추렸다.

 

그렇게 추려진 내과 20개, 외과 20개의 다빈도 질환을 놓고 연구하여 다빈도 질환의 치료 매뉴얼을 만들어 현지 의료인들을 훈련하면 마다가스카르 환자의 94퍼센트를 치료할 수 있다는 결과를 얻었다. 앞으로 이 씨는 현지 의료인을 훈련하는 프로그램과 교육콘텐츠를 만드는 일에 좀 더 집중하려고 한다. 장기적으로 보면 그것이 마다가스카르 오지 사람들을 위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최근 마다가스카르 정부는 국가 재정능력으로는 단기간에 자국민에게 최소한의 의료혜택을 제공하는 것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이동진료’가 국민보건 증진을 위한 대안이 될 것이라 판단해 이재훈 씨를 공중보건국 자문위원으로 위촉했다.


이재훈 씨는 오지에 전문의를 배치하고 오지 사람들이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정착될 때까지 마다가스카르에 머물 계획이다. 그때까지 그는 지금껏 그래왔듯 오지의 ‘굿 닥터’로서의 길을 묵묵히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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