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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상

  • 시상명 : 아산상
  • 년도 : 2023
  • 부문 : 복지실천상
  • 소속(직위) : 안산나무를심는장애인야학 행정실장
  • 수상자(단체) : 설예심

장애인 인권은 당연한 권리입니다

 

 

설예심(60) 씨는 20대 사회 초년생 시절 불합리한 일과 마주쳤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의 작은 봉제 공장에서 일하던 그는 고용주가 퇴직금을 주지 않자 고용노동부에 진정서까지 제출하며 어렵사리 퇴직금을 받을 수 있었다. 그과정에서 법이 보장한 근로자의 당연한 권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시작된 인권에 대한 관심은 ‘안산나무를심는장애인야학’(이하 나무야학)으로 이어졌다.

 

밥상공동체, 밥 한 끼에 담은 인권

 

<‘자담(나의 삶을 자서전에 담다)’ 수업을 진행하는 설예심 씨>

 

나무야학은 올해 3월 안산중앙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약 317㎡(96 평)의 널찍한 공간으로 이사했다. 낡은 교회 한구석을 사무실 삼아 야학을 시작한 지 12년, 세 번의 이사 끝에 사무실, 학습실, 주방까지 제대로 갖추게 됐다. 2011년 야학 설립부터 시작해 회계, 법무, 예결산 등 행정 전반을 책임지며 야학의 성장을 이끈 설예심 씨는 벅찬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처음부터 ‘밥상공동체’로 시작했어요. 지식만 채우는 곳이 아니라 울고 웃고, 삶을 함께 나누는 곳, 누구나 배제되지 않고 차별받지 않는 공동체를 꿈꾸며 지금껏 이끌어 왔죠. 규모가 커지고 공간이 커져도 이 초심만 큼은 잃지 말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합니다.”

 

밤 ‘야(夜)’가 아닌 들 ‘야(野)’를 쓰는 나무야학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배움과 소통을 통해 행복을 만드는 공간으로, 나무 한 그루로 시작해 지역에 숲을 이루겠다는 당찬 포부를 이름에 담았다. 문해반, 검정고시반을 편성해 학령기 교육을 받지 못한 장애인에게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고, 노래교실, 영어회화, 공예, 인문학과 인권 등 다양한 특성화 교육을 펼치고 있다. 무엇보다 함께 먹는 밥 한 끼를 빼놓을 수 없다.

 

“끼니를 해결 못 하는 학생들이 꽤 있더라고요. 최소한의 인권을 위해 초창기부터 무료로 급식을 제공했어 요. 물론 예산이 있을 리 없죠. 2018년까지 제가 직접 밥을 짓고 주말농장에서 농산물을 가져왔어요. 차린 게 없는데도 다들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몰라요.”

 

여기에 만족할 수 없었던 설예심 씨는 푸드뱅크와의 연계를 추진하고, 지자체에 꾸준히 급식비 지원을 요청하는 등 백방으로 뛰었다. 그 덕에 2020년부터 급식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누구나 차별 없이 한 자리에 모여 밥을 먹는 것, 이는 밥상공동체의 기본이기도 하다.

 

 

학생들과 어깨동무하며 숲으로 자라나길

 

<현장 체험학습으로 안산식물원을 방문한 설예심 씨와 야학학생들>

 

나무야학은 전국 야학 중 가장 많은 학생 수를 자랑한다. 무려 89명의 학생들은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하 다. 야학의 살림과 학생들의 대소사까지 살뜰히 챙기는 설예심 씨는 그만큼 더 바빠졌지만, 늘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나무야학은 교육만 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손주를 데리고 출석하는 학생이 있으면 기저귀를 갈아가며 돌보기도 했고, 수학여행을 위해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버스를 1년 전에 수소문해 예약하는 일도, 숙소와 식당의 출입 조건을 일일이 알아보는 일도 그의 몫이다.

 

“이동이 힘든 지체 장애인에게 수학여행은 정말 특별한 경험이에요. 비행기를 타고 떠난 제주도 여행은 더욱 뜻깊었죠. 나이 지긋한 학생이 ‘내 생애 첫 수학여행이다’ ‘제주도에 와볼 줄 몰랐다’라며 행복해하는 모습에 저도 울컥하더라고요.”

 

전세자금 문제, 부모님 환갑잔치, 일자리 등 학생들의 크고 작은 고민을 들어주는 상담사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다.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직접 나서고, 지역의 자원이나 기관과 연계해주는 등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찾아준다. 덕분에 설예심 씨 주변에는 늘 사람이 북적인다.

 

2002년 안산노동인권센터를 시작으로 경기장애인연맹, 상록수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화성장애인야간학교를 거쳐 온 설예심 씨는 근로자와 장애인의 눈높이 맞춰 상담하고, 때론 행정기관에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며 소외된 인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학교에서는 한없이 인자하지만, 밖에서는 누구보다도 강인한 모습을 보였다.

 

“인권은 거창한 것이 아니에요.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노동하고, 교육받고, 이동할 권리를 보장받고, 존재 자체로 사회에서 인정받으며 차별받지 않을 권리라고 생각해요. 누구든 언제나 원하면 편하게 영화 보고밥 먹고 지역사회와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거죠.”

 

소외된 사람들의 권리 확대에 대해 설예심 씨는 나무야학이 변화의 시발점이 되길 바란다. 나무 한 그루가 지역사회 전체로 뻗어나가 숲을 이룰 수 있도록 공동체 모두와 함께 나아가고 싶다. 크게 꿈꾸고,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설예심 씨의 어깨가 넓고 든든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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