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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상

  • 시상명 : 아산상
  • 년도 : 2023
  • 부문 : 자원봉사상
  • 소속(직위) : 장례지도사협의회봉사단 대표
  • 수상자(단체) : 강봉희

외로운 이들의 마지막을 배웅하다

 

 

지난 추석, 강봉희(67) 씨는 새벽 2시에 대구의료원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무연고자의 장례를 맡아달라는 요청이었다. 겨우 1시간 눈을 붙이고 공주에 있는 산소에 다녀올 수 있었다. “이 일에는 명절도 없고 밤낮도 없어요. 그래도 그냥, 내가 해야 할 일이니까.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해요.”


2004년 11월 장례지도사협의회봉사단을 발족해 19년 동안 800여 차례의 장례 봉사를 해 온 것도, 대구시 코로나19 사망자 23명의 마지막 길을 배웅한 일도 강봉희 씨에게는 ‘그냥’이다.

 

 

<장례식장에서 제물상을 준비하는 강봉희 씨>

 

 

삶과 죽음을 잇는 장례지도사


건축업으로 생계를 꾸리던 40대 중반, 강봉희 씨는 방광암 말기 판정을 받고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3개월을 넘기기 힘들 거라는 이야기에 인생을 돌아보게 됐다. 그때 병실 창밖으로 장례식장이 보였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모습을 보며 강봉희 씨는 문득 ‘내가 살 수 있다면 저 일을 해보면 어떨까’라고 생각했다. 기적적으로 완치 판정을 받은 뒤에는 아내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장례지도사 자격증을 땄다.

 

이후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의뢰를 해오면서 강봉희 씨는 조금씩 활동 영역을 넓혔다. 처음에는 돈이 없어서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비용을 부담했고, 다음에는 돌아가신 분들의 장례 절차를 도왔다. 경험이 쌓인 후에는 장례 과정 대부분을 전담하기에 이르렀다. 뜻을 같이하는 후배들과 함께 2004년 장례지도사협의회봉사단을 발족했다.


강봉희 씨와 봉사단은 주로 주민센터에 무연고로 등록 된 사람, 종합병원에서 사망한 무연고자 그리고 이주민 노동자들의 마지막을 배웅한다. 1년에 한두 번은 대구와 가까운 구미공단에서 사망한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의 장례도 치른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국적에 관계없이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지원하지만, 미등록 체류자에게는 적용이 되지 않는 탓이다.


2007년부터는 건축업을 다 정리하고 장례지도사협의회봉사단과 함께 장례 봉사에만 매진했다. 봉사단의 규모는 크지 않다. 등록 회원은 약 300명이지만 직접 현장에 뛰어드는 것은 10명 남짓한 집행부다. 봉사단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지원금을 받지 않고 회비로 운영된다.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싶어서다. 홍보하는일에도 딱히 관심이 없다.

 

“우리 단체에서 딱 안 하는 게 있어요. 봉사하면서 사진 찍는 거, 봉사한다고 내세우는 거예요. 보여주려고 하는 일이 아니거든요.”

 

 

<무연고자의 장례를 마친 강봉희 씨>

 

 

누군가는 마땅히 해야 할 일


묵묵히 이어오던 활동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전국에 알려졌다. 지역 전체가 휘청거렸던 2020년 2월 말, 대구시 코로나19 상황실의 요청에서 시작됐다.


“24시간 안에 화장해야 하는데, 감염될까 봐 아무도 나서지 않으니 살려 달라고 하더군요. 알겠다고 했죠.”


그 길로 현장에 달려간 강봉희 씨는 4월 말까지 23구의 시신을 수습했다. 매뉴얼상으로는 밀봉된 시신을 모시기만 하면 됐지만, 현실은 이와 달랐다. 강봉희 씨는 “수의를 입혀줄 수는 없냐”라는 요청에 수의를 잘펴서 관에 넣었고, 화장을 참관하게 해달라는 부탁에 방호복을 제공하기도 했다. 갑자기 떠나는 분들이 조금이라도 덜 외롭기를 바라서였다.


이전까지 수많은 죽음과 마주했지만 코로나19 사망자의 경우는 또 달랐다. 일반적으로 사망 후 24시간이 지나고 화장하지만, 코로나 사망자는 24시간 안에 화장을 마쳐야 했다. 감염 우려 탓이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떠나야 하는, 애도를 받지 못한 죽음이었다.

 


제도권 밖으로 밀려난 어려운 이웃을 살피길


20년 가까이 장례 봉사를 하면서 강봉희 씨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 사고사를 당한 경우를 빼고는 대부분 평온한 고인들의 얼굴을 보며 ‘죽음은 깊은 잠’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깊이 잠든 사람을 위해 장례를 화려하게 치르는 대신 제도권 밖으로 밀려난 어려운 이웃을 살피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강봉희 씨는 장례 봉사 외에도 대구 중구자원봉사단체협의회에서 이사직을 맡는 등 2006년부터 다양한 캠페인과 봉사 활동에 동참하고 있다. 강봉희 씨는 “돈도 안 되는데 왜 봉사하느냐”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그냥’이라고 답한다. 그 외에는 달리 할 말도 없다.


“이건 답이 없어요.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런저런 말로 너무 포장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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