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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상

  • 시상명 : 아산상
  • 년도 : 2020
  • 부문 : 효행ㆍ가족상
  • 소속(직위) : 경기 안양
  • 수상자(단체) : 진선남

장애 지닌 남편과 딸 돌보면서 어려운 이웃 위해서도 봉사활동

 

어머니라는 이름은 부르기만 해도 마음이 울컥해지곤 한다. 어머니가 되는 순간, 약하고 작은 존재는 그 누구보다 강해지고 단단해진다. 진선남(61) 씨는 지난 시간을 통해 어머니는 지혜와 용기의 다른 이름임을 온 몸으로, 온 마음으로 증명하고 있다.

 

중증 발달장애를 가진 세상에서 가장 귀한 딸

 

진선남 씨의 하루는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정의하기가 어렵다. 매일의 낮과 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낮에는 딸과 남편을 간호하고 밤에는 산후조리원에서 신생아를 돌본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인데, 그가 이렇게 바쁜 나날들을 보내는 건 아픈 딸을 살리고자 했던 간절함에서 비롯되었다.

 

1979년 같은 동네에 사는 남편을 만나 혼인신고만 하고 살림을 꾸렸다. 아들을 낳았을 때만 해도 가난하지만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런데 딸이 태어나고 시련이 닥쳐왔다.

 

생후 11개월 무렵 딸은 갑작스레 경기를 일으켰고 그 후론 아이가 이상해졌다. 눈도 못 마주치고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다. 겨우 숨은 붙어있지만 식물인간과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아이를 치료하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 안 다녀본 데가 없었다. 백방으로 애썼지만 딸은 건강을 회복하지 못했다. 지적장애 1급 판정을 받았고, 서른 중반이 넘도록 의사소통도 안 되고 대소변도 스스로 가리지 못한다.

 

진선남 씨는 그래도 딸이 있어 참 좋고 감사하단다. 그의 눈엔 마냥 아기 같은 딸이고 그래서 한번이라도 더 보듬고 싶다.

 

 

힘들다고 주저앉지 않고 살 길을 찾아서

 

장애를 가진 딸을 키우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그에게 또 한 번의 시련이 닥쳐왔다. 2007년 페인트 공장에서 일하던 남편이 사다리에서 떨어지는 큰 사고를 당한 것이다. 사고로 척추를 다쳤고 그 여파로 하반신 전체가 마비되었다.

 

제 힘으로 움직일 수도 없고 대소변도 누군가가 도와주어야 한다.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더욱이 안타까운 점은 업무 관련성이 없다며 산업재해 보상을 한 푼도받지 못한 것이다.

 

그 당시 진선남 씨 가족은 간신히 편안해진 무렵이었다. 딸 간호를 20년 넘게 하다 보니 이력도 붙었고 적응도 되었다.

 

남편과 아내는 이제 여행 다니며 여유 있게 살자고 서로를 격려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청천벽력 같은 사고가 일어났고 다시 혼란에 빠졌다. 그때 진선남 씨는 “힘들어, 어떡하지” 대신에 “어떻게 하면 이 힘든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났다. 머릿속이 맑아지면서 살아갈 방법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딸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밤새도록 재봉 일을 한 적도 있지 않았던가. 하루에 커피 열세 잔씩 마시며 졸음을 쫓아 보기도 했는데 뭔들 못할까. 마음을 모질게 다잡았다. 남편도 아프다는 내색 한 번하지 않고 힘든 시간을 견뎌주었다.

 

 

 

50세 넘어 다시 시작한 공부

 

진선남 씨는 50세가 넘어 다시 학생이 되었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중학교 졸업 후 바로 생계에 뛰어들었던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남편의 사고 이후 다시 공부를 하게 됐다.

 

남편을 제대로 돌보기 위해서는 자격증이 필요하겠다 싶었는데, 고등학교 졸업장이 있어야 자격증 시험 자격이 주어진다는 게 아닌가. 그래서 만학도를 위한 안양상업고등학교 야간반에 도전했고 내친 김에 연성대학교 사회복지학과까지 졸업했다.

그렇다고 공부만 한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에선 반장, 대학교에선 과대표로도 활동했다.

 

진선남 씨의 대표직은 이뿐만이 아니다. 2018년부터는 딸이 다니는 안양시 수리장애인 단기보호센터의 부모회 대표로도 활동 중이다. 기관과 보호자의 중재자로 서로의 의견을 전하며 모두가 더 안정되고 안심되는 상황을 만들어가고자 한다. 지난 2004년부터는 안양시 푸드뱅크에서 저소득층 노인 가정에 음식을 배달하는 봉사활동도 계속하고 있다. 봉사활동은 2인 1조로 운영되는데 그의 차에 봉사단원을 태우고 집집마다 방문한다. 매월 2회 이상 참여하여 3,000시간 이상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다음 생에는 힘들면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인생을 살고 싶다는 진선남 씨. 웬만해선 울지 않는 강철 엄마, 그렇지만 세상에서 가장 여리고 고운 마음씨를 가진 진선남 씨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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