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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상

  • 시상명 : 아산상
  • 년도 : 2019
  • 부문 : 효행ㆍ가족상
  • 소속(직위) : 경기 이천
  • 수상자(단체) : 심재순

50년, 조읍리 효부이자 백사면 여걸이 되기까지

 

 

심재순(76) 씨의 아산상 효행가족상 수상 소식에 마을 형님동생들이 한걸음에 달려왔다. 내남없이 눈물이 그렁했다. 논고랑마냥 주름진 얼굴들은 서로의 세월을 안다. “저 색시 돈 보고 장님한테 시집 왔네” 하던 마을주민들의 말이 “살아 있는 심청이”로 만장일치 되기까지, 심재순 씨는 이를 악물고 살아왔다.


누구도 몰랐던 스무 살의 선택
 

심재순 씨는 가난이 너무 싫었다. 홀로 3남매를 먹여 살리려 발이 부르트도록 행상을 다니는 어머니를 돕고 싶었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서울행 버스를 탔다. 버선 공장을 하는 먼 친척집에 얹혀살며 식모살이 겸 미싱(재봉틀)을 돌렸다.


“뼈가 부서져라” 일하며 7년을 버티고 고향집에 돌아왔어도 형편은 근근했던 어느 날, “이웃 마을 부잣집 아들이 장님인데 혼인하면 처가에 논 다섯 마지기를 준다더라”는 소리를 들었다. 심재순 씨의 생각에 그만한 혼처가 없었다. 적어도 어머니께 배곯을 일 없는 여건은 만들어 드릴 수 있고, 자식에게 가난을 대물림하진 않을 게다 싶었다.


반대하던 어머니를 겨우 설득하고, 문중 어른들께도 혼인의 사유를 조목조목 말씀드렸다. 강단 있는 마음에서 휘어잡는 말솜씨가 나오니, 아무도 심재순 씨를 말리지 못했다.


시어머니, 당신이 있었기에


부잣집 며느리로 호의호식을 바랬나, 돈을 빼내어 야반도주하려나, 하는 수군거림은 대꾸할 거리도 못됐다. 그렇잖아도 잡념 따위 들어올 새도 없이 할 일은 차고 넘쳤다. 농촌 부잣집 7천여 평의 논은 며느리가 해야 할 일의 크기였다. 앞 못 보는 남편, 시조부와 시부모, 시집 온 이듬해에 낳은 첫아들까지 돌보고 봉양하며 앞가림하기도 바빴다.


그나마 그 길을 먼저 가고 있었던 시어머니가 의지가 됐다. 간병과 농사, 살림과 육아에도 이력이 붙었다 싶을 무렵, 시조부께서 돌아가셨다. 맥이 풀린 것인지 시어머니마저 몸져누웠다. 문 밖 출입도 힘겨운 채로 10년. 황망했지만, 혼자 감당해야할 농사일을 생각해서 농기계 운전부터 배웠다.

 

때마침 한창이던 새마을운동에도 적극 동참했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어머니회 회장도 맡았다. 반듯하게 살고 있음을 증명하고 싶어서, 아이들이 따돌림 받을까 걱정되어서 시작한 일들이다. 남편을 대신해서 보란 듯이 활보하고픈 마음도 있었다. 혹여 시어머니께서 말렸다면 잠자코 살았을 테지만, 손가락질 대신 보란 듯 박수를 받으니 대견하다 하셨다.


조읍리의 효부, 백사면의 여걸


시어머니 돌아가시기 전, 이천에 수십 년을 살면서도 인근 여주 신륵사며 용문산 은행나무 한번 구경해 본 적 없었다는 게 마음쓰여 함께 다녀왔다. 내친 김에 서울에 가서 창경궁이며 경복궁도 보여드렸다. 그렇게라도 인생 최고의 눈 호강을 하게 해드렸으니 여읜 마음에 위로가 됐다.


그 여행이 시초가 되어 마을 어르신들의 효도관광도 도모할 수 있었다. 심재순 씨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던 분들이었으나 알고 보면 내 친정어머니, 내 시어머니와 같은 삶을 사셨을 게다. 어르신들을 전국 방방곳곳으로 모시고 다녔다.


시어머니 사망 후 시아버지의 치매가 시작됐다. 소위 ‘고약한 치매’여서 며느리도 의심하고 마을 주민들께 폐를 끼치는 일이 많았다. 그렇게 15년을 앓다가 돌아가셨다.

 

30년간 이어진 시댁 어른들의 병구완이 끝나고 10년이 흘렀다. 홀로 계신 친정어머니의 병세가 심상치 않았다. 남편의 흔쾌한 동의를 받고 모셔왔다. 남편은 생색내는 법 없이 돌아가시는 날까지 함께 모셔줬다. 커피 한 잔을 타도 꼭 장모님부터 챙겼고 요강이 차면 얼른 비웠다. 공사다망한 아내를 둔 남편의 내조는 그렇게 묵묵했다.

 

몇 해 전, 아이들도 장성해서 제 가정을 이루어 나가고 부부만이 오롯이 남은 집. 평생문 밖 출입을 피했던 남편 신현준(74) 씨는 시내 복지관에 가서 점자도 배우고 거리 보행 연습을 시작했다. 하모니카에 재미를 붙이더니 음악학원에 따로 등록해서 기타도 배우고 있다.


최근에는 ‘백년의 약속’을 기타로 연주해주었다.


백년의 약속이라…, 남편과 함께 반 넘게 잘 지켜왔다. 이제야 악물었던 이를 풀고 새댁처럼 수줍게 웃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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