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포커스
서울아산병원 박승정 심장병원장 파워인터뷰 | 등록일: 2011.05.0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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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혈관 확장시술 세계 최고의 권위자인 박승정 교수가 지난 21일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심장병원장인 박승정(57) 울산대 교수는 심장혈관 그물망(스텐트) 시술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명의(名醫)다. 양(洋)의 동서를 아울러 자타가 공인하는 설레브리티다. 박 교수는 지난 1990년대 초반 한국에서 처음으로 동맥경화증 환자에게 그물망 치료 시술을 시작한 이래 해마다 2700여명을 진료하는 등 서울아산병원 심장센터를 세계의 ‘심장’으로 키웠다. 최근 그는 제4회 아산의학상 수상의 영광도 안았다. 심장에 미친 사나이라고 불리는 박 교수, “학문의 끝을 보겠다”며 열정을 불태우는 그를 지난 21일 오후 서울 송파구 풍납동의 병원에서 만났다. “시술이란 건… 쉽게 말하자면 외과의처럼 칼을 잡고 하는 게 아니라 사람 몸 안에 도구를 넣어서 하는 거죠. 저의 경우 좁아졌거나 막혀 버린 혈관에 도구를 밀어 넣어서 혈관을 확장하는 치료를 하는 겁니다.” 문외한을 위한 박 교수의 자세한 설명이 이어졌다. 그에 따르면 혈관 중재 치료 시술 치료법은 최근 들어 흉부외과가 아닌 심장내과의 고유 기능으로 발전해 왔다. 30여년 전만 해도 꿈도 못 꿨을 이 ‘신기한’ 치료는 스위스 출신의 한 학자에 의해 처음 세상에 공개됐을 때만 해도 ‘미친 짓’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았지만 지금은 심장내과적 치료의 주요한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내과적 수술=시술’의 형태로. “제 전공 분야는 혈관에 찌꺼기가 쌓이면서 물리적으로 좁아지는 동맥경화증을 어떻게 시술로 치료하느냐 하는 겁니다. 첫 대안은 ‘풍선시술’이었죠. 32년 전인 1979년 스위스의 그룬치히 박사가 심장혈관에 풍선을 넣어 넓히는 것을 처음 시도한 게 계기가 됐습니다. 그룬치히 박사가 미국에 와서 ‘풍선시술’ 보급에 앞장섰습니다.” 그때부터 심혈관 치료를 놓고 내과와 외과의 갈등이 시작됐다. 외과의들은 자신의 전유물이라고 여겼던 심장 수술을 내과에서 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 와중에 풍선시술의 문제점이 발견됐다. 혈관을 확장하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서든 데스(돌연사)’가 생기기 시작했다. 외과에서는 ‘거봐라’ 하면서 비판했다. 이후 풍선의 대안으로 스텐트가 등장했다. 하지만 스텐트 시술도 완전한 것은 아니었다. 풍선시술 이후 혈관이 다시 좁아지는 재협착 확률이 50%가량이었다면 스텐트 시술은 20%가량의 실패를 불렀다. 수술만 하던 협심증, 심근경색 '약물 코팅 스텐트'로 발전 그 격랑기에 박 교수가 있었다. 일반적인 스텐트 시술의 문제점을 보완해 대안을 들고 나왔고, 이것이 지금의 그를 세계적인 명의로 만들었다. 바로 ‘약물 코팅 스텐트 시술’이라는 것이다. “풍선시술이나 스텐트 시술 이후에도 혈관이 다시 막히는 원인을 들여다봤습니다. 머리를 ‘탁’ 하고 스치는 게 있었습니다. 재협착을 막으려면 혈관 조직이 자라지 않도록 약물 치료를 하면 되겠다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항암제의 일종인 탁솔을 생각해냈죠. 스텐트에다 탁솔 코팅을 해서 시술을 하면 혈관 조직이 자라지 않고 안정될 것 아니냐, 그런 연구에 몰입했습니다.” 이후 박 교수의 ‘약물 코팅 스텐트’는 심혈관 확장 시술법의 ‘종결자’로 자리 잡았다. 현재까지 모든 통계적 결과, 협심증이나 심근경색 등 동맥경화증 치료에 있어 이 시술법을 따라가거나 넘어설 대안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가 이 시술을 시작한 건 10년 전쯤인 2002년의 일이다. 약물 코팅 스텐트와 일반 스텐트의 시술 케이스를 비교해 보니 혈관 재협착 확률이 0%에 가까웠다. 의학계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박 교수는 그 성과를 기록한 논문을 이 분야 세계 최고 권위지인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NEJM)지에 세계 처음으로 게재했다. “작은 고민이나 아이디어 하나가 엄청난 차이와 변화를 몰고 옵니다.” 박 교수는 임상 결과와 각종 데이터를 갖고 다작의 논문을 쓰고 발표하는 연구자로도 정평이 나 있다. “한 해에 20편쯤 씁니다. SCI급 논문인용색인에 올라가는 글들입니다. 인용률이 꽤 됩니다. 최소한 양적으로는 ‘톱’이라고 생각되는데요. 허허허.” ―하루에 몇 례(例)나 시술을 합니까. “1년에 2700례쯤? 하루에 8~10례쯤 되죠. 시술팀이 저까지 의사만 10명인데요, 다 함께 하는 거죠. 의료진의 모든 스태프들까지 합하면 치료시술팀이 100명이 넘습니다. 우리 병원 심장내과 덩치가 좀 큽니다.” ―시술 성공률은 몇 %입니까.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시술 직후 혈관이 좁아진다고 해서 다 실패한 것은 아니고요, 자연적으로 치료되는 경우도 있고… 시술 성공률은 99% 정도 된다고 봅니다. 또 나머지 1%도 사망하는 경우가 아닙니다. 사망률은 한 해에 한 례가 있거나 말거나 하는 정도예요.” 시술 성공률이 99%, 시술 후 사망률이 사실상 0%… 경이적인 기록이다. 심혈관 시술을 요하는 대부분의 환자는 심근경색증과 협심증에 의한 동맥경화증 환자다. 심근경색증은 협심증보다 상황이 훨씬 더 긴박하다. 특히 심근경색의 경우는 긴박하게 시술에 들어가 혈관을 열어 주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게 박 교수의 지론이다. 박 교수는 ‘빠른 시간 내 병원 후송’이라는 제1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혈관에 혈액 찌꺼기가 모여 있는 걸 ‘죽상반’이라고 하는데 이게 심혈관을 막으면 심근경색이 되고, 뇌혈관을 막으면 뇌경색이 됩니다. 심장에서 ‘툭’ 하고 터지면 혈관 내에서 혈전이 들러붙게 되고, 완전히 막히게 되죠. 병원 응급실에 오기 전 10명 중 4명이 사망하는 게 이 질환입니다. 심장급사나 돌연사라고 하는 게 모두 심근경색입니다. 성인 사망원인 1위가 바로 이 급사죠.” 박 교수팀이 담당하는 전체 2700례의 시술 가운데 심근경색증 시술은 10%가량이라고 한다. 더 많은 일 벌여 더 많이 수확해야 최고 자리 유지
“그렇게 말하기보다는 시술이 훌륭한 치료방법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치료방법에서 봤을 때 시술이 과연 수술보다 나쁘지 않게 잘해낼 수 있느냐 하는 방법론 문제일 것 같습니다. 수술이 대세였던 과거에는 외과의들이 ‘수술로만 해야 돼’라고 하니까 우리는 ‘시술도 수술보다 못하지 않다’라고 증명하는 게 중요했던 거죠. 지금은 어떤 부분에서는 수술보다 (시술이) 더 좋다는 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확실히 과거엔 외과와 내과가 갈라져 있었다. 내과는 진단하고 외과는 수술하는 단순 개념이 지배했던 때가 불과 얼마 전의 일이었다. TV 시청률 불패신화를 자랑하는 메디컬 드라마의 주인공은 언제나 가슴을 과감히 갈라 붉은 피가 솟구치는 심장을 수술하는 흉부외과 의사들의 몫이었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바뀌고 있다. 얼마든지 조용히, 내과적 시술로 심혈관 질환을 치료하는 시대가 됐다. ―심장내과와 흉부외과 사이에 갈등이나 알력이 있지 않을까요. “과거에 그런 게 많았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아산병원 내에서는 협조적인 관계입니다. 환자가 내과로 왔더라도 우리 스스로 외과로 보내는 일도 있고요. 4명 중 한 명 정도는 수술로 보냅니다. 거꾸로 외과의가 ‘좌주간부’ 환자를 보면서 스텐트 시술로 하는 게 괜찮다고 판단하면 우리에게 보냅니다. 그래서 심혈관 질환 수술이 많이 줄어든 게 사실이고요. 우리가 1년에 2700례 정도 되는데 수술은 600케이스쯤 됩니다.” ―좌주간부…라고요? 이제 박 교수가 보유하고 있는 세계 최고 의술의 진수를 맛볼 때가 됐다. 쉽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심혈관 질환에도 종류가 있는데, 그 중 가장 위험한 게 바로 ‘좌주간부’ 질환이다. 뇌를 비롯한 각종 장기로 혈액을 공급하는 펌프 역할을 하는 심장은 이를 둘러싼 심혈관, 즉 관상동맥을 통해 혈액을 공급받는다. 관상동맥은 다시 세 가닥으로 나뉘는데, 이들 관상동맥이 갈라지는 입구에 해당되는 부위를 바로 좌주간부, ‘레프트 메인(Left Main)’이라고 한다. 좌주간부는 곧 심혈관의 왕이다. 문제는 오랫동안 북미나 유럽 등 선진국에서 좌주간부 질환만큼은 관상동맥우회술이라는 외과적 수술만 인정하는 분위기가 지배해 왔다는 점이다. “좌주간부는 사실 교과서적으로는 수술만 하게 돼 있는 병이었어요. 심혈관 시술을 처음 도입한 천하의 그룬치히 박사가 풍선으로 좌주간부 시술을 시도했다가 환자가 사망한 케이스가 발생한 뒤로 더욱 외과 등에서의 비판이 거셌죠. 미국에서는 지금도 좌주간부 시술은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강해요. 흉부외과의가 수술로 하죠. 하지만 우리는 심장내과의가 시술로 합니다. 과거에도 성공했고 지금까지 성공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계를 리딩하고 있는 겁니다.” 박 교수의 약물 코팅 스텐트를 이용한 좌주간부 시술법은 수술에 의한 고충을 단박에 해결했다. 전신마취→가슴 절개→장시간 회복에 이르는 고통의 시간을 거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현재 그의 이 시술은 전세계 심장내과 의사들의 최대 관심사가 됐다. 오랜 의혹과 편견 속에 이 시술이 국제적으로 사실상 공인을 받은 것은 지난 2007년 서울아산병원이 좌주간 시술과 관련한 첫 번째 대형 국제 심포지엄 ‘Left Main Summit 2007’을 개최한 뒤부터다. ―의대에는 왜 갔습니까. “솔직히 말하면… 별 계기는 없었고요. 다 똑같죠 뭐…. 옛날엔 의사가 선망의 대상이었잖아요. 의사를 꼭 해야 한다는 어머니, 아버지 때문에 하하하. 하지만 심장을 전공하면서 사명감이 생겼습니다.” ―굳이 심혈관 시술 분야를 택한 이유는. “심장은 응급의학입니다. 다이내믹한 분야예요. 그런데 응급실에 온 환자에게 사실 내과는 해줄 게 없었습니다. 심장환자들에게 뭔가 적극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과라도 외과적 성향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현재의 스텐트 시술법이 협심증이나 심근경색증 이외의 분야에도 열려 있습니까. “심장판막 분야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중입니다. 특히 선천적인 판막 증세에 대해서는 수술하지 않고 스텐트로 막아 주는 게 좋다는 결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많은 영역이 시술로 치환되는 과정에 있습니다. 벌써 (의학) 교과서에는 ‘선천적 판막증은 풍선시술이 표준치료’라고 바뀌고 있습니다.” ―이제 세계 1등입니다. 다음 목표는. 청산유수처럼 자신의 삶과 소신을 밝혀 온 박 교수가 이 대목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고는 “최고를 어떻게 메인테인(유지)하느냐를 늘 고민하고 있다”고 힘줘 말했다. “올라가는 건 쉬웠어요. 그런데 최고 수준의 레벨이 되니까 솔직히 불안합니다. 부단히 움직이는 시스템으로 가야 해요.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숙명이 느껴집니다. 후배들까지 같이 그런 긴장감과 느낌을 갖고 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기 위해 박 교수는 더 많은 일을 벌이고 성과를 내고 수확하는 일에 힘쓸 것이라고 했다. 후배들을 길러내서 자신이 일을 하는 동안, 아니 그 이후에도 계속 세계 최고를 유지하겠노라고 스스로 다짐한다고 한다. “지금 우리 팀의 의사 10명 중 7명은 사실 저보다 더 (실력이) 좋습니다. 저를 극복할 수 있는 후배들이에요. ‘툭툭’ 하고 건드리면 ‘씽씽’하고 따라오는 느낌이 듭니다. 좀 껄끄럽기도 하지만 그런 후배들을 옆에 두고 감동시킬 수 있는 선배가 돼야겠다…. 이렇게 다짐하고 있습니다. 후배들이 자발적으로 감동하지 않으면 절대로 움직여지지 않습니다.” 박 교수는 “인간적인 측면에서부터 팀에 감동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후배들과의 술자리도, 대화자리도 자주 마련한다고 한다. “삼겹살집도 자주 가고 그러죠. 하지만 하나의 목표와 과제가 정해지면 엄격해집니다.” 세계 최고를 유지하려는 그의 노력은 상상 이상이다. 그의 생활에서는 안 되는 게 없다. ‘no’라는 말이 안 통한다. 일단 목표가 정해지면 불도저처럼 몰아붙인다. 매일 오전 6시 전에 출근해 과제를 점검하고 팀원을 추스른다. 처음 팀을 꾸렸을 때는 모든 팀원에게 병원 근처로 이사오라고 지시한 일도 있다. 환자가 응급실 도착 즉시 시술을 해야 하는데 ‘너무 멀어서’라는 건 이유가 안 된다는 것이다. 한 팀원은 하룻밤에 다섯 번이나 ‘콜’을 받은 적이 있다. 경각을 다투는 심장질환 치료를 위해서는 이럴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믿음이다. “바쁜 삶은 제 원동력입니다. 1989년에 서울아산병원이 문을 열었는데 첫 환자가 오전 6시30분에 들어왔어요. 그렇다면 의료진은 오전 5시30분에는 나와야 하는 것 아닙니까.” 박 교수는 자신을 ‘새벽형 인간’으로 규정했다. 박 교수는 지난 27일부터 29일까지 서울 쉐라톤 워커힐 호텔에서 개최된 ‘관상동맥 중재시술 국제 학술회의(TCTAP)’에 참여했다.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심장혈관연구재단과 서울아산병원이 공동주최하는 연례대회로 벌써 16회째다. TCTAP에서 박 교수는 대회에 참석한 4000여명의 학자와 전문가뿐 아니라 전세계의 심장의학 전문의료기관과 의사들에게 위성을 통해 관상동맥 중재 시술을 라이브로 시연했다. 아산병원 의사로서, 심장혈관연구재단의 지도자 겸 연구자로서, 후배 의사를 양성하는 대학교수로서 그의 역할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회의가 아주 다이내믹합니다. 우리가 ‘레프트 메인’에 대해 헤게모니를 갖고 온 세계에 전파하면 모두가 따라옵니다. 힘이 다할 때까지 세계 최고를 유지하기 위해 진력할 생각입니다.” 이것이 박 교수가 국제의료계에서 ‘메인 박’으로 불리는 이유다.
“14년전 美 학회 발표 땐 비아냥… 2009년부터 가이드라인 바꿔” 박승정 교수가 인터뷰를 마친 뒤 심장혈관연구재단
“그렇죠. ‘좌주간부는 시술하면 안 된다’는 의료계의 오랜 고정관념과 편견을 바꾸는 게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바꾼 거죠. 국제무대에 처음으로 좌주간부 환자들에 대한 시술 성공 케이스를 발표하니까 ‘박승정 사기꾼’ 소리가 들려오더라고요.” 이와 관련, 하버드대 의대 스테판 오스텔리 교수와의 일화는 아직도 학계에서 회자되고 있다. 지난 1997년 미국심장학회에 참석한 박 교수가 좌주간에서도 스텐트 시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자 청중석에 있던 오스텔리 교수가 “정신 나갔느냐”고 소리를 질렀다. 오스텔리 교수는 “앞으로 미국에서 좌주간부 동맥경화증 환자가 발생하면 전부 한국에 보냅시다”라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불과 몇 년이 안 지나 국제 의료계의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 좌주간부 질환을 ‘서지컬 디지즈(외과적 질병)’로 규정한 미국 대형병원의 가이드라인이 2009년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국제무대에서 공개 망신을 줬던 오스텔리 교수는 2003년 9월에는 박 교수를 자신이 재직 중인 하버드대 의대로 초청해 좌주간부 시술과 관련한 특강을 요청했다. 전세계가 섬기는 원칙을 박 교수가 바꿔 보겠다고 도전했고, 결국 원칙은 허물어졌다. “우리가 미국에 가서 직접 시술을 해보이고, 인공위성으로 중계하고, 국제 심포지엄을 열어 시술 장면을 라이브로 띄워 주고…. 이런 것들을 통해 의료계 리더들의 생각을 바꿔 나갔습니다.” 박승정 교수는 아이들이 아빠를 존경하느냐는 질문에 박 교수는 “불만스러워 하긴 해도, 아빠 같은 사람이 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신의 열정과 노력을 가족들이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다. 박 교수의 병원 내 별명은 ‘왕박’. 카리스마 때문에 생긴 것이다. 해외에서는 좌주간부 시술의 1인자라는 점을 높이 사 ‘메인 박’으로 부른다. “대학에 다닐 때에는 문학반에 있었습니다. 인턴 당시에는 한 신문에 의학 관련 칼럼을 시리즈로 기고하기도 했어요. 인턴 때 겪는 이야기들을 1년간 연재하면서 ‘내가 글쟁이인가’ 하는 착각을 가졌습니다. 최근에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고 많은 것을 느꼈다는 박 교수는 아직 문학소년의 면모를 갖고 있다. 인생관이나 좌우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박 교수는 짧게 답했다. “움직여야 한다. 변해야 산다.” 박 교수는 최근 제4회 아산의학상 수상식에서 아산의학상과 상금 2억원을 수상했다. ‘좌주간부 동맥 병변 그물망(스텐트) 시술’ 효과를 세계적으로 입증한 공로다. 지난 2005년에는 유럽 심혈관중재시술학회의 에티카상을 받았고, 대한의학회의 분쉬의학상을 수상했다. 또 2008년에는 미국TCT학회 최고업적상을, 지난 1월에는 유한재단 유일한상을 받았다. 세계적인 권위의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NEJM)지에는 국내 의학자로는 유일하게 4편의 연구논문을 실었다. 그는 언젠가 “학문의 끝을 보고 싶다”는 얘기를 한 일이 있다고 한다. “우리 그룹이 좀 앞서 있는 게 사실이죠. 이제는 우리 후배들을 어떤 모양으로 서바이브하고 메인테인하느냐 하는 것을 생각합니다. 학문적 수준과 국제적인 경쟁력을 어디까지 가져갈 수 있느냐, 이걸 가늠해 우리 아산병원의 캐릭터로 만들고 싶습니다. 우리는 지난 몇 년 사이에 (세계 정상에) 올라섰지만 문제는 유지하는 겁니다. 그것이 더 다이내믹한 과제입니다.” ▲1954년 서울생 ▲연세대 의과대학 의학과 졸 ▲미국 베일러의대 심장내과 연구조교수 ▲재단법인 심장혈관연구재단 이사장 ▲대한순환기학회 중재시술연구회 회장 ▲울산의대 서울아산병원 심장병원장 인터뷰 = 허민 사회부장 minski@ 문화일보(2011.4.29)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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