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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로열필 '정주영 진혼교향곡' 런던 공연 등록일: 2011.04.15



거대한 파도 몰아치더니 고즈넉한 평화가…


英 로열필 ‘정주영 진혼교향곡’ 런던 공연 리뷰
 

영국 런던 카도간홀에서 12일 열린 로열필하모닉의 정기음악회에서 한국작곡가 류재준씨의 ‘진혼교향곡’이 연주된 후 관객들이 기립박수를 보내며 환호하고 있다. 박지용씨 제공
 

12일 오후 7시30분(영국시간) 영국 런던 카도간홀에서 열린 로열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정규 공연에서 한국 작곡가 류재준씨의 ‘진혼교향곡(Sinfonia da Requiem)’이 연주되었다. 별칭이 ‘정주영 진혼교향곡’인 이 곡을 포함해 쇼스타코비치, 프로코피예프의 곡이 연주된 이날 공연을 관람한 지휘자 박지용(앙상블 오푸스 상임지휘자)씨의 리뷰를 게재한다.

현대음악을 위한 특별 연주회가 아닌 이상 현대음악이 정규 공연의 메인작품으로 선택되는 것은 영국에서도 매우 드문 일인데, 더군다나 아시아 작곡가의 작품을 선택했다는 것은 로열필하모닉으로서도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류재준씨의 작품을 올리기로 결정한 것은 결과적으로 본다면 로열필하모닉에도 행운이었다. 이미 콘서트 며칠 전부터 입석까지 동난 상황은 로열필하모닉 관계자들도 놀랄 만한 사건이었다. 로열필하모닉의 전용 극장인 카도간홀은 1907년에 세워진 교회를 연주 홀로 개조한 극장으로 고풍스러운 연주장이다.

연주 시작 전부터 이미 로비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현지의 관심이 얼마나 큰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무대의 조명만 환하게 켜지고 곧이어 지휘자 그레고리 노박의 지휘로 시작한 쇼스타코비치의 ‘축제 서곡’은 장엄하며 경쾌하게 연주되었다. 클로에 한스립이 바이올린 협연자로 나선 프로코피예프의 ‘바이올린 협주곡 2번’은 현란한 활놀림과 다양한 음색으로 프로코피예프의 발레음악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했다.

그리고, 2부에는 이날의 대미를 장식하는 ‘진혼교향곡’의 차례가 되었다. 로열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필하모니아 합창단이 차례로 입장하였고 이어 지휘자와 소프라노 김인혜씨가 등장하였다. 청중들이 숨을 죽인 가운데 지휘자의 깃털 같은 손짓에 장엄하게 1악장 영원한 안식(Requiem aeternam)을 시작하였다.

일사불란한 오케스트라 현 파트의 움직임, 조용한 침묵 후의 터질 듯한 합창과 오케스트라의 외침, 비장하고 처절한 소프라노의 선창과 합창의 응답 그리고 극적인 반전, 그 반전은 잔잔한 바다에서 휘몰아치는 폭풍우와 큰 파도를 연상시켰고 그것이 휩쓸고 난 후에 고즈넉한 평화가 찾아왔다. 지휘자의 바통에 따라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유기적으로 움직였고 그들의 소리는 옅은 파스텔톤의 색깔로부터 진하고 강렬한 유화적 색채까지 변화무쌍하였다.

이 작품에서 가장 돋보이는 3악장의 ‘주께 바칩니다(Hostias)’는 아름답다는 말로 표현이 부족했다. 합창의 섬세한 표현은 안식과 위로를 주는 기도처럼 느껴졌으며 작곡가의 가슴에서 뿜어져 나온 연민과 슬픔을 이상적으로 구현했다. 소프라노는 혼신의 열창을 하였고 총 50분 동안 이어진 진혼교향곡은 시종일관 청중들을 몰입시켰다. 카도간홀 전체를 휘감은 마지막 부분의 합창과 오케스트라의 장엄하며 웅장한 울림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계시처럼 느껴졌다.

마지막 음이 끝나자마자 열화와 같은 청중들의 박수가 쏟아졌으며 작곡가 류재준씨가 무대에 올라 관객에게 인사하는 내내 환호성이 그치지 않았다. 드디어 몇 차례의 커튼콜 후에 많은 관객들의 기립 박수가 나왔다. 청중의 반응이 무덤덤한 곳으로 알려진 영국 클래식 문화에서 볼 때 보기 힘든 광경이 아니었나 싶다. 이날은 영국의 관객들이 혼신의 연주를 한 연주자와 작곡가에게 존경과 감사의 박수를 보낸 것이다.

한국 작곡가의 작품이 음악문화의 중심지인 런던에서 영국의 관객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은 매우 자랑스러운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제껏 한국의 클래식 음악계는 서양 작곡가들의 음악을 연주하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몇 명의 한국 현대음악가들의 작품들이 있었지만 ‘공감’을 가지기엔 힘들지 않았나 한다.

류재준씨의 음악은 가슴과 가슴으로 이어지는 끈끈함이 있다. 이 끈끈함은 나라와 인종, 나이를 넘어 모든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는 튼튼한 교각이다.

박지용 / 앙상블 오푸스 상임지휘자

문화일보(4월 14일)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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