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좌측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아산상

  • 시상명 : 아산상
  • 년도 : 2022
  • 부문 : 아산상
  • 소속(직위) : 의사
  • 수상자(단체) : 박세업

지구촌의 소외된 이웃들에게 전한 사랑의 인술

 

 

고등학교를 다닐 무렵부터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돕고 싶었던 박세업(61) 의사는 부산대학교 의과대학 2학년 재학 당시 우연히 아프리카 의료선교사를 알게 되면서 의료봉사의 꿈을 키웠다. 의료 혜택에서 소외된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전공도 일반외과로 선택했다. 인턴으로 근무할 때 병원비가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를 돕기도 하고, 전공의가 되어서는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무료 진료에 참여하면서 보다 적극적인 봉사활동에 나섰다.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한국병원에서 현지인 인턴십 수료식을 마치고(왼쪽 첫 번째)>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로도 활동 범위를 넓혀 베트남, 중국, 몽골, 아제르바이잔 등에서 의료봉사를 펼치며 힘들고 아픈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자 했다.

 

 박세업 의사가 본격적으로 해외 의료봉사를 시작하게 된 것은 아제르바이잔의 난민촌에서 한 청년을 만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아제르바이잔 난민촌의 한 청년이 저에게 오더니 ‘왜 이제 왔냐고, 이제 오면 어떻게 하냐고’ 절규하더군요. 전쟁이 났을 때는 오지도 않다가 이렇게 난민이 된 후에 와서 약 하나 주는 게 무슨 소용이냐고 말이에요. 그 말을 들으면서 사람들이 힘들고 어려울 때 진정으로 같이 있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으로 고통 받는 주민 치료

 

                      <아프가니스탄 환자와 함께 한 박세업 의사>

 

박세업 의사는 단기 해외 의료봉사활동을 하면서 현지의 열악한 의료 환경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계획이 필요함을 깨닫고 40세가 되던 2002년 경상남도 마산에서 운영하고 있던 개인병원을 정리했다. 지역에서 자리를 잡은 상황이라 주변의 만류도 컸지만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해외 의료봉사활동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며 차근히 준비를 시작했고 이듬해인 2003년 호주로 유학을 떠나 그곳에서 문화인류학, NGO학 등을 공부하며 내실을 다졌다.

 

2005년 공부를 마치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았다. 그때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으로 인해 제대로 된 의료시설과 의사가 없어 많은 이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망설임 없이 가족과 함께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했다.

 

2005년부터 수도 카불의 큐어국제병원에서 일반외과 과장, 교육부장으로 일했다. 환자 치료에 힘쓰면서도 자살 폭탄테러 피해자 등 화상 환자들을 위해 대학 후배들의 후원으로 피부 이식기를 도입했고, 갑상선 질환, 유방암, 대장암 환자를 위해 복강경 수술 기술을 전수했다. 2007년에는 수도 카불 인근 바그람 미군기지 내 한국병원의 병원장을 맡아 현지 의료진 교육과 양성에 힘쓰며 의료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경험은 예기치 않은 험한 상황이 벌어지는 가운데서도 병원을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특히 분쟁 지역에서 병원은 어떤 역할을 하고 지역사회와 어떻게 협력해야 하는지 하나하나 체득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많은 환자를 진료하고 수술하는 한편, 현지 의료진을 교육하고 양성하는 데에도 힘썼죠. 이제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겠구나 했는데, 그것으로는 부족했어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여자 환자를 치료해서 집으로 보내면 남편에게 맞아 다시 병원으로 오는 거예요. 결국 가정 폭력이 해결되어야 하는 거죠. 그때부터 병원 밖 세상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그들이 사는 현장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보건학을 공부하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한 명이라도 더 살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밤낮으로 치료와 수술에 몰두하던 박세업 의사는 병원 밖에서 사망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참혹한 상황에서 아무리 열심히 수술을 해도 살릴 수 있는 환자는 한정적이었다. 외과 의사로서 수술도 중요하지만, 저개발국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조금 더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그들이 사는 현장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음을 절감했다. 더 넓은 의미의 의료봉사활동을 고민하던 중 ‘보건’이 이러한 고민의 해법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해 50세에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에서 보건학 공부를 시작했다.

 

“세계보건기구에서 건강을 ‘단순히 질병이 없거나 허약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그리고 사회적 안녕이 완전히 보장된 상태’라고 정의해요. 바로 이러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보건이 필요하죠. 나이 50세라고 하면 새로운 걸 배우기 늦은 나이가 아닌가 하지만 여전히 배움이 필요한 시기죠.”

 

2012년 석사 과정을 마치고 다시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러나 현지 상황이 악화되면서 외국인의 입국은 불가하여 다른 지역으로 눈을 돌렸다. 그때 북아프리카가 눈에 들어왔다. 모로코, 모리타니아, 말리, 부르키나파소, 차드 등 가난한 나라가 많이 밀집해 있기도 하고 한국 의료봉사단과 NGO도 진출하지 않은 지역이었다.

 

“모로코를 거점으로 해서 다른 나라로 활동 반경을 넓히면 되겠구나 싶었어요. 모로코는 결핵 발병률이 매우 높아요. 빈부격차가 심하고 의료 환경이 열악하죠. 더구나 유럽으로 건너가기 위한 길목이라 밀입국자들이 많은데 한집에 서너 가구가 함께 생활할 정도로 주거환경 역시 열악해요. 그러다 보니 무엇보다 질병도 많고 보건사업이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거죠.”

 

현지인들의 입장에서 결핵 퇴치를 위한 해법을 찾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