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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상

  • 시상명 : 아산상
  • 년도 : 2023
  • 부문 : 사회봉사상
  • 소속(직위) : 물푸레나무 청소년공동체 대표
  • 수상자(단체) : 이정아

가정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돌봅니다

 

 

밤늦은 시간, 이정아(55) 대표의 전화가 울렸다. 처음 듣는 낯선 여자아이의 목소리는 긴장과 두려움으로 떨리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이 전화번호로 연락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며 다짜고짜 자신이 곧 아이를 낳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부모에게 알리는 것도, 병원에 가는 것도 막무가내로 거부했다. 이정아 대표는 끈기 있게 설득했다. 아침 7시까지 실랑이는 계속됐 고, 산모와 태아가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는 “근처에 있는 병원을 알려 주면 부탁해서 부모에게 연락하지 않게 해주겠다”고 선의의 거짓말을 했다. 여자아이는 몇 번 “진짜죠?”를 반복하더니 드디어 병원으로 향했다. 이정아 대표는 즉시 병원과 경찰에 연락해 아이의 안전을 부탁했다. 다음 날, 아이의 어머니가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무사히 출산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위기 청소년들은 어른들에게 상처받거나 방치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어른에게 의지하고 싶지만 믿지 못하는 정서적인 딜레마가 있어요. 그 아이도 제 말을 믿었다기보다 아프고 무서우니까 따라준 것 같아요. 그때는 저도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아이를 설득하는 데만 집중했어요. 밤을 꼬박 새웠지만 그 아이가 제게 전화한 것도 고맙고, 제 전화번호를 알려줬다는 이름 모를 분도 정말 고마워요.”

 

사실 이정아 대표에게 한밤중의 전화는 이례적인 것이 아니다. 경찰, 소년원, 병원, 청소년 생활시설까지 그의 도움을 구하는 전화가 수시로 온다. 가까이는 부천에서, 멀리는 제주도에서도 연락이 온다. 전화를 받으면 이정아 대표는 동료 시민활동가들과 함께 어디든 달려가 아이들의 편에 선다. 아이들도 그에게는 순순히 마음을 열고 곁을 내어준다. 이렇게 서로 믿고 의지하는 관계는 이정아 대표가 정성껏 준비한 밥 한 끼, 그 온기에서부터 시작됐다.

 

 

청소년을 위한 심야식당을 열다

<물푸레나무그림책도서관 운영 당시 아이들과 함께 한 이정아 대표>

 

 

어린 시절 가난한 환경에서 자란 이정아 대표는 1988년 야학교사 활동을 통해 자신처럼 소외된 청소년을 돕는 것을 사명으로 여기게 됐다. 부천 토박이로 지역 사정을 잘 아는 그는 2005년 부천 소사구 송내동에 ‘물푸레나무그림책도서관’을 열고 돌봄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쳤다. 그 과정에서 갈 곳 없는 청소년들을 알게 됐고, 자원봉사자를 모아 ‘물푸레나무 청소년공동체’를 발족했다. 그리고 2011년 부천역 인근 공원에서 무료급식 ‘청개구리 밥차’를 시작했다. 매주 두 번, 오후 9시부터 다음 날 오전 1시까지 여는 청소 년을 위한 심야식당이다.

 

“부천역 광장은 이 지역의 청소년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에요. 특히 학교를 벗어나 방황하는 청소년 들이 많은데, 이때가 탈선을 막고 가정과 학교로 돌려 보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에요. 가출하면 다른 가출 청소년들과 어울리며 이곳에 오지 않거든요. 아이들과 가까워질 방법이 뭘까 고민하다가 ‘따뜻한 밥 한 끼를 해주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지요.” 음식도 미리 준비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만들었다. 음식을 만드는 과정부터 보여주면 아이들의 주목을 끌 수 있고,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이정아 대표의 생각은 적중했다. 청개구리 밥차를 시작한 첫날, 열심히 주먹밥을 만들고 있던 그에게 한쪽 팔에 문신을 하고 담배를 문 청소년이 호기심으로 다가왔다. 이정아 대표는 밥차에 대해 설명하며 주먹밥을 건넸는데 덥석 먹더니 “맛있어요”하고 떠났다. 첫 손님이었던 그 청소년은 친구들을 데려왔고, 제일 먼저 찾아와 인사하는 단골손님이 됐다. 이렇게 밤이슬을 맞으며 거리를 방황하던 청소년들이 간이 천막 아래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30인분을 준비하던 음식은 금세 두 배, 세 배로 불어났고, 따스한 밥과 사람의 온기로 허기를 채운 청소년들은 이정아 대표에게 마음을 활짝 열었다.

 

 

따스한 밥 한 끼로 아이들의 마음을 열다

 

<2011년부터 청개구리 밥차를 운영하고 있는 이정아 대표>

 

비가 와도, 눈이 와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청개 구리 밥차를 운영한 지 6년째, 밥차 운영을 끝마 치고 집으로 갈 준비를 하던 이정아 대표는 문득 부천역 광장을 뒤돌아봤다. “순간 ‘나는 집으로 가는데, 아이들은 갈 곳이 없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아이들에게 미안했어요. 길 위에 아이들을 두고 오는 것 같았죠. 그때 일주일에 두 번이 아니라 아이들이 매일 와서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겠다 싶더군요.” 시민들의 기부 등으로 보증금을 마련하고,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 부천역 바로 앞 건물 1층에 아담한 공간을 얻었다. 한 독지가의 도움으로 주방과 식당을 꾸며 2016년 ‘청개구리 식당’ 을 열었다.

 

공간이 생기자 할 수 있는 일도, 할 일도 더 늘어났다. 청소년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도 식당을 찾아와 아이들과 어울렸다. 청소년을 돕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이곳을 찾았다. 밥차에서 끼니를 해결하던 아이들이 성장해 청년활동가로 힘을 보탰다. 일자리, 진로 상담도 크게 늘어나 결국 식당 한쪽에 카페도 만들었다. 재정 자립을 위해 협동조합을 만들고 친환경제품을 판매하는 작은 숍도 마련했다.

 

매일 오후 3시에 식당이 문을 열면 아이들은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거나, 보드게임을 즐기며 시간을 보낸다. 청년활동가들은 이들을 위해 매일 25인분의 식사를 준비한다. 이정아 대표는 새로운 아이가 눈에 띄면 가볍게 말을 붙이며 타로를 권한다. 처음 와서 낯을 가리고 말을 하지 않는 아이들도 타로에는 호기심을 보이기 때문 이다. 그래도 왜 왔는지, 무슨 문제가 있는지 사연을 절대 캐묻지 않는다. 집에 들어가라, 술, 담배는 하지 말라는 등 간섭도 하지 않는다. 일단 아이들이 식당을 자주 찾아와야 정말 필요할 때 도움을 줄 수 있으니 아이들을 부담스럽게 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이렇게 조금씩 친밀감을 쌓다보면 묻지 않아도 자기 이야기를 솔직히 털어놓는다.

 

<청개구리 식당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는 이정아 대표와 청년활동가들>

 

“우리 식당에 처음 오시는 상담사님들은 아이들을 만나보면 많이 놀라세요. 청소년기 아이들은 입을 열게 하기가 정말 힘든데, 어쩌면 여기 아이들은 처음 만났는데도 솔직하게 자기 이야기를 술술 하냐고요. 그 질문에는 몇 번 방문해보신 상담사님들이 ‘아이들이 이 공간을 믿기 때문’이라고 답을 주셨어요. 여기서 만나는 어른 들은 안전하다, 다른 의도 없이 순수하게 나를 도우려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완전히 믿고 있다고요.” 구수한 음식 냄새와 아이들의 즐거운 목소리가 골목을 가득 채우는 저녁 시간, 정겨운 과거의 동네 풍경이 작은 식당 공간에서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었다.

 

 

청소년을 바꾸는 힘은 결국 ‘공동체와 사람’

 

물푸레나무 청소년공동체는 6개의 시민모임이 모여 청개구리 식당 외에도 청소년 자립 생활관, 대안가정, 찾아가는 청소년센터 ‘청개구리 충전소’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은 받지 않고 기부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활동가의 힘으로 운영한다. 그 밑바탕에는 ‘공동체와 사람이 답이다’라는 이정아 대표의 철학이 있다.

 

“청소년들을 도울 수 있는 것은 금전적인 지원도 아니고, 시설의 프로그램도 아니에요. 아이들을 돕는다고이 기관, 저 기관에 보내면 싫어하고 안 가려고 해요. 낯선 이들에게 몇 번씩 자기 사정을 이야기해야 하고, 대답하기 싫은 질문을 자꾸 하니까요. 아이들 입장에서는 자존감에 상처를 입는 불쾌한 일이지요. 그래서 다른 기관의 도움이 필요할 때는 반드시 저나 활동가들이 아이들과 함께 가요. 믿을 수 있는 자기편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거죠. 결국은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가 아이들을 도울 수 있는 핵심이에요.”

 

<시민활동가와 함께하는 찾아가는 마을 작은학교 활동>

 

이정아 대표는 아이들의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 살아가는 지역 시민들의 역할을 강조한다. 믿을 수 있는 어른이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적지 않게 보았고, 그 역할은 어떤 시설도, 기관도 할 수없는 일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활동 가들이 자발적으로 그 지역의 청소 년들을 돌보는 마을 공동체가 그의 궁극적인 목표다. 이정아 대표는 위기에 처한 청소년들이 언제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어른 들이 있는 곳, 음식을 나누며 서로 돕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희망 한다. 그리고 부천역 앞 작은 식당 에서 청소년들은 더 넓은 세상으로 비상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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