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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상

  • 시상명 : 아산상
  • 년도 : 2023
  • 부문 : 아산상
  • 소속(직위) : 이관홍 대표 신부
  • 수상자(단체) : 가톨릭근로자회관

“우리 사회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향해”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여름, 대구 계산성당 인근의 가톨릭근로자회 관에 진풍경이 벌어졌다. 회관 입구에 10kg짜리 쌀 300개가 쌓이고, 마스크를 쓴 아프리카 여성들이 줄지어 섰다. 코로나19로 고립되고, 제도적 지원도 받지 못하는 난민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쌀을 지원한 것이다. 아이를 등에 업고 유모차에 쌀을 싣는가 하면 머리에 쌀을 이고 능숙하게 지하철역 으로 향하는 아프리카 여성들의 이채로운 모습에 행인들의 눈길이 집중됐다.

 

하지만 가톨릭근로자회관 인근의 지역주민에게는 새삼스럽지 않은 모습 이다. “신부님, 오늘 쌀 나눠주셨어요?”하며 인사하는 주민들은 매주 이곳에 500여 명의 외국인 이주민들이 모이는 풍경에 익숙하다. 주민들은 평소 가톨 릭근로자회관이 외국인 이주노동자, 결혼이주여성, 난민 등 우리 사회의 소외된 이방인들을 돕는 것을 가장 가까이에서 늘 지켜보고 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와 난민에 대해 부정적인 얘기가 많지만, 이들을 만난 지역주민들은 오히려 작은 일이라도 도와주려고 합니다. 특히 나이가 있는 분들은 ‘옛날에 독일과 미국으로 돈 벌러 간 우리나라 사람들이 저렇게 고생했을 텐데, 가난했던 과거를 생각하면 서로 돕고 살아야 된다’고 하시죠.” 가톨릭근로자회관 이관홍 (44) 대표 신부는 “지역주민들의 도움과 따스한 마음에서 힘을 얻는다”고 말한다.

 

 

대구지역 근로자에서 이주노동자, 결혼이주여성에게로 향하다

 

<회관 앞에서 코로나19 위생용품, 식료품을 나눠주고 있는 가톨릭근로자회관 직원들>

 

우리 사회의 소외된 이웃을 향한 가톨릭근로자회관의 활동은 반세기 동안 이어져왔다. 시작은 산업화의 그늘 속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던 근로자들이었다. 1970년대 대구지역은 섬유·부품 등 노동집약적 경공업이 급성장했지만, 근로자들은 열악한 작업환경과 낮은 임금으로 고통받았다. 오스트리아 출신 박기홍 신부(본명 요셉 플라츠, 1932~2004)는 대구지역 근로자들의 권익 옹호를 위해 1975년 가톨릭근로자회관을 설립 하고 노동문제 상담과 교육을 시작 했다.

 

당시 대구지역에서 노사분규가 일어나면 사용자와 근로자가 가톨릭근로자회관에 모여 관장인 박기홍 신부의 중재 하에 협상을 진행하기도 했다. 또 가난 때문에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한 버스 안내원을 위해 검정고시 등 교육과정을 개설하고 박기홍 신부가 직접 버스회사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소개해 당시 3만 명에 달하는 버스 안내원들이 교육을 받았다.

 

<가톨릭근로자회관이 운영하는 한국어 교실>

 

1990년대로 들어서며 가톨릭근로자회관은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을 주목했다. 성당을 중심으로 모인 이주노동자들이 임금체불, 산업 재해, 비자문제 등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이주노동자 중에서 체류기간을 넘긴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증가하자 가톨릭근로자회관은 노동, 법률, 의료 상담 등 전문적인 지원과 함께 한국어 교실, 무료진료, 쉼터 등을 제공하며 이주노동자 지원을 다양화했다. 또한 결혼 이주여성과 다문화가정을 위한 한글교실과 공부방 운영, 가정해체로 미등록체류자가 된 결혼이주여성을 위한 긴급 지원활동도 펼쳤다. 현재 가톨릭근로자회관을 구심점으로 필리핀, 베트남, 동티모르, 페루 등 이주민 공동체가 활성화되어 정기모임은 물론 자체적으로 이주민을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한 2019년 필리핀 화산 폭발, 2020년 베트남 홍수 피해, 2023년 튀르키예 대지진 등이 일어났을 때 성금을 모아 직접 현지를 방문 하기도 했다. 이관홍 대표 신부는 “베트남의 한 마을에서만 60~70명이 대구로 이주한 경우도 있어 유대감이 강하다”며 “이주민 공동체가 거주할 곳이 없는 이들을 위해 자체적으로 셰어하우스를 운영하고, 위급 상황이 발생하면 힘을 합쳐 돕고 있다”고 말했다.

 

 

제도적 지원이 미흡한 미등록 이주노동자, 난민에 관심 기울여

 

<난민을 담당하는 마리안나 수녀와 난민 아동>

 

현재 가톨릭근로자회관은 종교와 국적에 관계없이 일요일마다 500여 명이 찾아오는 대구·경북지역 최대 이주노동자 지원기관으로 발전했다. 유학생, 이주노동자, 결혼이주여성 등다양한 이들이 있지만 주위의 도움이 절실한 미등록 이주노동 자가 가장 많다. 가톨릭근로자회관에는 필리핀과 베트남 상담 원이 상주하며 상담과 통역을 돕고 있고, 위급상황이 발생하면 직접 찾아가 도움을 주고 있다. 이고은 베트남 상담원은 자원 봉사 통역 활동을 하다가 7년 전부터 가톨릭근로자회관의 상담원으로 정식 근무하고 있다. “이주민들이 가장 많이 가는 곳이 병원인데, 병원에도 통역 인력이 있지만 환자와 신뢰 관계를 맺고 있는 우리에게 통역을 요청하시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산부인과 같은 경우는 일주일에 한두 번 날을 정해서 산모 서너 명을 한 번에 데려가기도 해요.”

 

최근 가톨릭근로자회관은 난민을 돕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난민은 인종, 종교, 정치 등으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는 사람이거나 전쟁, 재난에 의한 피란민으로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면 난민 신청자로 살아가야 한다. 2019년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 경북 구미와 김천의 예멘, 시리아 난민 가정에 대한 보호활동을 시작으로 2020년 4 월에는 외부 후원단체와 연계하여 아동을 양육하는 난민 22가정에 2년간 보육비와 생계비를 지원했다. 이를 계기로 기니, 라이베리아, 세네갈, 우간다 등 아프리카 난민들까지 지원을 확대해 38가정 183명의 난민을 지원했다.

 

 

의지할 곳 없는 난민들의 버팀목이 되어

 

<가톨릭근로자회관에서 실시하는 난민 여성을 위한 치유 프로그램>

 

우리와 문화가 다른 이방인, 게다가 공적 지원을 받지 못하는 난민과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돕는 일이다 보니 가톨릭근로자회관 직원들이 해야 할 일에는 한계가 없다. 사소하게는 가전제품 사용 설명서를 읽어주고 수리를 돕는 것부터 시작해 코로나19 안내문을 각 나라의 언어로 번역하는 일, 자가격리자에게 할랄 푸드 등 각 나라의 문화에 맞는 식재료를 지원하는 일까지 전부 이들의 몫이다. 게다가 어렵게 태어난 미숙아의 생명을 구하고, 타국에서 홀로 세상을 떠난 고인이 고국에 있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도록 돕기도 한다. 류장미 팀장은 이주민들을 도우면서 마음이 힘들 때가 적지 않다.

 

“난민은 건강보험 혜택을 못 받아 미숙아나 장애가 있는 아이가 태어나서 인큐베이터에 들어가면 하루 입원 비가 100만 원이나 돼요. 병원의 지원과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해결한다고 해도 결국 세상을 떠나는 아이도 있고요. 오열하는 부모를 보는 것이 정말 마음 아프죠. 또 이주노동자들은 가족을 위해서 혼자 타국에서 일하기를 선택한 이들이라 자기 몸을 돌보지 못하고 병을 얻어 홀로 세상을 떠난 이들이 많아요. 필리핀이나 베트남은 화장 문화가 없어서 시신을 송환하는 행정절차와 비용 등을 이주민 공동체와 힘을 합쳐 부담하고, 고인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지요.”

 

힘든 일과 새로운 문제가 생길 때마다 ‘어디까지 도울 수 있을까’하는 무거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어디에도 의지할 수 없는 이주노동자와 난민들에게 자신들이 유일한 버팀목임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마음을 다잡는다.

 

 

난민과 그 자녀에게 ‘기회’ 주어야

 

<외국인 이주노동자, 결혼이주여성, 난민들과 함께한 이관홍 대표 신부(오른쪽 일곱 번째)>

 

“저도 구걸하고 싶지 않아요!” 난민 지원을 담당하는 마리안나 수녀는 한여성 난민의 간절한 호소를 가슴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 난민 중에는 가족 단위, 특히 여성이 많다. 전쟁이나 재난을 피해 온 난민들 외에도 조혼, 여성할례 등 악습을 피해 난민이 된 여성들이 많기 때문이다. “난민들은 쌀과 기저귀, 분유 이 세 가지를 가장 많이 요청해요. 일용직을 전전하고 육아 부담으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기본적인 생계조차 해결하지 못한다는 얘기지요. 그래도 이들은 지원받기보다는 스스로 일해서 생활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어요. 건강하고 일할 수 있는데 기회도 주어지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도움만 바라는 상황이 그들을 더 힘들게 하고 있어요. 우리 사회가 이주민을 받아들였으니, 적어도 평범하게 살아갈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톨릭근로자회관은 난민 생계비 지원 외에도 한국어 교육, 심리치료 등 한국생활 정착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난민과 이주민 중에서도 가장 소외된 난민 아동을 위한 언어와 놀이치료 등 심리상담 지원, 입학 행정수속과 학용품 등을 지원하고 있다. 부모가 일하는 동안 어린 자녀들이 방치되고, 어린이집과 학교에서 외국인이라고 차별을 겪기 때문이다. 가톨릭근로자회관은 난민 아동들이 밝게 성장하기를 바라며 학교에 입학하는 아이에게 학용품을 마련해주고, 태권도 학원비도 지원하고 있다. 이관홍 대표 신부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난민 아이들에게 ‘우리나라’는 부모의 고국이 아니라 한국”이라고 강조한다.

 

우리 이주민 공동체에 한국에서 태어난 페루 이주민 가정의 청소년이 있는데, 유학생 신분을 인정받아서 곧한국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어요. 간호학과를 지원하는데 그 이유가 자기가 한국에 살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 으니 한국 사람들을 돕고 싶어서래요. 자라면서 우리 사회의 벽에 많이 부딪쳤을 텐데 기특한 생각을 하는 걸보면 미래는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난민 아이들에게 좋은 기회를 마련해준다면 아이들이 자라서 한국에 기여 하는 일이 더 많아지고, 진정한 사회 통합으로 이어지는 길이 되지 않을까요.”

 

환영받지 못하는 이들을 반가이 맞아주고, 그 어디에도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의 편에서 함께해 온 48년, 소외된 이웃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가톨릭근로자회관의 행보는 우리 사회에 함께 살아가는 길을 가르쳐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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