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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상

  • 시상명 : 아산상
  • 년도 : 2023
  • 부문 : 의료봉사상
  • 소속(직위) : 롱안 세계로병원 원장
  • 수상자(단체) : 우석정

베트남에서 펼친 사랑의 인술

 

 

“5분만 빨리 왔으면 살았을 텐데….” 라오스 해외 의료봉사에서 우석정(62) 원장은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숨진 어린아이를 둘러싸고 탄식과 울음소리가 가득했다. 보통 단기간 진행하는 해외 의료봉사에서 생명이 위급한 환자를 만나는 일은 드물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상했다. 아이가 심정지 상태로 오는 흔치 않은 사건이 이틀 연속으로 일어났다. 우석정 원장은 흉부 외과와 응급의학 전문의 자격을 모두 갖고 있었지만,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기본적인 심폐소생술밖에 없었다. 다행히 어제 왔던 아이는 겨우 소생시킬 수 있었지만, 오늘 온 아이는 결국 숨지고 말았다. 단 5분으로 엇갈린 두아이의 생사는 우석정 원장의 결심을 더욱 굳게 만들었다.

 

“장기간 베트남으로 의료봉사를 가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일을 겪으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가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 습니다.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던 아들이 라오스 의료봉사 현장에 있었는데, 그때까지도 베트남으로 가기 싫어했어요. 그런데 이 일을 보고 나서 ‘단 5분이 생명을 좌우하니 아빠가 그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는 게 맞는 것같다’면서 베트남으로 따라와 줬어요. 제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무의촌 의료봉사를 통해 베트남 정부의 신뢰를 얻다

 

<베트남 소수부족을 진료하는 우석정 원장(왼쪽)>

 

의과대학 재학 시절부터 농촌 의료봉사에 참여하며 해외봉사에 관심이 있었던 우석정 원장은 1997년 해외 의료봉사를 가기로 결심했다. 해외 의료봉사를 위해 응급의학과 전문의 자격도 추가로 취득하고, 40세가 되던 2001년 가족과 함께 베트남으로 떠나 호찌민에 정착했다.

 

농촌과 무의촌 지역을 다니며 이동진료를 시작했지만,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베트남 정부는 외국인의 활동을 통제하여 허가를 받는 데 두세 달이 걸렸다. 진료 받을 환자도 정부가 정해주는 탓에 의료봉사에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우석정 원장은 한 달에 2~3회씩 5년간 봉사활동을 이어나가며 현지 의료상황을 파악했다. 그는 가난한 환자들에게 실질 적인 도움이 되려면 거점이 되는 병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베트남은 19세기 프랑스의 식민지로 우리나라보다 서양 의학 도입이 300년 이상 빨랐습니다. 진료 체계는 잘 갖췄 지만, 공산화 이후 의료를 통제하며 최소 경비로 해결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었죠. 호찌민에서 심장수술을 할 수 있는 기관이 딱 한 곳뿐이었으니까요. 의료 수준과 접근성 모두 크게 뒤떨어져 있었습 니다.”

 

당시 베트남 정부는 외국인이 의료기관을 설립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석정 원장은 5년간의 의료봉사로 정부 관계자들의 신뢰를 얻었고, 당시 베트남 정부도 WTO 가입을 추진하며 개혁·개방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 외국인 투자 법인으로 병원 설립을 허가받을 수있었다. 토지 가격과 의료 필요성을 고려해 호찌민에서 50km 떨어진 롱안성의 땅을 50년간 장기 임차하는 방식으로 부지를 마련했고, 2006년 10월 35개 병상과 수술실, 응급실, 분만실을 갖춘 롱안 세계로병원을 개원했다

 

 

전쟁의 상흔을 보듬다

 

<2006년 롱안 세계로병원 개원 기념 단체사진>

 

“세계로병원이 위치한 마을은 베트남전쟁 당시 폭격이 잦았고 고엽제도 많이 살포되었던 곳입니다. 1990년대 이후에야 사람들이 늘어나고 마을이 생겨났다고 해요.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포장도로도 없고, 병원에 필요한 전기도, 하수도 시스템도 없었습니다. 모두 우리가 만들어야 했지요.” 우석정 원장은 구급차가 진입할 수있도록 병원부터 1km 밖 큰 도로가 있는 곳까지 포장도로를 만들었다. 전기를 끌어오기 위해 전봇대를 여러개 세우고 가로등도 설치했다. 병원에서 배출되는 하수가 지역을 오염시키지 않도록 종합 하수처리 시스템도 갖췄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외국인의 존재 자체를 불편해하며 우석정 원장과 병원을 한동안 신뢰하지 않았다. “가 로등 불빛 때문에 벼가 잠을 못 자서 곡식이 익지 않는다”며 가로등을 꺼달라는 항의를 하고, “병원 하수가 우리 집까지 올라와서 오염됐다”며 시멘트로 하수도를 막기도 했다.

 

하지만 우석정 원장은 지역 주민을 치료하는 데 전념했다. 사립병원이지만 현지 공공병원 수준의 진료비를 책정해 병원의 문턱을 낮추고 저소득층을 위한 무료진료를 꾸준히 진행했다. 어려운 경영환경에도 주민 편의를 위해 응급실과 분만실을 24시간 운영했다. 선천성 심장병 환자 352명과 구순구개열·화상환자 342명이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돕고 마을 체육대회도 개최해 화합의 시간도 가졌다. 한글교실, 사랑의 집짓기, 우물 보급 등 다양한 지역사회 봉사활동도 펼쳤다. 지역 주민 들은 한결같은 롱안 세계로병원의 활동에 점차 마음을 열고 ‘한국병원’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우석정 원장은 개원 초기부터 고엽제 환자에 주목했 다. 이동 의료봉사를 하며 파악한 고엽제 피해는 전쟁이 끝난 지 50년 가까이 된 지금도 여전하다. 고엽제가 유전질환을 일으켜 선천성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태어 났는데, 장애가 4대까지 대물림됐다. 우석정 원장은 고엽제 피해 환자들에게 평생 무료 진찰권을 주고 꾸준히 보살폈다. 2014년에는 고엽제센터를 개소해 고엽제로 인해 선천적인 장애를 가진 아이들에게 변형된 관절을 교정하는 수술과 재활치료를 무료로 지원했다. 지금까지 80여 명의 장애아동이 교정수술을 받았고 2천여 명의 환자가 무료로 치료받았다.

 

“여러 가지 경우가 있지만, 선천적으로 손발의 관절이 뒤틀려 평생 일어나지 못한 채 인생을 마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신경을 자극하는 시술이나 관절 고정 수술을 해서 스스로 일어설 수 있게만 해줘도 삶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가능성 있는 아이들에게 꾸준히 재활 치료를 받게 하고, 성장이 된 이후에는 자립할 수 있도록 기술 직업훈련을 받도록 도울 계획입니다.”

 

 

항상 베트남 환자들의 곁을 지키다

 

<코로나19 당시 현지인들을 진료하는 롱안 세계로병원 의료진들>

 

베트남 소외지역 주민을 위한 노력은 코로나19에 더욱 빛을 발했다. 의료진들은 선별검사와 초기 코로나 양성 환자 대처에 최선을 다했다. 우석정 원장도 격리실 앞에서 떠나지 않고 환자를 돌봤다. 병원 인근 면 보건지 소에서도 롱안 세계로병원에 도움을 요청해 구급차를 공유하며 중증 환자를 신속하게 시내 상급병원으로 전원시켰다.

 

“거의 8개월간 의료진과 병원 직원들은 병원 밖을 나가지 못했습니다. 수시로 선별검사를 실시하고, 약 140 명의 환자를 관리하는 등 바쁘고 힘든 시간을 보냈지요. 나중에는 필요한 식료품도 구하지 못해 고생했어요. 그런데 이런 모습을 보면서 지역 주민들의 인식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다른 외국계 병원들은 아예 문을 닫아 버렸고, 주요 기관들도 활동을 멈춘 상황에서 우리 병원은 항상 열려 있었으니까요. 가끔 ‘외국 투자병원이 시골 사람들의 돈을 가져간다’며 반감을 나타내는 분들도 있었는데, 코로나19 위기를 겪고 나니 그런 반감은 거의 없어지고 지역 주민들과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우석정 원장과 롱안 세계로병원 의료진들(가운데)>

 

우석정 원장은 앞으로 롱안 세계로병원을 ‘한국병원’이 아닌 ‘베트남병원’으로 바꿔 갈 생각이다. 그와 뜻을 같이하는 베트남 현지인들이 직접 병원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석정 원장의 계획이다. 이를 위해 현지 전문 인력 위주로 의료진을 채용하고, 인재 육성을 위해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법인 이사와 병원 경영진에 베트남 현지인들이 다수 참여하게 할 계획도 있다.

 

20년 넘게 베트남 주민을 위해 헌신한 한국인 의사, 우석정 원장은 이제 지역 주민들이 ‘안(Ahn, 형)’ ‘엠(Em, 동생)’이라 부르는 가족 같은 존재가 됐다. “나이가 들어도 할 수 있는 한 환자의 곁에서 함께하는 의사로 남고 싶다”는 그는 여전히 베트남의 어려운 이웃을 위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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