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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상

  • 시상명 : 아산상
  • 년도 : 2023
  • 부문 : 효행ㆍ가족상
  • 소속(직위) : 전남 순천
  • 수상자(단체) : 김정숙

가족을 위한 진심이 퍼트린 선한 영향력

 

 

순천시 보건소장직을 마지막으로, 올 12월이면 김정숙(60) 씨의 30년 공직 생활이 마무리된다. 그 30년간 김정숙 씨는 순천시 공무원, 한 가정의 며느리이자 엄마이자 아내, 친정 동생 6명의 버팀목 역할을 해내는 중에도 손에서 공부를 놓지 않았다. 모든 것에 진심을 다하는 그의 노력은 가족과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끼쳤다.

 

 

<시어머니와 남편, 2남 2녀 자녀와 함께 한 김정숙 씨(가운데)>

 

 

친정 식구들의 삶을 오롯이 책임지다


전남 순천시에서 2남 5녀 중 첫째로 태어난 김정숙 씨는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잘했다. 하지만 넉넉하지 않은 가정 형편 탓에 평소 바랐던 의과대학 대신 전액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치위생과에 진학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 졸업 후에는 광주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치위생사로 일하며 동생 3명과 함께 생활했다. 동생들 뒷바라지는 김정숙 씨의 차지였다.


친정 부모와 함께 살고 싶어 순천시 승주읍보건소로 자리를 옮긴 후 읍사무소 직원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1989년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하면 공부할 수 있게 돕겠다”라던 연애 시절의 약속을 지킨 남편 덕에 보건소를 퇴직하고 간호보건학 공부도 시작했다.


그렇게 꿈이 이뤄지는가 싶던 1990년, 친정 부모가 연이어 세상을 떠나면서 어려움이 찾아왔다. 친정 부모가 남긴 채무, 중학생과 고등학생이던 동생들 모두 김정숙 씨가 감당해야 할 몫이 된 것이다. 간호보건학 공부를 접고 13평 신혼집에서 공부방을 운영하며 동생들을 부양했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김정숙 씨는 다시 공무원 시험을 치고 1993년 8급으로 공직 생활에 복귀했다.


“부모가 안 계시니 제가 그 대신이잖아요. 시부모와 남편이 이해해 주시고, 셋째 여동생도 힘을 보태 줘서 동생들 모두 대학도 보내고 결혼도 시켰어요. 동생들도 저와 남편을 부모처럼 생각해 주니 고맙죠.”

 

 

<두 딸과 함께 한 가족여행(가운데)>

 

 

가슴으로 낳아 정성으로 키운 아들


그사이 1남 2녀를 낳고 시부모와 함께 생활하던 김정숙 씨 가정에 기막힌 소식이 전해졌다. 1999년 추석 무렵 막내 시동생 부부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4살 조카만 남은 것이다. 이듬해 김정숙 씨 가족에게 온 조카는 순천에 온 첫날부터 김정숙 씨를 ‘엄마’라고 부르며 잘 따랐다. 김정숙 씨는 3개월 차이였던 막내아들과 조카를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같이 보내며 쌍둥이처럼 키웠다. 특히 어린 마음에 상처가 생길까 싶어 자녀들보다 조카에게 더 정성을 기울였다.

 

그런데 조카는 방학을 맞아 서울에 다녀올 때면 순천 생활에 싫증을 냈다. 마침 중학교 진학을 앞둔 시기였기에 김정숙 씨 부부는 서울 이모 집에서 살고 싶다는 조카의 뜻을 받아들였다.

 

“아이에게 가장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겠다는 마음이었어요, 부모니까요. 그런데 막상 서울에 가서도 힘들어 했어요. 안 되겠다 싶어서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전 다시 순천으로 데리고 왔죠.” 서울에서 적응하기 힘들어했던 조카는 성적도 많이 떨어져 있었다. 조카에게 맞는 학교를 찾아 광양까지 가기도 했고, 많은 노력 끝에 고등학교에 진학시킬 수 있었다. 어느 날, 조카는 김정숙 씨 부부의 호적에 이름을 올리고 싶다고 말했다. 진심이 통한 것이다.


“얘가 이제야 우리를 정말 부모로 생각하는구나 싶었어요. 뭘 바라고 한 일은 아니었지만 뿌듯했죠. 감격스러웠고요.” 처음으로 ‘엄마’라고 부른 지 13년 만에 정식 입양된 조카는 고등학교를 잘 마치고 공공기관에 취업해 어엿한 사회인으로 생활하고 있다.

 


가정은 사회의 근간, 최선 다하는 것이 당연해


제2의 인생을 설계 중인 김정숙 씨는 부지런히 치유농업사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다. 시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2009년 사회복지사와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면서 ‘치유’에 관심이 생겼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정신적으로 황폐한 시대잖아요. 그럴수록 치유가 중요할 것 같아요. 가족이 화목해야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고요. 가정이 건강하면 걱정할 일이 없으니까요.”


김정숙 씨는 친정과 시댁에 최선을 다한 지난 세월이 “무조건적인 희생은 아니었다”라고 말한다. 친정 동생들과 자녀들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시아버지를 정성껏 간병하고, 네 자녀가 건강하게 성장한 덕에 자신도 공직 생활을 잘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무엇보다도 가정을 살피면서 공부에 꾸준히 투자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자랑스럽다. 모든 것에 진심을 다하는 김정숙 씨는 가족을, 지역사회를 모두 건강하게 만들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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