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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상

  • 시상명 : 아산상
  • 년도 : 2016
  • 부문 : 의료봉사상
  • 소속(직위) : 박종철신경정신과의원 원장
  • 수상자(단체) : 박종철

"장미는 가시가 있어서 더 아름답다"

 

 

올해로 박종철(83) 원장이 환자를 돌보기 시작한 지 51년, 자신의 이름으로 의원을 개원한 지 41년이 되었다. 한때 의사 7명에 직원이 50명에 달하는 큰 병원을 운영했지만 지금은 규모를 줄여 박 원장과 부원장, 두 사람이 하루 50~60명의 환자를 진료한다. 그래도 여전히 줄이지 않는 것은 그가 참여하는 다양한 봉사활동이다.


박 원장이 세브란스병원에서 의사 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해온 봉사활동 경력은 50년이 넘는다. 뇌전증(간질) 환자들의 모임인 장미회 회장을 비롯, 로즈클럽 인터내셔널 회장, 한국생명의전화와 한국자살예방협회 이사장,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회장 등을 맡으면서 여러 봉사단체를 이끌어왔다.


1933년 전북 정읍에서 8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난 박 원장은 피난시절, 부산에서 연세대 의대에 진학했다. 그 당시 의사라면 내과나 외과 의사를 떠올리던 시절이었지만 그는 특별하게도 신경정신과를 선택했다. 한때 문학도를 꿈꾸었던 풍부한 감수성이 인간의 정신세계를 치료하는 신경정신과 의사의 길을 선택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군의관으로 군복무를 하던 중에는 교수의 권유로 연세대 의대에서 신경정신과 석사와 박사학위를 차례로 취득했다. 박 원장은 연세대 의대 신경정신과 1호 박사로 우리나라 신경정신과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군복무를 마치고 1965년부터 세브란스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진료를 시작했다. 그즈음 미국 출신의 선교사였던 레나 벨 로빈슨(Lenna Belle Robinson) 여사를 만났다. 인천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로빈슨 선교사는 뇌전증을 앓는 여학생을 병원으로 데리고 와서 치료를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뇌전증은 뇌 신경세포가 이상을 일으켜 뇌기능이 일시적으로 마비증상을 나타내는 병으로, 원래는 간질로 불렸으나 병 이름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심해 최근에는 뇌전증으로 바꿔 부르고 있다. 특별한 치료법이 없어서 불치병으로 알려졌으며 ‘천질’이나 ‘귀신들린 병’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마땅한 치료법이 없어서 병에 걸리면 무당을 불러 굿을 할 정도였다.


박 원장은 로빈슨 선교사와의 인연으로 한 달에 한 번씩 인천의 뇌전증 환자들 모임에 참가해 의료 봉사활동을 했다. ‘가시 있는 장미가 아름다운 것처럼, 뇌전증 환자도 훌륭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슬로건으로 시작한 이 진료 봉사 활동은 후에 뇌전증 환자들의 모임인 장미회로 발전한다.


박 원장을 통해 발작에서 자유로워졌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많은 환자들이 모여들었다. 로빈슨 선교사는 뇌전증에 대해 잘 모르거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병원을 찾을 수 없는 환자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전국의 교회와 지역보건센터를 거점으로 무료 순회진료를 이어갔고, 박 원장도 봉사활동에 꾸준히 참여했다. 그리고 1974년 박 원장은 뇌전증 환자들을 체계적으로 진료하기 위해 사단법인 장미회 설립에 주도적으 로 참여했다.


박종철 원장은 1960~1970년대 미국이나 독일 등에서 약품과 재정 지원을 받았던 경험을 되돌려주는 일에도 열심이다. 장미회가 중심이 되어 네팔과 중국 연변, 몽골, 우즈베키스탄 등에 약품 등을 지원해 뇌전증 치료를 돕고 있는 것이다. 특히 네팔과의 인연이 깊다. 박 원 장이 이화여대에서 뇌전증에 대해 강의하며 장미회를 소개한 적이 있는데, 네팔에서 유학 온 여학생이 그 수업을 듣고 졸업 후 본국으로 돌아가 박 원장에게 네팔의 뇌전증 환자를 치료 해달라고 요청해온 것이다.


박 원장은 1985년 네팔에 뇌전증 클리닉을 개원하고 네팔 뇌전증협회를 설립했다. 오지 마을과 불가촉천민 집단 거주지역에는 진료소를 개설해 소외계층에게 뇌전증을 비롯한 의료 서비스를 지원했다. 1993년부터는 네팔 학생을 한국에 초청해 자신의 집에서 숙식을 제공하며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1994년 네팔 국왕으로부터 외국인에게 수여되는 최고훈장을 받았다.


1990년대 중반에는 수해가 발생한 북한 주민을 위해 ‘사랑의 의약품 나누기 운동’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북한 지원에도 관심을 가졌다. 10여 차례 북한을 방문하면서 나진과 평양의 주요 병원에 의료장비를 지원하고, 의학 포럼 등을 개최했다. 2006년에는 북한의 평양종양 연구소의 노후 의료장비를 교체하고 뇌전증보건센터를 설립, 15만 명이 넘는 북한 뇌전증 환자 지원 사업에 참여했다.


박 원장의 봉사활동 여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1976년 한국 최초의 전화상담 단체인 한국생명의전화 창립 이사로 참여, 2015년까지 원장과 이사장 등으로 봉사했으며, 2004년에는 종교·사회 지도자 100명과 함께 한국자살예방협회를 만들어 초대와 2대 이사장을 맡았다.


“대부분 내가 주도적으로 시작한 일들은 아니었습니다. 주변에서 도와달라고 해서 따라갔는데 끝까지 남아있었을 뿐이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겸손해하는 박 원장의 말과 달리 “박 원장이 없었다면 장미회를 비롯한 여러 봉사단체들이 지금껏 유지되기 어려웠다”는 것이 함께 활동한 사람들의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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