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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 이사장 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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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 이사장, 존스홉킨스대 특강 등록일 : 2011.04.04

정몽준 이사장, 존스홉킨스대 특강


‘한국의 새로운 안보 패러다임’ 주제
핵 카드만이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억제하는 유일한 방법 강조

 

정몽준 이사장이 지난 3월 29일 워싱턴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에서 ‘한국의 새로운 안보 패러다임’을 주제로 특강을 하였습니다.

SAIS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정몽준 이사장은 “중국은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도록 북한에 압력을 가할 의향이 없는 것으로 보이고, 미국은 북한과의 아무런 성과 없이 계속되는 협상에 지칠 대로 지친 것 같으며, 지금 상태로라면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 제거는 포기한 채 북핵무기 비확산에 만족하는 정책을 채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면서, 한국의 적극적인 대응책으로서 전술 핵 카드만이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억제하는 유일한 방법일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정몽준 이사장은 “우리는 지난 30년 동안 북한의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중에 있는 모든 방법을 사용해보았지만 실패했고, 현상유지는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아니며, 우리는 지금 당장 이 문제에 대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강연 번역문] 한국의 새로운 안보 패러다임

감사합니다. 도란 교수님.

그리고 앞으로 저를 MJ라 불러 주시면 좋겠습니다. 세상에는 유명한 여러 명의 MJ가 있습니다. 믹 재거(Mick Jagger),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 그리고 매직 존슨(Magic Johnson)까지. 몇 개월 전에 저는 정의론 강의로 유명한 하버드 대학의 마이클 조세프 샌델 교수님을 한국에 초청한 일이 있었습니다. 반갑게도 센델 교수님도 MJ 시더군요.

저는 서울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리고 ROTC 장교로 복무한 뒤에 MIT Sloan 경영대학원에서 공부했습니다. 그 후에는 몇 년 동안 한국 내의 조선 회사에서 근무했지요. 그러다 제가 정말로 해야 할 일은 정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국회의원에 출마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려면 국제정치를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존스홉킨스 대학의 국제관계대학원(SAIS)에 오게 된 이유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정치인이 박사학위를 따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SAIS에서 공부하면서 저는 세계를 바라보는 보다 넓은 시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SAIS에서 받은 교육은 20년에 걸친 저의 정치인생에 매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믿습니다. 

이 곳에 다시 오게 돼서 매우 기쁩니다.

오늘 여러분들과 한반도의 안보현황에 대한 저의 생각을 나눌 수 있어서 정말 영광입니다.

우선 저의 제 이야기로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한반도의 남쪽에 위치한 항만도시, 부산에서 태어났습니다. 수 백만 명의 사람들이 북한군을 피해 부산을 왔고, 저희 가족 역시 피난 중이었습니다. 우리 나라는 말 그대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있었습니다. 

미국이 UN군의 기치아래 한국을 돕지 않았다면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설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태어났을 적에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80달러에 불과했습니다. 한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였습니다. 그러나 이제(2010년 자료에 의하면) 한국은 세계 7위의 수출국가이자 세계 9위의 무역국가가 되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로 한미동맹이 제공한 안보우산 속에서 한국은 이러한 성공을 이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미국이 한국을 방치할 때에는 어김없이 한국의 안보와 국가존망에 큰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1905년, 미국의 육군 장관 태프트와 일본의 가쓰라 총리가 체결한 테프트-가쓰라 밀약이 대표적인 사례인데요. 이 밀약에 의해 한국의 운명이 갈리게 됩니다.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이 밀약을 체결하면서 일본의 한국 식민지화에 미국이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1945년, 미국은 일본을 패망시켰고 한국을 해방시켰습니다. 1949년에 중국 공산당은 국민당을 물리치고 광활한 중국 대륙을 공산화시켰습니다. 공산주의가 전 세계를 휩쓸어 버릴 것 같은 기세였지요. 이 때 많은 남한의 지식인들이 월북을 했습니다.

같은 해에 미군은 남한에서 철수하였습니다. 1950년 1월 딘 애치슨(Dean Acheson) 미 국무장관은 한국을 미국의 ‘방위선(defense perimeter)’에서 제외하는 선언을 합니다. 공산주의세력은 이 선언을 남한을 침공해도 좋다는 신호로 해석했습니다. 5개월 뒤 북한은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등에 엎고 남한에 대한 전면전을 감행하였습니다.

미국은 1953년 휴전 이후 체결한 한미방위동맹조약을 근거로 한반도 문제에 관여해 왔습니다. 그 이후로 한반도와 동북아지역은 전례 없는 평화와 번영을 누려왔습니다. 

그런데 냉전이 종식되고 한국의 산업화와 민주화가 급속히 진전되면서 한미동맹의 기반이 잠식되기 시작했습니다. 한미동맹에 대한 대중의 지지도 약해졌지요.

일단 미국에 대한 한국 대중의 인식이 급격히 달라졌습니다. 한국전쟁을 겪지 않고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라난 젊은 세대들이 미국의 역할에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젊은 세대들의 눈에 비친 미국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조국을 구해준 동맹국이 아닌 한국내정에 간섭하는 강대국일 뿐이었습니다. 

물론 기성세대 모두가 미국을 좋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기성세대 중에는 한국전쟁 중에 UN군에게 소중한 가족과 친구들을 잃은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급격한 산업화와 민주화에 희생양이 되었다고 느낍니다. 전쟁 이후에 생겨난 군사정권들에 대한 책임이 미국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한국의 중도 좌파정권은 지난 10년간 북한에게 “햇볕정책”을 시도했습니다. 햇볕정책의 논리는 지나가는 나그네의 코트를 벗기기 위해 바람과 해가 내기하는 이솝우화 이야기의 논리를 그대로 따옵니다. 이 이야기에서 바람은 차가운 북풍으로 나그네의 외투를 벗겨보려 하지만 그럴수록 남자는 코트를 더 꼭 여몄습니다. 반면 해가 따뜻한 햇볕을 비추자 남자는 스스로 옷을 벗기 시작했습니다. 

햇볕정책은 북한에게 압박을 가하는 것보다 경제적 도움을 주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는 가정하에 만들어졌습니다. 조지 캐넌(George Kennan)은 ‘장문의 정세분석전문(Long Telegram)’을 통해서 미국인들에게 공산주의체제의 본질에 경고한바 있지만, 한국정부는 북한에게 잘해주면 북한도 한국을 환대하게 될 것(Hospitality would accumulate)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햇볕정책의 또 다른 가정은 북한의 지도자가 이성적이며 합리적이라는 것입니다. 올브라이트 (Madeline Albright) 전 미 국무장관은 김정일과의 면담 후 김정일이 “좋은 경청자이고 좋은 대담자(good listener, a good interlocutor)”이며 “매우 명확하며 실용적”인 사람이라고 평했습니다. 고이즈미(Koizumi) 전 일본 총리는 김정일이 “온화하며 쾌활하다, 재치있다” 라고 말한바 있고요. 김정일에 대한 이러한 평은 햇볕정책의 기반을 더 강화시켰습니다.

1992년 한국은 중국과 외교관계를 정상화하면서 한중 외교관계의 허니문 시기를 열게 됩니다. 햇볕정책 역시 강화되고요. 2004년, 한국이 중국과 관계 정상화 한 지 불과 12년 만에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한국의 제1의 교역 상대국이 되었습니다. 2010년도, 양국의 교역규모는 2,000억 달러를 돌파했는데 이것은 한미교역량과 한일교역량을 합친 것보다 더 큰 규모입니다. 현재 중국과 한국 사이를 오가는 항공편은 매일 무려 120 편이나 됩니다.

햇볕정책에 대한 한국정부의 믿음은 2006년도 북한의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발사 후에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한국에 불기 시작한 중국 열풍도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동북공정’ 논란을 겪으면서 중국에 대한 한국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이 ‘동북공정’ 프로젝트에서 만주와 한반도 북부를 점령하였던 고구려와 발해가 중국의 고대국가였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2007년에 보수진영의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북한과 중국에 대한 한국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 당시 북한에게 더 이상 끌려 다니지 않을 것을 약속했습니다. 한국 보수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이명박 대통령도 햇볕정책은 일방적인 퍼주기이며 북한에서는 고마워 하지조차 않는 정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햇볕정책은 북한에 어떤 의미 있는 변화도 가져오지 못한 실패한 정책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보수정권이 들어선 후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햇볕정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새 정부의 대북정책을 수구적이라고 비판하였습니다.

2008년 4월 17일, 방미 중이었던 이 대통령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금지 조치를 해제하겠다고 발표하였습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금지 조치는 2003년 광우병에 대한 공포감에서 취한 조치였습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금지 조치 해제 발표와 동시에 미국산 쇠고기가 치명적인 광우병을 일으킨다는 악성루머가 퍼졌습니다. 반미감정을 가졌던 사람들과 선거패배에 불만을 품었던 사람들은 정부의 결정에 항의하기 시작했습니다. 2008년 여름까지 이어졌던 대규모 집회는 새로 취임한 정부를 흔들어댔습니다.

한국은 2010년 중요한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지난 3월 26일은 한국 해군 초계함 ‘천안함’이 침몰된 지 1주년이 된 날이었습니다. 천안함 침몰 참사는 북한 정권의 폭력적이고 호전적인 면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습니다. 

처음에 한국 대중들은 북한이 범인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한국, 미국, 영국, 호주, 스웨덴을 포함한 국제 전문가 팀의 조사 후 천안함 침몰은 북한 잠수함의 어뢰발사에 의한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발표 직후 이루어진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한국인의 70% 정도가 정부의 발표를 믿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10년 말 북한이 대규모의 우라늄 농축시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11월 23일 북한은 연평도에 포격을 가했습니다.

이것은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로 작용했습니다. 한국여론은 극적으로 북한에 대해 등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북한에 제재를 가하거나 비난하기를 거부한 중국에게도 한국 여론은 등을 돌렸습니다.

햇볕정책 지지자들은 햇볕정책의 논리를 이솝우화를 통해 설명했었습니다. 하지만 남북관계에 대한 보다 적절한 비유는 또 다른 이솝우화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시내를 건너가려고 애쓰던 전갈이 개구리에게 자신을 업어서 시내를 건너가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하지만 개구리는 전갈을 등에 업고 시내를 건너면 전갈이 자신을 찔러 죽일 것이라며 거절했습니다. 전갈은 “내가 왜 그렇게 하겠어? 네가 죽으면 나도 죽는데” 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개구리는 전갈을 업고 헤엄쳐 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시내 중간에 이르자 전갈은 개구리를 찔러 죽이고 맙니다. 둘 다 물에 빠져 죽어갈 때 개구리가 소리쳤습니다. “너 왜 그랬어? 우리 둘 다 죽게 만들었잖아!” 전갈이 대답했습니다. “나도 어쩔 수 없어. 내 본능이야.”

지금 보시는 여론조사 결과는 주요안보 이슈에 대한 한국인의 시각 변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여론조사 결과들은 한국 국민들이 한국안보 상황의 심각성을 다시금 깨닫고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한국은 지난 십여 년간 북한에 대해 햇볕정책을 추진하면서 중국이 더 책임 있는 이해상관자(stakeholder)가 되어 줄 것을 기대했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한국을 둘러싼 동북 아시아 안보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 악화된 상태입니다. 

노무현 정부는 2003년 취임 이후 바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노 대통령은 “저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지만 전쟁 시에는 군에 대한 명령권 조차도 갖지 못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동시에 전쟁을 치르면서 큰 부담을 안고 있던 미국은 노무현 대통령의 이런 발언에 반색했습니다. 일부 보도에 의하면 도널드 럼스펠드(Donald Rumsfeld) 미 국방 장관은 노 대통령에게 “이미 열린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라고 얘기했다고 합니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위한 회담은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미국은 전작권 전환 날짜를 2009년으로 잡았지만 뒤늦게 불안해진 노무현 정부는 지연을 요청했습니다. 두 나라는 이전 날짜를 2012년으로 재조정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미국이 한반도에서 철수 할 때마다 동북아시아의 힘의 균형이 깨졌습니다. 2012년에 한국과 미국에서는 대통령 선거가 있습니다. 북한은 2012년은 강성대국 완성의 해가 될 것이라고 단언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이명박 정부는 전시작전통제권을 2012년에서 2015년으로 연기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전작권 전환을 연기한 또 다른 목적은 또한 북한이 잘못된 상황 판단을 할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입니다. 많은 한국인들이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시작전통제권을 전환하려는 것은 잘못된 발상에서 비롯된 무책임하고 위험하고 폐기시켜야 할 정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라시아 대륙의 엄청난 지정학(geopolitics)을 고려해보면, 대한민국처럼 대륙의 끝에 위치한 작은 나라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남아있다는 사실은 기적 중에 기적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저를 포함한 일부는 한반도에 전술 핵무기의 재도입을 요구하기도 하는 것이지요. 전술핵무기는 1993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이후에 자발적으로 철수했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분명히 이 선언을 위반하였습니다.

중국은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도록 북한에 압력을 가할 의향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은 또한 북한의 붕괴를 원하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미국은 북한과의 아무런 성과 없이 계속되는 협상에 지칠 대로 지친 것 같습니다. 지금 상태로라면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 제거는 포기한 채 북핵무기 비확산에 만족하는 정책을 채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듭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핵 카드(counter-nuclear force)만이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억제 시키는 유일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은 북한에게 대량 살상 무기를 개발하는 구실을 제공할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북한은 사실상 이미 핵 보유국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해결책이 동북아시아에서 군비경쟁을 부추길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어떤 시나리오가 펼쳐지던 간에 중국은 유일한 핵무기 보유국으로 남아있을지 아니면 동북아 전체가 핵을 보유하도록 허락할지 궁극적인 선택을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30년 동안 북한의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중에 있는 모든 방법을 사용해보았지만 실패했습니다. “현상유지”는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이 문제에 대한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유엔세계식량계획(WFP)은 최근 북한의 심각한 식량난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북한은 다시 한번 식량원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북한에게 기꺼이 도움과 원조를 줄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우리를 위협하는 상황 속에서 도움을 줄 수는 없습니다. 어떤 정책이 선의에 기반하고 있다고 해서 효과적(effective)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 정책으로 인해 발생할 결과를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 국민들은 지진과 해일, 그리고 잇따른 방사능 유출로 고통을 겪고 있는 일본 국민들에게 애도를 표하고 깊은 연민을 느끼고 있습니다. 평화롭고 번창하는 일본은 동북아시아의 지정학적인 균형을 위해 꼭 필요합니다.

한국은 중국과의 관계를 유지함과 동시에 더욱 발전시켜야 합니다. 현재 중국과의 관계는 ‘전략적 동반자’(Strategic Partnership)로 정의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주로 경제적 이해관계에 그치고 있을 뿐입니다. 이제 중국과의 관계는 평화, 인권, 그리고 국제법의 준수 등 공통적인 가치를 중심으로 한 “가치동맹(alliance of values)”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현재 한국과 중국, 일본 간에 세 국가를 잇는 해저 터널을 건설하기 위한 회담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동북아시아 공동체 건설은 더 이상 허황된 꿈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경제적으로 깊이 얽혀 있으며 대중문화를 통해 지역 공동의 문화권을 형성해 가고 있습니다. 이제 서로 서로가 공통된 이상, 가치, 그리고 관습을 통해 밀접하게 연결된다면 동북아시아는 지역, 더 나아가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요람이 될 것입니다.

한미동맹은 한반도와 지역의 평화와 안보유지를 위한 핵심적 역할을 담당해 왔습니다. 한미동맹은 전쟁 중에 형성되었기 때문에 “혈맹”이라 불렸었습니다. 지금 두 국가는 시장경제체제와 자유민주주의 등의 공통된 가치와 관습을 공유하고 있지요. 한미자유무역협정이 미국 의회의 비준동의를 받는다면 한미관계는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해 나가게 될 것입니다.

2012년 4월에 한국은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를 개최합니다. 첫 정상회의는 2010년 4월 오바마 대통령에 의해 개최되었으며, “핵 없는 세계”를 향한 첫 걸음을 떼는 것에 의의를 두었습니다. 우리는 이 정상회의를 통해 중국, 인도, 파키스탄이 비핵화를 향한 세계의 노력에 동참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회의는 중국과 미국 간의 21세기형 START 조약을 시작할 수 있는 결정적 순간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통일에 대해 말씀 드리고 마무리 짓겠습니다. 한국의 통일은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올 것입니다. 통일은 마치 지진과 같습니다. 반드시 일어날 것을 알지만 언제 어떻게 일어날 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통일의 비용과 대가에 대해 걱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오직 자유뿐입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자유를 주게 된다면, 오랜 시간 고통 당해 왔지만 끈질기게 버텨온 북한 주민들이 스스로를 추스르는 것 그 이상의 일들을 해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는 여러분에게 이 이야기를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유의 힘이 정말 강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더 잘 알고 계실 테니까요.

우리는 북한에게 자유를 주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러한 노력에 동참해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감사합니다.


[강연 원문]

“Korea’s New Security Paradigm”

Professor Doran, thank you very much for your kind introduction. 

By the way, please call me “MJ.” Actually, there are many MJs in the world: Mick Jagger, Michael Jordan, and Magic Johnson. A few months ago, I invited to Korea Professor Michael Joseph Sandel of Harvard University, famous for his lecture on justice. I was glad to learn that he is also MJ. 

Let me tell you about myself.

I studied economics in Korea. Then, I served in the army as an officer. Afterwards I studied at MIT’s Sloan School of Management. For the next several years I worked at a shipbuilding company in Korea.

However, I felt that my true calling  was in politics. I wanted to run for the National Assembly. So, I decided to study international relations. That is how I came to SAIS. 

Some told me  that, for a politician, it was a waste of time  to get a Ph.D. But, SAIS education  opened my eyes  to the world. The training that I received at SAIS has proven invaluable. I believe I made the right decision. 

Today, it is great to be back!

It is a great pleasure and an honor for me to share with you my thoughts on the security situation around the Korean peninsula.

Please allow me to start my address on a personal note.

I was born in 1951 at the height of the Korean War in Busan, a port city in the south of the Korean Peninsula. 

Like millions of others, my family was fleeing the invading North Korean army. 

My country was literally on the verge of extinction.

The only reason that I am standing before you today is because the United States came to the rescue of South Korea under the banner of the United Nations. 

At the time of my birth, South Korea’s per capita income was around US $80. It was the poorest country in the world. As of 2010, South Korea ranks as the 7th largest exporter and the 9th largest tradingnation in the world.

Such success would hardly have been possible without the security blanket provided by the Korea-US alliance since the end of the Korean War. 

Korea’s National Security and the Role of the U.S.

History shows that when the U.S. abandoned Korea, the latter’s security and existence was threatened. The “Taft-Katsura Memorandum” of 1905, a secret conversation between U.S. Secretary of War Taft and Japanese Prime Minister Katsura sealed Korea’s fate. Fresh from victory in the Russo-Japanese War, Japan took this as a clear sign that the U.S. would not object to the Japanese colonization of Korea. 

In 1945, by defeating Japan the U.S. literally liberated Korea. In 1949, the Chinese Communists defeated the Nationalists and communized the vast land mass called China. Communism seemed to be sweeping the world. In South Korea, intellectuals were defecting to the North.

That same year, the U.S. forces withdrew from South Korea. In January 1950, U.S. Secretary of State, Dean Acheson, announced that Korea was outside the US “defense perimeter.” 

It was interpreted by the Communist bloc as an open invitation to take over South Korea. Five months later, the North launched a full scale invasion against the South with the aid of the Soviet Union and China.

The “Korea-U.S. Mutual Defense Treaty” signed after the armistice in 1953, was designed to keep the U.S. engaged in peninsular affairs. The Korean peninsula as well as the region has since enjoyed a period of unparalleled peace and prosperity. 

Sunshine Policy and China’s Rise

However, South Korea’s economic development, democratization and the end of the Cold War began to erode some of the rationale as well as the public support for the alliance. 

The South Korean public’s perception of the US underwent radical changes. A part of the younger generation who grew up in an affluent country with no memory of the Korean War began questioning the role of the U.S. To them, the U.S. was no longer an ally who saved the country from the brink of extinction but a foreign power meddling in inter-Korean affairs. 

During the past decade, the center-left governments in South Korea began experimenting with the “Sunshine policy” towards North Korea. The rationale for the “Sunshine Policy” was based on Aesop’s fable about the wind and the sun competing to force a man to take off his coat. The wind tried to blow the coat off the man. However, the wind failed because the man held his coat tighter. The sun then shined its warmth and the man voluntarily took off his coat. 

The assumption of the Sunshine policy was that rather than applying pressure, economic aid would change North Korea. Eve though George Kennan warned the whole world about the nature of Communism in his famous “Long Telegram,” South Korea assumed that “hospitality would accumulate” in North Korea.

The Sunshine Policy also assumed that North Korea’s leaders were rational and reasonable. After her meeting with Kim Jung Il, former U.S. Secretary of State, Madeline Albright said that he was “a very good listener, a good interlocutor” as well as “very decisive and very practical.” Former Japanese Prime Minister Koizumi found Kim Jong Il “gentle, cheerful, … and … quick-witted.” Such comments only re-enforced the Sunshine policy. 

Normalization of diplomatic relations with China in 1992 not only ushered in a honeymoon period in Sino-Korean relations, but also strengthened the Sunshine Policy. In 2004, only 12 years after normalization, China replaced the United States as South Korea’s largest trading partner. The bilateral trade reached US 200 billion dollars last year. It is greater than Korea-U.S. and Korea-Japan trade combined. Today, there are more than 120 daily flights between South Korea and China.

Even in the face of North Korea’s nuclear test in 2006 or the launch of long range missiles, the South Korean government’s faith in the Sunshine Policy was not shaken.

South Korea’s infatuation with China could not easily be dampened either. However, a history interpretation controversy began to turn South Korea’s public opinion against China. China claimed that the various ancient Korean Kingdoms that dominated Manchuria and northern Korean peninsula were “Chinese.” 

With the election of the conservative Lee Myung-bak government in 2007 South Korean attitude towards North Korea and China began to change. As a candidate, Lee Myung-bak pledged that his North Korea policy would no longer be dragged by the North. Like many conservatives in South Korea, he regarded the “Sunshine policy” as a one-sided gesture hardly appreciated by the North. Nor did it bring about any meaningful change in North Korea. 

However, even after the inauguration of the conservative government, a significant segment of the population refused to give up on the Sunshine Policy. They criticized the new government’s North Korea policy as “reactionary.” 

In April 2008, during a state visit to the U.S., President Lee announced that South Korea would lift the ban on U.S. beef imports. The ban had been in effect since 2003 in fear of the “mad cow disease.” Malicious rumors began to spread that eating U.S. beef causes the fatal mad cow disease. Many who held anti-American sentiments as well as those disgruntled by the inauguration of conservative government began to demonstrate on the streets. Massive rallies rocked the new government / throughout the summer of 2008.

The turning point came last year, 2010. Last Saturday, March 26, marked the first anniversary of the sinking of the South Korean navy vessel, the Cheonan. The dastardly act demonstrated once again the violent and belligerent nature of the North Korean regime. 

However, a large segment of the South Korean public refused to believe that North Korea was the culprit. An investigation by an international team of experts from South Korea, United States, United Kingdom, Australia, and Sweden concluded that the ship was sunk by a torpedo launched by a North Korean submarine. However, a public survey conducted soon after the release of the report showed that nearly 70 percent of the Korean people did not believe the government’s report. 

In the latter part of last year, it was revealed that North Korea had an extensive uranium enrichment facility. Next day North Korea bombarded the South Korean island of Yeonpyeong near the border. 

This proved to be the tipping point. South Korean public opinion began to turn against North Korea dramatically. 

China’s refusal to restrain or condemn North Korea turned South Korean public opinion against China as well. 

The “Sunshine Policy” based its rationale on an Aesop’s fable. However, a more relevant analogy for South-North relations may be another Aesop’s fable. A scorpion was trying to cross a stream. So, he asked a frog to carry him across the stream on his back. But the frog refused, saying “If I carry you across, you will sting me and I will die.” The scorpion replied, “Why would I do that? If I sting you, I will drown, too!” Convinced, the frog began swimming across the stream with the scorpion on his back. However, in mid-stream, the scorpion stung the frog. As they were both drowning, the frog cried out, “Why did you do it? Now you have killed both of us!” The scorpion replied, “I can’t help it. It is my nature.” 

Let us look at some of the survey results that show the changes in South Korean public opinion on key national security issues. 

These poll results show South Koreans reawakening to the reality of the nation’s security issues. After a decade of Sunshine policy towards North Korea and clinging to the hope that China would become a more “responsible stakeholder,” South Korea finds itself in a tough neighborhood once again. 

Soon after its inauguration in 2003, the previous Roh Mu-hyun government started a review of transferring the War time Operation Command and Control from the U.S. to South Korea. President Roh said “I am the President of Korea, but I do not even have the power to command my forces in war.” 

Already suffering under the heavy burden of conducting two wars in Iraq and Afghanistan, the U.S. was only too happy to oblige. U.S. Secretary of Defense, Donald Rumseld, reportedly said to President Roh, “Mr. President, you are knocking on an open door!” 
The talks for the Opcon transfer proceeded rapidly. The U.S. set the transfer date to 2009. The Roh government / became alarmed and asked for a delay. The compromise was 2012. 

In 2012, South Korea and the U.S. will hold presidential elections. North Korea has vowed that 2012 will be the opening of a “Strong and Prosperous nation” (gangseongdaeguk.)

In view of several important factors affecting Korea’s security, the South Korean government asked / for a delay in the transfer of wartime operational command from 2012 to 2015. It was to minimize the possibility of miscalculation by the North Korean regime. 

Many in South Korea feel that as long as North Korea possesses nuclear weapons, Opcon transfer is an ill-conceived, irresponsible and dangerous policy that needs to be discarded.

If we look at the sheer magnitude of the geopolitics of the vast Eurasian continent, the fact that a small country like South Korea located at the tip of the continent remains a free democracy is a miracle, a miracle in progress. 

It is also the reason why I proposed the re-introduction of tactical nuclear weapons into the South. The weapons were voluntarily withdrawn after the “Declaration on the 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in 1993. North Korea has clearly violated the agreement since then. 

China seems unwilling to pressure North Korea to give up its nuclear program. It does not want North Korea to collapse, either. 

To make things worse, the U.S. seems to be exhausted from the endless and fruitless negotiations with North Korea. It is now perhaps willing to settle for non-proliferation rather than complete elimination of North Korean nuclear weapons. 

The threat of a counter-nuclear force may be the only thing that will discourage North Korea from developing its nuclear arsenal. Some say that this will only give North Korea the excuse to develop WMDs. However, North Korea does not need an excuse and already is a de facto nuclear power. Others argue that this will start an arms race in Northeast Asia. However, in any case, it will force China to make the ultimate choice; to stay as the sole nuclear power in East Asia, or to let the entire region become nuclear. 

We have tried every mean at our disposal to denuclearize North Korea for the past 30 years. They have all failed. Maintaining the status quo is not an option. Now is the time to act. 

North Korea is once again asking for food aid. The World Food Program has just released a report on significant food shortages in North Korea. 

South Korea is willing and ready to provide aid to the North. However, we are not prepared to do that under threat. For a policy to be effective we must look at the consequences as well. 

We, the Korean people deeply sympathize with the plight of the Japanese people. A peaceful and prosperous Japan is vital for the region’s geo-strategic balance. 

We, South Korea needs to continue to upgrade our relationship with China. Currently, the bilateral relationship is officially characterized as a “Strategic Partnership.” However, beyond the rhetoric, the relationship is still mostly based on economic interest. The relationship must now move to a new dimension to become an “alliance of values” based on shared values such as peace, human rights, and respect for international law. 

Currently, there are talks between South Korea, China and Japan to build under-sea tunnels to link the three countries physically. The Northeast Asian community is not a mere dream. We are already deeply linked economically. Popular culture is creating a new common cultural sphere in the region. 

If we can link ourselves through common ideals, values and institutions, Northeast Asia will become a bastion of peace and prosperity not only for the region but for the world. 

Korea-U.S. alliance continues to be the linchpin of peace and security on the Korean peninsula and the region. It was forged in battles and called a “blood alliance.” Now it is based on shared values and institutions of liberal democracy and free market economy. When the Korea-U.S. FTA is ratified by the US Congress, the bilateral relationship will be elevated to a new height. 

In April 2012, South Korea will host the 2ndNuclearSecuritySummit. The first summit was convened in April 2010 by President Obama as the first step towards a “nuclear weapons free world”. We hope that the summit will become an occasion to persuade China, India and Pakistan to join in the global efforts to reduce and eliminate nuclear weapons. 

This should be the defining moment to start the 21st century version of the START treaty between China and the U.S.

I would like to conclude by reflecting on Korean unification. Reunification of Korea will come whether we want it or not. Korean reunification is like an earthquake. We know it will come. We just do not know when and how. 

Today, some people worry about the cost of reunification. However, all that the North Korean people need is freedom. Once we give them freedom, the long-suffering but strong and resilient people of North Korea will be more than able to take care of themselves. Of course, I do not need to tell you this. We all know the power of freedom. 

Let us give North Korea freedom. 

Today, I ask all of you to join us in these historical endeavors.

Thank you very mu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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