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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상

  • 시상명 : 아산상
  • 년도 : 2015
  • 부문 : 의료봉사상
  • 소속(직위) : 우간다 마케레레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
  • 수상자(단체) : 유덕종

우간다 의사들의 스승

 

 

1992년부터 우간다에서 의사로 활동하고 있는 유덕종(56) 마케레레(Makerere) 의대 명예교수는 한국에도, 우간다에도 집이 없다. 우간다에서는 일곱 차례 이사했는데, 모두 월세였다.

 

“가치관을 어디에 두느냐가 차이를 만들지 않을까요? 제 의대 동기생들 중 대학에 남은 사람들은 모두 정교수이고, 대학병원장도 있습니다. 그들과 비교한다면 자격지심이 생길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저는 제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어서 굉장히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아직까지 옷과 음식이 떨어져본 적이 없는데,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누구보다 높다는 유 교수의 ‘행복지수’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머니를 여읜 유 교수는 우울한 성장기를 보냈다. 어머니에게 못 해드린 효를 아버지에게는 전하고 싶어서 아버지의 바람을 좇아 의대에 진학했다. 대학에 다니면서 성 프란치스코 전기를 접하고 어려운 이를 도우며 살기로 결심한 그는 그때부터 아프리카를 가슴속에 품었다.

 

유 교수는 1986년 내과 레지던트 시절 결혼식을 올렸다. 고등학교 가정교사였던 아내는 결혼 이듬해 경북대 간호학과에 입학해 졸업하는데, 이는 아프리카에서의 진료를 꿈꾸는 남편을 위한 준비 작업이었다.

 

국내에서의 안락한 생활을 버리고 아프리카를 선택하는 의사는 많지 않았다. 제1기 KOICA 정부파견의사에는 3명만이 지원해 선발되었다. 다른 의사 2명은 스와질랜드와 나미비아에 파견되었으나 한 명은 2년의 계약기간이 끝나자 재계약을 하지 않았고, 다른 한 명은 1년을 못 채우고 중도 귀국하였다. 2007년까지 유지된 정부파견의사 중에서 유 교수처럼 오랜 기간 아프리카에서 활동한 의사는 아무도 없다.

 

그의 근무지인 캄팔라의 물라고(Mulago)병원은 마케레레대학의 부속병원으로 1500병상을 운영하고 있다. 마케레레대학은 동부아프리카의 최고 명문대학으로 꼽힌다. 최고 대학의 최고 부속병원이었지만 환경은 몹시 열악했다. 병상 가동률은 100%가 넘었다. 환자가 많을 때는 침대뿐만 아니라 병원 바닥에도 환자들이 누워있기 때문이다. 인구 60%가 의사 한 번 만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현실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우간다에서 그의 활동은 물라고병원 진료와 마케레레의대 강의로 나뉜다. 보통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근무하면서 화요일 오전에는 외래환자를 보았다. 오전과 오후 회진 등에서 진료한 입원환자는 하루 40명선이었다.

 

나머지 시간에는 의대에서 강의를 했다. 의대의 한 학년이 100명가량 되고, 23년 동안 강의를 했으니까 그가 양성한 우간다 의사가 2천 명쯤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우간다에서 40세 미만의 젊은 의사는 대부분 유덕종 교수 제자’라는 지적은 괜한 말이 아닌 것이다. 우간다 보건부의 전임 장관과 현재 차관이 그의 제자여서 현지 의료기반 구축에 기여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위기도 있었다. 1996년 에이즈 환자의 조직을 검사하다가 주사바늘에 왼손 검지를 찔렸다. 이런 경우 감염 확률이 0.3%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았지만 ‘손가락을 잘라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다행히 별 탈 없이 지나갔다. 가장 큰 고비는 초등학교 2학년이던 큰딸이 뇌수막염에 걸렸을 때였다. 한국에서였으면 아무 병도 아니었을 텐데 우간다에서는 손쓸 방법이 없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상태가 도저히 소생 불가능해 보였다. 큰딸이 3개월 만에 살아난 것은 기적 말고는 달리 부를 말이 없었다.

 

큰딸의 병을 겪으며 우간다의 수도인 캄팔라에 쓸 만한 병원을 세울 구상을 했다. 기업인과 선교단체 등의 후원을 받아 2002년 베데스다클리닉을 개원하도록 힘을 보탰다. 캄팔라 고아원 어린이들을 무료로 치료하는 베데스다클리닉에는 현재 한국인 의사 7명과 약사 1명이 일하고 있다.

 

“가끔 저를 ‘우간다의 슈바이처’라고 하는데, 슈바이처 박사는 아프리카 서부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우간다 사람들은 아무도 슈바이처를 몰라요. (웃음). 저는 그저 제가 일해야 할 곳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살고자 했을 뿐입니다. 우리 부부에게는 2009년에 취득한 우간다 영주권이 있어요. 은퇴해도 한국에 오지 않고 내 영혼의 고향인 우간다에서 살 겁니다.”

 

그는 상금 1억 원은 모두 우간다의 병원과 음악학교 사업에 기부하기로 가족들과 의견을 모았다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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