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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담인 2013년 '정담회' 이끈 임원 5명의 편지 한상원 등

정담회와 함께한 2013년은 힘든 만큼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조용히 맡은 일과 공부를 하면서 보내던 2학년 생활을 마무리 할 즈음, 아산재단 장학생 모임인 정담회의 회장을 맡게 되었다. 처음 활동 제안을 받았을 때에는 고민이 많았다. 과연 내가 아산장학생의 이름에 걸맞게 모임을 잘 이끌어 나갈 수 있을까? 그리고 신학도로서 술을 마시지 않는 내가 대학생 모임의 회장을 잘 해낼 수 있을까? 그러나 이러한 걱정과 두려움에 뒤로 물러서기보다는, 부족한 부분은 겸허히 인정하며 도움을 청하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부분을 통해 그 도움을 갚으리라는 각오로 2013년을 좌우할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까마득히 어린 신입 회장으로서 동문 선배님들을 만나는 신년회로부터, 졸업하는 선배님들을 축하해드리는 졸업생 환송회, 그리고 새로이 정담회에 들어온 신입 장학생들을 환영해주는 장학증서 수여식까지! 임기가 시작된 이후 3개월은 눈코 뜰 새 없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장학증서 수여식이었다. 수여식을 준비하면서 장애로 인해 행사에 참여하기 어려운 다솜장학생의 활동을 보조해줄 파트너 장학생을 찾아서 서로를 연결해 주었다. 처음 만났는데도 두 학생은 금세 친해져서 수여식이 끝난 후 진행된 1박2일의 환영식에도 함께 참여하여 끝까지 남아주어서 정말 고마웠다. 앞으로 새로 임원이 될 후배들도 이와 같은 배려의 마음을 계속 이어갔으면 한다.

어느덧 1학기가 시작되고, 경기도 안성의 신생보육원에서 진행된 봉사활동으로 학기 중 첫 모임을 시작했다. 40명이라는 적지 않은 숫자가 방문했기에 시설 전체에 대한 대청소를 진행할 수 있었는데, 특히 벽돌을 나르며 화단을 보수하는 고된 일을 맡게 된 장학생들이 불평하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봉사를 해줘서 정말 고맙고 자랑스러웠다. 또한 북서울 꿈의 숲에서 진행된 봄소풍에서는 봄답지 않은 무더운 날씨에도 많은 장학생들이 참여해 주어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여름방학 동안에는 2회에 걸친 ‘만남의 장’ 행사(산업체 견학), 농활, MT 등의 공식적인 활동과 임원 수련회까지 많은 행사들이 연달아 진행되어 2개월 내내 정담과 함께 생활했다. 특히 울산에서 진행된 만남의 장 행사에서는 정주영 아산재단 설립자님께서 이룩한 업적들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소유한 것을 사회에 환원하여 소외된 이웃과 함께 나누고자 하셨던 설립자님의 굳은 신념을 배울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정담회 회원들 또한 설립자님의 정신을 이어가기 위하여, 강원도 홍천에 위치한 무궁화마을을 방문하여 3박4일간의 봉사활동을 진행하였다. 대부분 도시에서 자란 우리들이 많은 도움이 되어 드릴 수 있을지, 행여 폐를 끼치지나 않을까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무더운 날씨에도 열심히 맡은 일을 다 하고, 저녁에는 서로를 알아가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특히 마지막 밤, 장학생 모두가 합심하여 마을 잔치를 열어드렸을 때 어르신들께서 무척 고마워 해주시고, 함께 나와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면서 즐거워하셔서 정말 보람을 느끼고 감사했다.

동문 체육대회와 송년회, 그리고 신년회까지 이어지는 2학기의 활동을 마무리할 즈음, 내 임기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신입 임원들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마지막 행사, 졸업생 환송회를 앞둔 이 시점에서 지난 한 해를 다시 돌아보면 즐겁고, 고마웠던 일들도 많았지만 개인적인 부족함으로 인하여 힘들고, 난감했던 경험들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도 지난 한 해 동안 모든 행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부족함을 채워준 많은 사람들 덕분이다.
언제나 나의 부족한 점을 묵묵히 채워준 부회장 민혜 누나와 든든한 맏형 식주 형, 그리고 예산을 물샐틈없이 꼼꼼히 챙겨준 두 명의 총무 정은 누나와 현아, 그리고 직책을 넘어 다양한 역할을 담당하며 특히 힘들 때마다 큰 위로가 돼준 현민이와 성환이, 지현이! 정말 고마웠다는 말을 이 자리를 빌려 꼭 전하고 싶다.

앞으로 이어질 정담회 활동에서 신입 임원들도 이와 같이 서로를 의지해가며 멋진 한 해를 만들어 나가기를 기원한다.
끝으로 저희에게 장학금을 지원해주시고, 또한 이와 같이 소중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신 아산재단과 정몽준 이사장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나는 잠실나루역에서 내려 아산재단이 있는 서울아산병원으로 향할 때마다 항상 가슴이 벅차오른다. 2012년 아산장학생으로 처음 선발되어 장학증서 수여식에 가던 첫날부터 늘 그랬다. 나는 지금도 아산장학생으로 선발된 순간을 잊지 못한다. 다양한 지역과 학교, 연령의 사람들이 모여 아산장학생이라는 공통점으로 우리는 공동체를 이뤘다. 그리고 지난 해에 나는 정담회 부회장을 맡았다.

정담회 임원이라는 사실은 내게 큰 자부심을 주었고, 임원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정담회 일에 최선을 다했으며, 도전적이며 열정적인 한해를 보냈다. 정담회 임원으로서 많은 일정과 행사를 소화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점이다. 하나의 집단을 이끄는 위치가 되면 누구나 그 자리에 맞게 바뀌는 것 같다. 내가 부회장이라는 자리에 걸맞게 더 성장할 수 있었던 계기는 ‘만남의 장’ 행사에서 레크리에이션을 진행했던 때이다. 7월 18~19일의 2차 만남의 장에서 나는 회장 대신 130여명 앞에서 레크리에이션 진행을 맡았는데 게임을 진행하며 분위기를 신나게 이끄는 일을 해본 적이 없던 나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것을 이겨내고, 행사 진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낮에 교육받으며 들었던 정주영 아산재단 설립자님의 말씀 중 다음 구절 덕분이었다.

‘담담(淡淡)한 마음을 가집시다. 담담한 마음은 당신을 굳세고 바르고 총명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 말씀은 ‘해본 적이 없다고 해서 못할 것은 없다’는 생각을 갖게 해 주었다. 나는 담담한 마음으로 행사에 임하여 성공적으로 마쳤다. 장학생들 모두 열정적으로 임해 주었고, 재단 직원분들 또한 칭찬을 해주셨다. 그렇게 얻은 경험으로 나는 한층 성장할 수 있었다. 한 해 동안 정담회는 크고 작은 행사들이 많았다. 행사를 진행하는 것보단 준비하는 것이 더 어려운 것 같다. 하나부터 열까지 계획하고, 예기치 못한 일에 대비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행사는 작년보다 참여하는 학생 수가 2배나 많아서 더 어려웠다. 하지만 장학생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속에서 여러 생각을 공유하며 무언가를 이뤘을 때 더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아산장학생이 되고 나서 나는 많은 것을 느끼고, 바뀌었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다. 시작을 하려면 용기가 먼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담회 임원은 나에게 용기를 심어 주었고, 그것으로 인해 나는 이 순간도 내 꿈을 향해 가고 있다.

2012년은 ‘성적우수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등록금 걱정 없이 공부하면서 정담회에서 내 또래의 장학생들과 함께하는 기쁨을 누린 해였다면, 2013년은 아산장학생이자 정담회를 꾸려가는 임원으로서 보람을 느낀 한 해였다. 부끄럽지만 아산장학생으로 선발되고 나서 아산재단에 감사한 마음만 있었지, 어떤 재단인지 알아보려는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2013년에 울산의 현대중공업 등을 견학하는 만남의 장에 다녀오고, 서울아산병원 치과에서 실습을 하면서 아산재단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또한 정주영 아산재단 설립자님의 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를 읽으며 설립자님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정담회 활동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행사는 1박2일 일정으로 울산의 산업체를 둘러본 만남의 장이다. 아산정신에 대한 특강을 들었고,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 현대예술관 등을 견학하며 설립자님의 원대한 꿈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 안에 울산이라는 또 다른 나라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설립자님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어서 뜻 깊은 시간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담담한 마음을 가집시다. 담담한 마음은 당신을 더욱 굳세고, 바르고, 총명하게 만들 것입니다’라는 설립자님의 말씀이었다. ‘담담한 마음’이 무엇인지 명쾌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내 가슴에 잔잔한 뜨거움을 주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설립자님에 대해 자세히 알고 난 뒤부터 나는 ‘성적우수 장학생’이 아니라 ‘아산장학생’이라는 자부심이 더 커졌다.
아산정신을 바탕으로 우리 장학생들은 보육원 봉사활동, 농촌 봉사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며 친목을 다졌다. 아산 장학생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는 정담회는 누가 더 잘나고 누가 더 대단한지 따지지 않고, 어떠한 이익도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정담회를 향한 발걸음은 늘 정겨웠다. 이런 정담회에서 내가 총무로 활동했다는 사실이 지금도 가슴이 벅차다. 물론 총무로서 정담회를 꾸려나가는 게 항상 즐거웠던 것만은 아니다. 여러 행사들을 추진하며 임원들과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 충돌도 종종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국가고시 준비를 하며 임원을 병행하기가 버겁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담담한 마음’을 되새겼다. 담담한 마음은 역시 나를 더욱 굳세게 만들어주었다. 나는 지난 2월에 졸업을 하고 사회인이 되었지만, 내가 자랑스러운 아산장학생이라는 사실은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이다.

2012년은 ‘성적우수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등록금 걱정 없이 공부하면서 정담회에서 내 또래의 장학생들과 함께하는 기쁨을 누린 해였다면, 2013년은 아산장학생이자 정담회를 꾸려가는 임원으로서 보람을 느낀 한 해였다. 부끄럽지만 아산장학생으로 선발되고 나서 아산재단에 감사한 마음만 있었지, 어떤 재단인지 알아보려는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2013년에 울산의 현대중공업 등을 견학하는 만남의 장에 다녀오고, 서울아산병원 치과에서 실습을 하면서 아산재단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또한 정주영 아산재단 설립자님의 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를 읽으며 설립자님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정담회 활동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행사는 1박2일 일정으로 울산의 산업체를 둘러본 만남의 장이다. 아산정신에 대한 특강을 들었고,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 현대예술관 등을 견학하며 설립자님의 원대한 꿈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 안에 울산이라는 또 다른 나라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설립자님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어서 뜻 깊은 시간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담담한 마음을 가집시다. 담담한 마음은 당신을 더욱 굳세고, 바르고, 총명하게 만들 것입니다’라는 설립자님의 말씀이었다. ‘담담한 마음’이 무엇인지 명쾌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내 가슴에 잔잔한 뜨거움을 주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설립자님에 대해 자세히 알고 난 뒤부터 나는 ‘성적우수 장학생’이 아니라 ‘아산장학생’이라는 자부심이 더 커졌다.

아산정신을 바탕으로 우리 장학생들은 보육원 봉사활동, 농촌 봉사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며 친목을 다졌다. 아산 장학생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는 정담회는 누가 더 잘나고 누가 더 대단한지 따지지 않고, 어떠한 이익도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정담회를 향한 발걸음은 늘 정겨웠다. 이런 정담회에서 내가 총무로 활동했다는 사실이 지금도 가슴이 벅차다. 물론 총무로서 정담회를 꾸려나가는 게 항상 즐거웠던 것만은 아니다. 여러 행사들을 추진하며 임원들과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 충돌도 종종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국가고시 준비를 하며 임원을 병행하기가 버겁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담담한 마음’을 되새겼다. 담담한 마음은 역시 나를 더욱 굳세게 만들어주었다. 나는 지난 2월에 졸업을 하고 사회인이 되었지만, 내가 자랑스러운 아산장학생이라는 사실은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이다.




2013년은 내게 큰 행운이 찾아온 해였다. 수많은 아산장학생들 중에서 봉사부장이라는 임원을 맡았기 때문이다. 처음 제의를 받았을 땐 잘 할 수 있을지 불안함이 있었지만, 임기가 시작된 후 ‘맡기를 잘 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1년 동안 8명의 임원들과 함께 정담회를 꾸려나가면서 재미있고 기쁜 일도 있었지만, 때로는 의견충돌과 위태로움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경험을 통해 더욱 끈끈해지는 정을 느낄 수 있었다.

2013년에 가장 인상 깊었던 행사는 만남의 장과 농촌봉사활동이었다. 만남의 장은 1박2일의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지역 특산인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많은 사람과 한 마음으로 즐겁게 어울렸으며, 우리 문화유산을 답사하였다. 또한 정주영 아산재단 설립자님의 기념관에서 그분의 인생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고,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의 울산 공장을 방문하여 중공업과 자동차가 어떻게 발전하였는지 알게 되었다. 특히 현대중공업의 위용에는 넋을 잃고 말았다. 이외에도 정담회 동문 선배님들과의 좌담회를 통해 그분들의 인생과 경험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다.

농활은 강원도 홍천의 무궁화마을로 갔다. 더운 여름날, 많은 학생들이 한데 모여 이장님의 말씀을 듣고, 일손이 필요한 곳으로 가서 일을 도와 드렸다.

도착 첫날, 다들 강가나 밭에 나가 일할 때 나는 몇몇 장학생들과 함께 70인분이 넘는 닭백숙으로 저녁식사 준비를 하였다. 다 같이 땀을 흘려가며 만든 음식들은 눈물이 나도록 맛있었다.
다른 날엔 전공을 살려 이•미용 봉사를 했다. 동네의 어르신들을 모시기 위해 힘을 합쳐 광고 전단지를 만들었고 방송까지 한 결과 많은 분들이 오셨다. 어르신들의 머리칼을 자르고 대화를 하며 그분들의 인정을 느낄 수 있었다. 한 분, 한 분 정성스럽게 커트를 해드리고 만족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가진 재능으로 도움을 드릴 수 있다는 사실에 큰 보람을 느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오셔서 몸은 힘들었지만, 다른 곳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있을 친구들을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잡았고, 어르신들의 미소를 보며 힘을 냈다. 항상 해오던 이•미용 봉사였지만, 왠지 더 소중한 추억이 된 것 같다.

한 해 동안 함께 고생한 든든한 회장 상원이, 정신적 지주인 부회장 민혜 언니, 칼 같지만 귀여운 총무 정은 언니와 현아, 사진 찍느라 항상 바빴던 식주 오빠, 공부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뒤에서 묵묵히 도와준 행사부장 성환이와 카리스마를 담당한 ROTC 지현이와 같이 임원을 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고, 앞으로도 계속 인연을 이어갔으면 좋겠다.


‘36기 이식주’의 생활은 2012년 2월 장학증서 수여식과 함께 시작되었다. 2012년을 정담회와 함께 정신없이 보낸 뒤 연말에 편집부장을 맡아 주었으면 좋겠다는 연락을 받고 2013년은 ‘편집부장 이식주’로 살았다.

편집부장이 된 뒤 다른 임원들과 함께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며칠 동안 행사를 위한 회의를 하고 준비를 하여도 막상 행사를 진행하면 실수도 많았고, 잘 풀리지 않는 일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그때 임원들끼리 힘을 합쳐서 위기를 극복하고 일을 풀어 나갔으며, 행사가 끝난 뒤 찾아오는 뿌듯함은 정말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았다. 나는 행사 때 사진촬영을 주로 하였다. 그래서인지 행사에 직접 참여하기보다 옆에서 촬영을 하며 모든 장학생들에게 기념할 만한 사진을 남겨주는 기쁨으로 열심히 뛰며 촬영하였다. 사진을 찍다 보면 하루가 빠르게 지나갔고, 집에 와서 촬영한 사진을 편집하면 보람도 느끼고 추억도 쌓였다.

2013년에 가장 기억에 남는 행사는 만남의 장과 농촌봉사활동이다. 만남의 장 같은 경우는 평소에 보기 힘들었던, 전국 곳곳의 장학생들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로서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 등을 견학하면서 신기한 것을 많이 보고 배웠다. 또한 다른 장학생들이 만나고 견학하는 모습을 렌즈를 통해 담을 수 있어서 뿌듯하였다. 요즘은 농촌봉사를 하는 대학생들을 찾아보기 힘든데, 농활은 아산장학생들이 농촌 일손을 도울 수 있는 기회였다. 또한 장학생들끼리 더욱 친해질 수 있는 자리여서 더욱 의미 있는 활동이었다. 아쉽게도 농활이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진행하는 임원이다 보니 직접 참여할 시간은 적었다. 하지만 나는 어르신들의 장수사진 촬영 봉사를 하였다. 부족한 사진인데도 어르신들은 잘 나왔다고 좋아하시며 “학생 고마워”라고 칭찬해 주셨다. 주로 사진을 찍다보니 나를 처음 본 장학생들은 내가 사진관련 학과에 다닌다고 생각하는데, 나의 전공은 간호학이다. 그래서 놀라는 장학생들이 적지 않았다.

정담회 임원을 하면서 남은 가장 큰 자산은 추억이다. 1년 동안 찍은 사진들을 다시 보면 그때 기억이 떠오르면서 ‘편집 부장을 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기회를 주신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님과 직원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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