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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풍경 “저개발국 시각장애인들의 삶을 바꿨다” 채승웅

※ 비전케어 연혁: 2002 파키스탄 카라치 선한사마리아병원에 수술 장비 지원, 안과진료 시작. 2005 NGO 등록. 2008 사단법인 등록, WHO 산하 국제실명예방기구 공식파트너 등록. 2011 에티오피아 현지 NGO 등록, 제100차 Eye Camp 개최. MBC 사회봉사대상 우수상, 서울시 시민봉사상 대상, 보령의료봉사상 등 수상.

미얀마의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소녀 미얄린(11). 선천성 백내장을 앓고 있는 그녀는 태어나서 한 번도 앞을 보지 못했다. 부모는 그런 딸이 안타까웠지만 병원까지 갈 차비조차 마련하기 쉽지 않은 형편이어서 개안수술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비전케어서비스(Vision Care Service, 이하 비전케어) 팀이 수도 양곤을 방문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4~5시간 버스를 타고 양곤을 찾았다. 비전케어 팀은 이틀에 걸쳐 소녀의 눈을 수술했으며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현재 미얄린은 양쪽 눈 모두 시력을 회복해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비전케어는 국제실명구호단체다. 안과 치료 수준이 낮은 나라에 봉사단을 파견해 환자를 돌보는 것은 물론 현지 의사들에게 의술을 전수하거나 장비를 지원하는 활동을 펼쳐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2013년 아산상 의료봉사상을 수상한 비전
케어의 김동해(49) 이사장을 만나기 위해 서울 명동의 한 안과병원을 찾았다.

종교와 문화의 벽을 넘어
비전케어가 만들어진 데에는 2001년 발생한 9.11 테러가 중요한 원인이 됐다. 현재의 비전케어를 있게 한 김동해 이사장은 9.11 테러와 그 후 벌어진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지켜보면서 충격에 빠졌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목숨을 던지면서까지 지키려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이슬람 사회에 대해 징계성 전쟁을 하고 있는 서방국가들이 잘 하고 있는 것인지 의구심도 들었고요. 그때부터 이슬람 국가와 국민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김 이사장은 파키스탄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를 만나 어려운 현지 상황을 전해 들었고, 의료봉사를 통해 이슬람 문화권의 사람들을 도울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2년 2월, 파키스탄의 카라치를 방문해 여러 병원을 둘러보며 안과치료에 필요한 시설과 장비가 어떤 것들인지 파악했다. 김 이사장은 1주일 동안 카라치에 머물며 환자들을 진료하고 직접 수술을 하기도 했다.
“환자는 많고 병원과 의사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다행히 파키스탄 방문 전에 걱정했던 종교, 문화의 벽은 그렇게 높지 않았습니다. 1주일 동안 환자들을 돌보고 돌아오며 카라치에서 제대로 된 안과 의료봉사를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귀국 후 김 이사장은 사비를 들여 1억 5천만 원 상당의 장비를 파키스탄 선한사마리아병원으로 보냈다. 다행히 그즈음 국내에서 라식수술 붐이 일어 안과를 운영하던 그에게 여윳돈이 있었다. 그리고 그해 가을, 뜻이 맞는 여러 봉사자들과 함께 파키스탄으로 의료봉사를 다녀왔다.
“장비를 세팅했는데 환자들이 오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다행히 환자들이 많이 방문했고, 치료를 받은 뒤 기쁨을 감추지 못했죠. 노르웨이 사람이 설립한 선한사마리아병원은 장비와 인력 부족으로 수술실 문이 10여년 동안 닫혀 있었는데 저희 덕분에 다시 활기를 찾았습니다.”
그 후 비전케어는 매년 설날과 추석 연휴에 파키스탄을 방문해 환자들을 치료했다. 김 이사장은 여러 차례 봉사를 다녀오며 안과 의료봉사가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선한사마리아병원의 현지 의사들이 어느 정도 자립할 수 있는 여건이 되자 2005년에는 파키스탄 라호르의 UCH(UnitedChristian Hospital)로 안과를 옮겼다.
“당시 MBC로부터 사회봉사상과 함께 500만원의 상금을 받았는데, 상금으로 낙후된 UCH 병원 시설을 보수하려 했습니다. 현지에 있는 삼부토건의 오성훈 상무님께 상금을 주며 병원을 좀 고쳐달라고 부탁드렸더니 그분이 2억여 원을 들여 병원을 완전히 새로 지으셨습니다. 2006년부터 그 병원은 ‘UCH-Sambu Korean Eye Center’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비전케어가 진행하고 있는 사업은 저개발국 대상 안과 의료봉사, 안과 의료기반 구축 지원, 의료진 초청교육 등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특히 ‘Eye Camp’라 불리는 해외 안과 의료봉사는 비전케어를 세계에 널리 알린 주요사업이 됐다. 파키스탄에서 시작해 2005년부터 몽골과 미얀마 등 아시아 국가로 활동지역을 넓혔으며, 2010년부터는 에티오피아를 중심으로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 봉사단을 파견했다. 지금까지 비전케어가 안과 의료봉사를 다녀온 나라는 32개국에 이른다.

‘진짜 봉사’를 해보자
안과 의료봉사단은 보통 안과의사 3명, 간호사 3명, 안경사 1명, 자원봉사자 8명 등 15명으로 구성된다. 1주일 일정 중 4~5일 동안 평균 600여명의 환자를 진료하며 그 중 85명에게는 백내장이나 사시 수술을 한다. 이것은 15명이 현지에 머무는 동안 쉴 틈없이 환자를 돌봐야 나올 수 있는 수치다. 현지 관광은 꿈도 꿀 수 없다.
그뿐이 아니다. 한 번 봉사단을 파견할 때마다 항공료와 체재비·수술 소모품·약품 등으로 2천만~3천만 원의 비용이 드는데, 이 중 수술 소모품과 약품 비용만 비전케어에서 지원하며 항공료 등은 자원봉사자가 사비를 털어야 한다. 이것은 “진짜 봉사
를 하자”는 김동해 이사장의 뜻이 강력하게 반영된 것이다.
“비전케어를 운영하기 전 여러 곳에서 봉사활동을 경험하면서 여러 단체들의 장단점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비전케어를 운영하면서 진짜 봉사를 하는 곳으로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죠. 구성원들이 해외봉사를 해외여행을 겸해 다녀오는 봉사캠프 정도로 받아들인다면 그 단체는 변질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봉사’를 해서일까? 비전케어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보면 놀랄 수밖에 없다. 단체의 규모나 지원 정도에 비해 큰 성과를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비전케어는 2002년 9월부터 2013년 10월까지 총 139회 해외 봉사를 다녀왔다. 그동안 83,083명을 진료했고, 이 중 11,724명에게 백내장 수술이나 사시 수술을 했다. 또 시력이 낮은 저소득 주민에게 안경 1,900개와 돋보기 7,060개, 안경테 8,520개를 지원했다. 백내장 수술은 비용과 시간에 비해 효과가 가장 큰 수술로 알려져 있다.
“전 세계 시각장애인이 1억8천만 명 정도 되는데 그 중 50%가 백내장이 원인입니다. 수술비용이 15만 원 정도로 저렴하고 수술 효과가 확실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는 나라에서는 백내장으로 인한 시각장애가 거의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요. 안과의사가 부족한 저개발국에서는 수술받기가 힘듭니다. 확실하게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인데도 평생을 어둠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게 말이 안 되지요.”
또 저개발국의 시각장애인 중 상당수는 단순히 시력이 나빠서 앞을 보지 못한다고 한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3만 원 정도 되는 안경을 살 돈이 없어 어둠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3만 원은 한 달 월급에 해당한다.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한 달 월급을 투자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비전케어에서 정기적으로 ‘안경테 기부운동’을 진행하는 것과 의료봉사를 나갈 때 안경사를 대동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앞을 못 보던 사람이 눈을 뜨면 어떤 기분일까? 아마 새로운 인생을 사는 기분이 들 것이다. 그래서인지 환자들이 느끼는 고마움은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물론 봉사자들이 느끼는 보람도 그만큼 크다.
“봉사활동을 다니면서 기억에 남는 환자들이 많습니다. 라오스에서 만난 분미(9)와 찌안(11) 자매는 선천성 백내장으로 앞이 보이지 않아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부모의 보살핌을 받았습니다. 국소마취만 하고 수술을 받았는데 성공적이었지요. 나중에 동생들보다 낮은 학년으로 들어가 공부를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환자의 삶을 바꾸는 개안수술
비전케어가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저개발국 시각장애인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백내장으로 인한 실명률이 높은 상황을 고려할 때 비전케어의 활동은 ‘희망의 빛’이나 다름이 없다.
“가족 중에 시각장애인이 있으면 가족 전체가 어려움을 겪을수 밖에 없습니다. 어른은 물론 아이가 앞을 보지 못하면 가족 중 누군가는 옆에서 돌봐줘야 하기 때문이죠. 또 아이의 시력 회복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의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안과 의료봉사는 저개발국 주민들의 생활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올해로 12년째 봉사활동을 펼쳐오면서 변화가 있었다면 동남아와 서남아시아보다는 아프리카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방글라데시와 스리랑카 등 몇 나라를 제외하고 아시아의 여러 나라는 안과 치료 수준이 무척 높아졌습니다. WHO(세계보건기구)에서는 인구 10만 명당 최소 1명의 안과의사가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아프리카는 100만 명당 1명 수준입니다. 심지어 안과
의사가 한 명도 없는 나라도 있습니다.”
비전케어의 활동 영역이 넓어지면서 해외파견 횟수도 늘고 있는추세다. 2012년까지는 매년 20차례 안팎의 봉사단이 파견됐지만 올해는 26회로 크게 늘었다. 거의 모든 캠프에 참가했던 김동해 이사장은 지난해부터 생각을 바꿨다.
“3년 전 방글라데시에 갔을 때 무리를 해서인지 허리를 삐끗하고 쓰러져버렸습니다. 이틀 동안 누워 있다가 돌아왔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내가 없어도 비전케어가 잘 돌아갈 수 있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재 비전케어는 미국에 두 곳, 에티오피아, 몽골, 파키스탄, 모리타니, 우간다 등 7곳에 지부를 두고 있다. 이들의 활동이 점차 알려지면서 봉사단 파견을 요청하는 국가가 많아지고 있지만 인력과 재정 부족 때문에 요청에 모두 응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에 지부를 만든 것은 인력과 재정을 지원받기 위해서입니다. 많은 단체가 관심을 보이고 있고, 특히 미국의 제약회사들이 지원을 해주고 있죠. 앞으로 LA 지부는 중남미를 책임지고, 워싱턴 지부가 서부 아프리카를 담당할 것입니다. 미국 내 한인 안과의사들을 중심으로 인력 또한 열심히 모으는 중입니다.”
비전케어의 궁극적인 목표는 비전케어가 더 이상 활동할 필요가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의료봉사를 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지에서 안과의사들을 훈련시키고 장비와 시설을 갖춰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해마다 저개발국의 의사를 국내로 초청해 교육하는 것도 비전케어의 중요한 사업이다.
“해외 봉사활동을 나가기 전에는 저도 한국에서 잘 하는 의사라고 자부했거든요. 그런데 각국의 의사들을 만나다보니 그분들이 진짜 훌륭한 의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렵고 힘든 곳에서 버티면서 치료하는 분들…. 그런 분들을 보며 정말 많은 것을 느낍니다.”
김동해 이사장은 지금까지 수많은 나라를 돌아다녔지만 관광을 목적으로 해외에 나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비전케어가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지는 날이 오면 그도 한숨을 돌릴 수 있을까? 그가 소망하는 세상, ‘모두가 함께 보는 세상’이 빨리 오기를 간절히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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