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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이야기 ‘맹장염’이 잘못된 이름인 까닭 이재담

급성충수염은 외과적 처치를 요하는 충수의 급성 염증으로 오른쪽 아랫배가 아픈 것이 특징이며, 심한 경우에는 사망에 이르는 병이다. 이 병은 오랫동안 ‘맹장염’으로 불려왔는데, 이 잘못된 이름은 19세기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했던 외과 의사 뒤피트랑이 붙인 것이다.
충수가 터져 복막염이 심해지면 주변의 맹장과 유착이 생기고, 그 결과 어디서 염증이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어서 그랬겠지만, 현대의학의 관점에서 보면 원인과 결과가 거꾸로 된 병명이었다. 이 병의 근본적인 치료법인 충수절제술이 위암 수술보다 한참 뒤에야 확립된 것도 부분적으로는, 수백 년 동안 무심코 사용된, 병의 정확한 발생 부위를 파악할 수 없게 만든 ‘맹장염’이라는 잘못된 이름 때문이었다.

복강 내를 수술한다는 개념이 정착되기 전에는 충수에서 발생한 염증이 자연경과에 따라 농양을 만들고, 그 농양이 복벽을 뚫을 정도가 될 때까지 기다려서, 농양이 있는 위치를 확인하고 복벽을 작게 절개하여 고름을 배출시키는 것이 최선의 치료였다. 그러나 이렇게 운이 좋은 환자는 극히 소수에 불과했고, 환자의 60퍼센트는 급성 염증으로 사망했다. 나은 듯 보였던 나머지 경증환자들도 재발을 반복하다 사망하는 것이 이 병의 일반적인 경과였다.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행운이 따랐던 특수한 사례로 1902년에 있었던 영국 왕 에드워드 7세의 충수염 수술이 회자되는데, 주치의였던 트레비스는 왕이 아프기 시작하고 10일이나 지난 후에 수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경우는 환자가 원래 건강했고, 복막에 생긴 염증이 한 곳에 국한될 수 있도록 농양 주위에 피막이 형성 되었던 덕분에 농양이 있던 자리에 드레인을 박아 고름을 빼낼 수 있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던 이 병의 치료법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1886년에 미국의 피츠라는 해부병리학자가 500 이상의 증례를 부검한 결과를 보고하면서 이제까지의 ‘맹장주위염’이 틀린 개념이며 ‘충수염’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면서부터였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이 견해를 실제 임상을 모르는 기초의학자의 이론일 뿐이라고 무시했지만, 이 의견에 귀를 기울여 “만약 염증이 확실하다면 조기에 충수돌기를 적출하여 병의 원인을 일찌감치 제거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 대표적인 외과 의사가 미국의 머피였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대부분의 수술을 부엌이나 식당의 테이블 위에서 했다는 이 의사는, 100례 이상의 조기 수술을 시행한 후, 증상이 나타나고 12시간 혹은 길어도 24시간 이내에 수술할 경우에는 합병증이 전혀 생기지 않았다고 보고하였다.

머피가 거둔 놀라운 성공에도 불구하고 조기 충수절제술에 대한 의사들의 반응은 시원치 않았다. 내과 의사들은 위험한 수술보다 설사약이나 아편 같은 약물을 처방하는 안전한 내과적 치료를 우선 시도해야 한다면서 강력하게 반대했다. 그러나 조기에 수술을 하는 것이 좋다는 주장은 서서히 의학계에 받아들여졌고, 오늘날에는 의학을 모르는 일반인들까지도 “맹장염은 터져서 복막염이 되기 전에 수술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할 정도로 조기 수술이 보편적인 치료법으로 정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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