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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상 "나의 소유욕은 나눠쓰기 위한 것" .



지난 1998년. 서울 정동의 한 공연장에서 가수 김장훈의 공연을 본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그가 2층 객석을 향해 했던 약속을 ….

“지금은 힘이 없지만요, 언젠가 제가 힘이 생기면 꼭 2층까지 가겠습니다. 날아가든 뭘 하든 꼭 여러분 곁에 가겠습니다. 약속할게요.”

무대에서 멀리 떨어진 2층 객석에서 손을 흔드는 관객들이 안쓰럽고 고마워서 했던 그의 약속은 정확히 1년이 흐른 이듬해 겨울 같은 장소에서 지켜졌다. 허공에 매달린 와이어의 힘을 빈 그가 노래를 부르며 1층 객석을 가로질러 2층을 향해 날아감으로써‘여러분 곁에 가겠다’던 약속을 지킨 것이다.

이렇게 공연장에서 ‘난’ 이후, 그는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나와 같다면’, ‘굿바이 데이’ 등의 히트곡 가수로서 뿐만 아니라 갖가지 기발한 이벤트와 아이디어 콘셉트가 넘치는 공연으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고, 이제는 그를 빼고는 국내 라이브계를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수많은 관객 앞에서 약속을 했던 1998년 그해, 김장훈 씨는 또 하나의 약속을 했었다. 이번에는 공연장에서가 아니라, 어머니와 집에서 단 둘이 밥상을 마주하고서였다. 당시 교회 전도사로서 청소년 사역을 하던 어머니가 “세상에 나쁜 아이들이란 없다. 나중에 네가 돈을 벌면 애들 좀 도와라”라는 말씀을 하셨고, 당시 데뷔 8년차의 무명가수였던 김장훈은 “알았습니다”라는 짧은 답의 약속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약속은 역시 정확히 1년 후인 1999년에 지켜졌다. 그해 음반사와 계약을 하고 받은 계약금 전액에 평소 모은 돈을 합쳐서, 어머니가 설립한 경기도 고양시의 ‘청소년을 위한 교회’설립기금으로 기부한 것이다. 이후로도 경기도 부천시에 위치한 ‘새소망의 집’, 서울 강서구의 ‘효주 아녜스의 집’, 서울 은평구의 ‘데레사의 집’ 등 세 곳의 보육원에 매월 일정금액을 기부함으로써 어머니와의 그 약속 수행은 이어졌다. 9년 여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가 기부한 금액의 총액이 자그마치 30억여 원에 달한다.

“재벌 한 사람이 100억 원을 기부하는 것보다 국민 천만 명이 1만 원씩 기부하는 게 세상을 더 따뜻하게 한다고 믿어요. 저는 사람들 앞에 서는 가수니까, 저를 통해서 기부에 대해 관심도 끌고 환기도 시킬 수 있으면 하고 바랍니다.”

그렇다고 그의 기부가‘언젠가 여유가 생기면’하고, 우리가 남을 돕는 일을 미룰 때 흔히 하는 말 속의 ‘여유’가 넘쳐서만은 결코 아니다. 쓰고 나면 없어지는 소모품에는 절대 돈을 들이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장식용 가구란 찾아볼 수도 없는 월세집에 그 흔한 신용카드나 자동차도 없이 사는 그다. 또 그는 기부를 하기 위해 가계부를 미리 쓴다. 먼저 기부할 계획을 세운 뒤 가계부에 적고, 거기에 맞춰 공연 스케줄을 잡는 것이다. 어찌 생각하면 숨이 막힐 듯도 한데, 오히려 “그런 것들이 저를 더 열심히 살게 하는 것 같다.”며 웃는다.



기부 외에도, 무명가수 시절부터 해온 봉사활동도 계속하고 있다. 그런데 자원봉사라고 그의 ‘이벤트’가 빠질 수는 없다. 크리스마스와 추석 등 특별한 날에는 보육원 아이들과 눈썰매장, 놀이공원 등을 함께 가고 2005년에는 ‘새소망의 집 축구단’을 만들어, 아이들을 격려하는 모임을 지속하고 있다. 2006년부터는 가출 청소년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하고 상담을 해주는‘쉼터버스’까지 운영 중이다. 

“전부터 해오던 일인데, 최근에 알려지면서 갑자기 주목을 받아 많이 쑥스러워요. 덕분에 아산상까지 수상하게 되었는데, 이것도 좀 더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 주시는 것이라고 여기겠습니다.”

그것이 ‘우리 사회의 불우한 이웃을 위해’ 재단을 설립한 아산 정주영 이사장의 뜻을 받드는 일일 것이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김장훈 씨는 12월 3일, 상금 5천만 원 전액을 불우한 어린이 환자를 위해 써 달라며 서울아산병원에 기부했다. 연말에는 여기에 2억 5천만 원을 합해 총 3억 원을 각계에 기부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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