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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동행 아산장학생, 강원도 홍천서 3박4일 봉사활동 고선희

“이 아줌니가 좀 까다로와. 이쁘게 안 깎아주면 혼내.”
“나, 여기 머리 좀 누르려고”
“저짝에 이름 쓰고 오소. 아줌니는 맨 나중이라.”
강원도 홍천군 서면 모곡4리 무궁화마을의 다목적홀이 웬일인지 시끌벅적하다. 한 쪽에선 연신 “김~치~~!” 소리가 나고, 또 한 편에선 싹둑싹둑 가위질 소리에 ‘위~잉~’하는 드라이어 소리가 난다. 장수사진을 찍고, 머리칼을 자르려고 어르신들이 잔뜩 모이셨기 때문이다.
말로는 밭에서 일하다 방금 왔다지만, 다들 알록달록 꽃무늬가 예쁜 카디건에, 새색시마냥 새초롬한 입술연지를 바르셨다. 어색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는 아랫집 언니, 윗집 아저씨를 보며 곧 “와하하하하” 하는 웃음꽃이 터진다. 아산장학생들의 사랑나눔 봉사활동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무궁화마을의 첫인상
유난히 길었던 장마가 공식적으로 끝나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된 지난 8월 7일. 3박4일간의 일정으로 아산장학생 봉사활동이 진행되었다. 80여 명의 재학생들과 동문들이 12명씩 7개조로 나뉘었고, 조별로 해야 할 일을 전담하는 체계적인 방식이었다.
봉사 지역은 일제강점기 때 한서 남궁억 선생이 나라의 얼과 혼을 지키기 위해 무궁화 묘목을 나눠주는 사업을 진행하였던 강원도 홍천군의 모곡4리였다.
“뜻 깊은 곳에서 봉사를 하게 되어서 그 의미가 두 배가 되는 것 같습니다. 자긍심과 함께 나라사랑의 마음까지 다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아산장학생들의 모임인 ‘정담회’를 이끌고 있는 한상원(연세대 신학과 3) 회장은 첫 날, 봉사활동에 들어가기에 앞서 둘러본 ‘남궁억 선생 기념관’에서의 감상을 떠올리며 이번 봉사활동의 의지를 다졌다.
“의례적인 행사로 끝나는 봉사활동이 아닌, 지성인들답게 마을에 도움이 되는 봉사를 해주시길 바랍니다. 이번 봉사활동을 통해서 효친사상이나 농촌을 잘 모르는 학생들이 그런 것들의 ‘가치’를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강목 이장의 당부의 말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봉사활동이 시작되었다. 장마 내내 숨죽여 있던 생명들이 ‘땅!’하는 스타트 소리와 함께 전력질주라도 하는 듯 초록의 생장하는 소리가 싱싱한 내음으로 눈앞까지 다가왔다. 학생들의 잡초 뽑기는 이제 전쟁이다.

이틀째, 진격의 봉사활동
“똑같이 밭일을 하는 것도 물론 의미가 있겠지만 저는 제가 더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도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배운 것을 나누는 작업이 바로 ‘재능 나눔’이 아닐까요? 평소에도 노인복지관에서 이ㆍ미용 봉사를 하고 있는데, 어르신들이 깔끔한 모습으로 나가시면서 환하게 웃으실 때 가장 뿌듯합니다. 혼자서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분들의 머리를 해드리려니 정말 힘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힘이 드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 있어서 봉사를 계속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혼자서 열 분이 넘는 어르신들의 머리를 해드린 김현민(서경대 미용예술학과 3) 학생. 그녀는 오전부터 줄지어 앉아서 자신의 차례만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시는 어르신들 때문에 쉬지도 못하고 내내 서서 가위질을 해야 했지만 작년보다 호황인 자신의 미용실(?)을 바라보며 뿌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디 서울 아가씨한테 머리카락을 깎을 기회가 흔한가? 여기서 머리 손질하려면 저기 시내까지 나가야 하는데, 에이~~! 거기도 별로야. 여기 할머니들 머리 해준 것 보니까 잘 하네. 역시 전문가는 전문간가 봐? 허허허허.”
이강훈(66) 어르신은 순서를 기다리시는 내내 먼저 머리를 깎고 계신 한종선(69) 할머니의 앞에서 머리가 어떻게 깎기고 있는지 실시간 중계(?)를 하시며 미용실 분위기를 한껏 올려놓았다.
“장수사진은 아직까지 한 번도 찍어 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이렇게 학생들이 와서 찍어 준다니 너무 고맙고 기뻐요. 이것 찍어놓으면 오래오래 건강하게 산다니 그 마음도 예쁘고. 여하튼 예쁘게 나왔으면 좋겠네요.”
기대 반 걱정 반의 설렘으로 자신들의 차례를 기다리며 앉아 계신 조송단(73), 김간난(77), 한복희(86) 할머니. 조촐하게 단장을 하고 계신 모습이 꼭 무궁화 같다. 곱다.
“장학생을 담당하는 아산재단 직원이 제 취미를 알고 작년 봉사활동 때 어르신들 장수사진을 찍어드리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권유하셔서 사진을 찍게 되었습니다. 작년보다 올해는 홍보도 많이 되어서 많은 분들이 사진을 찍으셨더라고요. 열아홉 분 정도? 기분이 정말 좋습니다. 저에게 봉사활동은 봉사했다는 느낌보다 더 큰 것을 받고 가게 해주는 그 무엇입니다.”
이식주(여주대 간호학과 3) 학생은 좋아하는 일을 봉사로 할 수 있어서 힘이 드는 줄 모르겠다면서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닦았다. 미소가 청량음료 같은 학생이다.
“어디서 어떤 일을 하든 봉사의 의미는 같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3년 동안 정담회와 아산재단 행사에 거의 다 참여하면서 느낀 것은 ‘다양성의 즐거움’입니다. 활동들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도 만나게 되고, 알지 못한 것도,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도 많아서 앞으로도 계속 모든 활동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실로암 연못의 집’이라는 장애인 시설에서 방과 화장실, 복도 등을 청소하고 왔다는 배세환(경민대 태권도 외교학과 4) 학생도, 아침부터 마을의 특산품인 무궁화꽃잎차를 만들기 위해 무궁화 잎을 딴 뒤 뜨거운 불판에서 덖는 작업을 했던 이가영(관동대 체육교육학과 2) 학생도, 봉사 기간 내내 식사 당번을 했던 7조의 유혜민(서울여대 체육학과 3) 학생과 참깨밭에 남아 있는 지난 작물의 밑동과 잡초들을 정리하는 일을 했던 이정욱(중앙대 경영학과 3) 학생까지. 이번 봉사에 참여했던 학생들은 모두 다, 한결같이 ‘사랑’을 나누고 ‘사람’을 얻어간다고 말한다. ‘사랑나눔 봉사활동’의 최대 수혜자는 바로 이 학생들이 아닐까?

무료진료, 그리고 금요일 밤의 마을 잔치
셋째 날. 어제의 미용실과 사진관은 무료진료소로 바뀌었다. 서울아산병원 순회진료팀의 무료진료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은 기본 건강진료부터 X선 촬영까지, 이동진료로 할 수 있는 대부분의 진찰을 받으셨다.
“무더위에 힘들고 지칠 만도 한데, 끝까지 하려고 하는 노력들이 기특하고 좋게 보이네요.”
우유선 무궁화마을 사무장은 서툴지만 봉사활동 내내 열심히 일해 준 학생들을 격려하며 이 마을에서만 맛볼 수 있는 귀한 무궁화꽃잎차를 내주었다. 코끝, 혀끝으로 전해오는 은은하고 달달한 그 맛이 무더위에 지친 학생들의 심신을 다독여주었다.
오전에 밭이랑의 비닐을 벗기고, 소먹이로 쓸 옥수숫대를 베며 밭일을 했던 학생들은 점심식사 후에는 밤에 있을 마을 잔치를 위해 초대장을 만들며 조별로 특훈에 들어갔다.
어스름이 깔리고 공기가 제법 선선해지자 다목적홀은 다시금 파티장소로 탈바꿈했다. 머리고기와 막걸리 그리고 잘 익은 수박 한 덩이가 파티 음식의 전부였지만 파티는 대성황이었다.
불타는 금요일 밤의 마을잔치에서 조별 장기자랑 1등의 영예를 차지한 팀은 독특한 ‘짜라빠빠’ 음악에 맞춰 막춤과 개그 분장쇼를 했던 1조였다. 그리고 무반주로 민요 ‘아리랑’과 조수미의 ‘나 가거든’을 부른 한혜정(계명대 성악과 2) 학생이 개인 특별상을 수상했으며, 어깨춤이 절로 이는 구성진 민요에 춤을 선보이신 할머니 두 분께는 최우수상이 주어졌다.
“다른 단체의 봉사활동에 비해 아산장학생들의 봉사활동은 이ㆍ미용은 물론 장수사진까지 찍어주는 활동이 있어서 굉장히 특색이 있고, 또 도움이 되었습니다. 기억에도 많이 남을 것 같습니다.”
첫날의 우려는 어느새 칭찬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강목 이장은 학생들에게도 무궁화마을이 기억에 남는 곳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미숙한 면도 많고 능숙하지도 못한 저희들을 예쁘게 봐주시고, 친절하게 설명도 해주시면서 호응해 주셨던 어르신들께 감사드립니다.”
봉사활동을 마치며 한상원 정담회장은 3박4일 동안 함께 고생한 마을 어르신들과 정담회 친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8월 10일 오전, 해단식을 마치고 서울로 향하는 그들의 뒷모습 위로 가을이 잠자리 세 마리만큼 다가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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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인터뷰 - “전공 살려 봉사하고 싶다”

“저는 잡초를 뽑고, 이ㆍ미용과 장수사진을 알리는 포스터도 제작하면서 도울 수 있다는 데에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장수사진을 찍어 놓으면 오래오래 건강하게 지내신다는데, 지금의 좋으신 모습 그대로 계속 지내셨으면 좋겠어요.
전국의 학생들 중에서 뽑혔다는 것에 대해서도 자랑스럽지만 모든 친구들이 다 긍정적이어서 좋은 에너지를 많이 받고 돌아갑니다. 어르신들을 공경하는 마음도 더 생겼고요.”
- 한규은(연성대 뷰티스타일리스트과 2)

“마을 밑에 있는 밤벌유원지를 청소하고, 무궁화꽃잎차를 만들기 위해 잎도 따고 왔습니다. 힘들게 일할 각오로 왔는데 의외로 힘들지 않아서 아쉬워요. 뭐 더 해야 할 일이 없나, 무슨 일을 더 주실까 기다리고 있어요. 기회가 된다면 제 전공을 살려서 마을 아이들과 잘 짜인 프로그램으로 놀아주고 싶습니다.”
- 이슬기(영동대 유아교육과 2)

“이곳에 와서 친구들과 함께 추억을 만들어서 좋아요. 이ㆍ미용 봉사나 장수사진처럼 저도 제 재능을 나눌 수 있는 봉사를 하고 싶어요. 평소에도 소아마비 어린이나 치매 노인들의 물리치료를 해드리고 있거든요. 다음에는 그런 봉사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문성희(수원여대 물리치료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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