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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풍경 “은총이는 신이 주신 선물입니다” 조성진

일요일이었던 지난 6월 30일 아침 8시, 경기도 여주군 이포보일원에서는 철인3종경기대회가 열렸다. 1.5km를 헤엄친 뒤 40km를 자전거로 달리고 이어서 10km를 뛰는, 철인3종경기 중에서도 올림픽코스의 대회였다. 기온이 섭씨 34도까지 치솟아 올해 들어 처음으로 폭염주의보가 발령된 날이었다.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날,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철인들은 자기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500여 명의 참가자 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선수가 있었다. 희귀난치병을 앓는 아들 은총(10)이와 함께 대회에 참가한 박지훈(38) 씨였다. 철인3종경기(트라이애슬론)는 보통 체력을 가진 사람은 도전할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운동 종목이다. 그런데 박지훈 씨는 자신의 몸과 은총이가 탄 보트를 줄로 연결해 헤엄친 뒤, 은총이가 탄 트레일러를 매단 사이클로 도로를 질주하고, 다시 아들을 태운 휠체어를 밀면서 힘차게 달렸다.
은총이 부자가 역주하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누구나 격려의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아빠가 은총이의 휠체어를 밀면서 땀을 뻘뻘 흘리며 뛸 때 아빠의 머리에 물을 뿌려 주는 낯선 참가자도 있었고, 눈물을 훔치며 “파이팅!”을 외치는 생면부지의 응원단도 있었다.

아들을 바라보는 편견에 맞서다
올림픽코스의 제한시간은 3시간 30분이다. 은총이 부자는 3시간 25분 36초의 기록으로 결승점을 통과했다. 이날 대회까지 일곱 번 철인3종경기에 참가한 은총이 부자는 항상 제한시간을 넘겼고 꼴찌를 도맡아 했는데, 이날은 처음으로 컷오프를 통과했고 마지막에 골인하지도 않았다.
대회가 끝난 뒤에는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이날 대회의 정식 명칭은 ‘은총이와 함께하는 희망나눔 2013 여주철인3종경기대회’였다. 은총이의 이름이 붙은 것은 철인들이 낸 대회 참가비 7만 원을 장애어린이 치료를 위한 어린이재활병원 건립 기금으로 푸르메재단에 기부할 목적으로 열린 대회이기 때문이다. 대회 취지대로 참가비 3,800여 만 원은 전액 기부되었고, 이런 기금들이 모여서 어린이재활병원은 2015년 서울 마포구에 건립되어 하루 500명의 장애어린이들을 치료할 예정이다.
은총이는 2003년 10월 3일 군산에서 태어났다. 태어날 때부터 은총이에게는 스터지 웨버 증후군(왼쪽 손과 다리 마비, 안면에 붉은 반점), 클리펠 트레노우네이 베버 증후군(정맥기형. 커가면서 오른쪽 다리가 점점 굵어짐), 오타모반증후군(피부에 갈색반점) 등 3가지 희귀난치성 질환과 혈관기형 등 6가지 불치병이 있었다.
생후 3개월부터 심한 경기를 일으킨 은총이는 태어나자마자 대학병원으로 옮겨져 이것저것 검사를 받고 1년 이상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2005년 3월 28일에는 상계백병원에서 오른쪽 뇌를 절제하는, 17시간이 넘게 걸린 뇌수술을 받았다.
생후 15개월인 2005년 1월 3일에는 녹내장 수술과 탈장수술을 동시에 받았다. 3회에 걸쳐 녹내장 수술을 받았지만 오른쪽 력은 거의 잃은 상태다. 얼굴에만 6차례 등 지금까지 13회의 수술을 받았고, 앞으로도 아치가 완전히 무너진 왼쪽다리 수술 등을 받아야 한다.
포기를 모르는 아빠와 엄마(김여은・35)의 극진한 보살핌 속에 은총이는 뇌병변장애1급 판정을 받은 채 살아남았고, 군산의 특수학교인 명화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다. 많이 사라지기는 했지만 은총이는 머리끝부터 발바닥까지 여전히 검붉은 반점으로 뒤덮여 있고, 말을 못 하며, 걸음걸이도 불편하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슬금슬금 피하고, “괴물”이라거나 “좀 씻고 다니라”며 손가락질하기도 한다.
은총이 아빠는 이런 편견에 맞서서 희귀난치병에 걸린 아이들이 의료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2006년 10월 13일부터 40여 일간 ‘같은 눈으로 바라봐 주세요’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강릉에서 출발하여 부천까지 1,500km의 국토대장정을 했다. 그 결과 2007년 9월 은총이의 병 가운데 하나인 스터지 웨버 증후군이 보건복지부 장관이 고시하는 희귀난치병 고시목록에 포함되었다.
그 다음해부터는 유모차에 앉았을 때 뒤에서 밀며 달리는 것을 유난히 좋아하는 은총이를 위해 아빠는 마라톤을 시작했다.
2010년 3월에는 서울국제마라톤대회에서 5시간 24분 22초의 기록으로 풀코스 마라톤을 난생 처음 완주했다. 그러던 중에 중증장애 아들을 데리고 철인3종경기에 참가해 완주를 해내는 미국의 호이트 부자의 영상을 접하고 감동을 받아서 은총이와 함께 철인도전 준비를 하였다. 드디어 2010년 10월 16일, 은총이 부자는 미사리 철인3종경기에 나가 4시간 20여 분 만에 생애 처음으로 철인대회를 완주했다.
182cm의 키에 105kg이 나가던 은총이 아빠는 운동과 담을 쌓고 살았다. 덩치는 좋지만 학창시절에 해본 운동이 없을뿐더러 운동을 아예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던 그가 은총이를 위해 운동을 하면서 체중이 20kg 줄었다.
“136cm인 은총이 몸무게는 40kg이에요. 철인3종경기에 참가하면 사이클이 가장 힘듭니다. 은총이를 태운 트레일러는 50kg정도 나가는데 이걸 매달고 자전거를 타야 하기 때문이죠. 사이클 코스에는 언덕도 많거든요. 반면 부력으로 무게 부담이 줄어드는 수영이 제게는 가장 쉬운 종목입니다.”

희망과 용기 전하는 은총이
2010년 은총이 부자가 처음 철인3종경기에 참가했을 때 MBC의 ‘시사매거진 2580’ 제작팀은 이 모습을 취재해 방영했다. 방송을 본 한 시청자는 ‘삶이 힘들어서 자살하려고 했는데 은총이네 방송을 보고 희망을 얻어서 살려고 합니다’라는 글을 게시판에 남겼다. 은총이를 바라보는 세상의 모든 편견과 좋지 않은 시선 때문에 시작한 운동이 이제는 많은 사람들의 희망이 되고 용기가 되었다.
“처음에는 은총이에게 넓은 세상과 많은 사람들을 보여 주려고 달리고 또 달려왔어요. 수영하고 달릴 수 있는 싱그러운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 트라이애슬론에도 도전했지요. 그런데 이제는 저와 은총이가 달리는 것을 통해 은총이처럼 아픈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활짝 열려서 그 아이들이 기쁨이 충만한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수영하고, 자전거타고, 달리는 게 이제는 저와 은총이의 소명이 돼버렸습니다.”
혹시라도 은총이가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트라이애슬론 대회에 나가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은총이는 워낙 물을 좋아해서 수영을 할 때는 알아서 먼저 보트에 올라탄다. 또 트레일러와 휠체어를 타고 달릴 때는 얼굴이 환하게 밝아진다. 아프건 아프지 않건, 아빠가 열심히 끌고 밀어주면서 바람을 가르고 달릴 때 이를 싫어할 아이가 있을까. 여기에 밝은 햇살과 신선한 바람은 누구에게라도 나쁜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은총이네 경제사정은 좋지 못하다. 출생 직후부터 큰 수술을 하느라 많은 돈이 들었다. 은총이 아빠는 군산 수협 직원이었다.
무한대로 불어나는 병원비에 갖고 있던 돈을 다 쓰고, 이것저것 팔아서 병원비에 보태다 카드 대출로 돌려막기를 시작했다. 그러다 월급을 많이 준다는 말에 이직한 한 병원 총무과에서 월급도 받지 못한 채 병원 문이 닫히면서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 뒤 은총이 아빠는 일용직 노동자와 우유 배달원, 노점상 등을 하며 버텼지만 가중되는 병원비와 생활고로 심한 우울증을 앓아야 했다. 그를 우울증에서 벗어나게 한 것은 달리기와 철인3종이었다. 그런 점에서 은총이는 아빠를 구원한 천사이기도 한 셈이다.

은총이에게 동생이 생긴다
요즘 은총이네 경제는 대부분 은총이 엄마가 책임지고 있다. 은총 엄마의 한자 방문교사 월급으로 세 식구가 살아가는 것이다. 지난해에는 은총이 아빠가 아산상 효행가족상을 수상하면서 상금 1,000만원을 받았는데, 이 상금의 70%를 교회 헌금으로 내놓은 대책 없는(?) 가족이기도 하다.
“이제는 없이 사는 게 버릇이 됐어요. 1년도 못 살 것이라던 은총이가 우리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큰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욕심 부리지 않고, 아끼면서 살려고 합니다.”
은총이 아빠에게는 두 가지 계획이 있다. 하나는 5년 안에 일본과 우리나라를 종단과 횡단으로 주파하는 것이다. 우선 일본의 북에서부터 남쪽까지 3,000km를 사이클로 종단한 뒤 대한해협을 수영으로 횡단하고, 이어서 부산에서 서울까지 달리는 구상이다. 물론 은총이와 함께한다.
두 번째 안(案)은 첫 번째 계획이 무산될 경우의 대안이다. 독도에서 우리 육지의 어느 지점까지 헤엄쳐 건넌 뒤 사이클과 달리기를 함께하면서 국토를 종단 또는 횡단하는 계획이다. 두 계획 모두 은총이처럼 아픈 아이들을 돕기 위한 이벤트로 개최할 생각이다.
은총이 아빠와 엄마는 얼마 전부터 은총이에게 동생을 만들어줄 생각을 하고 있다. 은총이 부모가 지금까지 아이를 갖지 않은 것은 사실 두려움 때문이었다. 또 다시 아픈 아이를 낳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은총이와 함께한 10년. 이제 부모는 자신감이 생겼다. 부모보다 아이 스스로가 겪을 아픔이 더 크기 때문에 건강하게 태어나면 좋겠지만, 설령 아프게 태어난다 하더라도 잘 기를 자신감이 부모에게는 잉태된 것이다.
김애란의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조로증으로 죽음을 눈앞에 둔, 주인공인 17세 소년이 ‘친구’처럼 지내는 60대 할아버지에게 “만일 하느님이 ‘너한테 자식을 주겠다. 대신 두 가지 중 하나를 정해야 한다. 첫째 아프더라도 오래 산다. 둘째 짧게나마 건강한 삶을 누린다.’ 할아버지라면 어떡하시겠어요?”라고 묻는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깊은 한숨을 쉬고 말한다. “그런 걸 선택할 수 있는 부모는 없어. 세상에 그럴 수 있는부모는 없어”라고.
부모는 자식을 가리지 않는다. 아프건, 건강하건 자식에게 헌신적이다. 그것이 부모의 숙명이다.
화상 후유증을 이겨내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있는 <지선아 사랑해>의 저자 이지선(35, <아산의 향기> 2013년 봄호 참조) 씨는 “은총이 부모가 씩씩하게 사는 모습은 참 사랑이, 진짜 용기가, 진정한 도전이 무엇인지 말해 준다. 은총이가 정말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녀의 바람대로 은총이뿐 아니라 은총이 부모도 정말 행복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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