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인 남자아이가 이발소를 찾았습니다. 백혈병에 걸린 아이의 머리를 삭발하던 정정배(60) 사장은 아이의 총명함에 반했습니다. “치료 잘 받고, 다음에 오면 아저씨가 과자 사줄게” 약속했는데, 닷새 뒤 아이가 ‘천사’가 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10여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그 아이 얼굴이 생생하다는 정 사장은 정신질환 환자를 이발하다가 목이 졸린 이야기, 처음 이발소에 왔을 때 초등학생이던 뇌성마비 아이가 24세 청년이 된 지금도 이발하러 오는 얘기를 풀어 놓았습니다. 이발소는 1989년 서울아산병원이 개원하며 문을 열었습니다. 정 사장은 1996년 3월부터 이발사 2명을 채용해 운영을 맡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직원을 위한 구내 이발소의 성격이 짙었는데, 동관에 이어 신관을 증축하고, 병상이 국내 최대인 2,680개로 늘어나면서 이제는 환자 이용자가 직원보다 더 많고, 그만큼 사연도 많습니다.
정 사장은 병실로 출장도 갑니다. 혈액내과나 무균실 환자, 침대에서 못 내려오는 환자가 대상입니다. 이때는 여자 환자의 머리칼도 손질합니다. 이발소에 휠체어 환자를 위한 장애인석을 만든 정 사장은 휴일에는 복지시설을 찾아 재능 기부를 하는, 이름 없는 천사이기도 합니다.
미용실은 2003년 1월에 처음 생겼습니다. 이발소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선입견 탓인지 환자나 보호자보다 직원들이 더 많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병원에 위치한 특성상 미용실에도 사연이 많습니다. 머리손질을 하다가 토하거나 대변을 보고, 발작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몸부림을 치면 사고의 위험이 있어서 발작 환자가 생기면 신수연(46) 실장을 포함해 6명의 미용사 모두가 긴장합니다.
사진촬영을 하던 날, 김민솔(9)이라는 이름도 얼굴도 예쁜 여자아이가 미용실을 찾았습니다. 발레를 하다가 다친 다리를 수술하러 입원한 민솔이와 함께 온 엄마는 “서울아산병원은 미용실뿐 아니라 서점, 도서열람실, 갤러리, 의료용품점, 세탁실, 식당 등 환자와 보호자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갖춘 진정한 우리나라 최고 병원”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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