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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동행 “상담은 생명을 구하는 일입니다” 조성진

1995년 고등학교 1학년이던 김대현이라는 학생이 있었다. 176cm에 65kg. 성적이 우수하고, 서울시장배 수영대회에서 우승할 정도로 수영을 잘하며, 농구실력도 좋아 친구들은 미국의 전설적인 농구 선수 ‘마이클 조던’을 본떠 ‘마이클 대현’으로 부르던 아이였다.
그 아이가 그해 6월 8일, 자신이 살던 아파트 5층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선배 남학생 5명의 집요한 괴롭힘을 견디지 못한 결과였다. 건강한 모범생이었던 열여섯 살 아들을 학교폭력으로부터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이 청소년폭력예방재단(약칭 청예단)을 출범하게 만들었다.

아들 죽음 뒤 학원폭력대책기구 설립
“옷이 찢기고, 안경이 망가지거나, 이곳저곳 상처가 생겨서 집에 올 때 누가 그랬느냐고 물으면 아들은 길 가다 깡패한테 맞았다고 했어요.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폭력인지 몰랐습니다. 아들을 잃고 여러 곳의 문을 두드려보았지만, 전문가도 없었고, 상담할 수 있는 곳이 없더군요.
우리 아들처럼 학교폭력을 겪는 아이들에게 답답한 마음을 상담해 주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길을 가르쳐 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청예단을 만들었습니다. 청예단은 아이들과 부모들을 직접 만나거나 전화 상담을 통해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힘을 주며, 눈물을 닦아 주고, 억울함을 풀어 주는 일을 하고자 했습니다.”
대현 군의 아버지 김종기(65) 씨는 1974년부터 1991년까지 삼성전자에서 근무한 뒤 1992년부터는 신원그룹 기획조정실장으로 자리를 옮겨 일하고 있었다. 회사 업무로 정신없이 바쁜 중에도 아들이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아다니던 그는 그해 11월 1일, 사재 1억 원을 출연해 재단법인 청예단이라는 비영리 공익법인(NGO)를 만들어 이사장에 취임했다.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알리고, 학교폭력의 예방과 수습을 위해서였다.
청예단은 지난 17년 동안 ‘상담은 생명을 구하는 일’이라는 믿음 아래 전문상담원이 피해자와 가해자의 심리 지원, 해결방법 조언, 화해ㆍ조정ㆍ개입 등을 진행하고 있다. 2007년에는 교육과학기술부와 업무협약을 체결하여 학교폭력 SOS지원단을 운영하고 있다.
청예단은 현재 부산ㆍ인천ㆍ대구ㆍ광주 등 전국에 12개 지부를 만들었고, 서울시립 노원청소년수련관 등 4개 청소년시설을 위탁운영 중이다. 그리고 서울 가산동에 자리한 사무국에 36명, 전국 12개 지부에 38명 그리고 네 군데 위탁운영 청소년시설에 122명 등 총 262명이 근무하고 있을 정도로 조직을 키웠고, 교육과학기술부와 법무부ㆍ교육청ㆍ서울시경찰청 등과 업무협약을 맺고 있다.

2011년까지 26만 건 상담
청예단을 대표하는 이사장은 초대 김종기 씨에 이어 임웅균 한국예술종합학교 성악원 교수(2002~2003), 문용린 전 교육부 장관(2003~2009), 박철원 에스텍시스템 회장(2009~2012)이 맡았으며, 2012년 10월 이사회의 추대를 받아 설립자인 김종기 씨가 제5대 이사장에 다시 취임했다.
청예단의 주된 활동은 전문가를 통한 상담활동으로 2011년까지의 상담사례는 총 26만 건이다. 이 중 긴급출동과 위기지원 사례는 2만여 건이다.
또한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 학생과 학부모ㆍ교사ㆍ경찰 225만 명을 교육하였고, 전문가 프로그램을 통해 상담사 등 4,600명을 교육시켰으며, ‘청소년지킴이운동’ 등 571회의 캠페인을 개최했다.
2006년부터는 매년 학생 5천여 명을 대상으로 학교폭력 실태조사를 벌여왔고, 이를 토대로 100여 권의 학교폭력 연구서를 발간했으며, 청예단에서 운영하는 대현장학재단을 통해 950명의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청예단의 적극적인 활동은 1997년 ‘청소년보호법’과 2004년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는 데 기여했고, 이런 공로들을 인정받아 청소년보호대상(2002)과 청소년유공단체 대통령 표창(2008) 등을 받았다. 아울러 설립자인 김종기 이사장은 MBC 좋은 한국인 대상(1999)과 국민훈장 동백장(2010)을 받아 그동안의 노고를 위로받기도 했다.
청예단은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았다. 2009년 8월 유엔 경제사회이사회의 특별지위를 획득한 것이다. 국내에서는 참여연대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이 지위를 가지고 있지만, 청소년 단체로는 청예단이 유일하다. 이로써 청예단은 유엔 회의에 참석해 발언할 수 있고, 공고안에 대해 질의하거나 결의할 수 있게 되었다.
2012년부터는 국제협력사업도 펼치고 있다.
지난 2월 라오스에 행복도서관을 건립해 주었고, 라오스 해외봉사단을 운영하면서 현지마을 일손 돕기, 아동ㆍ청소년 대상 평화교육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라오스 현지에서의 반응이 좋아서 방글라데시와 몽골 등에서도 계속 협력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조직의 규모가 커지고, 벌이는 사업이 많은 만큼 사용하는 돈이 적지 않다. 청예단의 지난해 수입은 50억 원이었다. 수입의 대부분은 지자체의 위탁시설 지원금(37억 원)이 차지한다. 또 학교폭력 SOS지원단으로부터 사업비 6억 원을 받았고, 후원자들로부터 6억 원을 모금했다.
수입과 마찬가지로 지출의 70% 가량이 위탁시설 운영비(35억 원)이다. 또한 상담 사업비로 6억 원, 일반 관리비로 3억 원 등을 지출했다.

“가해 학생들은 이미 용서했다”
인간과 학교가 존재하는 한 학교폭력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김종기 이사장은 말한다. 폭력성은 어쩌면 인간의 본성일지도 모르므로…. 다만, 그 폭력의 강도를 줄이는 일은 가능하다는 것이 김 이사장의 생각이다.
“학교폭력 가해자들에게 폭력이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을 갖도록 교육시켜야 하는데, 교사들이 제 역할을 할 수가 없습니다. 교사들 자신이 학생들로부터 폭행을 당하고 있잖아요. 지난 4월말까지 교사 5천명이 명예퇴직한 걸로 압니다. 그 지경으로 교단이 무너진 게 지금 우리의 현실입니다.”
무너진 교권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청예단은 교직원을 격려하는 프로그램을 구상 중이다. 그 구상은, 교육과 학생지도에 모범적인 교사들에게 상을 수여하는 계획으로 조만간 구체화할 것이다.
김종기 이사장의 개인적인 이야기로 청예단 이야기를 마무리지어야겠다.
김 이사장은 아들이 죽고 난 뒤 가해학생 5명을 일일이 찾아다녔다. “잘못했다”면서 눈물을 쏟는 그 아이들로부터 각각 반성문을 받았다. 경찰에 아이들을 고발할지 말지 한참 동안 망설인 김 이사장은 반성문들을 책상서랍에 넣고 자물쇠를 채웠다. 그리고 죽은 아들에게 ‘네게 해주지 못한 걸 하는 마음으로 학교폭력을 막는 일을 할 테니까 너를 지켜 주지 못한 아빠를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가해학생 아이들은 이미 오래 전에 마음속으로 용서했다. 문제는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는데도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김 이사장 자신이었다.
어느 날, 아들과 친하게 지낸 아이들을 우연히 만났다. 그 아이들로부터 아들을 괴롭힌 아이들 중의 ‘짱’이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이제는 아들의 죽음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도 그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심하게 받았다.
“폭력은 폭력을 부르는 법입니다. 우리 애가 사고 난 뒤 그 ‘짱’인 아이가 또 다른 불량서클 멤버들로부터 시달림을 많이 당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아이도 어딘가에 하소연하고 싶었겠지요. 그 아이의 불행한 소식을 듣고 ‘상담은 생명을 구한다’는 믿음이 더욱 강해졌습니다.
학교폭력을 당하고 있는 아이들의 눈물을 닦아 주면 꽃 같은 생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이번에 아산재단에서 영예로운 2012년 아산상을 주신 것도 억울한 아이들이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달라는 주문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청예단은 전문 상담원을 집중 양성해 학교폭력 사례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피해 학생들이 혹시라도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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