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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힘 “사랑, 나눌수록 더욱 풍요로워져요” 장현숙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는 한가로운 인삼밭. 한 농부가 아이스크림이 잔뜩 담긴 검정색 비닐봉투를 들고 농로를 따라 걷고 있다. 그리고는 큰 소리로 “학생들, 아이스크림 먹고 좀 쉬었다 해!”라고 소리친다. 아무도 없을 것 같던 인삼밭에서 학생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학생들 손에는 빨갛게 잘 영근 인삼열매가 가득 담긴 바구니가 들려있다. 한 여학생이 “어~” 하면서 허리를 쭉 편다. 인삼열매를 따기 위해 수십 분 동안 허리를 굽히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 문 학생이 “그래, 바로 이 맛이야!”라고 말하자 모두 웃음을 터뜨린다. 농부는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얼굴 가득 미소를 짓는다.
기록적인 폭염이 기승을 부린 지난여름, ‘사랑나눔 봉사활동’을 다녀온 아산장학생들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산장학생들의 모임인 ‘정담회’ 재학생과 졸업생들은 7월 18일부터 22일까지 4박5일 일정으로 강원도 홍천군 동면 개운리에서 농촌봉사활동을 펼쳤다. ‘사랑나눔 봉사활동’으로 이름 붙여진 이번 농활에는 재학생 50여 명과 졸업생 20여 명이 참여해 나눔을 실천하는 아산정신을 직접 체험하고 서로간의 우애를 다졌다.

7월 18일, 봉사활동 첫째날
7월 18일 오전 10시, 학생들은 아산재단에 모여 출정식을 마친 뒤 홍천을 향해 출발했다. 홍천 인근에서 점심식사를 해결하고 오후 2시부터 공작산 생태숲과 수타사를 견학했다. 공작산은 홍천군 동면 노천리에 위치한 산으로 봉사활동 장소인 개운리에서 10여 분 거리에 있는 산이다. 학생들은 공작산 생태숲을 견학하며 생태환경해설사의 강의를 들었다.
오후 4시, 드디어 개운리에 도착했다.
개운리는 90세대, 291명이 거주하고 있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여학생들은 보건소 관사에, 남학생들은 마을회관에 짐을 풀었다. 두 곳 모두 냉방시설이 없고, 남자 숙소에는 씻을 곳도 마땅치 않았지만 학생들은 모두 밝은 표정이었다.
짐을 푼 뒤 학생들은 서로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고, 5~6명씩 다섯 개의 조를 만들었다. 이 자리에서 이상윤(23・한림대 언론정보학3) 재학생 회장은 “개운리의 주민은 대부분 노인 분들이라 농번기에는 일손이 부족합니다. 정담회의 이름을 걸고 봉사활동을 나온 만큼 부끄럽지 않게 행동해 주시길 바랍니다. 또 봉사활동을 하며 정주영 아산재단 설립자의 마음가짐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마침 이날이 초복이라 저녁식사 시간에는 학생들이 직접 삼계탕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7월 19일, 봉사활동 둘째날
둘째 날에는 인삼밭 근로봉사, 의료봉사 등이 계획되어 있었다. 그런데 새벽부터 조금씩 비가 오기 시작하더니 날이 밝을 무렵이 되자 장대비가 쏟아졌다.
의료봉사를 위해 이른 아침 출발 예정이었던 서울아산병원 순회진료팀은 어쩔 수 없이 일정을 취소했다. 진료를 받기 위해 외출하려는 어르신들에게 혹시라도 안전사고가 발생할까 우려한 용석배(68) 개운리 이장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근로봉사를 할 예정이던 학생들도 장마의 끝을 알리는 굵은 빗줄기를 보며 허탈해할 수밖에 없었다.
오후에 비가 그치자 거의 모든 학생들이 인삼밭에 투입됐다. 인삼밭에서 학생들이 맡은 일은 4년생 인삼나무에서 열매를 수확하는 것이었다. 4년생 인삼열매를 따는 이유는 여기에서 얻은 씨앗을 다음 농사철에 심기 위해서다. 잘 익은 붉은색 인삼열매를 수확한 뒤 껍질을 벗겨내면 수수한 색깔의 인삼씨앗이 모습을 드러낸다. 농가에서는 이 인삼씨앗을 보관해두
었다가 심고, 남은 것들을 다른 농가에 주기도 한다.
가장 먼저 투입된 김차년(25・동양미래대 전기시스템3) 학생은 인삼밭 주인 아저씨로부터 “이 학생, 일 참 똑 부러지게 하네”라는 칭찬을 들을 정도로 몸을 아끼지 않았다. 차년 학생은 “제가 일을 잘 하니까 저한테만 일을 많이 주시는 것 같아요(웃음)”라며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다.
인삼밭의 가장 큰 적은 곳곳에 숨어있는 벌레들이었다. 특히 몸통이 어른 손톱 크기만 한 거미들은 검은 차양 밑이나 인삼줄기 사이에 숨어있다가 여학생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했다. “까악~” 비명소리가 들릴 때마다 그녀들을 구원하러 쏜살 같이 달려오는 인삼밭 사나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장학회 친목부장 정민재(25・한성대 부동산학3) 학생이다. 민재 학생은 재빠른 손놀림으로 거미줄을 치우고 난 뒤 “또 거미가 나타나면 나를 불러”라고 말해 여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민재 학생의 도움을 받은 여학생들은 인삼밭 밖에서도 무슨 일만 생기면(예를 들어 숙소에 파리만 나타나도) 다급하게 “민재오빠~”, “민재야~”를 외쳤다는 후문이다.

7월 20일, 봉사활동 셋째날
셋째 날에는 인삼밭 근로봉사 외에도 미용봉사, 장수사진 촬영봉사, 장애인시설 근로봉사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학생들은 아침식사를 마친 뒤 조를 나눠 각각의 봉사장소로 이동했다.
미용봉사와 장수사진 촬영봉사는 여학생 숙소에서 진행됐다. 서경대학교 미용예술학과에 재학 중인 김현민(21) 학생이 ‘개운리 미용실’을 개업했고, 여주대 간호과에 다니며 장수사진 봉사 경험이 있는 이식주(25) 학생이 임시 사진관을 개업했다.
가장 먼저 온 손님은 얼마 전에 증손자를 봤다는 용석희(82) 할머니. 용 할머니는 장수사진을 찍은 뒤 올해 처음으로 수확한 옥수수를 직접 삶아 학생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용 할머니는 “사진을 곱게 찍어줘서 너무 고마워. 학생들이 이렇게 더운데 시골까지 와서 고생하는 걸 보니 고맙고, 대견하네”라고 말했다.
양재현(60) 할머니는 한참을 머뭇거리다 현민 학생에게 머리를 맡겼다. 머리카락을 자른 뒤 양 할머니는 “젊은 사람 머리를 만들어 놓은 것 아니야?”라며 잠깐 불평했지만 학생들이 “10년은 젊어 보이세요!”라고 말하자 거울을 한참 본 뒤 만족한 모습을 보였다.
개운리 인근의 장애인시설인 마리아의 집에서는 김아영(22・벽성대 치위생3), 이미령(22・고려대 정치외교학3) 학생이 잡초 뽑기, 마늘 까기 등의 봉사활동을 했다. 아영 학생은 “워낙 외부인의 출입이 없는 곳이다 보니 처음에는 저희를 보고도 반기지 않으시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저희가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는지 나중에 저희가 나올 때에는 너무 아쉬워 하시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이날 밤, 숙소 곳곳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한쪽은 마늘냄새를 참다 못 한 이들이 내는 탄식, 또 한쪽은 이틀 연속 인삼밭 봉사를 다녀온 이들이 허리 통증을 호소하며 내는 탄식이었다.

7월 21일, 봉사활동 넷째날
이날 오전에는 모든 학생들이 인삼밭 잡초 뽑기에 투입됐다.
재학생과 동문들이 각자의 일을 마치고 개운리로 속속 모여들어 인원은 70여 명으로 늘어 있었다.
오후에는 보건소 앞마당에서 마을 어르신 위안잔치가 벌어졌다. 학생들이 음료와 과일을 준비하고 있을 때, 마침 이재철((주)코스모토 CMO) 동문회 총무가 치킨 20마리를 들고 와 잔치가 훨씬 풍성해졌다.
위안잔치의 하이라이트는 학생들의 장기자랑이었다. 진행을 맡은 이상윤 학생과 김동암(25・서비스에이스 상담원) 동문이 노래 ‘불타는 금요일’을 불러 장기자랑의 시작을 알렸다. 이어서 열불(열나게 불타는)조의 ‘빙글빙글’, 밥조의 ‘날봐 귀순’, 개아(개운리 아이들)조의 ‘사랑의 배터리’가 개운리에 울려 퍼졌다.
치열한 접전이 펼쳐졌지만 우승의 영광은 신나는 율동과 노래를 함께 선보여 어르신들의 호응을 한 몸에 받은 ‘개운리 아이들’에게 돌아갔다.
학생들의 장기자랑이 끝난 뒤에는 마을 어르신들의 노래자랑이 이어졌다. 학생들도 어르신들도 무대 앞으로 뛰어나가 한바탕 흥겨운 춤판을 벌였다.

7월 22일, 봉사활동 마지막날
마지막 날 아침에는 마을회관에서 해단식을 가진 뒤 숙소 주변을 청소했다. 용석배 이장은 학생들을 방문해 “4박5일 동안 더운 데서 자느라 정말 고생 많았어요. 이렇게 바쁠 때 학생들이 도와줘서 우리마을 농가에 큰 힘이 됐어요. 그 사이 정도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보내려니까 섭섭하네요”라며 학생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학생들도 못내 아쉬운지 서울로 가는 버스에 오르면서 자꾸만 뒤를 돌아봤다.
김차년 학생은 “정말 좋은 경험이었어요. 힘든 일도 있었지만 마을 어르신들과 정담회 선후배들 모두 서로 정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습니다. 인삼밭에서 선후배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주인아저씨가 사주신 아이스크림을 먹었던 기억이 생생해요. 그 맛을 오랫동안 못 잊을 것 같아요. 정말 사랑은 나누면 나눌수록 커지나 봐요”라고 말했다.
마지막 날, 날씨는 더웠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밝았다. 웃으며 인사를 나누는 그들 뒤로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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