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초록을 내려놓았다. 서늘히 불어온 가을바람이 나무 앞에서 머뭇거리는 순간, 나뭇잎에 붉은 물이 올라앉았다. 지난 계절 동안 이어온 노동의 수고를 덜어낸 잎은 이제 막 추락의 채비를 마쳤다. 잎은 나무를 떠나지만, 나무는 잎을 보내지 않는다. 낙엽 되어 뿌리 곁에 떨어지는 잎은 긴 겨울 동안 나무가 살아갈 양식으로 흔적 없이 사라질 참이다. 낙엽의 힘으로 나무는 새 생명을 약속하며, 수굿이 긴 겨울을 침묵으로 보내야 한다. 덜어냄으로써 일으켜 세우는 변증의 생명이다.
※ 고규홍 : 나무 칼럼니스트. 1960년생으로 서강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중앙일보에서 기자로 일했다. <천리포에서 보낸 나무편지>, <우리가 지켜야 할 우리 나무>, <행복한 나무여행> 등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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