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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를 찾아서 “진정한 대가(大家)는 반드시 이용권

“자랑거리요? 글쎄요. 논문을 많이 쓰긴 했는데….”
뇌졸중의 국내 최고 대가로 꼽히는 김종성(56) 교수를 만나자 마자 본인 자랑을 해달라고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보통 취재원에 대해 사전 취재를 하고 가는 것이 정석이지만 이번 만남에서는 그러지 않았다. 온전히 백지상태에서 김 교수의 장점을 파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논문을 얼마나 많이 쓰셨냐고 다시 묻자 SCI(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급 논문만 250여 편이란다. SCI 논문은 보통 다른 연구에 인용되는 수준 높은 연구를 모아놓은 색인이다. 전 세계의 학자들이 검색하므로 모든 학자들이 SCI 등재를 원하고, 학자로서의 능력도 SCI에 등재된 논문의 숫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 곳에 250편의 논문이 등재됐다는 것은 김 교수의 학술적 역량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주는 객관적 지표다. 김 교수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의 의학적 역량에 감탄하기 시작했다.

최초의 2개 국제학술지 부편집위원장
논문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자 그는 눈에 빛이 나면서 말을 이어갔다.
“저는 외국에서 더 많이 알려져 있어요.  J. Kim 하면 검색에서 자주 나오니까요. 논문을 많이 써서인지 해외 학술지의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김 교수는 전 세계 뇌졸중 분야에서 유명인사다. 뇌졸중 분야 저명 학술지는 미국뇌졸중학회지, 유럽뇌졸중학회지, 국제뇌졸중학회지 등 3개의 학술지가 주도하고 있다. 김 교수는 3개의 학술지에서 모두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 중 국제뇌졸중학회지에서는 부편집위원장이다. 부편집위원장은 논문을 확인하고, 게재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위치. 국제적 명성이 있지 않으면 선임조차 어렵다.
그런데 얼마 전 유럽뇌졸중학회에서도 부편집위원장 제의가 왔다. 김 교수는 국제뇌졸중학회지에 양해를 구하고 유럽뇌졸중학회지 부편집위원장 자리를 수락했다. 세계 뇌졸중학계를 주도하고 있는 3개 학술지의 편집위원을 모두 하는 사례도 드물지만, 그 중 2개의 학술지에서 부편집위원장을 맡은 경우는 김 교수가 역사상 처음이다.
“최근 뇌졸중 학계에서는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가 주목받고 있어요. 그동안 유럽 학계에서는 일본인이 주도적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런 면에서 유럽학회지의 방향도 일본적 성향이 강했죠. 제가 부편집위원장을 수락한 것은 그런 점을 깨고 싶어서였습니다.”
김 교수가 높이 평가받는 전문 분야는 뇌관뇌졸중 분야다. 뇌졸중에서도 뇌관뇌졸중 분야는 복잡하고 분류가 잘 되어 있지 않은데다 서구에 흔치 않아 미개척 분야였지만 김 교수가 이를 분석했다. 김 교수는 이 분야에 관해 국제 교과서를 집필하기도 했으며, 관련된 국제학술행사가 있으면 항상 초청돼 강연자로 나선다. 김 교수가 해외 학술행사에 강연자로 초청된 경우가 올해 상반기에만 5번이었다. 물론 현재 진행 중인 연구논문도 적지 않다. 항상 본인을 끊임없이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환자를 대할 때는 가족처럼
그가 의사라는 직업을 택한 것과 그 중에서도 신경과를 전공한 이유도 끊임없이 탐구하고, 궁금해 하는 그의 학자다운 성격에 기인한다.
“어릴 때부터 사람이 왜 우울한지에 대해 관심이 많았습니다. 인간의 정신에 대한 생각이죠. 의대에 진학해서도 정신과에 대한 탐구 의욕이 높았습니다. 관련 서적도 많이 찾아봤고 공부도 많이 했죠. 덕분에 정신과 강의 내용이 대부분 아는 것들이더라고요. 슬슬 짜증이 났습니다. 그때만 해도 정신과는 지금처럼 뇌의 변화에 대한 연구가 없었고 말 그대로 정신병 분석이었으니까요.”
김 교수는 뇌에 대한 연구가 더 많이 진행 중이던 신경과를 택했다. 특히 뇌졸중.
 “뇌가 망가지면 왜 말도 변하고, 성격도 변하는지 관심이 많았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뇌졸중이라기보다는 뇌졸중의 현상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거죠. 결국 지금도 그 분야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연구에 대한 김 교수의 열정은 의사로서 환자를 돌볼 때도 나타난다. 실력과 함께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환자들이 몰려 더 많은 환자의 아픈 곳을 살피게 됐다. 많은 사람에게 진료 혜택을 줄 수 있게 됐지만, 외래환자를 볼 때 하루에 보통 50〜60명씩 봐야 해 시간이 부족한 실정이다.
“우리나라 의료 여건상 환자 한 명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환자들은 최대한 많은 것을 물어보고 싶어 하죠. 저도 최대한 많이 설명해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최대한 간결하게 설명하고 중요한 점은 몇 번이고 반복해서 강조해 줍니다.”
반복하고 강조하는 것에도 의사로서의 신뢰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신뢰는 실력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원칙도 섰다. 의사가 환자를 대하는 시간이 짧은 만큼, 그 시간 동안 환자가 불안하지 않게 신뢰를 주기 위해서는 실제 실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환자를 대하는 김 교수의 또 하나의 원칙은 마음가짐이다.
“환자를 대할 때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환자를 봐야 하는 의사로서 환자를 대할 때 사무적인 감정을 갖는다면 제대로 볼 수 없으니까요. 얼마나 아프면 의사를 찾아왔을까, 라는 마음으로 동생, 누이를 대하듯 관심을 가지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환자에게 항상 좋은 말을 많이 합니다. 일부 전공의들이 환자 상태가 나빠질 것을 우려해 나쁘게 말하곤 하는데 그러면 정말 나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왕이면 희망적으로, 긍정적으로 말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린 에세이
끊임없이 연구하고, 진료하고, 강연하는 그에게 체력관리는 필수다. 성공하는 사람의 필수조건도 체력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해외 학회에 많이 참가하면서 느낀 국제적인 사람의 특징 두 가지는 영어와 체력입니다. 한 호주 의사를 만났는데, 보통 그들이 유럽 학회에 가려면 항공기로 20시간 정도 소요되죠. 그런데 그 사람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강연해야 했는데도 강의 태도와 자세가 아주 훌륭했습니다. 저도 호주에서 도착하자마자 강연한 적이 있었는데 아쉬움이 많았거든요.”
이후 김 교수는 체력을 키우기 위해 매일 아침 수영장으로 출근한다. 1시간여 수영을 통해 몸을 단련하고 있다.
그의 취미도 논문을 많이 쓰는 학자답게 저술이다. 뇌 전문 의사인 만큼 ‘뇌’가 주제인 저서가 많지만 전문서 외에도 일반인 대상의 책도 많이 펴냈다. 2000년에 펴낸 <뇌에 관해 풀리지 않는 의문들>은 대한의학회에서 수필상을 받았다. 첫 장에 실린 ‘잠은 왜 잘까’는 중학교 2학년 국정 국어교과서에도 게재됐다. 문장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존경받는 의사가 되겠다”
2005년에는 뇌의 신비를 벗겨낸 <춤추는 뇌>, 2006년에는 뇌와 영화를 접목시킨 <영화를 보다>, 2011년에는 예술가와 유명인의 정신을 뇌과학 측면에서 살펴본 <뇌과학 여행자> 등을 집필했다. 모두 베스트셀러다.
“해외 강연을 다니느라 이동이 많다보니, 책이나 소설을 많이 보고 글도 써둡니다. 평상시에 논문을 많이 써서 그런지 문장 구성에 도움이 많이 되죠. 요즘에는 독자들로부터 계속 집필 활동을 해달라는 메일도 오고 있습니다. 아직 구체적인 준비는 하지 않고 있지만 집필은 계속해야죠.”
진료와 연구, 강의, 논문 심사 등으로 항상 바쁜 일정을 소화하지만 김 교수는 이를 즐기는 듯했다.
“저도 배우는 것이 참 많습니다. 새로운 잡지를 보면서 의학정보도 얻을 수 있으니까요. 업무가 많아져서 힘든 것보다 이로운 점이 더 많은 거죠. 환자를 많이 볼 수 있다는 점도 임상환자에 대한 연구를 할 수 있어 좋습니다. 해외에서는 부러워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연구 활동으로 질병치료에 더 도움이 돼야겠죠.”
의사로서의 다짐도 잊지 않았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덧붙인 말은 ‘존경받는 의사’가 되겠다는 것이었다.
“제자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것이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 되라’는 말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사람은 저보다 젊은 사람이 많아요. 전공의도, 학생들도 어려운 상황에서 훌륭한 일을 한 경우가 적지 않거든요. 배우는 것은 상호간입니다. 인격적으로도 성숙한 진정한 대가(大家)가 되어 존경받는 의사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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