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더불어 삶 “봉사는 젊음의 특권이자 의무입니다” 조성진

지난 4월 3일 오후 5시 30분, 강화군 온수리에 자리한 희망터지역아동센터에 승합차 한 대가 도착했다. 시기적으로는 봄이지만 한겨울 같은 삭풍이 몰아쳐 공부방 주변의 나무들은 파란 싹을 하나도 내밀지 못하고 있었다. 승합차 문이 열리자 아홉 명의 대학생이 쏟아져 나왔고, 젊음의 열기로 인해 추위가 잠시 물러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바로 가천대학교의 봉사동아리 ‘열끼’ 학생들이 학습봉사를 하기 위해 도착한 것이다.
학생들은 지역아동센터 문을 열고 들어가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에는 이미 저녁식사가 준비돼 있었다. 메뉴는 누구에게나 공평했다. 대학생 선생님도, 공부하러 오는 중학생도, 또 지역아동센터 근무자도 너나없이 밥과 국에 반찬 세 가지의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자 인근 강남중학교 학생들이 하나둘 모여들었고, 오후 6시 정각에 수업이 시작됐다. 선생님 한 명이 학생 한 명 또는 두 명을 담당하는 개인과외였다.

마음의 문 열고 더욱 가깝게
열끼의 2학년 회장인 안서영(생명과학과) 학생에게 영어·수학을 배우는 최은종(중 2) 군은 “여기에서 공부하는 게 큰 도움이 된다. 선생님이 지금처럼만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연수(생명과학과 2학년) 학생의 담당인 김경준(중 3) 군은 “공부 잘하는 선생님 덕분에 성적이 많이 올랐다”고 흡족해하면서도 “선생님과 더 친해지고 싶다. 좀 더 편하게 대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최건우(중 2) 군은 “수학 선행학습을 하고 있는데, 학교 수업보다 진도가 앞서나가니까 자신감이 생긴다. 그런데 공부도 좋지만 다른 이야기도 나눴으면 좋겠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러자 최 군을 지도하는 강주현(생명과학과 2학년) 학생은 “공부 말고 다른 이야기도 하고 싶지만, 공부방에 1주일에 한 번밖에 못 오기 때문에 아무래도 공부에 전념하게 된다”고 사정을 설명했다.
아쉬움은 멘토인 대학생 선생님들에게도 있었다. 주연수 학생은 아이들이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점을 가장 큰 아쉬움으로 꼽았다.
“1주일에 한 번밖에 만나지 못하니까 정을 쌓기가 쉽지 않아요. 게다가 조손가정이나 한부모가정에서 자라며 마음의 상처를 입은 아이들이 많아서 경계심도 많고요. 이런 아이들의 마음의 문을 열기에는 저희들의 경험이 너무 부족하죠. 몇몇 아이들이 지적했지만, 저녁 6시부터 9시까지 진행하는 수업을 공부에만 치중하는 것도 벽을 부수지 못하는 요인이라고 할 수 있어요. 서로 마음의 문을 열고 더 친해지는 것, 그것이 우리의 과제입니다.”
이를 위해 열끼 학생들은 매년 한두 차례 야외에서 체험학습을 진행하기도 한다. 재작년에는 강화도 고인돌공원으로 야외학습을 나갔고, 지난해에는 화석 발굴체험과 태양열 자동차만들기 과학체험학습을 진행했다. 올해에는 석모도의 보문사에서 체험학습을 진행할 예정이다. 하지만 동아리의 1년 예산이 100만원 정도여서 학습활동의 다양화를 꾀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지역아동센터 근무자인 주옥경(42) 사회복지사는 열끼 학생들의 열정을 높이 평가했다.
“봉사를 나오는 학생들은 의학전문대학원 진학과 의사를 꿈꾸고 있어서 공부 양이 굉장히 많은 걸로 압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학습봉사를 하려면 사명감이 없으면 어려운 일이죠. 지역아동센터에 오는 아이들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학원 가기가 쉽지 않은데, 공부 잘하는 대학생들에게 과외를 받으면서 대학진학에 대한 자극도 받고, 실제로 성적도 올라 굉장히 좋아하고 있습니다.”

4개팀 구성해 체계적 봉사 
강화 지역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열끼는 가천대학교 생명과학과의 자원봉사 동아리 이름이다. 2003년 강화군 출신인 지도교수(황유진 생명과학과 교수)가 권유해 당시 1학년 학생 16명으로 출발했고, ‘눈동자에 나타나는 당찬 기운’을 뜻하는 순우리말 ‘열끼’가 젊음의 열정과 끼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어 동아리 이름으로 삼았다.
생명과학과는 작년까지 1, 2학년이 강화캠퍼스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며 강화군내에서 봉사활동을 펼쳤는데, 생명과학과가 소속돼 있던 가천의과학대학교가 경원대학교와 통합돼 가천대학교로 바뀐 금년부터는 2학년만 강화캠퍼스에서 기숙하게 되었다. 따라서 올해에는 2학년만 봉사활동을 하면서 참여학생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그래도 2학년 48명 가운데 46명이 열끼 회원이어서 100% 가까운 가입률을 보여주고 있다.
열끼는 앞에서 살펴본 지역아동센터팀과 요양원팀·장애인시설팀·강화중학팀으로 구성돼 있다.
지역아동센터팀에는 13명의 학생이 소속돼 있고, 화도마리와 희망터지역아동센터를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에 방문해 오후 6시부터 3시간 동안 학습지도를 한다.
강화도는 아직 대중교통이 잘 갖춰져 있지 않아서 섬 안에서의 이동이 쉽지 않다. 강화캠퍼스에서 지역아동센터까지는 차로 갈 경우 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지만, 대중교통 이용이 불가능하다. 학생들이 지역아동센터의 승합차를 이용하는 건 그래서이다. 학생들은 1주일에 한 번쯤은 더 학습봉사를 할 의향을 가지고 있는데, 지역아동센터의 승합차 배차가 여의치 않아서 실현을 못 하고 있다. 실제로 작년의 경우 희망터지역아동센터를 1주일에 두 번 방문했는데, 금년에는 희망터의 배차 사정이 나빠져 횟수를 1회로 줄였다.
요양원팀에는 학생 3명이 소속돼 있는데, 치매·와상 환자 62명이 있는 성안나의집에서 매주 목요일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 봉사활동을 한다. 외로운 환자들의 말벗이 돼주고 빨래를 대신해 주는 게 주된 봉사 내용이며, 이때는 오전이어서 학교 차량을 이용해 이동한다.

오히려 사랑 받고 돌아온다
장애인시설팀에서는 가장 많은 29명의 학생이 활동 중이다. 중증장애인 58명이 수용돼 있는 색동원을 매주 목요일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방문해 봉사활동을 펼친다.
학생들이 주로 하는 일은 청소와 말벗 돼주기 그리고 미술 및 풍물 치료이다. 이때도 학교에서 차량을 제공해 준다.
색동원에서 봉사활동을 했던 안서영 학생은 “뇌성마비 장애우 여성과 함께 얼굴을 그리는 미술치료를 한 적이 있다. 얼굴을 그리고 나자 평소에 잘 웃지 않던 그 분이 저를 꽉 안아 주는데 울컥 하면서 눈물이 난 적이 있다”면서 봉사를 나갔다가 오히려 사랑을 받고 돌아온 경험을 들려주었다.
7명으로 구성된 강화중학팀은 월요일과 수요일, 중학생 40~60명을 대상으로 방과후 멘토교실을 운영한다. 주요 과목의 학습지도를 하는 한편 아이들의 고민을 상담해 준다. 강화중학교에는 택시로 이동하는데, 택시비 절반 가량을 강화중학교가 부담하고 있다.
열끼는 여러 학과의 연합이 아니라 단일과의 동아리여서 학교에서 재정 지원이 없다. 그렇다고 회비를 걷지도 않아서 운영 경비는 프로그램 공모사업 등에 지원해 마련한다. 올해에는 지역아동센터의 연극 지도 및 야외활동 보조 등의 프로그램으로 200만원을 지원해 달라는 신청서를 인천시자원봉사센터에 제출해 놓은 상태다.
더욱 기특한 일이 있다. 열끼는 지난해에 제23회 아산상 시상식에서 청년봉사상을 수상했다. 그때 받은 상금 1천만 원을 ‘곤궁한’ 자신들의 살림에 보탤 법도 하건만 그들은 이 상금을 모두 형편이 어려운 가천대 후배들의 장학금으로 기탁한 것이다.
속된 말로 밥이나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성적에 반영되는 것도 아닌데 이들은 왜 귀한 시간을 희생하며 봉사활동에 나서는 것일까. 과대표를 맡고 있는 주연수 학생은 이렇게 말한다.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봉사 점수를 받기 위해 형식적으로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어요. 그때 무척 아쉬움을 느껴서 대학에 들어가면 제대로 해봐야겠다고 결심했지요. 표현이 이상하지만, 봉사에는 중독성이 있어요. 한번 맛들이면 빠져나오기 힘든 성취감이 있거든요. 젊을 때 아니면 언제 해보겠어요? 봉사, 그것은 우리들의 특권이라고 생각해요.”

이미지 하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