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는 40대 아저씨들이 있다. 난생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기타치고 노래 부르면서도 부끄럽거나 창피한 줄 모른다. 평소엔 구청이나 병원 등 자신의 일터에서 얌전하게 차려입고 근무하다가, 주말이면 찢어진 청바지에 알록달록한 남방이나 꽉 끼는 티셔츠 차림으로 변신하는 ‘두 얼굴의 사나이들’이다.
이들이 당당한 이유는 ‘모금함’에 있다. 무대도 없이 거리공연을 벌이는 그들 앞에 놓인, 나무로 만든 하얀 모금함. 여기에 모이는 돈은 한 푼도 남김없이 난치병을 앓는 아이들의 치료비로 지원되는 까닭에 그들은 항상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연주하고 노래 부르는 것이다.
2002년 12월, 자신들의 생활터전인 경북 포항에서 첫 공연을 시작한 이래 지난 4월 중순까지의 공연 횟수는 모두 523회. 모금함에는 지금까지 총 9,800여만 원이 모였고, 이 돈은 모두 난치병을 앓는 42명의 아이들 치료비로 지원되었다. 거리공연을 펼치는 그들 뒤로 붉은색과 보라색 바탕 위에 노란색과 흰색으로 쓰인 펼침막이 보인다. 거기엔 ‘난치병 아동 수술비 마련을 위한 / 사랑의 자선음악회 / 노래하는 좋은 사람들’이라는 글이 쓰여 있다.
523회 공연 펼쳐진 경주보문단지 거리의 청중들도 희한하긴 마찬가지이다. 길을 가다가 연주와 노래 소리에 발길이 잡힌 그들은 노래하는 좋은 사람들을 처음 봤으면서도 모금함에 돈을 술술 잘도 집어넣는다. 마치 피리 부는 사나이에 홀린 아이들 같다. 부모 품에 안겨 고사리 손으로 돈을 집어넣는 아이에서부터 나이든 어르신 그리고 외국인까지 남녀노소와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 액수도 천차만별이다. 500원짜리 동전을 집어넣는 초등학생이 있는가 하면, 아빠 품에 안겨 천원짜리를 집어넣는 유치원생도 있고, 만원짜리를 곱게 접어서 넣는 중년여성도 보인다. 이따금 통 크게 5만원짜리 지폐를 넣는 호기로운 관광객도 있다.
공연을 하는 사람들이나, 보며 즐기는 사람들이나 모두 한마음으로 나눔과 사랑을 실천하기 때문인지 얼굴들이 하나 같이 맑았다.
지난 4월 14일 오후 2시 13분, 경주보문단지 호반광장에 김호철(41ㆍ기타학원 원장) 씨와 박준현(41ㆍ병원 근무) 씨가 연주하는 전자기타와 베이스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윽고 빨간색 남방을 입은 박현남(43ㆍ자영업) 씨와 주홍색 티셔츠를 입은 권성호(45ㆍ포항북구청 공무원) 씨가 듀엣으로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하는 좋은 사람들(노좋사)의 523회 거리공연이 시작된 것이다.
봄을 시샘하는 추위 탓에 평소보다 늦은 4월 중순에야 만개한 벚꽃을 구경하러 나온 상춘객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발길을 멈췄다. ‘라라라’와 ‘밤에 피는 장미’ 두 곡을 더 부르며 분위기를 고조시킨 뒤 박현남 씨가 간단히 자신들의 공연 목적을 소개했다. 하지만 공연팀으로부터 7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놓여 있는 모금함에 돈을 집어넣는 사람은 아직 없다.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노좋사가 계속 공연을 이어가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모금함에 성금을 집어넣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노좋사가 관광객들 틈에 자기편인 ‘바람잡이’를 심어놓은 것도 아니었다. 꽃구경을 나온 사람들은 한결같이 자발적으로 돈을 집어넣고 있었다.
남녀노소와 국적을 가리지 않고 모금함에 돈을 넣었는데, 품에 안은 아이에게 돈을 넣게 하는 부모가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 오랜만에 가족 나들이를 왔다는 이승철(35ㆍ경북 경주시 황남동) 씨는 네 살배기 딸을 안아서 성금을 넣게 한 뒤 “우리 딸에게 어릴 때부터 이웃사랑을 몸에 배게 하고 싶었다”면서 밝게 웃었다.
문득 서울에서 이런 공연을 펼쳤을 때 행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했다. 과연 경주에서처럼 사랑의 손길이 끊이지 않고 이어질지 의문이었다. ‘전투 모드’로 살아가는 대도시에서는 아무래도 ‘평화 모드’의 지방과는 다를 것 같았다.
3시간 공연해 150만원 모금 공연이 계속되는 동안 거리의 청중들은 흩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했다. 적을 때는 50여 명이었고, 많을 때는 200명 이상이 모여 노래와 연주를 감상했다. 신청곡도 많이 요청했고, 흥겨운 노래가 나올 때는 함께 어울려 춤을 추는 단체 관광객도 있었다. 노좋사는 이따금 미아찾기 방송도 했다. 관광지에서는 아이를 잃어버리는 일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데, 딸을 찾는 엄마가 당황한 얼굴로 찾아와 “우리 딸 세희를 찾을 수 있게 방송을 해달라”고 하소연해 노래를 중단하고 세희를 찾는 방송을 하기도 했다. 다행히 아이는 한참 떨어진 곳에서 방송을 듣고 “엄마”를 부르며 달려왔다.
오후 5시 26분, 40여 곡을 부른 노좋사는 ‘불놀이야’를 끝으로 공연을 마쳤다. 3시간 13분의 공연시간 동안 노좋사는 화장실 한 번 가지 않았다. 공연을 시작하고 2시간이 좀 지났을 때 마이크가 과열돼 전원이 끊긴 적이 있는데, 그때 잠시 음료수를 마시며 쉬었을 뿐이다. 공연이 중단되자 음향을 담당하는 김종호(44・자영업) 씨가 부리나케 달려와 금세 장비를 수리했다. 노좋사의 장비는 대부분 오래된 중고여서 이런 사고가 종종 생긴다고 한다.
공연팀은 뒷정리를 한 뒤 근처의 음식점으로 자리를 옮겨 이른 저녁을 먹었다. 그러면서 모금함에 모인 성금을 집계했다. 500원짜리 동전부터 5만 원 지폐까지 다양한 성금은 모두 159만6천 원이었다. 공연팀의 입이 쩍 벌어졌다. 보통 두세 시간 공연하면 70만 원 안팎이 모이는데, 이날은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손길을 뻗어온 것이다. 이로써 지금까지 모인 성금 총액이 9,820만4천여 원이 되었다. 이루지 못할 것 같았던 ‘후원금 1억 원 돌파’가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한편 이날 모인 성금 159만여 원은 다음날 노좋사 회장이자 공무원인 권성호 씨가 깔끔하게 공문을 작성해 한 푼도 빠짐없이 어린이재단에 지정 기탁하였다. 이 성금은 노좋사가 지정한 김규식(고1) 학생의 화염상모반 치료비로 쓰일 예정이다.
노래하는 좋은 사람들의 탄생 노좋사는 2002년에 탄생했다. 사회복지담당 공무원으로 일하던 권성호 씨는 어느 모자가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혼한 뒤 파출부 등으로 일하는 엄마와 초등학교 3학년과 다섯 살짜리 남매가 사는 가정이었다. 가뜩이나 힘겹게 살아가는데, 다섯 살인 혜진이는 얼굴에 커다란 반점이 있어서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딱한 처지였다.
혜진이를 도울 방법을 찾던 권 씨는 거리공연을 통해 모금을 하여 조금이나마 지원을 하기로 결심했다. 포항시 죽도성당의 성가대 지휘자였던 그는 뜻이 맞는 음악동지 규합에 나섰다. 우선 같은 성가대원인 박현남, 김호철 씨가 합류했다. 이어서 김호철 씨의 제자인 장진홍(34ㆍ프리랜서) 씨가 홍일점이자 건반 주자로, 박현남 씨의 고등학교 동문인 정기대(41ㆍ회사원) 씨가 노래를 부르는 보컬로 참여했다. 이윽고 기계를 잘 다루는 김종호 씨가 음향장비와 홈페이지(다음카페 노래하는 좋은 사람들) 관리를 책임지게 되었고, 노영혁(33ㆍ교사) 씨는 베이스를 연주하기로 했다. 또 한 명의 베이스 연주자 박준현 씨는 공연팀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뒤에 합류하였다.
이렇게 모인 ‘거리의 7인’은 고물상을 찾아다니며 중고 장비를 구입해 수리하였고, 토요일 저녁마다 모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연습에 열중했다. 악기는 각자 가지고 있는 것을 사용하였다. 오랜 준비 기간을 거쳐 2002년 10월 10일, 그들은 드디어 조촐하게 노래하는 좋은 사람들 창단 기념식을 가졌다. 봉사모임이어서 회비를 걷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운영 경비는 대부분 회장이 부담했다. 진행비가 너무 많이 나올 때는 회원들이 십시일반으로 조금씩 보태기도 하였다.
첫 공연은 그해 12월 23일, 죽도성당 앞에서 열렸다. 마이크와 악기를 잡은 손이 동상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추운 날씨였다. 긴장과 두려움과 설렘과 기대 속에 시작된 공연은 다행히 성공적으로 끝났다. 자그마치 120만 원이나 모금된 것이었다. 이 돈으로 혜진이의 반점을 깔끔하게 제거하여 팀원들의 기쁨은 배가되었다. 이후 그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 달에 두 번씩 정기적으로 거리공연을 벌이기 시작했다.
아동 42명에게 9,800여만원 지원 노좋사는 주로 사람의 왕래가 많은 곳에서 판을 벌인다. 이를테면 포항에서는 북부해수욕장 시계탑이나 중앙상가 실개천거리, 환호해맞이공원, 대형마트 앞 등이다. 그리고 포항을 벗어나 경주와 부산, 제주, 영덕, 울진, 춘천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공연장소를 섭외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막상 허락을 받고 공연을 해도 소음이라면서 장비의 전기코드를 뽑거나, 소리 지르며 쫓아내는 상인이나 주민들이 있어서 낙담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거리공연 10년째에 이르는 지금은 신용을 많이 쌓아서 적극적인 협조를 받으며 공연하고 있다. 특히 경주보문단지를 관리・운영하는 경북관광개발공사의 경우 관광객들에게 건전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노좋사에게 교통비를 지원해주고 있다.
공연시간은 2시간 정도이지만 청중들의 앙코르 요청이 많아서 보통 3시간이 소요된다. 청중 반응은 무척 좋은 편이다. 공연 막바지에는 항상 200~300명이 함께 노래를 부르며 마무리를 하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경주보문단지에서 5시간 동안 쉬지 않고 한 공연이다. 청중들이 자리를 옮기지 않아서 공연을 끝내고 싶어도 마무리 지을 수가 없었다. 밤새도록 노래해 달라는 청중들과 공감대가 형성돼 힘든 줄 모른 채 즐겁게 공연한 일이 뿌듯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2시간 공연을 통하여 모금된 금액은 50~70만 원 선이다. 당일 날씨와 분위기 등에 따라 모금액은 조금씩 차이가 난다. 모금액을 따로 통장에 보관하지는 않는다. 성금은 권성호 회장이 월요일, 사무실에 출근하는 대로 지정기탁 공문을 만들어 대상자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송금한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지금까지 42명의 아동에게 9,800여만 원을 지원했다. 처음에는 모금액을 지원 대상자의 통장으로 입금해 주었다. 수술을 하고 난 뒤 영수증과 각종 자료를 제시하면 개인 통장으로 입금하는 식이었다. 그 이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공문을 보내어 지정기탁으로 지원 방법을 변경했고, 재작년부터는 어린이재단을 통해 지정기탁을 하고 있다.
‘거리의 천사들’의 작은 꿈 지원할 아동은 읍면동 사회복지담당 공무원들의 추천이나 복지관ㆍ사회복지법인 등의 요청을 받아 선정한다. 지금까지 치료비를 지원한 아이들 중에서는 아무래도 노좋사를 결성하도록 동기를 부여한 첫 번째 대상자 혜진이가 잊히지 않는다고 한다. 또 신장질환을 앓아 혈액투석을 하던 제주도의 정훈이와 왼쪽 귀와 폐가 하나씩 없던 재민이가 기억에 남는 아이들인데, 이 아이들은 지금 모두 씩씩하게 잘 자라고 있다.
노좋사는 가끔 장학사업에도 참여한다. 몇 해 전 일일호프를 개최해 모은 200만 원을 포항시에 기탁하였다. 권성호 회장은 2010년에 받은 청백봉사상 상금 200만 원을 모두 장학금으로 내놓기도 했다.
노좋사의 노래실력을 궁금해 할 독자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권 회장은 1996년 포항ㆍ안동ㆍ대구의 ‘열전 노래마당’에서 대상을 받았고, 부회장인 박현남 씨와 함께 참가한 2004년 낙동가요제에서는 3등에 입상했다.
자신들이 가진 재능을 통해 어려운 이웃에게 사랑을 전하는 노좋사는 2003년 포항MBC 삼일문화대상, 2004년 경상북도 자원봉사 체험수기 대상, 2004년 코오롱재단 우정선행상, 2008년 다산문화대상, 2010년 한맥사회복지대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아산상 자원봉사상을 받았는데, 상금 1천만 원 중 일부를 폐렴을 앓던 아동에게 전달해 주위사람들로부터 “역시 노좋사답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주말에도 외부 활동하는 데 대해 가족들은 처음에 당연히 반대했지만, 이제는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지방 공연을 갈 때는 가족 나들이를 겸해서 함께 갈 때도 종종 있다.
노좋사는 소박한 바람을 갖고 있다. 조그만 트럭을 한 대 마련해 장비를 싣고 다니면서 전국 순회공연을 하는 것이다. 이동 공연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리하여 함께 살아가는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데 조그마한 기여를 하는 것이 ‘거리의 천사들’의 작은 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