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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안 이야기 ‘가족’ 넝쿨을 이루며... 강은경




간혹 삶의 다양한 형태들에 대해 좁디좁은 개인의 눈을 들이대는 일이 죄스러울 때가 있다. 스물넷 꽃다운 처녀가 마주했을 인생의 고민도, 머나먼 타국 땅으로 날아간 외로운 마흔넷의 순정에도 그저 고개만 끄덕일 수밖에 없다. 녹녹치 않은 세상살이에서 먼 길을 함께 걸어갈 짝을 만나는 일은 평생을 굴레처럼 짊어져온 각자의 짐을 서로 나누는 일임을 알기에.
“여보세요?  아, 엄마 바꿔줄게요.”
베트남에서 시집온 호티몰(25) 씨를 만나러 가는 길, 전화로 이루어진 그녀와의 짧은 첫 대화는 황급하게 끝이나 버렸다. 한국으로 시집온 지 1년 여 밖에 안 된 그녀로서는 전화란 난감한 물건인 듯했다. 한국말을 수월하게 하는 것은 물론, 듣고 이해하는 것도 아직은 힘들기 때문. 사실 1년 정도가 지나면 웬만한 의사소통은 가능하다지만 호티몰 씨는 상황이 좀 달랐다.

첫선 본 다음날 혼례를 치르고
그녀의 남편, 이하준(45) 씨는 생후 7개월에 열병으로 뇌성마비장애인이 되었다. 문화재 관리라는 공무도 보면서 열심히 살아왔던 그는 2006년 1월 신부를 구하기 위해 베트남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자신에게 시집을 오겠다는 ‘예쁘고 선해 보이는’ 호티몰 씨를 선택했다. 다음 날, 두 사람은 백년가약을 맺고 첫날밤을 치렀다. 그리고 이하준 씨 혼자 한국으로 돌아왔다. 호티몰 씨가 한국으로 들어온 것은 그로부터 5개월 정도가 지난 6월이었다.
옛날에야 얼굴도 못보고 시집장가 가는 것이 당연했고 ‘그러고도 잘 살았더니라’ 라는 말을 들었지만, 그 날 스물네 살 베트남 처녀는 어떤 생각을 했을지…. 묻고 답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 그저 가족의 생계를 걱정한 그녀의 심정만 헤아릴 뿐이었다.
시어머니 송연옥(68) 씨는 부족한 아들에게 시집온 며느리 호티몰 씨가 그저 고맙고 예쁘기만 하다. 그래서인지 잘못을 해도 ‘모르니까 그렇지’ 하고 넘기게 된단다.
“내가 우리 딸내미한테도 그렇게 잘하진 않았어요.”라고 말하는 송 씨. 며느리 속옷까지 빨아주는 시어머니라니 더 이상 물을 것도 없지 싶다. 송 씨로서도 살림은커녕 우리나라 문화에 대해서도 모르고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며느리와 한집에서 사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서운함보다, 늘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앞서는 그녀다. 수십 년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둥글게 굴러가려면 살아온 시간 못지않은 날들이 더 필요할 것이므로….



승연이를 낳고서 얻은 작은 행복
“안 돼!”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해 혼란스럽고 미안한 눈길만 건네던 호티몰 씨의 입에서 너무도 명확한 한국말이 튀어나온다. 5개월 된 딸 승연이가 보행기를 타고 이리저리 다니다가 화분을 건드린 것이다.  그녀는 한국으로 들어오자마자 임신하여 딸 승연이를 낳았다.
많은 부부들이 결혼 초 크고 작은 갈등을 겪는데 호티몰 씨와 하준 씨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가장 큰 갈등의 원인은 친정에 돈을 보내는 일. 한 번은 임신한 호티몰 씨가 가출을 감행한 일까지 있었다. 결국은 집 근처 찜질방에 있는 그녀를 하준 씨가 찾아서 데려왔다. 또 성남으로 함께 시집온 그녀의 베트남 친구가 아기를 낳은 병원에 남편이 함께 가주지 않는다고 서운해서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안 나온 적도 있었다고 한다. 어머니가 지난날에 있었던 부부싸움의 내용을 전하자 하준 씨가 ‘고집이 세요’하며 아내를 보고 웃는다.
그러던 호티몰 씨가 승연이의 출산과 함께 많이 달라졌다. 딸아이에게 젖을 물리며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안정을 찾고 있는 것이다. 호티몰 씨에게 뿐만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승연이는 집안의 보물이다. 겨울이 시작될 즈음에는 그녀의 소망대로 승연이와 함께 베트남 친정나들이를 다녀올 작정이다.
베트남에서 사는 게 좋은지, 한국에서 사는 게 좋은지 묻는 질문에, 선뜻 ‘한국이 좋아요’라는 대답을 하는 호티몰 씨. 그녀는 지금 성남여성복지회관에서 임신과 출산으로 지연되었던 한국어 공부를 다시 하고 있다. 남편 하준 씨의 머리를 잘라줄 정도로 미용 솜씨가 좋아 말이 자유롭게 되면 미용 관련 일을 해보고 싶다는 소망도 키워가고 있다. 호티몰 씨의 한국어 이름은  ‘호지연’. 그녀가 호지연이라는 이름으로 가족이라는 넝쿨과 함께 이 땅에 튼튼한 뿌리를 내리기 바란다.


※ 온누리안은 ‘온누리’와 사람을 뜻하는 ‘-ian’이 합쳐진 합성어.  국제결혼가정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을 어우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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