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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사람 “희망을 그려주고 싶어요” 김경순

“엄마가 봉사활동하는 모습을 늘 보아서 그런가 봐요. 작년에 병원에 오는 아동들에게 페이스페인팅 봉사를 하는 프로그램이 새로 시작됐는데 해보겠냐고 엄마가 물어오셨을 때, 자연스레 오케이 했죠.”

매주 화요일 오전,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병원으로 들어가는 로비에서 아이들의 손등에 페이스페인팅을 해주는 김성희 씨를 만날 수 있다. 일 년여 동안 봉사활동을 해온 김성희(27)씨는 자신의 어머니에 비하면 이제 막 걸음마를 떼는 단계라고 했다. 김성희 씨 어머니는 병원 도서열람실에서 10년 가까이 책을 대출해주는 봉사를 하다가 작년부터는 약제실로 옮겨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페이스페인팅이라는 게 보통은 놀이 공원이나 축구 경기장에서 애드벌룬처럼 들뜬 나들이 중에 볼 수 있는데 병원에서 한다는 게 뜻밖이었다. 세 살에서 예닐곱 살의 미취학 아동들이 대부분이지만 간혹 중고생들도 있다고 한다. 백여 개의 샘플 그림들 중에 아동들이 원하는 그림을 고르면 그려준다. 여자아이들은 꽃이나 병아리를, 남자아이들은 자동차나 공룡 같은 그림을 고른다.

그리는 중간중간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묻는다. 그러나 어디가 아파서 병원에 왔는지는 묻지 않는다. 어딘가가 아픈 아이들이 엄마의 손에 이끌려 이곳 병원으로 왔을 때 느꼈을 두려움을 새삼 상기시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병의 고통을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으로 자리바꿈하게 만들고 싶은 그녀다.

병원에 안 가려고 했던 아이들도 페이스페인팅을 한번 하고 나면 좋은 기억 때문에 선뜻 신발을 신고 따라나선다고 한다. 특히 장기 입원해 있는 아동들 중에는 화요일 이 시간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아이들이 많다. 휠체어를 타고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왔던 아이들도 손등 위에서 붓끝이 꽃과 돌고래로 화려하게 춤을 추는 순간만큼은 저절로 미소를 짓는다.  지난 겨울, 뇌수술을 받아 머리에 붕대를 감고 길고 긴 투병생활로 인해 어두운 표정으로 자리에 앉던 한 여자아이가 김성희 씨에게 두 손등을 내밀었다. 보통은 한 손을 내밀게 마련인데, 그 아이의 무엇이 그렇게 절박하게 두 손을 내밀게 만든 것일까.

한 손 등 위에는 그 아이가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를 그려주고, 다른 한 손 등에는 푸른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그려주었다. 장래 희망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비행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때 그 아이의 표정을 잊을 수 없어요. 비행기가 손등 위에 완성되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그 아이의 눈이 점차 환한 미소로 가득해졌거든요. 처음 자리에 앉을 때 머리에 붕대를 감고 마스크까지 썼지만 침울하고 어두웠던 그 아이의 눈빛을 통해서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느낄 수 있었어요. 그동안 투병생활을 하면서 힘들었던 시간들을 모두 잊고 푸른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조종하는 비행사가 되는 꿈을 꾸는 그 순간만큼은 누구보다도 행복했을 거예요. 그럴 때 무척 보람을 느껴요.”

앞으로 아이들에게 어떤 그림을 그려주고 싶냐는 질문에 ‘미소를 닮은 희망’을 그리고 싶다고 대답한다. 어른들도 쉽게 지치고 감당하기 힘든 질병의 고통 속에서도 이 아이들이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고통을 이겨냈으면 하는 게 소망이다. 
“봉사활동을 한 이후 엄마와 사이가 더 좋아졌어요. 공통대화가 있으니까요. 혹시 부모님과 사이가 안 좋은 분들은 부모님과 함께 봉사활동 해보시라고 적극 추천해요. 하하.”

홍익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재작년에 이어 올해 인사동에서 전시 준비로 바쁜 김성희 씨가 꾸준히 이 봉사활동에 빠지지 않고 참여하는 이유다. 작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아이들과 마주한 네 분의 봉사자는 정오가 가까워  오도록 거의 쉴 틈이 없었다. 아이들 한명 한명과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잊지 않았다.

아이들의 손등에 하나하나 수놓아지는 그림 꽃은 단순한 페이스페인팅이 아니다. 우리의 미래인 이 아이들이 질병의 힘겨움을 딛고 자라서 꽃 피울 희망과 꿈의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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