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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특강 공부의 달인이 되려면 장회익

십여 년 전 새 천년을 맞으면서 시행된 한 여론조사에서 과학자들은 지난 1천 년 동안의 가장 위대한 과학자로 아이작 뉴턴을 꼽았다. 과학에서의 혁명적 업적뿐 아니라 근대 과학문명의 초석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한편 시사주간지 타임에서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인물로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을 선정했다. ‘과학의 세기’라고 할 20세기의 상징적 인물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니까 적어도 지적 업적을 이루어내었다는 점에서 이 두 인물을 당할 사람이 없다.

그런데 이 두 사람 사이에는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각각 24세와 26세의 젊은 나이에 혁명적인 놀라운 학문적 성취를 이루어내었다는 사실이다. 뉴턴은 24세이던 1666년 광학, 미적분학 그리고 오늘 고전역학이라 부르는 학문의 기반을 마련했으며, 아인슈타인은 그가 26세이던 1905년 상대성이론을 비롯한 4편의 놀라운 논문을 쏟아냈다. 그래서 과학사학자들 사이에서는 이 두 해를 일러 ‘기적의 해’* 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별로 주목해보지 않았던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이 두 사람에게는 모두 그 업적을 이루어내기 이전에 각각 두 번씩의 의미 있는 공백 기간이 있었다는 점이다.

첫 번째 공백은 이들이 십 오륙 세가 되었을 무렵, 학교교육을 중단하고 홀로 공부할 처지에 놓였던 일이다. 출생 이전에 이미 아버지를 여읜 뉴턴은 16세 되던 해에 어머니의 명에 따라 학업을 중단하고 이삼년간 집에서 농사일을 했다. 그러나 온통 관심이 공부에 가 있고 농사에는 그저 실수만 연거푸 하자 주변 사람들이 어머니를 설득해 대학에 보내도록 했다. 한편 아인슈타인은 우리로 쳐서 고등학교 1학년에 해당하는 15세 되던 해에 자기가 다니던 명문 루이트폴트 김나지움을 스스로 뛰쳐나와 간혹 집안일을 도우면서 일이 년을 홀로 공부했다. 그리고는 곧장 대학 입학을 시도했으나, 몇몇 과목이 부실하다는 이유로 입학허가를 받지 못하고 얼마간의 예비학교를 더 다닌 후, 17세의 나이에 대학에 진학해 학업을 이어갔다.

이들이 겪었던 두 번째 공백은 대학교육을 마치자마자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최소한 일 년 이상을 완전 백수로 보낸 일이다. 뉴턴은 때마침 흑사병이 창궐하여 대학이 문을 닫자, 고향집에 가서 누구의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학문적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했다. 이렇게 일 년을 보낸 다음 해가 바로 유명한 기적의 해인 1666년이다. 아인슈타인의 경우는 사정이 좀 달랐지만 홀로 시간을 보내야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대학 졸업 후 아무도 대학의 조교 자리에 채용해 주지 않았고, 정규 교사 자리도 구하지 못해 몇 년간이나 방황했다. 뒤늦게 특허국 3급 기사의 자리를 얻기는 했으나 일반적 상식에 따르면 이제 학문과는 거의 담을 쌓고 살겠거니 하던 상황이었는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1905년의 기적이다.

홀로 서고, 숨 쉴 수 있는 기회와 공간  필요
이러한 사실들은 흔히 이들의 ‘천재성’을 입증하는 일들로 거론된다. 이들은 이러한 역경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업적을 쌓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달리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과연 이러한 역경이 없었던들 이들이 이 위대한 일을 해내었겠느냐 하는 점이다. 이 점에서 나는 이 역경이 오히려 이들을 크게 도왔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는 나 자신의 경험 때문이다.

나 또한 좀 다른 이유 때문에 다니던 초등학교를 다 마치지 못하고 중단하여 일이 년 간 홀로서기 공부를 해본 경험이 있다. 나는 이 기간 동안 혼자 공부하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스스로 체득했고, 이후 이것이 내 일생의 공부 방식으로 굳어졌다. 바로 이것이 내가 수시로 미지의 분야에 뛰어들어 새로운 공부를 시도할 수 있었던 바탕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리고 나 또한 대학 졸업 후 공식적으로는 학문의 전당을 떠나 있으면서 비로소 내 학문을 정리해 본 경험이 있다. 대학교육을 통한 수동적 학업에 지치고 질린 나머지 학업을 거의 포기할 상황에서 나 홀로 몇 년간 공부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이 평생의 학문적 자산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통해 내가 지금 얻고 있는 결론은 창의적인 학문을 위해서는 적어도 얼마의 기간 동안 외부의 간섭을 떠나 홀로 서고 홀로 숨 쉴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이 꼭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물론 이런 시간 여유와 공간만 있다고 하여 누구나 뉴턴이 되고 아인슈타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 무엇’이 더 있어야 하겠는데, 그게 과연 뭘까? 아마도 ‘천부적 재능’이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사람의 두뇌구조는 근본적으로 서로 같고, 단지 이것이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숙성되어 가느냐에 따라 차이가 날 뿐이다. 설혹 ‘천부적 재능’으로 보일 어떤 요소가 있다 하더라도 이것이 어떻게 싹이 터 어떻게 자라 가는지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기울여봄이 옳다.
여기에 대해 아인슈타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그가 만년에 쓴 ‘자서전적 노트’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지적 파악 희구하는 지적 성향 형성돼야
만일 한 개인이 정리된 생각(well-ordered thoughts)을 즐긴다면, 이 방향을 향한 그의 자질은 다른 것들에 비해 월등히 잘 성장할 것이고, 그래서 이것이 그의 지적 성향을 결정하는 데에 그만큼 더 기여할 것이다. 나 같은 사람에게는 이러한 전환이 자신의 주된 관심사가 점차 일시적이거나 개인적인 것들에서 벗어나 사물에 대한 지적 파악을 희구하는 쪽으로 광범위하게 쏠리게 되는 시점에 나타난다.

이는 곧 어떤 일을 계기로 그의 지적 성향이 ‘사물에 대한 지적 파악’을 희구하는 쪽으로 쏠리게 되고, 그렇게 되면 그의 지적 능력이 그 쪽으로 발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천재성’이라고 말하는 지적 자질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이러한 전환의 계기가 마련되는 것이 중요한데, 그는 그 계기로서 자신이 겪은 두 번에 걸친 ‘놀라움’의 경험을 소개한다. 그 하나는 아주 어린 시기에 나침반을 보고 항상 일정한 방향을 가리키는 것에 대해 놀란 일이며, 다른 하나는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자신이 직접 증명해내면서 얻게 된 지적 희열이었다고 한다.

요약하자면 뉴턴과 아인슈타인이 그 큰 업적을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학문 탐구의 역량을 배양할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 이전에 이미 ‘사물에 대한 지적 파악’을 희구하는 지적 성향이 형성되어야만 했다. 그리고 적어도 아인슈타인의 경우에는 주변의 배려를 통한 ‘나침반’과 ‘피타고라스의 정리’와의 만남이 이를 위한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다.

그런데 과연 필요한 것이 이것뿐이었을까? 뉴턴도 아인슈타인도 그들의 이른바 기적의 해를 맞이한 후 더 이상의 큰 진전을 이루어내지 않았더라면, 그리하여 요절한 많은 천재들이 그랬던 것처럼 짧은 학문적 생애로 생을 마감했더라면, 그들의 업적은 별로 큰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 모두 비교적 오래 살았을 뿐 아니라 연륜이 더해 갈수록 더욱 원숙해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기서 다시 우리는 학문의 과정이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장거리 경주라는 것, 경주라기보다는 오히려 드높은 산을 오르는 등정과도 같은 것임을 알게 된다.

몸마저도 공부체질로 바뀌어야 달인
그렇다면 이들이 보여준 그 지구력, 그 추진력은 과연 어디서 얻은 것일까? 여기에 우리가 생각해야 할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이 있다. 즉 공부를 머리로만 할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그리고 다시 온몸으로 해야 한다는 점이다. 공부를 머리로만 할 때는 머리만 지치면 끝이다. 아무리 공부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더라도 더 이상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다. 공부를 마음으로 하는 사람은 공부하고 싶은 생각은 늘 가지고 있겠지만, 일단 책을 들면 눈부터 감기는 사람이 많다. 시쳇말로 2%가 부족하다. 결국 몸마저도 공부의 체질로 바뀌어야 비로소 공부의 달인이 된다.

공부가 재미있어서 한다는 말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것은 게임에 중독되는 것과는 다르다. 공부의 체질이 되는 것과 중독이 되는 것 사이의 차이는 이것이 결코 전반적인 건강을 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부를 하기에 몸도 더 건강해지고, 건강하기에 공부도 더 잘하게 되는 상승적 효과가 나타난다. 이러한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물론 일정한 수련이 필요하다. 공부를 하되 몸이 지치지 않게 하며, 몸을 움직이되 머리 또한 창조적 활동을 멈추지 않게 하는 수련이 자연스런 습관으로 몸에 배어야 한다.

동양의 학성인 공자님 또한 이 점을 일찍이 깨달았던 것 같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겨하는 것만 못하다.(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고 한 말씀이 그것이다. 이를 달리 풀어보면, “공부를 해야 함을 (머리로) 아는 사람은 공부를 (마음으로)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공부를 (마음으로) 좋아하는 사람은 공부를 (온몸으로)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 교육의 실정은 어떠한가? 오로지 공부를 해야 함을 머리로만 알게 함으로써 온몸으로 즐기기는커녕 좋아할 마음조차 잃게 만들고 있지 않는가? 차라리 비싼 교육비를 지불하고 숨통 터지는 교육제도에 매달리기 전에,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사례에서, 그리고 이천여 년 전에 이미 설파한 공자님의 가르침 속에서, 공부의 참 뜻을 살피는 일이 더욱 현명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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